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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우영미 "남자들에게 코트는 일종의 갑옷 같아요"

2023.01.06김성지

20년이라는 시간과 새로운 집. 그럼에도 여전히 남자들의 첫사랑 같은 우영미.

GQ 주변에 우영미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재밌는 얘기들을 들려줬어요. 어떤 친구는 첫 휴가 나와서 구매한 옷이 솔리드였고, 다른 한 친구는 면접보러 갈 때 우영미의 수트를 샀다 하더라고요. 우영미란 브랜드가 마치 남자들의 첫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YM 첫사랑이라니! 너무 좋은 말인 것 같고, 근사해요.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우영미의 옷을 결혼할 때 처음으로 선물로 받았다, 아니면 처음 아르바이트해서 샀다. 혹은 패션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처음 샀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어요. 그랬을 때 너무 좋죠. 꾸준히 좋아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요.
GQ 최근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신 기사 제목이 ‘K – Fashion of Mother’ 이더라고요. 좋은 칭찬이지만 어떻게 보면 부담스러운 제목일 수도 있는데, 만약 오늘 저희가 나눈 대화의 제목을 선생님께서 정하신다면 뭐가 좋을까요?
YM 외국 기자분께서 저를 그렇게 정의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말했으면 엄마보단 누나가 낫지 않았을까요.(웃음) 영미 누나라는 애칭을 많이 써주시는데, 저는 그게 다정하게 들리고 재밌어요.


GQ 영미 누나라는 애칭이 마음에 드시는군요.
YM 네. 제 생각에는 외국 사람이 저를 그렇게 보는 거죠. 좋지만 그 말이 갖는 엄청난 중압감이 있거든요, 제가 잘해야 한다는 거요. 어쨌든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농담으로 기사 제목을 정한다면 누나라고 한 거고요, 사실 제가 저를 무언가로 정의하는 건 옳지 않아요. 나중에 우리나라의 패션 히스토리를 돌아 보며, 2000년도 언저리 시대상을 언급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때의 나를 무어라 불러달라고 하는 건 옳지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우영미는 굉장히 ‘웜하트’를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더 멋있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게 저의 가장 큰 관점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GQ 어느덧 20년이 지났잖아요. 어떠셨어요?
YM 정말 고난의 역사가 많았어요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해봤는데 재밌어서 한 것 같아요. 재밌지 않았으면 힘든데 계속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요즘 텔레비전에서 월드컵 하는 걸 보니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GQ 아, 중요한 건 꺾이지않는 마음.
YM 그게 딱 제 마음이었거든요. 성격 자체가 꾸준하고 포기를 못하거든요.


GQ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요?
YM 자신감이라고 하면 너무 건방진 것 같고, 자신감보단 자기 확신? 그게 없었다면 20년 동안 완전히 고난사였을 거예요.
GQ 파리 의상조합 정식 회원이며 브랜드 창립 20년이 지났으니 덜 힘드실 텐데, 그래도 부침이 있나요?
YM 20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졌어요. 파리가 별로 그렇게 낯설지가 않고 서울만큼 편안하죠. 어떨 땐 파리 공항에 도착하면 내 집에 온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시차는 극복이 안 되지만요. 부침이라면 가끔 발동하는 나의 자격지심? 예를 들면, 혹시 파리 패션계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를 뭔가 부당하게 취급을 하나? 이런 것들요. 그렇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에요.(웃음) 자격지심이 올라올 때면 제 마음을 돌아 보죠. 아, 나 아직 멀었구나. 저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데. 파리에서도 저에 대한 엄청난 리스펙트가 있어요. 그럼에도 날 무시하나, 이런 마음인 걸 보면 아직 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부침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가 없죠.

GQ 그런 부침을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YM 제가 또 일희일비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좋은 일이 있어도 굉장히 업이 되지 않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해요. 파리에 갈 때마다 부침과 사고는 있어요. 직원이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도둑을 마주치거나, 호텔 예약이 어긋난다거나 별의별 일이 많죠. 그냥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GQ 최근 패션계의 트렌드가 스트리트잖아요. 그런데 우영미의 쇼에는 여전히 고고하고 우아한 남자들이 등장해요.
YM 본능적으로 스트리트한 느낌을 좋아하진 않아요. 이건 확실한 제 취향이에요. 저는 젠틀맨을 좋아해요. 그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겠지만요.
GQ 그럼 요즘 시대의 젠틀맨은 누굴까요?
YM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 다들 꼰대라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렇지않고 오픈 마인드인 사람들요. 거기서 엘레강스함도 나온다고 생각해요.


GQ 2년 전부터 여성복도 만드시잖아요. 남자의 옷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YM 일단 오랫동안 남성복을 만들던 사람이라서 여자를 다른 존재라고 보지않는 것 같아요. 별로 경계가 없어요. 약간의 볼륨감이 다를 뿐 팔도 두 개고, 다리도 두 개인 똑같은 사람이죠. 그래서 저희 옷은 정말 경계가 없어요. 옷을 만들면서도 이건 남성복, 저건 여성복이라고 정하지 않아요. 사이즈를 줄여서 여자가 입기도, 키워서 남자가 입기도 해요. 다만 첨언을 하자면 비교적 여성복을 늦게 시작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GQ 어떤 점이 다행일까요?
YM 디자이너는 자기가 큰 제한이거든요. 자기라는 사람이 가장 큰 걸림돌이에요.  쉽게 말해 나라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자꾸 기준이 내가 돼요. 예를 들어 내가 아주 뚱뚱한 사람이에요. ‘저렇게 짧은 걸 어떻게 입어, 저렇게 타이트한 걸 어떻게 입어’라고 생각하게 돼요. 자기 나이, 자기 보디, 자기 캐릭터 이런 것들이 디자인에 큰 제한이 돼요. 왜냐면 무언가를 표현하는 건 나로부터 시작이 되거든요. 저는 다행히 나이가 들어서 시작하다 보니 제가 입을 생각은 아예 배제했어요. 굉장히 객관화가 된 거죠. 남자는 제가 처음부터 그랬기 때문에 우 영미 특유의 남성상이 만들어졌고요. 저 남자친구와 같이 다니는 여자친구는 이렇게 입으면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요. 디자이너로서 다행인 거죠.

GQ 우영미는 서울과 파리, 두 공간에서 전개하는 브랜드예요.
YM 두 공간은 문화적 차이도 있고 패션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굉장히 달라요. 예전에는 유럽이 훨씬 빨랐는데 요즘은 한국이 더 앞서가는 것 같아요. 유럽 사람들은 자기만의 패션 프레임이 있어서 거기서 조금씩 변해가지, 한 번에 오픈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한국은 거침없이 변하는 편이에요. 저는 그냥 국적을 신경 쓰지 않고 동일시해요. 최근에는 티셔츠 앞면에 우영미 서울 이라고 쓸까, 그런 생각도 해봤고요.(웃음) 저희가 우영미 파리라고 붙인 건 거기서 컬렉션을 시작하다 보니까예요. 개인적으로는 두 공간을 다르게 받아들 이지 않아요. 두 공간을 똑같이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거죠. 관점이라는 게 자기가 중심을 똑바로 서면 돼요.
GQ 그래도 두 장소에서 좋아하는 공간은 다르실 거 같아요.
YM 제가 파리에 가면 돌아다닐 시간이 많이 없어요. 피팅하고 스타일링 하다보면 여행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마레예요. 마레가 우영미의 스토어가 있는 홈 그라운드이기도 하고, 사무실도 있고요. 옛날부터 스토어 오픈할 장소를 찾으려고 골목골목을 다녔거든요. 압구정동 골목은 몰라도 마레는 구석구석 너무 잘 알아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저희 파리 오피스가 센 강의 시테 섬 바로 옆에 있어요. 거기가 가장 편해요. 어느 빵집,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까지 저희 동네처럼 아는 곳이라 마레가 가장 편해요. 서울은 요즘 와서 아차산이 좋아요. 일단 이름이 로맨틱하고, 한적하고, 제가 좋아하는 절도 있고요.


GQ 아차산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오랫동안 꿈으로 간직하셨던 아틀리에를 우영미 20주년을 기념해 아차산에 마련하셨잖아요. 어떤 공간인가요?
YM 우영미가 만든 두 브랜드,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를 위한 집이에요. 집에는 숟가락부터 시작해서 컵과 가구 등 모든 것이 있어야 하잖아요. 여기가 딱 그런 공간이에요. 솔리드와 우영미를 만드는 직원들을 위한 모든 것이 담겨 있고 이 안에서 다 만들 수 있죠. 아카이브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서적과 자료가 있고 미팅도 하고, 세트도 만들고, 패턴도 만들고 색도 정하는 등 디자이너들이 못 할 건 하나도 없는 그런 공간이죠.
GQ 선생님께서는 패션 디자인을 하지 않았다면 건축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옷을 짓거나, 건물을 짓거나. 둘 다 같은 표현인데 어떻게 다를까요?
YM 굉장히 예리한 질문이네요. 건축과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해보면 옷과 건물의 주인공은 사람이거든요. 제일 가까운 표면, 피부에 닿는 공간이 옷이고, 그게 확장된 게 집이라고 생각해요. 패션이든 공간이든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기본으로 삼아야 해요. 그리고 결국은 아름답고 실험적이어야 하고요.


GQ 그러고 보면 건물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우영미의 옷과 닮아있어요.
YM 맞아요. 직원들의 동선과 용도에 맞도록 딱 필요한 것만 디자인했어요.
GQ 포인트 컬러가 레드인 건 의외였어요. 우영미하면 담백한 색이라 생각했어요. 맨메이드 우영미도 무채색이잖아요.
YM 저도 사실은 의외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화려한 색을 좋아하지 않았는데세월이 지나니 언젠가부터 레드가 좋아지더라고요. 내 주변에 레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GQ 레드가 주는 따뜻한 속성 때문일까요?
YM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엔 교만하고 오만하고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레드로 무너져 갔다고 해야 하나? 이게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인가 싶어요.


GQ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를 좋아하신다고요.
YM 퐁피두 센터에서 그의 작품을 봤어요. 와이어 매트라고, 단단한 쇠그물로 건물을 뒤집어 씌웠더라고요. 볼드하고 각진 건물에 쇠그물을 천처럼 덮어씌우는 그 실루엣이 굉장히 모호해 보였어요. 그걸 보고 도미니크 페로가 좋았졌어요. 꼭 그것을 보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하우스 우영미가 현실적으로는 너무 낡았기 때문에 루버 양식을 이용해 건물 표면을 뒤집어 씌웠어요. 건물을 라운드 모양으로 만든 건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라인을 많이 생각했고요.
GQ 한 방송에서 호텔에 갔는데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방을바 꾸셨다고 말하셨어요. 지금 사무실의 러그나 소품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나요?
YM 어떤 사람은 미각, 어떤 사람은 청각에 강박이 있는 거처럼, 저는 시각에 강박이 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오브제가 눈앞에 보이면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무언가를 한꺼번에 사지 않아요. 마음에 드는게 나올 때까지 생각하고 오래 기다렸다가 채워요. 제 사무실과 집에 늘 여백이 많은 이유예요. 컬렉션을 할 때마다 레퍼런스를 비우고 채워 넣으려면 빈 벽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GQ 자매분들이 아버님의 화분을 그대로 쓰시던데요. 이 곳에도 있나요?
YM 제 공간 어딘가에도 아버지 물건이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아침마다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런 컵에 물을 주셨거든요. 어느 날 제가 디자인이 예쁜 컵을 구매하고 보니 아버지가 쓰셨던 컵과 생김새가 비슷한 거죠. 아 내가 우리 아버지랑 취향이 비슷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GQ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구매하신 게 아니고 사고 보니까 비슷했다는 거죠?
YM 사고나서 보면요. 아버지 욕을 막 하고나서 돌아보면 언니와 동생이 “너 아버지랑 되게 똑같다”라는 말을 해요. 저한테 아버지의 취향이 있나 봐요.
GQ 그럼 건축 일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보고 좋아하셨을만한 공간도 있을까요?
YM 아마 3층 테라스에서 물을 주고 계셨을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유난히 볼드한 걸 좋아하셨어요. 정원도 되게 좋아하셨고요. 3층 테라스의 화분이 네모로 되어 있으니 아마 그곳에서 물을 주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GQ 1층에는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아카이브 해놓으셨네요.
YM 하우스 우영미를 위해 아카이브를 정리하다가 처음 솔리드를 론칭했을 때 만든 티셔츠를 찾았어요. 그거 보고 한바탕 웃었는데,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괜찮더라고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주셨구나, 하고 느꼈어요. 솔리드와 우영미가 분리되기 전에 만든 쇼트 코트도 찾아서 재밌었고요. 그런 피스가 많이 있고 기억에 남아요.
GQ 코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우영미 하면 코트인데, 유독 남자들이 우영미 코트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요?
YM 제가 코트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요. 코트 입은 남자가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남자들에게 코트는 일종의 갑옷 같아요.
GQ 그래서 항상 컬렉션에 코트가 보이는군요.
YM 맞아요. 항상 컬렉션을 전개할 때 코트에 대한 사랑이 있어요.

루버 양식을 이용한 하우스 우영미 외관.

GQ 얼마 전에 라프시몬스가 컬렉션을 그만 두게 되었어요.
YM 저희도 그 날 되게 우울했어요. 남성복 마켓이 그만큼 힘들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섭섭하고 기운 빠지고 우울했어요.
GQ 지금 우영미는 한국 패션의 상징이잖아요. 더 오래오래 하셨으면 좋겠어요.
YM 제가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기를 바라고, 디자이너로서의 취향이 소비자에게 외면받지 않기를 바라요.
GQ 소비자와 의사소통이 안 된다 싶으면요?
YM 그땐 결단을 내려야 할까요? 특히 요즘은 거대한 자본들이 들어와서 럭셔리 패션 시장을 쪄내고 성형하시피 하거든요. 이게 좋은 패션이라고 쏟아 부으면서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게 보여요. 패션에서 씨앗이 되고 가장 변하지 않는 건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잖아요. 디자이너라는 존재가 없이는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국가대표가 되어 있으니까 옛날보다 그런 중압감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저를 응원해주시는 커뮤니티나 매체가 큰 도움이 돼요. 그런거 보면 좀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GQ 저희가 매년 연말에 행사를 해요. 오늘 저녁에 열리고 드레스코드가 레드인데, 만약 평소에 주로 블랙 옷을 입으시는 선생님이 참석하신다면 어떤 옷을 입으시겠어요?
YM 올 레드 코트를 입고 갈게요.

패션 에디터
김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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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