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 한잔이면 돼요. 창은 활짝 열어두고요’ 어느 날. 송중기의 안온한 시간으로 부터.
GQ 무엇보다 축하 먼저!(짝짝짝!) 좀 늦은 인사죠?
JK 아뇨. 요즘 비슷한 인사 많이 받고 있어요.(웃음) 고맙습니다.
GQ 새 세상 앞에 선 기분이 어때요?
JK 좋죠. 너무 좋은데 제가 워낙 성격이 덤덤해요. 새로운 감정이 드는 건 맞는데, 또 한편으로는 똑같기도 한 것 같고요.
GQ 부러 스스로를 토닥이는 건 아니고요?(웃음)
JK 사실 그게 맞아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는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많이 설레고 기분 좋은 긴장 같은 감정도 가득한데 들뜨지 않으려고요. 네, 그런 요즘인 것 같아요. 물론 진심은 들썩이고 있지만요.
GQ 팬카페에 올린 글에서 “케이티 덕분에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고백 같은 문장이 특히 좋았어요. 중기 씨에게 케이티는 어떤 사람이에요?
JK 케이티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야 한다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늘 인터뷰는 시간도, 지면도 한정적이니까 다 말할 수 없겠죠. 간단히 말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믿음을 주는 친구예요. 이를테면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이나 철학 비슷한 것들이 있는데, 그게 맞다고 다시 한번 확신시켜주는 여자예요. 곁에서 “저답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는 친구고요.
GQ 세상은 두 사람을 축복하면서도 컴컴한 상자에서 뭐가 쓰여 있는지도 모르는 제비를 뽑듯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소란스레 꺼내들기도 했어요.
JK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이었고, 또 많은 사람이 안다고 해도 저희 사랑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점점 늘어날 땐 솔직히 화가 나기도 했죠. 이 친구가 다닌 대학교 이름 말고는 죄다 사실이 아니었거든요. 분노가 점점 커지다 그 분노마저 붕괴될쯤, 케이티가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이 사람들에게 화낼 필요 없다”고. 여기서 많은 얘기를 할 순 없지만, 그런 친구예요. 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균형을 맞춰주기도 하고요.
GQ 팬카페에 글을 올린 날이 혼인 신고를 마친 직후로 알고 있어요. 어떤 모습들로 자축했어요?
JK 아니, 저 그날 혼인 신고하고 바로 영화 <로기완> 리딩이랑 고사 현장으로 갔잖아요. 결국 케이티랑은 일 다 마치고 늦은 저녁을 함께했죠. 아휴, 그날은 진짜 정신없었어요.(웃음)
GQ 지난번 <지큐> 인터뷰는 <빈센조>를 막 끝내고 만났는데, 이번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을 끝내고 만났네요.
JK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 마치자마자 영화 <화란>을 바로 들어갔어요. 지금은 영화 <로기완> 촬영 중인데, 그래서 그런지 벌써 옛날 일 같아요.
GQ <재벌집 막내아들> 이야기, 자세하게는 작품 이야기를 많이들 궁금해해요.
JK 그러실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요. 조금 전 말씀드린 스케줄 때문에 종영 후에는 제가 인터뷰를 하나도 못 했으니까요.
GQ 그럼 가장 먼저 이 질문부터. 이번 촬영 끝나고도 눈물을 살짝 보였어요?
JK 제가 항상 작품이 끝나면 울었죠?(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울지 않았어요. 이유라면 정말 정신이 없어서. 촬영 막바지에 영화 <화란> 일정이랑 맞물렸어요. 어떻게 하면 작품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현실적인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더라고요.
GQ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호흡이 긴 작품은 남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JK 저는 사실 작품에 여운을 많이 느끼는 편은 아니에요.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할 순 있지만, 취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요. 음, 그런데 사람한테는 많이 취하고, 여운도 많이 남는 것 같아요.
GQ 이성민 배우님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요.
JK 그럼요. 성민 선배님은 예전부터 너무 함께하고 싶었던 분이었죠. 실제로 같이할 뻔한 기회도 몇 번 있었고요. 그러다 이렇게 결국 소원 풀었죠. 영광이었어요 진심으로요. 또 <아스달 연대기>에서 인연이 됐다가 이번에 고모부 역할로 다시 만난 김도현 선배와도 더 깊은 관계가 됐고요. 조한철 선배는 <빈센조>에서 만났는데 이번 작품도 함께했고, 또 영화 <로기완>도 같이하게 됐거든요? 한철이 형은 이제 좀 지겹네요.(웃음) 아무튼 이렇게 줄줄 외울 만큼 사람이 제일 많이 남았죠 전.
GQ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대극이면서 드라마이기도, 또 누군가의 일대기이기도 하죠. 더 쪼개보면 그 안에는 스릴러도, 범죄물도 들어 있고요.
JK 아무래도 상업 드라마이기 때문에 사이사이 극의 긴장감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양념인데 그 양념이 너무 좋았던 거죠. 겉돌지 않고. 이야기가 끈끈하게 서로 연결된 덕분에 극의 본질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결국 가족 이야기잖아요. 전 이 드라마가 가진 휴먼적인 내용들이 참 좋았어요.
GQ 인물은요? 현우와 도준은 결국 같은 인물이고, 꼿꼿한 진양철 회장과 영리한 민영, 그 외 순양가 사람들까지. 인물 전부가 흥미롭잖아요.
JK 전 진동기와 최창제요. 두 사람 모두 무언가에 늘 억눌려 있는 인물이거든요. 무엇보다 자격지심이 선명한데 그걸 들키지 않으려 하고요. 궁금했어요. 숨기려는 욕심, 감추려는 욕망, 그런데 기질상 그럴 수 없는 인물들을 선배님들이 과연 어떻게 연기하실지 기대돼서요.
GQ 그런 선배들을 보면 연기를 이만큼 해온 중기 씨도 마음이 동요되나요?
JK 당연하죠. 어떤 연기든, 인물이든 잘하면 배우고 싶어요. 그렇게 하고 싶고.
GQ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그 나이대에 요구되는 역할. 순리겠지만 그래도 좀 더 머물렀음 싶은 시절 있어요? 아니면 얼른 먼저 가보고 싶은 나이대라든지.
JK 예전에는 있었어요. 배역에 한계가 있으니까 빨리 더 나이 들고 싶었죠. 그런데 안 되는 거잖아요. 다 때가 있는 거니까. 이제는 전혀 없어요. 나이 먹는 대로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하는 거죠. 아, 그래서 <재벌집 막내아들>도 처음엔 고사했어요. 20대 초반의 대학생 역할을 어떻게 하나 싶어서요.
GQ 그런데 결국 하게 된 건?
JK 제작진요. 다들 이쪽에서 전문가들인데,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제안한 걸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안 된다고 하나 싶었어요.
GQ 함께하는 이들을 믿었군요.
JK 네, 결국엔 저를 믿었고요. 역할에 대한 제 확신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GQ 스스로에 대한 확신.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오기”가 동력이라고.
JK 기억나요. 지금도 그래요. 제게 주문도, 채찍질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이런 식이에요. 작품 준비할 때 소홀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이렇게 말하죠. “너 이거 지금 제대로 안 하면 이번 드라마 망한다.”
GQ 오싹한 주문이네요.
JK 이러면 할 수밖에 없거든요.(웃음)
GQ ‘오기’처럼 가진 기질 중에서 시간이 지나도 잃고 싶지 않은 거 있어요?
JK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욕구. 이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GQ 비슷하네요. 그런데 이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기질은 아닐 것 같아요. 더 단단해지면 모를까.
JK 그렇죠? 그러니까요. 그런데 또 아니더라고요. 변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꽤 많이 봐왔어요. 저는 안 그러고 싶어요.
GQ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이제는 로기완으로 변하죠?
JK 사실 <로기완>은 6년 전에 제안이 들어왔던 작품이에요. 당시에 너무 하고 싶었고 대본에도 푹 빠져 지냈는데, 그때의 송중기 입장에서는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몇 있었어요. 그래서 건방지게도 거절했고요.
GQ 그런데 그 작품이 6년 후에 다시 돌아온 거예요?
JK 네, 그 사이에 문득문득 궁금했거든요? 그 좋은 대본이 왜 아직 조용하지? 제작 들어갔을 텐데, 분명히 누군가한테 갔을 덴데….
GQ 이건 인연이네요.
JK 맞아요. 딱 6년 만에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지금은 정말 무릎 꿇고 읽는 심정으로 대본을 보고 있어요. 신기한 건 그때 공감되지 않던 부분들 있죠? 이제는 너무 쉽게 되고요. 다 때가 있다는 말, 정말 맞는 말 같아요.
GQ 지금의 ‘때’도 소중한 찰나잖아요. 올봄에 꼭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JK 아기 아빠가 되기 전 마지막 봄이니까, 아내랑 둘이서 데이트 정말 많이 하고 싶어요. 엄청 많이요.
GQ 그러고 보니 오늘 많은 장난감과 촬영했어요. 기린까지 등장했죠?(웃음) 이제 이런 것들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단순히 소품으로 보이진 않겠죠?
JK 그렇겠죠? 이제 하나둘 그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