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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직접 전하는 이탈리아에서의 마세라티 시승기

2023.06.26신기호

그곳, 모데나의 하늘은 여전히 깨끗한가요?

친애하는 마세라티에게

로마의 평화로운 언덕을 내려오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모데나.

한국으로 돌아온 지 꼭 열흘이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네모난 모니터를 마주할 때마다 로마의 회색빛 계단이, 토스카나의 초록 들판이, 모데나의 바다색 하늘이 떠올라 며칠은 고생을 좀 했습니다. 별수 없죠. 그때마다 사진 파일을 뒤적이며 헐렁한 마음을 채울 수밖에요. 편지는 지난달 당신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해 보낸 모든 시간에 대한 인사이자, 제 감사의 마음입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당신이 준비해준 그란투리스모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여행한 순간들은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읽고, 본 장면과 참 많이 닮은 듯합니다. 그만큼 늘 다음이 궁금하고 기대되던 여행이었죠. 스마트폰 속에 사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친애하는 마세라티. 여기 당신의 초대에 대한 보답으로 지난 며칠 동안의 기록을 편지로 정리해 전합니다. 짧고 즉각적인 웹 페이지나 SNS를 통해 인사를 전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토스카나로, 토스카나에서 다시 모데나로 향하는 긴 여정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함께 경험했으며, 또 그렇게 채집한 많은 것(대체로 시승을 하며 직접 체득한 그란투리스모의 성능들)을 공유했으니까요. 저는 그 며칠 동안의 여정을 추억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저 쓰겠습니다. 저의 기억으로 편집한 장면 장면이 당신도 기억하는 행복한 시간이라면 기쁘겠습니다.

로마에서 만난 마세라티
호텔 루프톱에서 만난 당신과 당신의 직원들은 로마의 햇빛을 닮았습니다.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고, 샴페인을 곁들일 때부터 그랬죠. 편하게 앉아 로마의 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때도,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자칫 긴장하기 쉬운 프레젠테이션에서도 그들은 따뜻하고 친절했습니다. 로마에서 맞이한 첫날 저녁, 바닥이 울퉁불퉁한 중심가를 가로질러 겨우 도착한 식당 앞에는 특별한 그란투리스모 1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름은 그란투리스모 제다 Granturismo Zeda. 보닛에서 리어 램프로 갈수록 파스텔처럼 점점 옅어지는 메탈 컬러가 매력적인 모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 단 1대뿐이라는 희소성은 제다가 가진 가장 선명한 가치이자 무기였습니다. 이날, 당신의 디자이너인 안드레아스 웁핀거 Andreas Wuppinger는 제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다는 마세라티의 V8 엔진을 기념하는 에디션입니다. 또 그란투리스모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이 집약된 모델이기도 하죠. 마세라티의 모델 중 가장 특별한 하나를 묻는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제다를 선택하겠습니다.” 약 20분간 이어진 안드레아스의 스피치를 듣고 난 후에는 내 앞에 있는 제다의 존재가 얼마나 굉장한지, 새삼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미 빅 팬이 되어 있었죠. 그래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제다를 가리키며 단순히 그러데이션으로 멋을 낸 에디션 정도로 몰아간다면, 이제 저는 그 아무개의 무례가 꽤나 섭섭할 것 같습니다. 안드레아스가 이야기한 대로 제다는 마세라티의 역사를 품고, 현재를 증명하며, 미래 가장 가까이에 와 있는 상징적인 모델이니까요. 안드레아스, 그렇죠?

시대를 관통하는 로마의 건축물 아래서 만난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
마세라티 그란투르시모의 라인업

그란투리스모 모데나를 타고 토스카나까지의 여정
드디어 시승의 날이 밝았습니다. 기대감에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죠. 호텔 입구에는 총 7대의 그란투리스모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노란색 그레칼레도 맨 끝에 서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날은 로마에서 출발해 토스카나까지 가는 총 길이 2백80여 킬로미터의 여정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크림색을 입은 그란투리스모 모데나 Modena를 배정받았고, 옆자리에는 당신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리카 Rika가 동승했습니다. 로마의 울퉁불퉁한 지면 탓에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건 영리한 리카가 때때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란투리스모 모데나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였습니다. 좋은 차는 잘 달리고, 잘 서야 한다는데 그란투리스모 모데나에게 그 정도는 테스트할 필요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모드를 스포츠로 두고 서서히 속도를 높였을 땐, 조향과 회전을 포함한 모든 반응이 민첩해져서 조금 전 로마 시내에서 느꼈던 저속의 우아함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GT 모드는 말 그대로 편안했죠. 리카는 이따금씩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헤드레스트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해보면, 가장 가까이서 서라운드를 체험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풍부한 음질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리카도 옆에서 움직임이 아주 작은 귀여운 헤드뱅잉으로 반응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차에는 무려 19개의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다고요. 우퍼와 트위터, 스피커를 적소에 배치한 덕분에 입체적인 3D 사운드가 구현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들을 땐, 슬그머니 헤드레스트 옆을 다시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곳에서 뻗는 소리가 가장 매력적이었거든요.

마세라티 트로페오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와 함께한 모데나까지의 드라이브
이튿날엔 다시 토스카나에서 모데나로 향했습니다. 전날과 다른 점이라면 터프한 와인딩 코스가 꽤 많이, 그것도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달려야 하는 코스가 1백40여 킬로미터. 와인딩에는 무엇보다 능란한 운전 스킬이 필요한데, 속도에 욕심이 없다면 넉넉히 경치를 즐기며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날 제가 새로 배정받은 차는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 Trofeo였습니다. 특히 편안함과 성능의 균형이 으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세라티의 슈퍼카, MC20의 V6 네튜노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 무려 5백50마력을 뿜어낸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차를 두고 네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경치만 구경하면 안 되겠죠. 차가 없는 할랑한 도로에선 한껏 욕심을 내보기도 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운전 스킬에도 구불구불한 와인딩 코스를 곧잘 돌파해내는 녀석이 기특할 정도였죠. 특히 빠른 속도에도 안정적인 균형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시승 마지막 날, 불쑥 리카가 가장 괜찮았던 차를 물었을 때, 저는 주저 없이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성능과 GT의 편안함, 여기에 세단의 우아함까지 모두 갖췄다는 이유는 아쉽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서둘러 그란투리스모 폴고레로 갈아타야 했거든요.

해안도로를 매끄럽게 빠져 나오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폴고레.
로마의 밤 아래 나란히 선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와 폴고레.

마세라티의 미래 폴고레와의 만남
목적지까지 50킬로미터 남짓, 모데나에 가까워졌을 때 저는 당신의 새 시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세라티가 만든 가장 첨단의 모델을 몰고 당신의 고향 모데나로 향하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란투리스모 폴고레 Folgore는 마세라티의 순수 전기 모델이죠. 3백 킬로와트의 모터가 3개나 들어가 있고, 이를 강력한 8백 볼트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들었습니다. 설명만 들었을 땐 와 닿지 않던 성능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을 때 바로 체감될 정도로 반응은 즉각적이었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엔진 사운드였습니다. 전동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DNA를 잃지 않기 위해 새겨둔 V8 엔진의 웅장한 사운드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폴고레를 타 봤다는 건 어쩌면 당신의 미래 비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체감해볼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는 것. 나아가 흥미로운 건 그 미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 돌아보면 이번 투어는 당신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당신은 늘 혁신적이었고요.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당신의 새로운 미래를 저는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Gra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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