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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목해야 할 한국 영화감독 4인

2023.07.01전희란

<화란>의 김창훈 감독부터 <스프린터>의 최승연 감독까지.

김창훈 KIM CHANG HOON

첫 장편 <화란>으로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다. 영화에서 밑바닥까지 기어이 파고드는 치열함과 치밀함, 스타일리시한 감각적 화법이 돋보인다. 단편으로는 <댄스 위드 마이 마더>가 있다.

카디건, 호이테.

의지하는 한 문장 “모든 순간이 완전하다.”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떠오른 문장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살보다 가깝게 체화된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의지하게 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살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겪었네요. 의지할 만한 문장이라는 건 보통 고통스러울 때 떠오르다 보니 그랬던 일들이 주로 생각납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까진 살에 모래알을 문지르는 격으로 다가왔어요. 그걸 잊을 만할 즈음 모든 것이 더 나아지면 문득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거기엔 언제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 일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 지금과 같은 형태의 내가 이 순간 존재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것. 삶은 빛과 어둠이자, 행복과 불안이 들숨과 날숨으로 교차하는 호흡입니다. 어둠이 없다면 우리는 빛을 알 수 없고, 불안을 겪어본 적 없다면 행복 또한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온전히 알 수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모든 순간은 있는 그대로 완전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② 그날은 하필 “장편 시나리오 한번 써볼래?” 하필 그날,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저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먼 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글이 완성되면 계약금을 한 번에 입금해줄 테니 얼른 써봐.” 그날을 기점으로 하던 아르바이트까지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그간의 생활고가 이제 어느 정도는 해결되겠다,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겠다. 순진한 기대를 품고 글을 완성했을 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당장은 계약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했던 탓에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얼마 뒤 또 다른 작가 제안이 들어왔어요. 마감 기한 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이번에도 좋은 결실로 이어지진 못했어요. 생활은 바닥을 쳤습니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 그동안 생긴 빚을 해결하려면 아르바이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또 한 번 시나리오 쓰는 일을 찾았지만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그 무렵부터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오로지 내 내면에서 비롯된 시나리오를 썼고, 얼마 뒤 완성한 이야기가 <화란>이었습니다. 연달아 벌어진 그 사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어떤 형태로 달라져 있을까요. 당시의 저는 스무 장 남짓한 스토리 트리트먼트를 한 번 써본 것 외에는 장편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었습니다. 생활에 대한 그때의 절박함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연달아 장편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때의 일들이 네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저를 몰아갔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어마어마한 경험이자 훈련이었습니다. 처해 있던 상황과는 모순되지만 그때의 경험들에 감사합니다.

③ 끝없는 물음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맞는가?’ 저에게는 이것들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선배 감독님들 또한 그렇겠지만, 저도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렇게 개인적인 관점에서부터 시작했을 때 이야기에 더 힘이 생기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더 큰 추진력을 얻는 것 같아요. 앞서 언급했던 경험들을 들여다봤을 때,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에는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뭔가가 조금씩 비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깨달았을 때부터는 이야기를 만들 때마다, 중심을 잃을 때마다 위의 질문들을 반복해왔습니다. 첫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연출팀으로서의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안개처럼 느껴졌습니다. 힘에 부칠 때마다 버틸 수 있게 만들었던 건 결국,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욕망이었습니다.

④ 끝까지 간다, 끝까지 붙든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여러 의견이 생겨납니다.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더 좋은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의견을 듣다 보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중심을 잡기 힘든 순간들이 생깁니다. 모든 의견을 다 반영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모든 의견을 다 배제할 수도 없는 일이죠. 좋은 의견들을 반영하는 동시에, 애초에 이 영화를 통해 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이야기를 놓치지 않아야 했어요.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 것으로 융해시킨 후 다시 재생산해내는 ‘체화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어요. 수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이런 과정을 늦지 않게 소화해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체화의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그걸 포기하는 순간 제가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흐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화란>은 ‘뒤틀린 환경이 개인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게 성장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도리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⑤ 우연이 빚은 우연과 닮은 기적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치건과 그 조직원들의 대부업체 사무실을 디자인할 때, 그들이 버려진 다방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미술감독님께도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걸 바탕으로 제작 팀원들이 로케이션 헌팅을 했는데, 그 건물에 버려진 다방이 있었고, 건물 주변의 섹터를 전부 사용해도 될 만큼 희귀하고 특색 있는 공간이었어요.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분위기와 굉장히 닮아 있었어요. 상상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좋았고, 그 섹터 전체를 치건 조직의 요새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연이라기보단 제작진들의 노고가 빚어낸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⑥ 그들 각자의 영화관 여덟 살이었는지 아홉 살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 무렵 저는 공룡을 좋아했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공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자며 저를 극장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스필버그 감독님의 <쥬라기 공원>이었어요. 영화관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 피어난 그날의 체험은 제 삶을 영영 바꿔놓았습니다. 거대한 공룡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며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던 저는, 영화가 끝나고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런 거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돼?” “영화감독이 되어야지.” “그럼 나 영화감독이 될래.”

⑦ 아주 오래된 미래 아주 오래된 첫 번째 미래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어요. 저에게는 여덟아홉 살 무렵부터 꿈꿔왔던 일이 20여 년 만에 이뤄진 셈입니다. 그보다 더 큰 꿈이 한 가지 있네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영화감독들에 대해 언급할 때, 제 이름 또한 언제나 함께 불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꿈은 그 자체로 크나큰 생명력을 지녀요. 그것은 앞으로 제 삶의 엔진으로 쉼 없이 작동하리라 생각합니다.

가성문 KA SUNG MOON

<드림팰리스>로 2023년 장편 데뷔했다. 예민하게 감각하는 문제의식과 또렷한 시선, 그럼에도 끝까지 놓지 않는 어떤 애정이 영화에 묻어난다. 단편으로는 평단의 호평을 받은 <아! 대한민국>, <누렁이들>이 있다.

재킷, 팬츠, 모두 코스.

① 의지하는 한 문장 “창작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합니다. 예전에 음악을 할 때 유명한 선배 뮤지션이 해준 조언인데, 영화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 말을 떠올립니다. 창작의 결과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과정은 매우 험난합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고 보상도 불확실해 집중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아요. 정답이 없는 일이며 누구도 검열하지 않기에 어느 정도 타협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의심해야 해요.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수고로움이 담긴 결과물을 원점으로 되돌릴 용기도 내야 합니다.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기에 절대 쉽지 않죠. 그래서 창작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내 안의 어떤 악마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달콤한 말로 유혹합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아요. 적당히 타협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막아버리게 되니까요. 창작은 나 자신에게 깊이 파고들어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세계에 대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열정적으로 비판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창작의 원천이자 가장 큰 방해 요소이기도 해요.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잘 이겨내야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② 그날은 하필 20대 초반에 단편영화를 하나 찍은 적이 있어요.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들 앞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었어요. 모두를 너무 고생시켰는데 그에 보답할 만한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였죠.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만들어왔어요. 바로 전 작품 <아! 대한민국>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고요. 그래서 자신감에 빠져 그 단편영화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실 20대 초반 대학생으로서는 어려운 난도에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저 혼자 다 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에 끌려서 시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죠. 내 안일한 결정들이 만든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고초를 겪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보며 정말 괴로웠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나니 자책감과 허무함이 밀려왔던 것 같아요. 그날 저는 감독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감독의 결정이 프로덕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깨달았고요. 영화는 감독 혼자 찍어낼 수 없다는 것, 이전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내 실력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요.

③ 끝없는 물음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라고 자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 작업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런 의문은 제게 익숙합니다. 원래 좀 뭉툭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러려니 하려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고요. 때때로 예민하게 감정이 고동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니컬한 성격이 영화 제작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과 갈등하는 감정을 내가 아닌 ‘어떤 인물’에 부여하면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힘을 얻습니다. 나와 친숙한 감정이기에 그 인물을 이해하기 쉽죠. 그 인물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힌트를 얻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곤두서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혼자 상처를 입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였죠. 그런데 이제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와 같은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이런 나의 면모 때문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좋게 생각합니다.

④ 끝까지 간다, 끝까지 붙든다 질문의 초점과 다르게 저는 항상 끝까지 가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단, 자신의 가능성에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일생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언제나 예상 밖의 여로를 열어두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내가 신념처럼 여기는 것이라 해도 말이에요. 저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오로지 나의 진실을 관철하기 위해 독단적인 결정에 사로잡히는 괴물요. 사실 우리나라는 영화감독이 괴물로 변하기 쉬운 환경입니다. 특히 작은 영화일수록 열악하기 때문에 사람을 더 독하게 만들죠. 그런데 저는 사회적 약자들을 다루는 영화로 데뷔한 거잖아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현장에서 괴물이 된다면 그 모순은 더 크게 다가오죠. 하나의 장편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최소한 1백 명 이상이 참여합니다. 각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영화는 같은 점이 하나도 없고, 그중엔 제가 상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있죠. 저는 동료들을 신뢰하고, 소통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며, 때로는 과감히 내 아이디어를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영화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⑤ 우연이 빚은 <드림팰리스>에서 동욱이 아파트 입구에서 혜정에게 자기 잘못을 털어놓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감독의 통찰력보다 앞선 배우의 해석력 덕에 더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에서 혜정은 어떤 진실을 알았더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행동에 대한 후회와 고통을 겪죠. 제가 생각한 것은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김선영 배우님은 모자 관계가 개인 대 개인으로 균열하는 순간을 연기하며 혜정의 감정을 한층 더 발전시켰어요. 현장에서 그 연기를 보면서 저는 다층적인 감정을 느꼈어요. 배우님의 연기에 감화되면서도 관객들이 혜정을 미워할까 봐 불안했어요. 제 무의식 중에는 ‘어머니는 언제나 사랑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모성애적 터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혜정은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어요. 이 사실을 깨닫고 배우님의 해석이 가장 잘 드러난 테이크를 편집에 사용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그 장면에서 균열하는 모성애를 인상적으로 평하시는 관객이 많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대로만 했다면 이러한 깊이 있는 장면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들 각자의 영화관 종로 낙원상가의 옥탑 층에 허리우드극장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영화광이었고, 그곳에서 많은 영화를 함께 보았어요. 그때 영화와 친해질 수 있었어요. 스크린에 투사된 세계에 빠져들며 영화를 즐기는 재미를 알게 된 거죠. 어찌 된 일인지 가족들과 함께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도 많이 보았어요. <스워드 피쉬>라는 영화에서 베드 신이 나오자 너무 당황해서 자는 척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극장이 쇼핑몰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극장으로서 건재하고, 언제든지 관객들이 가득 차 있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비록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왜인지 영화는 혼자 보면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요. 그래서 요즘처럼 텅 빈 영화관에서는 영화 볼 맛이 나지 않네요. 영화는 다 같이 보아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나마 영화제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참석하곤 합니다.

아주 오래된 미래 이런 대답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응원하는 축구팀인 FC안양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게 제 오랜 소망입니다. FC안양은 기업이 소유하지 않은 2부 리그의 시민구단이에요. <드림팰리스>를 썼던 작업실을 FC안양 경기장 바로 옆에 구했을 만큼 저는 축구에 진심이기도 해요. FC안양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팀이에요. 원래 안양 연고지였던 팀이 갑작스럽게 다른 도시로 떠나고, 그 후 10년 동안 시민들이 축구팀을 되찾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해 만든 팀이거든요. 안양에 살게 된 이후 저는 동네 사람들이 팀을 되찾고 제자리에 올려놓으려 투신한 긴 시간을 직접 경험하며 느껴왔어요. 작은 팀인 FC안양이 1부 리그로 승격해 이 도시를 떠난 대기업 구단에게 통쾌한 승리를 이룬다면 진정한 자이언트 킬링이 되겠죠. 물론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요. 그냥 영화 같은 상상에 불과하죠. 하지만 제가 판타지로만 생각하던 상황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면, 이는 제 삶의 큰 의미를 갖는 순간이 될 것 같아요.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자리에서 열심히 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응원이 가 닿아 진짜 현실이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먼저 익숙한 수많은 얼굴에서 행복함이 보일 것 같아 좋고요. 마침내 저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판타지를 마음껏 향유하는 영화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형슬우 HYUNG SEUL WOO

2023년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로 장편 데뷔했다. 보통의 이야기가 단지 보통으로 남지 않는 건, 감독 특유의 감칠맛 감도는 재치와 일상의 사소함을 놓치지 않는 따뜻한 관찰 덕분일 테다. 단편으로는 <그 냄새는 소똥냄새였어>, <병구> 등이 있다.

재킷, 브루넬로 쿠치넬리. 셔츠, 아르켓. 안경, 니시데 카즈오.

① 의지하는 한 문장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흘려버리는 것이다. 바위에 파서 새겨 넣어라.”
대만의 유명 영화감독인 허우 샤오시엔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당장 영화를 찍으라 젊은이들아, 생각만 하지 말고!’ 이런 맥락으로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짧은 글은 제게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연결되었어요.
결국 말과 생각은 기록해두지 않으면 어디론가 날아가고, 글과 영화는 어딘가에 남죠.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의 순간에 재미있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저장합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제 영화의 소재나 장면이 되어서 나오기도 했어요. 몇 년 전부터는 하루에 1초씩 기록해 1년씩 모아 유튜브에 아카이빙하는 취미를 갖고 있어요. 3백65일이면 3백65초를 매해 1월 1일 혹은 2일에 올립니다. 무료한 순간 재생해보면 꽤나 재미있죠. 복기해보면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의 말은 물 한 바가지로 세게 때리는 느낌이랄까요? 요즘은 내성이 생겨 두 바가지는 얻어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② 그날은 하필 중고등학교 시절 비디오를 많이 빌려 보아서 친구들에게 영화를 자주 추천해줬습니다. 아침에 신문이 오면 스포츠 면과 문화 면을 펼쳐 영화 별점이나 정보, 평론만을 찾아서 보는 아이였어요. 그땐 남들보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아이 정도였는데,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었어요.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시고, “이 영화 제목 아는 사람?” 물을 때마다 제가 자주 손을 들고 대답해 선생님의 관심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 문득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만드는 일에 대해 처음 생각해봤습니다. 학창 시절에 우등생이 아니었기에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은연중에 했던 것 같고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그러다가 만나는 한계 역시 그렇게 싫진 않습니다. 결국 제가 영화를 만든다는 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③ 끝없는 물음 “왜 이 이야기를 관객들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봐야 하나”를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이 세상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그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영화라는 매체를 관객들이 선택해주고, 그중에서 제가 만든 영화를 선택해주셔야 제가 먹고산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직업적인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와 캐릭터로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것, 그리고 나와 나를 알았거나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에 나온 아영이의 모습을 보고, 마치 자기 일기장을 훔쳐다가 쓴 것 같다는 분도 계셨어요. 그분은 인생에서 제 영화를 잊기 힘들겠죠. 인생의 어떠한 부분을 얼굴도 본 적 없는 감독이 대신 재현해줬으니까요. 이처럼 제 영화가 어느 누군가의 인생에서 기시감으로 나타날 때 희열이 느껴집니다.

④ 끝까지 간다, 끝까지 붙든다 현장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객들의 눈과 귀는 배우에게 제일 집중하고 있으니까요.(훌륭한 배우들과 작업해서 많은 테이크를 가지는 않았습니다.) 후반 과정에서는 영화를 온전히 볼 수 있게 하는 편집, 소리를 매끄럽게 하는 작업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의 후기 중 “편안하게 흐르는 대로 영화를 보기 좋았다, 평양냉면같이 ‘슴슴하게’ 보기 좋은 영화다”라고 해주신 분들이 보이는데,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평양냉면같이 ‘슴슴’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극 후반 화실에서 아영과 준호가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대화가 지난해질쯤 나오는 종수의 등장과 소품 활용 등으로 텐션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세공을 했어요. 영화를 보며 관객 각자가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연인 혹은 친구)을 떠올리길 바랐습니다. 내가 바랐던 너의 모습, 네가 바랐던 너의 모습, 그 이상과의 괴리에 지쳐 떠난,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우리들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마주했으면 했어요.

⑤ 우연이 빚은 아영과 준호의 첫 등장이 생각나네요. 아영이 밖에서 일하는데 비가 내리고, 준호는 반대로 안전한 아영의 집에서 해를 쨍쨍 맞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같은 날로 설정했거든요. 아영의 장면을 촬영하는 당일 비가 온다는 걸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일기예보보다 더 많은 폭우가 쏟아졌죠. 비를 피하며 로케이션을 다시 정해야 했어요. 애초 정했던 로케이션도 마음에 썩 들지 않았는데, 어디서 촬영할지 급히 찾다가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던 카페 건물 앞에서 촬영에 적합한 공간을 찾았어요. 즉석에서 스토리보드와 배우의 동선을 짰죠. 그렇게 해서 촬영한 신의 무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아영과 준호의 마음이 장면으로나마 대비되어 좋았고, 살수차 없이 비 오는 신을 찍어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제작비를 많이 아꼈죠.

그들 각자의 영화관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맨 앞 A열 통로 좌석을 좋아해요. 상영관이 다른 산만한 요소 없이 영화 보기에만 최적화된 점이 좋아요. 연희동 라이카 시네마의 접근성과 아늑함,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의 프로그램도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는 서면 은아극장 혹은 남포동 대영극장에서 영화를 봤어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거리에 진동하는 어포와 번데기 냄새가 잊히지 않아요. 간판이 그려진 영화관은 이제 보기 힘들죠. 제 기억 속에 유튜브 숏츠 영상처럼 계속 재생되는 것이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말을 탄 채 양팔을 벌리는 장면, <로보캅>이 파괴되어 울음을 터뜨린 기억이이에요. <로보캅>은 최근에 다시 봤는데, 당시엔 슈퍼히어로물로 봤는데 지금은 폴 버호벤이라는 거장의 터치가 느껴지는 걸작이더라고요.
매년 여름 정동진에서 정동진 독립영화제를 하는데, 거기서 본 영화들도 기억에 선명해요. 스크린 앞으로는 관객들이 집중하고 있고,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모기 퇴치용으로 쑥을 태워 연기가 나고, 스크린 뒤로 밤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요.
영화관으로 꿈꾸는 어떤 드라마가 있다면 ‘우주여행’이에요. 영화관 자체가 우주여행선,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승무원, 관객은 우주선에 탑승한 여행객이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감독이 만들어놓은 2시간 남짓한 우주를 구경하고, 탑승한 모두가 일상으로 잘 귀환하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아주 오래된 미래 비디오 키드 시절부터 언젠가 내가 만든 영화를 스크린에 걸어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을 고대했어요. 올해까지 다양한 단편영화들과 장편영화로 관객들과 만나게 되어서 감격스러워요. 영화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인간이 되고 싶기에 영화는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동시에 생존이기도 하겠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죠.

최승연 CHOI SEUNG YEON

2016년 <수색역>으로 장편 데뷔한 이후, 2023년 개봉한 <스프린터>가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동을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을 모두 피해가면서도, 끝끝내 가장 뜨거운 감동을 남긴다. 차가움 속에 존재하는 불처럼.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안경은 최승연 감독 본인의 것.

① 의지하는 한 문장 (오랫동안 생각) 솔직한 이야기로, 의지하는 하나의 문장은 없어요. 다만 영화를 만들면서 가끔 생각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감독 데뷔 전, 저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영화 관계자들에게 소개해주신 한 영화사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 투자하는 사람들, 출연해야 하는 배우들, 기성 감독들은 하루에도 읽어야 하는 시나리오와 미팅이 많기 때문에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너의 시나리오를 당연히 읽지 않을 것이고, 네가 준비하는 영화에는 아무도 관심도 없을 것이고, 이름도 기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계속 영화를 준비하라”라는 의미의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준비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 병신 혼자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텐데, 하나씩 혼자서 이뤄가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타날 것이고, 한 명 두 명 같이 준비해보자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말을 지금도 가끔씩 생각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 그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그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현재의 제가 영화를 만든 과정이 담겨 있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② 그날은 하필 “왜 영화감독이 되었나? 어떤 계기가 있었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생각해봤지만, 영화감독을 해야겠다고 맘먹게 된 계기가 되는 날이나 에피소드는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막연하게 영상 관련한 학교를 가고 싶어 했어요. 더 중요한 건, 따로 영화를 많이 챙겨 보거나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모르게 영화나 관련 영상을 보는 일을 했죠. 어린 시절 집 안 한쪽 벽면에는 책과 레코드, CD가 가득했고, 비디오 가게에서 하루에 영화 여러 편을 빌려서 보는 일은 일상적이었어요. 집에 책과 음반이 너무 많아 버리는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죠. 대학 가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영상 관련 학과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영화과 입학 전에는 영상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입학 후에는 영화 공부와 단편영화 작업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이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는 선택을 한 그 순간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끝없는 물음 시나리오 과정이나 프로덕션 때도 사건을 만드는 만큼 ‘인물’을 매력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시나리오와 촬영 중에도 그 캐릭터와 인물이 매력적인지를 계속 생각합니다. 영화의 출발은 사건일 수도 있고,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템이나 사건이 좋다 해도, 그것에 반응하는 인물에 따라 그 영화의 재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혹은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의 어색한 한마디에 집중이 깨지기도 하죠. 촬영이나 조명, 미술 등도 여러 가지 역할을 하지만, 극중 인물의 매력도는 영화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사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그 배우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좋은 연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④ 끝까지 간다, 끝까지 붙든다 붙들고 매달리는 것은 많지만, 늘 순서가 있어요. 프리프로덕션 때, 캐스팅 완료, 헌팅 완료, 콘티 완료 등 마감 일정이 있는데, 최대한 마음에 드는 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마감하지 않고 계속 진행했어요.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스프린터>의 모든 배역은 이 영화뿐 아니라 앞으로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스프린터>에서 송덕호 배우와 임지호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서 캐스팅했는데, 송덕호 배우는 영상 오디션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서 따로 오디션을 진행해 캐스팅했고, 임지호 배우는 정호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마지막 미팅에서 맑은 이미지를 확인하고 준서 역으로 캐스팅했어요. 지현 역의 공민정 배우는 촬영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캐스팅했고요. 이렇듯, 마감이 닥쳐와도 배역에 맞는 배우가 없다면 캐스팅을 보류하면서 끝까지 배우를 찾으려고 합니다.
리딩과 리허설도 프리프로덕션 당시 배우당 10회 정도 진행했고, 촬영 중에도 휴차가 나면 리딩을 하며 캐릭터에 대한 부분은 촬영 전까지 계속 놓지 않으려고 해요. 헌팅 역시도 그러한데,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제일 마지막까지 예산 변동 없이 영화의 퀄리티를 높여줄 수 있는 것이 헌팅입니다. 헌팅만 잘하면 미술과 소품은 덤으로 얻어가는 것이니까요.

⑤ 우연이 빚은 <스프린터>에는 현수와 지현, 준서와 지완, 정호와 형욱, 총 세 팀의 운동 공간이 나옵니다. 세 팀 모두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지만 차이가 필요했어요. 현수는 공원의 운동장, 준서는 학교의 운동장, 정호는 실업팀의 운동장인데, 문제는 운동장이 거의 다 똑같이 생겼다는 거였죠. 차이를 더 두고 싶었지만 공간이 비슷해 고민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실내 트랙이 단 두 곳밖에 없는데 하나는 대구, 하나는 예천에 있습니다. 두 곳 모두 트랙 보호와 당시 코로나 상황이라 헌팅이 불가한 상황이었죠. 그렇게 운동장의 헌팅을 마무리할 때쯤, 예천에서 대회 일정을 피해서 촬영을 하면 헌팅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영화의 키 스태프들이 최종 헌팅을 하는 마지막 날이었고, 고속도로에서 이동 중에 연락을 받은 거예요. 이동 중인 스태프들이 방향을 틀어 예천으로 내려갔죠. 그렇게 최종 허가를 받고 현수의 공원 운동장, 준서의 학교 운동장, 정호의 실내 운동장이라는 대비 효과를 잘 나타낼 수 있었어요.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제는 희미해진 취향이지만, 극장의 정중앙쯤 좌석에서 늘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스크린의 작은 소품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사운드 역시 가장 중앙에서 느끼고 싶어 했거든요. 특히 아이맥스나 4D 같은 특수관은 정중앙 자리가 없으면 개봉 몇 주 후나 새벽 시간을 예매할 정도로 고집해 정중앙 자리에서 보려고 했어요. 약 7, 8년까지는 그랬어요. 그렇게 특수관이나 극장의 중앙에서 느끼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극장이 주는 영감인 것 같아요.

아주 오래된 미래 영화를 공부하던 학생 시절부터 아주 오랫동안 엄청난 흥행 영화 혹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명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꿈꿨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바뀌고 있어요. 흥행이나 큰 상도 탐나지만, 시대 상황이나 주변 변수가 많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추진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창작 능력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저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오래된 미래”로 변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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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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