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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CEO 팀 쿡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안 된다고 했어요”

2023.07.09GQ

팀 쿡은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로 재건하는 데 성공하며 자신을 향한 회의론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에 팀 쿡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내놓으며 대답을 이어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와의 인터뷰에서 좀 더 흥미로웠던 질문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팀 쿡은 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 생각하는가? 애플의 가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는가? 하루 종일 아이폰만 쳐다보고 있지 않으려 어떤 노력을 하나?

재킷, 톰 포드. 셔츠, 브리오니. 데님 팬츠, 리바이스. 시계, 애플 워치 울트라. 안경은 팀 쿡의 것.

오전 9시가 다 되어갈 즈음, 애플 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대부분의 CEO가 그렇듯, 그는 쌓인 이메일을 확인하는 동시에 가벼운 운동까지 더한다. 팀 쿡의 이메일은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사실 그는 이메일 주소를 숨기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쿡은 “이메일 눈사태”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들어와 있는 모든 이메일을 읽는다. 대부분이 고객들 메일이다. 내용은 애플 제품에 대한 의견, 피드백, 때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이런 많은 정보는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만약 쿡과 함께 일한다면, 쿡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 이른 아침에 이런 이메일들을 전달할 것이다.

또 종종 해가 뜨기도 전에 당신이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키곤 할 것이다. 팀 쿡은 2011년부터 그런 아침을 보내며 출근한다. 그는 위기나 갈등에 끌려다니는 리더가 아니다. “저는 어떤 급한 일이 하루를 장악하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 ”그는 정기 회의나 회사 내 여러 부서와의 상임 위원회에 참여해 되도록 많은 질문을 하려 노력한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편입 니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궁금해하죠.” 많은 질문은 직원들에게 단순히 일만 지시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사실 속내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과 기대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게 지식이든 정보든, 뭔가가 정말 얕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해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이동하면서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 약 16만5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 애플에 그가 전달하려는 전반적인 회사 분위기는 ‘노멀’이다.(이 글을 쓰는 현재, 애플의 기업 가치는 2조 달러가 넘는다. 작년 한때는 3조 달러였으며, 이는 영국의 국내 총생산과 거의 같은 수치다.)

1976년 애플 I Apple I과 1977년 애플 II Apple II를 시작으로 애플은 아이맥 iMac, 아이팟 iPod, 아이폰 iPhone, 아이패드 iPad, 애플 워치 Apple Watch, 에어팟 AirPod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 동안 그 어떤 기업보다 인류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런 업적 때문에 애플을 공동 창립하고 대표 제품 개발을 주도했던 잡스는 현재 마치 신처럼 숭배받고 있다.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너선 아이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11년 잡스 사망 이후, 회사를 운영하며 천문학적인 주가 상승을 주도한 것은 팀 쿡이고, 오늘날 애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 역시 팀 쿡이다.

최근에는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 기능을 갖춘 헤드셋, 아마도 ‘리얼리티 프로 Reality Pro’라고 불릴 제품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기사 작성 기준.) 그의 이러한 성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쿡은 애플 창업 이후 애플을 둘러싼 수많은 전기와 평전에서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1989년부터 애플에서 근무하며 지금은 서비스 부문을 이끌고 있는 에디 큐가 말했다. “그는 매우 읽기 어려운 인물이에요. 만약 당신이 그의 표정을 읽고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쿡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쿡에게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하죠 .‘당신이 포커를 친다면, 에이스를 4개나 가지고 있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쿡은 생각보다 온라인 접속을 자주 하지 않는다. 그는 빨리 움직이지도 않고, 어떤 흐름을 깨뜨리지도 않는다. 쿡의 이런 차분함은 쿡과 함께 미국 의회에 자주 불려가 미국 기술의 현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주역들(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과 구분되고 싶은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파타고니아를 입은 엘리트들이 보통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우주선의 첫 번째 줄에 앉으려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모임’에서 쿡은 나머지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는 거다.

인터뷰에서 그는 잡스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고, 창의적인 리더로서 자신의 기록을 옹호하기도 했으며, 실리콘 밸리 안팎의 라이벌과 경쟁자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설명했다. 또 휴대전화가 나와 내 아이의 정신을 해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조언했다. 나아가 애플의 미래에 대해서도, 앞으로 나올 신제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그의 대답만 놓고 보면 수학 답안지만큼 명확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그가 이룬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는 한 번도 ‘정상’으로 묘사된 적이 없습니다.” 그가 말한다. 미국 남부 시골에서 자란 게이인 그는 주변 환경을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바꾸어놓는다. “저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여러모로 싫습니다. 왜냐하면 일부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단어를 이성애자와 동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형태로 묘사되어 왔지만, 아마도 그중에 ‘정상’은 없을 겁니다.”

셔츠, 키톤.

애플 파크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곡면 유리로 된 4층과 지하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거의 1마일에 걸쳐 길게 뻗어 있으며, 생김새는 꼭 우주선같다. 연속되는 루프의 중앙에는 과수원이 있는데, 한겨울에도 내내 푸릇푸릇하며, 거기에는안뜰도 있다. 규모가 어느 정도냐하면, 자두와 사과 나무의 광대한 스탠드, 수천 그루의 참나무, 고도가 바뀌는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저 멀리 캘리포니아 언덕까지 내려다보인다. 루프 밖에는 농구 코트와 축구 경기장, 배구 코트, 피트니스 센터, 작은 자전거 주차 공간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벽의 일부분을 바로 열 수도 있다. 애플 파크는 태양열 패널과 바이오가스 연료 전지로 구동되는 재생 에너지로만 운영하며, 건설에만 약 50억 달러가 쓰였다. 이는 죽기 전에 대략적인 계획을 구상한 잡스와 포스터+파트너스의 건축가들, 또 잡스의 비전을 실현한 아이브, 그리고 완공 당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던 쿡이 공동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애플 파크는 같은 목적을 위해 디자인한 획일화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애플다운 아름답고 유용한 설계가 돋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들이 일하는 장소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쿡이 우리가 앉아있는 3층 카페를 둘러보며 말한다. “그리고 잘못된 그 사고가 건축을 ‘직사각형 블록’ 형태로 이끌고 있죠. 캠퍼스를 생각해볼까요? 그런 건축물은 꽤 쉽게 설계할 수 있죠. 협업과 개방성, 평온함을 촉진하는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면 더 깊은 수준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어려운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는 은빛 머리를 말끔하게 정리한 채, 짙은 긴팔 폴로 셔츠와 브랜드가 보이지 않는 슬림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애플 공개 행사에 참석할 때와 거의 비슷한 복장이었다. 손목에 애플 워치를 차고 있었지만, 대화하는 동안 시계를 확인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쿡은 대화할 때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상하자면 그가 애플 캠퍼스에 들어가 어떤 자리에 앉는다 해도, 아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저에게 다가오는 걸 편안해 하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한다. 쿡은 공개적으로 연설할 때나 기자에게 말할 때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이는 모든 애플 신제품을 직접 발표한 잡스의 또 다른 유산이 됐다. ”나는 더 성장해야만 했습니다. 대중이 애플에 집중하는 큰 이유는 스티브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스티브가 사망한 후 CEO 역할을 맡았을 때, 애플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나 집착이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지금은 어느 정도 잊혀졌지만, 쿡이 잡스의 뒤를 이을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의 차이점은 많이 드러났다. 쿡은 당시 13년 째 애플에서 일하고 있던 인물로, 운영 부서에서 공급망과 공장 관리, 협력업체 조달 등 세부적인 업무에 집중했고, 애플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업무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만 몰두했다. 이때만 해도 애플의 신제품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쿡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를 아는 이도, 알고싶어 하는 이도 몇 없었다. 그러다 잡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병가를 냈고, 그때마다 쿡에게 책임을 맡겼다. 그러면서 쿡은 시스템 전문가이자 운영 전략가로서 잡스가 돌아올 때까지 애플의 중대 프로젝트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회사의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는 여론이 서서히 형성됐다.

그리고 어느 날, 잡스가 돌아오지 않자, 쿡은 잡스를 대신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게 된다. 이건 어쩌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월트 디즈니나 토마스 에디슨이었다면, 팀 쿡은 누구였을까? 오늘날에도 쿡은 제품 전문가를 선망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는 진짜 제품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는데, 이 들 중에는 애플 고객층도 상당수다. 이런 조롱과 관련한 근거를 들자면, 잡스의 퇴임 후 회사 생활과 쿡의 리더십에 대해 쓴 <뉴욕타임스>의 기술 전문 기자, 트립 미클의 신간을 들 수 있다. (<스티브 이후 : 애플은 어떻게 1조 달러 기업이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영혼을 잃었는가 : After Steve: How Apple Became a Trillion-Dollar Company and Lost Its Soul>.)


쿡은 잡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거나, 인수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워낙 많은 질문을 받았으니까요. 질문에 대답하자면 ,스티브가 없는 삶이 시작됐을 때, 즉 잡스가 CEO에서 물러난 지 6주 정도 지났을 때, 저는 문득 완전히 허탈하고 공허해졌어요. 하지만 곧바로 깨달은 것은 ‘나는 스티브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 누구도 스티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티브는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도 따라갈 수 없는 독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쿡은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의 의견을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않음을 정중하게 설명했다. “제가 스티브를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회사 내 한 그룹에서만 혁신을 기대하거나, 한 그룹에서만 창의성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회사의 모든 곳에서 혁신을 기대했죠. ”쿡이 근무하던 운영 부서도 마찬가지였다:“ 운영 부서에서 일할 때도 그랬어요. 다른 부서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처럼, 우리 운영 부서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팀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애플이 디자인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그래야 했죠.”

쿡은 애플을 비즈니스를 위한 구조로 재편하고 잡스 시절보다 훨씬 더 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기존 제품 라인업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개선의 결과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쿡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어떤 식으로든 과거에 얽매이려 하지 않아요. 꿈을 꾸고 큰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출발선에서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미래는 복잡하다. 애플은 팬데믹에서 비교적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 어느 때보다 번영을 누리고 있는 지배적인 기술 기업이자, 동시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며, 비즈니스에 대한 도전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재임 기간 동안 쿡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애플 TV+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회사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대해 국내외 규제 당국은 애플의 앱스토어 관리 방식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애플에선 자율주행차, 가상 현실, 증강 현실 등 아직 정복되지 않은 거대한 미래 역시 펼쳐지고 있으며, 애플 파크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수많은 경쟁 업체들 역시 애플보다 먼저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플은 경영관리 교육을 받은 일반 직원과는 다른 유형의 창의성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며 답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창의적 통찰력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를 곧잘 무시한다. “사람들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익숙합니다. 저는 공격에 익숙하죠. 그러려면 개인적인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비판하는 것, 이런 종류의 일들은 저를 그냥 스칠 뿐입니다. 그렇게 대하지 않으면 제가 제 역할을 1백 퍼센트 해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애플 워치나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이 했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로 예민하다. “시계의 영향력은 엄청났지만, 출시 당시의 언론 보도를 다시 읽어보면 지금의 영향력에 대한 말은 전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아이폰을 생각해보세요.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사람들은 ‘이건 안 되겠다’라고 말했죠. 물리적 키보드가 없으니까요. 그땐 모두가 물리적 키보드를 원했잖아요.” 쿡의 온화한 매너는 때때로 온화하지 않은 사람을 숨겨주기도 한다. 현재 애플의 환경, 정책 및 사회 이니셔티브 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는 전 EPA 책임자 리사 잭슨 Lisa Jackson은 “그는 정치인들과는 달라서 기만적이지 않습니다”라고 쿡을 평가한다. “그는 시끄럽지 않아요. 방 안의 모든 산소를 빨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죠. 그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쿡은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카페의 모든 유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실내에 있어도 밖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는 이 곳에 있을 때면 항상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히치하이킹 같은.” 그는 앨라배마를 떠난 후 한동안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살다 콜로라도로 이동해 자연을 흠뻑 느끼고 있다. “가끔 눈보라가 치는 날을 제외하면 항상 밖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쿡과 캠퍼스 마당을 가로질러 걷고 있을 때, 지금 이 곳 땅이 실리콘 밸리 이전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거의 복원되었다고 설명했다: “저는 자전거 라이딩과 하이킹을 좋아하는데,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와서 보니 여기는 정말 다양한 곳에서 하이킹을 할 수 있더군요. 나가서 즐기지않는 것은 죄악에 가까울 정도의 환경이죠.”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시간이라고 덧붙인다. 쿡은 더 나아가, 잠시 동안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자연을 만끽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자연을 만끽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보다 나은 일이에요!”

셔츠, 키톤. 데님 팬츠, 페이지. 벨트, 노드스톰. 부츠, 벨루티. 시계, 애플 워치 8.

쿡과 관련한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마도 젊은 팀 쿡을 앉혀놓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 친구가 믿지 않았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다. 그는 1960년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태어났고, 이후에는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하던 로버 츠데일에서 자랐다. 로버츠데일은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리적인 인프라는 물론 쿡의 현재 위치, 현재의 지위같은 것으로부터도 말이다.“당시에는 무엇을 마음껏 꿈꿀 수 있을 만큼 환경이 넓지 않았어요. 인터넷도 없었고요. 따라서 주변에서 저와 같은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죠.”

그는 오번 Auburn 대학에 가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풋볼팀과 롤링 스톤스에 빠져 지냈다. 그 후 IBM에 입사한 그는 훗날 인텔리전트 일렉트로닉스 Intelligent Electronics라는 회사에서, 컴팩 Compaq에서, 그리고 지금의 애플까지, 업계를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그 경력은 그가 애플에서 부품을 컴퓨터로 조립하기 전, 부품을 저장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공급망 혁신을 일으키는 데 밑거름이 된다.

그가 애플에 채용된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97년 컴팩의 기업자재 담당 부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상태였던 쿡은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치고 당시 애플로 막 복귀한 스티브 잡스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 애플은 은행 파산 직전의 매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델은 자신이 애플의 CEO라면 애플을 폐쇄하고 남은 돈을 주주들에게 나눠주겠다고까지 말했죠. 마이클은 그렇게 말할 용기라도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사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쿡은 호기심에 잡스를 만났다. “대화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쿡은 자신이 창의적인 천재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눈앞에 있는 천재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CEO는 제가 생각하는 ‘커프스 단추 CEO’였습니다. 그들은 실제 일하는 직원들이나 회사 제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고립되어 있었죠. 그런데 여기 이 사람은 제품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쿡에게 창의적인 천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왜 매력적이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제가 만난 사람 중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리콘 밸리에서 마법같은 제품을 개발해 무슨 가루를 뿌리는 황당한 꿈이 아니었어요. 이 친구는 정말 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이전의 CEO에게선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은 평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 기업의 리더들조차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해 끝도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지만, 1998년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회사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급진적인 것이었고,쿡은 그런 스티브의 태도에 완전히 매료됐다. 이 때는 최초의 캔디 컬러 아이맥iMac이 출시되던 시기로, 쿡에게 주어진 임무는 마이클 델이 회사를 매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열망을 현실로 옮기는 것이었다. 쿡은 부임한 지 2년 만에 애플의 한 달치 미판매 재고를 단 이틀 양으로 줄이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시작한다. 또 중국에서의 운영 문제를 해결했을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고개를 들어 칸 Khan이 계속 회의실에서 있는 것을 확인했죠.” 그에게 단 한 마디만 했어요. “왜 아직 여기 있죠?” 칸은 그 길로 공항으로 가서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갔고, 문제를 해결했다.

애플 캠퍼스에 있는 연못 주변을 걸으며 쿡에게 조금 전 칸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업무 지시 방법에 대해. “그냥···, 그냥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일을 처리해왔다는 게 악질이라는 시선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그는 웃으며 말한다. “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여전히 여기서 일하고 있고요. 지금도 모든 운영을 총괄하고 있죠.”

보통의 CEO들이라면 이 일화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각색하고 다시 만들어 요상한 교훈까지 덧붙일 수도 있었다. 비즈니스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완수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모습이니까. 하지만 좀 전 쿡이 보인 태도를 보면 흥미로운 진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어떻게 보일 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감정적인 부분을 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그다지 감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도 아니면 잘 모른다고 생각하죠.” 큐 Cue가 말한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죠. ”하지만 쿡은 아무개가 그에 대해 믿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심지어 그게 그가 못된 사람이라거나 멍청이와 같은 최악의 오해라고 해도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믿게 내버려두는 데 만족한다.

쿡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비평에 유별나게 민감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상대할 수도 있게 됐다. 잭슨은 말한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쿡에게 재임 중 악명 높은 몇 가지 순간에 대해 물었을 때,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한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쿡은 내게 연락을 했기 때문에 훌륭한 경영자야.” 그리고 최근 일로는 작년에 트위터에서 애플을 비판하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즈음 쿡과 만나 애플 캠퍼스를 둘러본 일론 머스크와 관련된 일화를 꼽았다. 쿡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걱정될 만한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제 철학은 참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걸 매우 강하게 느낍니다. 사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의 참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건 익숙하고, 때로는 흥미롭습니다.”

쿡이 자신에 대해 자발적으로 밝힌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비밀로 붙이거나 마지못해 공개해오곤 했다. 2014년에는 오랫동안 추측만 무성했던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기고했다. 이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적인 남성으로서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터넷 어딘가에서 제가 게이라는 글을 읽은 아이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들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죠. 가족에게 밀려나 인생에서 퇴출까지 당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저는 제 사생활과 그들에게 전해 줄 희망을 맞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쿡이 CEO로 재직하는 동안 쿡은 소비자의 개인 정보와 데이터를 사용하고 판매해 이익을 얻는 회사들로 구성된 ‘데이터 산업 단지’를 비난할 기회를 줄곧 놓치지 않았다. 또 대개는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비판했다. 쿡은 또 다른 공개 석상에서 이러한 관행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리의 기본 권리를 빠르게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사회 구조를 훼손하며, 알고리즘에 의한 허위 정보와 음모론이 만연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생활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쿡에게 이 주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는다면, 그는 대화를 다시 애플로 돌릴 것이다. 2021년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이 문제에 집중해왔다는 점에서 이건 애플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쿡의 재임 기간 동안 애플은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하여 특히 엄격한 일련의 공공 가치와 관행을 채택했다. “우리는 프라이버시가 기본적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데이터만 수집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설계하려고 노력하고, 사용자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나아가 사용자가 데이터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게 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애플의 앱스토어에 도입된 ‘앱 추적 투명성’이라는 도구는 사용자가 특정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 추적을 거부할 수 있는 기능이다. 거대 기술 기업이자 애플의 라이벌인 메타Meta와 구글 Google과 같은 기업들은 수년 동안 사용자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수집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왔다. 애플은 자체 광고 사업도 운영하고 있으며,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애플의 웹 브라우저인 사파리에 구글의 검색 엔 진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쿡은 애플의 고객들에게 데이터 수집 및 판매를 방지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도록 이끌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도 경쟁사의 비즈니스에 타격을 입혔다.)

애플은 개인 정보 보호라는 기치 아래, 앱스토어 내에서 발생하는 거래에 대해 수수료를 받더라도 앱스토어를 사용하는 회사가 사용자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사용자를 애플 생태계 밖으로 유도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최근 애플이 ‘사이드로딩’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이러한 행위가 반경쟁적이라는 이유로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쿡은 이러한 비판을 일축한다. “우리가 개발한 앱스토어는 개발자와 사용자가 양방향 거래를 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 측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신용카드나 데이터가 도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매장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드로드가 있는 세상에서 다른 플레이를 실행하면 사용자의 신뢰와 믿음이 크게 떨어집니다.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겠죠.”

이 말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말을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은 제품 이상의 가치, 주가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가치관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이례적으로 성공했다. 3년 전,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그 자체로 애플의 DNA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우리는 비밀스러운 회사입니다.” 쿡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공개하고 이야기할 때가 될 때까지 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치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이제 환경을 생각하며 2030년에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합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에 대해서도요. 그런 것들이 가로채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쿡은 잭슨과 함께 이러한 작업을 많이 한다.

잭슨은 EPA를 이끌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많은 CEO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떠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아니면 적어도 돈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요. 저는 그들의 모든 것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쿡이 항상 말하듯, 연못에 파동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애플 전체의 노력이라는 판단을 실제로도 직접 도입한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성과로도 나타났고요.”

또한 쿡은 기술에 대한 타고난 회의론과 자연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 덕에 가치 주도적인 기업의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가 됐다. 핵심을 꿰뚫지만 냉소적인 스티브 잡스라면 불가능했을 일 말이다. 예를 들어 대화 도중 나는 아이폰이 내 뇌를 약간은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사소하지만 흔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 순간 쿡은 기꺼이 테라피스트 역할을 해주었다. 가능한 한 많은 새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는 데 몰두하는 하루 일과를 가진 그 자신이 증거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휴대 전화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툴을 제공하려고 노 력합니다.” 쿡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제 철학은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보다 휴대 전화를 더 많이 보고 있다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크린 타임 같은 것을 시행합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보고서를 거의 종교적으로 봅니다.” 우리 집엔 휴대 전화에 집착하는 어린아이가 있는데, 방 안을 돌아다니며 휴대 전화를 쫓아다닌다는 이야기를 쿡에게 하자, 그는 인정과 비난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디지털로 태어났고, 이제 디지털 세상의 아이입니다.” 쿡은 말한다. “그 환경에서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고, 만들 수 없었던 것을 만들고, 배울 수 없었던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기술을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런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아요. 저희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동영상 제작 도구를 지원합니다.”

몇 년마다 우리 모두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은 애플같은 회사를 이끌어야 하는 수장에게 붙는 이상한 조건이다. 쿡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애플 뉴스, 애플 페이, 애플 뮤직 및 애플 TV+를 포함하는 회사의 서비스 비즈니스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사업부는 지난 12월에 마감된 마지막 분기에서 2백8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애플 역사상 새로운 매출 기록을 세웠다. “10년 전을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았습니다.” 쿡이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애플 비즈니스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20퍼센트에 약간 못 미친다고 한다. 작년에 애플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2천5백만 달러에 인수한 영화 <코다 CODA>는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아직 초기 시즌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죠.” 최근 애플은 급성장하는 스크린 세계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등장하는 애플 TV+ 광고 시리즈를 제작하도록 의뢰했다. 쿡은 이 프로젝트에 직접 사인했다. “그 광고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애플을 둘러싼 전문가 집단과 언론은 여전히 그가 곧 역사에 남을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거라는 분위기를 띄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교적 조만간 증강 현실 및 가상 현실 분야에서 무언가(앞서 언급한 혼합 현실 헤드셋과 같은 제품)를 출시할 것이라는 예상, 자동차 분야에서 무언가를 출시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압축되고 있다.

“증강 현실이라는 기술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앉아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갑자기 디지털로 무언가를 가져와서 함께 보고 협업하고 창작을 시작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쉽게 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 즉 가상 세계를 그 위에 겹쳐놓으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초기 AR 제품인 구글 글래스 GoogleGlass를 본떠 애플이 안경을 제조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쿡은 뉴요커의 이안 파커에게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안경은 현명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우리가 항상 믿어왔던 것처럼 안경은 기술을 배경으로 밀어내는 대신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실패했습니다.” 쿡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는 웃는다. “제 생각은 항상 진화합니다. 스티브는 저에게 어제의 신념에 얽매이지 말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나타나면 계속 고집을 피우며 자신이 왜 옳은지 말하지 말고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요.”

쿡에게 구글 글래스나 최근의 메타 퀘스트가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같은 분야에서 무언가를 제조하려는 시도를 경계하지는 않았는지도 물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이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분야에서 애플이 성공해온 역사로 대화를 돌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거의 모든 일에는 수많은 회의론자가 있었어요.” 쿡이 말한다. “한계에 다다른 일을 하면 항상 회의론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쿡은 애플이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주요 기술을 소유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것을 조합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요 기술을 컨트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