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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중요하지 않은 신은 없다’는 마음으로 준비해요”

2023.07.24전희란

보오통 녀석 박정민.

재킷, 팬츠, 모두 발렌시아가 at 10 꼬르소 꼬모 서울. 톱, 로에베. 볼 캡, 와이케이. 링,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최근에 류승완 감독이 말했죠. 박정민과 코드가 잘 맞는다고요. 동의해요?
JM 동의합니다.
GQ 어떤 부분에서요?
JM 저는 너무너무 재밌어요 그분 하는 말씀이. 위트나 유머가 굉장하세요. 주시는 아이디어, 디렉팅이 너무 재미있어서 해내는 데 뿌듯함을 느껴요. 여럿 있을 때 감독님이 하는 말의 의도를 빨리 캐치하고 제가 가장 먼저 웃는 것 같아요. 
GQ ‘이것은 유머다’라는 걸 빠르게 알아차린다는 거죠?
JM 그렇지, 그렇지.
GQ 고품격 유머인가요?
JM 레트로 유머라고 해둘게요.

톱, 로에베. 팬츠, 이자벨 마랑 옴므. 선글라스, 올리버피플스 at 에실로룩소티카.


GQ <시동>의 최정열 감독이 “한국에서 중국집 배달원 연기를 잘하는 두 배우 중 한 명은 <시동>의 박정민, 한 명은 <복수는 나의 것>의 류승완”이라고 했죠. 
JM 그건 철저하게 제작사 ‘외유내강’을 ‘샤라웃’ 하는 발언이 아니었을까요? 자기 배우와 제작자 이야기니까. 근데 어느 정도 동의하기는 합니다.
GQ 중국집 배달원 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JM (자신을 가리키며) 이런 체형을 유지해야죠. 저의 ‘본투비’ 체형을요.
GQ 최근에 “류승완 감독님이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해주셨다”라고 했어요. 
JM <밀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아, 나에게도 이런 역할을 주는 분이 있구나!’ 그분이 류승완 감독님이라서 뿌듯하고, 뜻깊었고요. 이 말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 가장 류승완에 가까운 인물이 제가 맡은 장도리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의 언어가 인물에 많이 반영되어 있었거든요. 실제로 감독님이 어린 시절 잘 알던 분을 모티프로 캐릭터를 만드셨다고 해요. 그래선지 디렉션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주셨고요. 배우 입장에선 ‘탱큐’죠. 감사하죠.
GQ 류승완 감독이 평소 박정민에게 “60퍼센트만 해라”라고 한 적이 있다고요. 
JM 사력을 다해 연기하려고 하면 농담하시죠. “생긴 게 연기파라서 너무 잘하려고 안 해도 돼. 가만히 있어도 잘하는 것처럼 생겼으니 얼마나 장점이야.” 아하핳. 

톱, 이자벨 마랑 옴므. 팬츠, 펜디. 워치, 빈티지 바쉐론 콘스탄틴 at 빈티크. 네크리스, 링,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한편 <방구석 1열>에서 신연식 감독은 말했어요. “너무 극단적으로 열심히 하는 배우라 서른다섯 살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안 했으면 좋겠다”고요.
JM 실제로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웃음) 옛날에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의미 없는 행동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공부하는 법을 모르면 통째로 다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하다 보면 알게 되죠. 굳이 통째로 외울 필요는 없었네. 그런 의미에서요. 요즘은 에너지를 어디에 분배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에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는 자제하는 편이에요. 상대적으로 대본 분석과 촬영장에 에너지를 쏟고 있고, 체력 관리에도 신경써요. 촬영장에서 컨디션을 최고치로 만들어놓지 않으면 그날 하루가 다 망해버리니까. 더 융통성 있게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오래 하려면.
GQ 박정민 하면 늘 옆에는 ‘열심’이라는 키워드가 놓였죠. 마치 프레임처럼요.
JM 그러니까요. 피아노처럼 기술 습득이 없는 영화면 열심히 안 한 것 같고, 나답지 않은 것 같고, 어느 순간 죄짓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저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웃음) 1차원적으로 관객 눈에 띄는 기술은 어찌 보면 반칙일 수도 있어요. 류승완 감독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동사무소 직원을 연기한다 해도 2시간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 ”어떤 평범한 인물을 연기해도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GQ ‘모범생 출신 배우’ 프레임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미디어가.
JM 시대의 청춘 같은 느낌이 돼버려서 담배도 못 피우겠어요.
GQ 장도리 역할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이런 말을 듣고 있잖아요. “<밀수>는 박정민의 인생 영화가 될 것이다.”
JM 그것도 프레임이에요.(웃음)
GQ <파수꾼> 10주년 때 이제훈과 대화하면서 “<파수꾼>이라는 넘기 힘든 큰 산이 뒤에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는데, 드디어 넘게 되는 건가요.
JM 베키냐 장도리냐, 둘이 한번 견줘봐야겠죠.

코트, 로에베. 팬츠, 토니웩, 슈즈, 벨트, 모두 아워레가시. 셔츠, 타이, 타이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어떤 역할을 맡으면 ‘이 역할을 다른 배우가 한다면’ 가정하고 다양하게 상상해본다고 했잖아요. 이번에는 누구를 떠올렸어요?
JM 많은 분 중에서도 (류)승범이 형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승범이 형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역할이거든요.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류승범. 
GQ 박정민이라서 더해진 건 무엇일까요?
JM 찌질함이 더해진 것 같아요.
GQ 왓챠 <언프레임드 – 반장선거>를 연출하고 바로 다음 촬영이 <밀수>였죠. 연출하면서 맞이한 생각의 변화가 연기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JM ‘이 세상에 나쁜 감독은 없다.’ 감독은 너무나도 막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직업이에요. 정말 말을 잘 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공부도, 대본 분석도 해가서 감독님과 이야기하며 방향을 찾아가지만, ‘내가 옳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됐어요. ‘내 생각을 지웠다’에 가까워요. 감독이 이미 시나리오를 수백 번, 수천 번 들여다봤을 테니까. 잘 그려놓은 그림에 저는 배우로 들어가 잘 구현하는 역할을 해야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GQ <골방 토크>에서의 이 표현이 기억에 남아요. “감독이 생각지도 못하는 연기를 배우가 보여줄 때가 있다. 분석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배우도 감독도 함께 느끼는 ‘됐다’라고 느끼는 순간.” 최근에 느끼거나 본 적 있어요?
JM 그런 순간은 정말 드물어요. 아, <하얼빈> 촬영 중에 (조)우진이 형이 연기한 것 중 모두가 ‘됐다’라고 느낀 어떤 연기가 있었어요. 지켜보면서 굉장히 존경스러웠고, 평소 좋아하는 선배님이었지만 더 좋아하는 계기가 됐어요.

재킷, 토즈.


GQ 어떻게 그런 순간이 자주 일어나게 할 것인가, 노력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고 했잖아요. 조금의 짐작이라도 품게 됐나요?
JM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중요하지 않은 신은 없다.’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나올 때가 있다고. 모든 신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상상하지 못했던 뭔가가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신을 소중히 여기자, 대사가 없더라도 내가 나오는 신은 모두 중요하다, 그렇게 접근해야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의 회로를 돌려요. (관자놀이 옆으로 양손을 번갈아 굴린다.) 빠진 건 없을까? 구멍은 없나? 작품은 진행 순서대로 촬영하지는 않으니까 인물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려하지 않으면 앞 신과 뒤 신의 연기가 맞지 않을 때가 있어요. 지금 신을 찍으면서 ‘그때 그 신에서 내가 연기를 잘못했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오류, 구멍을 줄이려면 계속 생각의 회로를 돌리고 있어야 해요.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자칫 현장의 100명이 다 놓칠 수도 있거든요. 관객들이 볼 때는 모를 정도로 미세한 차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는 알아요.
GQ <파수꾼> 때 어떤 신은 예정보다 훌쩍 앞당겨 찍어서 굉장히 당황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여전히 그런 상황을 떠올리면 두렵거나 불안해요?
JM 두려움이 있죠. 그런데 제 맘대로 되는 건 아니고, 그에 대비해 준비하는 게 의무니까 해야죠. 최대한 미루고 싶은, 영원히 안 왔으면 하는 신도 있어요. 그럴 땐 내 얼굴 빌려줄 테니 AI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재킷, 톱, 모두 프라다. 선글라스, 젠틀 몬스터. 네크리스,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챗GPT 사용해봤나요?
JM 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던데요? 아직 거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GQ 예전에 “로봇에게도 뇌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잖아요.
JM 거시적으로 볼 때 오히려 그 방향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가끔 생각해요. 어헣헣헣. 사람은 너무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들이 지구를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물론, 슬프죠. 그렇게 되길 바라진 않지만, 과연 우주에 도움이 되는 건 그들일까 우리일까 생각해볼 때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렇게 생각해요.
GQ 사랑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AI와의 사랑은 어떨까요?
JM 그런 건 안 하고 싶어요. 상대가 없잖아요. 보통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GQ 얼핏 장도리에게도 ‘불멸의 사랑’이 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만.
JM 그런데 장도리는 너무 ‘나쁜 남자’라서.
GQ 그렇다면 치명적이라는 건가요?
JM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핳핳핳.

톱, 로에베. 팬츠, 이자벨 마랑 옴므. 슈즈, 키체인, 네크리스,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37을 가장 완벽한 숫자라고 했었죠. 그리고 올해 박정민은 서른일곱이고요. 
JM 서른일곱에 개봉하는 영화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다만 서른일곱이라는 나이는 저에게 의미 있어요. 차이무 극단에 찾아갔을 때 (박)원상 선배님과 동경하는 배우들이 당시 전부 서른일곱 살이었거든요. 제 로망과도 같은 그분들을 보면서 상상했어요. ‘서른일곱 살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GQ 지금은 얼마만큼 온 것 같아요?
JM 아직 멀었는데, 그래도 반은 이루지 않았나.
GQ 오른 팔에 새긴 ‘불망不忘’을 따라, 지금 잊고싶지 않은 건 뭐예요?
JM 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새긴 건데, 저도 오늘 그 타투 오랜만에 봤어요. 
GQ 지금 박정민의 욕망은?
JM 롤 티어 올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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