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산토리 치프 블렌더 신지 후쿠요 “위스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2023.07.24전희란

”언제나처럼 맛있다” 산토리 치프 블렌더 신지 후쿠요에게 가장 맛있는 말.

GQ 풍문으로 들으셨나요? 한국에서 요즘 재패니즈 위스키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SF 들었습니다. 야마자키, 히비키뿐만 아니라 가쿠빈의 인기도 상당하다고 들어서 다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마시고 있는지 굉장히 궁금해요.
GQ 일본, 아일랜드, 캐나다, 버번 등 여러 문화의 위스키 품질을 관리하는 퀄리티 어드바이저로도 활동하시는데, ‘재패니즈 위스키’의 특징이라 하면 뭘까요? 
SF 깊은 숙성감, 깨끗하고 투명한 향과 밸런스. 생산 방식은 스카치 위스키와 흡사하지만 일본의 물이나 기후, 장인 정신과 철학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GQ 산토리가 올해 1백 주년을 맞았죠. 신지 상이 산토리에 몸담은 지는 햇수로 40년 되었고요. 평생을 함께한 회사에서 1백 주년을 맞이하는 기분이 어때요? 
SF 제 나이가 올해 예순둘인데요, 원래 산토리의 정년이 예순 살이었어요. 원래대로라면 1백 주년은 제가 은퇴한 뒤에 맞게 되는 거였죠. 그런데 몇 년 전에 정년이 예순다섯 살로 바뀌었어요. 치프 블렌더, 호스트의 입장에서 1백 주년이라는 경사를 맞이하게 되니 축하하는 마음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요. 
GQ 산토리 정년이 조정되는 데 신지 상의 역할이 있었나요?
SF 전혀요.(웃음) 국가의 정책을 산토리에서 발 빠르게 앞장서서 받아들인 거죠. 

산토리 1백 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제작한 야마자키 18, 하쿠슈 18년산 위스키.


GQ 위스키 메이킹의 어떤 점이 오래도록 한 길을 파게 만든 것 같아요?
SF 반드시 위스키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주조는 굉장히 다이내믹한 변화를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과정이에요. 다양한 조건이나 재료를 바꿔보면서 맛의 풍미에 변화를 주고, 변해가는 과정을 시시각각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죠. 단시간의 품질 변화, 긴 시간에 걸친 품질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요. 그리고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15년 전에 내가 했던 일을 15년 후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무척 매력적이지 않나요?
GQ 미래에 부친 편지를 읽어보는 느낌이겠네요. 위스키의 어떤 점을 사랑해요? 
SF 위스키를 만든다는 건 시간을 들여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공을 많이 들일수록 맛있는 위스키를 만들 수 있어요. 블렌더는 다양한 원주를 섞는 일을 하는데, 굉장히 다루기 까다로운 원주들도 있어요. 그럼에도 그 원주를 활약하게끔 하는 것이 저의 일이죠. 각각의 원주에 역할을 부여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 그러니까 “위스키를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빌려 이야기한다면, “위스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GQ 각각의 원주에 역할을 부여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에는 정답이 없을 것 같아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관철하는 태도가 있나요?
SF 치프 블렌더로서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팀으로 함께 해결하는 게 우선의 원칙이고요. 개인적으로는 낙관적인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할거야.’ 말씀하신 것처럼 정답이 없는 일이니까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만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자식과도 같은 위스키를 음미하고 있는 신지 후쿠요.


GQ 취향이란 게 무척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위스키’는 무엇이라 정의해요? 
SF 위스키는 시간을 들여 만드는 술이므로, 시간을 제 편으로 잘 활용한 위스키를 좋은 위스키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숙성의 장점을 잘 발현해 마시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위스키를 이르죠. 5년 숙성한 젊은 위스키라 하더라도 5년이라는 시간을 품질로 잘 승화시켰다면 좋은 위스키라 말할 수 있어요. 반대로 15년을 들였는데 ‘15년 동안 뭐 한 거야?’라는 의문이 드는 위스키도 있어요.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빚어진 장점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해요. 그 장점을 잘 찾아 품질로 승화시키는 위스키를 좋은 위스키라 할 수 있죠.
GQ 그렇다면 이번에는 좋은 블렌더는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SF 매일매일의 블렌딩도 물론 중요하지만 5년, 10년, 20년 후에 어떤 원주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려하고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앞에 보이는 원주만을 섞는 일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GQ 블렌더의 일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군요. 미래의 위스키는 어떻게 예측해요? 
SF 저희는 25년 이후까지 어떤 위스키를 만들어 팔지 계획하고 있어요. 그에 맞춰 원주를 준비하고 있고요. 25년 후에 무엇이 잘 팔릴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당장 올해 매출도 예측할 수 없는 걸요. 저희는 어떤 미래가 될 것인가를 점치기보다 의지를 담아서 준비해요. ‘이런 미래를 만들고 싶다’는 믿음으로요.
GQ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1백 년이나 된 산토리가 여전히 동시대에 유효한, 여러 세대가 열광하는 다수의 위스키를 지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워요. 청춘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산토리가 늙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요?
SF 산토리에서 신조로 삼는 말 중 하나가 “한번 해봐”예요. “저질러봐”, “재밌는 것을 해봐”라는 뜻의 단어들도 사내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고요. 관료주의는 나쁜 것이고, 기존에 있는 것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신해요. 새로운 도전을 독려하는 환경이고, 저 역시 같은 걸 반복하는 것보다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GQ 오랫동안 업계의 리더가 된 데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SF 장인 정신, 품질이 단단히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마케팅,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잘해왔지만, 위스키라는 건 시간을 다루는 작업이라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또 마시는 순간까지도 반드시 고려한다는 것 이 산토리의 오랜 전통이에요. 음용 시의 품질이 좋아야 고객에게 비로소 전달되는 거니까요. 하이볼이나 미즈와리(물로 희석해 마시는 것) 등의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세정, 세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제조 팀, 마케팅 팀 등 여러 팀이 하나가 되어 고민하는 것이 산토리의 전통이에요. 
GQ 위스키가 당기는 각자의 사연이 다양할 텐데, 산토리의 40년 경력 치프 블렌더는 어떤 때 위스키를 마시고 싶은지 궁금해요.
SF 마시는 방식에 따라 달라요. 주말 이른 저녁, 4~5시쯤 냉장고를 열고 ‘오늘 뭘 해먹을까?’ 고민할 때는 하이볼이 당기죠. 그럴 땐 큰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가쿠빈같은 비싸지 않은 위스키와 소다를 붓고 레몬 필로 낸 오일을 몇 방울 넣어 마셔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하이볼이죠. 혼자만의 성실한 시간을 가질 때는 고급 위스키를 천천히 마셔요. 그럴 땐 TV도,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위스키에만 집중하죠.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않고요.(웃음)

G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처럼, 죽기 직전 떠올리고 싶은 위스키를 둘러싼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나요?
SF 보통 오크통 종류와 원주, 숙성 기간에 따라 맛이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되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아름다운 위스키를 만난 기억이 몇 번 있어요. 2013년 즈음, 야마자키 블렌드 실에서 만난 위스키였어요. 특정 로트가 다른 로트보다 놀라울 만큼 잘 나온 거예요. 트로피컬, 프루티 향에 아주 깜짝 놀란 기억이 있어요. 또 한 번은 보모어 저장고에서 경험했고요.
GQ 그렇게 놀라운 경험을 하면 ‘타고났구나’, ‘천재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나요? 
SF 전대 치프 블렌더 고시미즈 상의 신조는 “99번의 수정, 그리고 1번의 타협”이었는데, 저는 한 3번쯤 블렌드해서 충분히 좋은 게 나오면 (크게 박수 한 번 친다) ‘엄청 좋잖아! 나 천재인가?’라고 생각하는 타입이에요.(웃음) 더 높은 것을 지향하는 목표는 같지만, 같은 블렌더라도 자세나 태도가 다른 것 같아요.
GQ 치프 블렌더로서 느끼는 최고의 칭찬은 무엇인가요?
SF 위스키 마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언제나처럼 맛있다”라는 말.

*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율을 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