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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철 음식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2023.07.29전희란

제철 식자재, 그때는 맞고 지금은 어쩌면.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수박은 좋은 산지에선 이제 끝물이에요. 수박의 가격은 점점 내려갈 거예요.” 딸기는 늦가을 11월부터 초봄 3월까지가 제철이고, 밀감은 한여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수박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5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다. 나는 주로 식재료에 대해 글을 쓰는 푸드 칼럼니스트인 동시에 신품종 과일을 소개하는 온라인 스토어 프로젝트 ‘계절미식’도 운영하고 있다. 어지간히 경험과 취재가 쌓였고 여전히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 요사이엔 산지까지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경험까지 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싶은데 가장 맛있는 수박은 이미 끝물이라는 가락시장 중매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왕왕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아름다운 사계절과 철마다 다채로운 먹거리가 풍부한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시간감각이 와해된다. 귤과 만감류의 제철은 겨울이 맞다. 그러나 밀감은 한여름부터도 수확한다. 딸기와 참외는 원래 각각 봄, 여름에 수확해 먹는 작물이다. 그러나 요즘 딸기는 겨울, 참외는 초봄이 제철이다.

사과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만 다양한 품종이 수확되는데, 마트에는 사시사철 사과가 상비되어 있다. 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또한 샤인머스켓 수확 시기는 추석 전후부터 늦가을까지지만 여전히 백화점 선물 바구니에서 샤인 머스켓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두 가지가 바뀌었다. 딸기와 참외, 밀감의 경우 ‘시설 재배’가 키워드다. 흔히 ‘하우스’라고 부르는 시설 재배는 20세기 말 도입되어 농업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시설 재배가 바꾼 것 중엔 제철도 있다. 딸기는 오뉴월, 참외는 한여름 노지에서 수확하던 때가 있었지만, 시설 재배가 도입되며 겨울과 초봄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온이 되는 하우스 시설에 따뜻하게 난방까지 해주면 한국의 혹독한 겨울마저 극복할 수 있다. 딸기나 참외는 물론 망고나 바나나마저 계절을 잊고 무럭무럭 자라기 좋은 온도를 인위로 맞출 수 있다는 의미다. 딸기와 참외가 제철을 옮긴 데는 경제적인 의의도 있다. 각각의 제철에는 경쟁 작물이 다수지만 겨울에는 밀감과 만감류 외엔 국내에서 수확하는 과일이 없으니 계절의 제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딸기가 겨울을 석권하고 이제는 귤의 입지마저 위협할 정도다.

요즘 시설 재배 확충으로 나날이 새하얘지고 있는 농촌 풍경 속에는 비단 겨울을 극복하기 위한 시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온, 습도, 광량 등 식물의 생육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소들을 일정한 조건으로 통제하기 위한 시설 재배도 보편화되는 추세다. 더욱이 양액 재배, 스마트팜 기술과 결합하며 빠른 속도로 고도화 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변화 하나는 저장이다. 부사 사과와 신고 배, 샤인 머스켓은 대표적으로 저장성이 좋은 과일들이다. 부패나 산패없이 장기 저장이 가능하며, 이는 보관 중 수분을 잃지 않고 노화마저 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한껏 늦게 수확한 이 과일들은 저온 창고에서 자고 있다가 이듬해 새로운 햇과일이 나올 때까지 야금야금 세상에 나와 우리를 만난다. 저장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에틸렌으로 인한 노화를 막기 위해 에틸렌을 제거하기도 하고, 과일마다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연구하는 일도 관 련 기관들이 성실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요지는 인위가 더해질수록 제철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교과서적 제철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들은 역설적으로 구시대를 답습하는 농사라고 할 수도 있다. 시설이 아닌 노지에서 자연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라는 것들이다. 한겨울에 나오는 밀감이 그렇고(노지밀감), 하우스 핵과류가 한 달 앞서 나온 이후 수확하는 대개의 복숭아, 자두, 살구가 본래 과수원 풍경을 간직하며 원래의 시간표를 따른다.

이렇게 인위로 제철이 이동하는 것은 과일만의 일이 아니다. 고기나 생선도 마찬가지다. 소나 돼지는 획일적인 축사에서 획일적인 사료를 먹여 키운다. 여름이면 꼴(잡초)을 베어 먹이고 겨울이면 여물을 쑤어 먹이던 고릿적 소고기나 여름에 묽고 겨울에 진한 맛으로 제철이 있었다. 육지의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 알을 부화시켜 성체가 될 때까지 사료를 먹이며 키우는 광어며 우럭에 제철이 있을 리 만무하며, 제철에 잡아 축양(가두리)해뒀다가 가격이 올라가면 내놓는 방어나 비늘을 쳐서 한 마리씩 봉지에 담아 파는 냉동 민어에서 제철의 생동감을 느낄 수는 없다. 더욱이 온난화 영향까지 크게 받는 해양 환경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맹점까지 있다.

조선 팰리스 호텔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의 손종원 셰프는 미국에서도 요리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양쪽의 사정에 밝다. 동시에 내가 아는 요리사들 중 식재료에 대해 진심인 몇 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타닉 가든은 코스마다 일러스트 카드를 하나씩 주는데, 여기엔 대개 주요 재료에 대한 스토리가 담겨 있고, 대개의 재료는 제철 계절감을 담은 것이다.

“재료의 계절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형태가 다이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식당의 형태 중 딱 파인 다이닝에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적 상상력과 완성도의 정수를 만날 수 있으며, 기대치도 그곳을 향한다는 데 나 역시 동의한다. “한국의 식재료 대부분이 사철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이건 요리사에게 일단은 나쁜 일은 아니에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니까요.” 그렇다. 철 없이 언제든 헐값에 구매할 수 있는 수많은 식재료! “하지만 가장 맛있는 때는 여전히 딱 그 제철인 것 같아요. 프랑스 레스토랑들의 경우에도 사시사철 아스파라거스가 나오지만 유독 봄에 대대적인 아스파라거스 페스티벌을 벌이죠.” 디시 하나하나가 신중하고 예민해야 하는 파인 다이닝에서 흔하고 저렴하다고 해서 아무 식재료나 선택할 이유는 없으니, 최고의 재료를 선택하기 위한 고려 요소 중 제철에 대한 고려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철과 실제 제철의 작은 이격은 큰 장애 요소다. “쉽지 않아요. 반짝 가장 맛있는 시기가 너무 민감하고 짧아서 타이밍 잡기가 어렵거든요.” ‘젠제로’ 권정혜 대표의 말이다. 젠제로는 대표적으로 과일 등 제철 식재료를 적극 사용하는 젤라테리아다. 그만큼 제철에 대한 노하우와 피로도 동시에 쌓여 있다. “제철 재료 젤라토가 일찍 나오면 대체로 반가워하는 반응이 돌아와요. 하지만 시기가 너무 이르면 대부분 하우스 재료예요. 괜히 비싸고 맛은 덜하죠. 제철 중에서도 실제로 가장 맛있는 건 만생종이 나오는 끝물이에요.” 철이 늦을수록 저렴하기까지 하다.

수확이 이른 것을 조생종이라 하고 수확이 느린 것을 만생종이라 한다. 맛은 만생종이 더 낫다는 건 우주의 ‘국룰’이다. 나무 또는 포기에 그만큼 더 오래 달려 더 많은 영양을 흡수한 수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배 시장은 ‘명절 전’에 빨리 빨리 수확이 되느냐 안 되느냐, 남들보다 내가 먼저 수확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고소득을 위해 조생종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이요, 시설 재배 또한 사실은 가장 가격이 좋은 때 출하 시기를 맞추기가 용이하다는 의미가 있다. 진실은 이 단락 안에 있다. 제철을 이리저리 잡아당긴 인위의 기저에는 욕망이 있다.

나 역시 농업이 생업이라면 최대한의 경제 효율을 위해 같은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생계를 고려하지 않고 맛의 완성도를 위한 예술적 농사를 지향한다면, 노지에서 만생종 작물을 재배할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있기 때문이다. 인위를 더할수록 농작물 재배는 편리해지지만, 인위를 빼낸 구시대로 돌아갈 수록 맛은 예전 그대로 더 맛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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