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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예능 피디들이 유튜브로 간 이유

2023.08.31전희란

“유튜브로 잘 보고 있어요. 근데 넷플릭스에선 왜 안 하는 거야?” 그럼에도 우리 예능 피디들은 여전히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글 / 김지우(MBC 예능국 피디)

“그 기안84가 세계 여행하는 거! 잘 보고 있어요.” 작년 겨울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요즘, 피디라고 소개하면 먼저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생긴다. 재밌게 봤다고 덕담을 전하며 친절하게도 꼭 다음 정보를 잊지 않고 덧붙이신다. “유튜브로 잘 보고 있어요. 근데 넷플릭스에선 왜 안 하는 거야?”

“저희는 TV 예능··· 만나면 좋은 친구··· 일요일 밤 9시···.” 모기보다 작은 소리로 본방 사수를 권해보지만 언감생심, 닿기 어려운 이야기다. 많은 시청자가 유튜브에서 짧게 축약된 요약 버전으로 예능을 보고, 재밌으면 넷플릭스에서 긴 버전을 찾은 뒤 존재하지 않으면 시청을 포기한다. 짧은 유튜브와 긴 넷플릭스로 콘텐츠 감상이 양분되는 시대다.

대작 영화도, 수년간 여러 시즌이 나오는 드라마도, 두꺼운 책의 어려운 학술 정보도 유튜브에서 소비한다. 콘텐츠를 빨아들인 유튜브 시청의 핵심은 ‘짧게 빨리 보기’다. 2시간 반짜리 대작 영화도 10분으로 요약되고, 16부작 드라마도 1시간으로 추린 영상으로 유튜버의 내레이션을 곁들여 ‘패스트푸드’처럼 ‘패스트 콘텐츠’로 나온다. 그리고 이 영상을 시청자는 다시 2배속 빨리 감기해서 감상한다. 유튜브는 그 어떤 플랫폼보다 ‘한국인의 감상 속도’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한편 넷플릭스에는 기존 한국 콘텐츠 시장의 규모로는 만들 수 없는 ‘슈퍼 대작’이 존재한다. 비교할 수 없는 제작비와 긴 촬영 및 제작 기간, 전 세계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엄청난 물량과 인력이 투입되어 만드는 작품들은 기존의 시청 경험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에는 기존 콘텐츠에서 절대 안될 것이라 여겨졌던 불문율을 가볍게 넘어서는 쾌감이 있다. 히트 영화 세트 디자이너가 예능 세트를 짓고, 모든 장면에 들어가는 음악이 해당 프로만을 위해 탄생하며, 긴 기간 수백 명에 가까운 스태프와 출연자가 합심하며 만든 <피지컬100> 같은 작품을 보며 느끼는 경이로움은 어렸을 적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부러움을 다시 느끼게 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선전 속에서, TV 예능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어떻게든 트렌드에 적응하고 싶은 예능 피디들은 어떻게 이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유튜브에 심취한 시청자를 데려오고 싶은 방송국 피디들은 열심히 유튜브를 삼키고 소화하려 한다. ‘짧고 빠르게 보는’ 유튜브 시청자들을 ‘길고 편하게 보는’ TV 예능으로 데려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가장 빠른 방법은 유튜브에서 핫한 소재를 방송에 녹여보는 것이다. <가짜 사나이>, <좀비 트립>, <머니 게임> 등 유튜브에서 성공한 기획물은 몇 개월 뒤 방송국에서 연예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으로 탄생하고 골프, 테니스 등 유튜브에서 핫한 운동들이나 유행하는 먹방 소재, 인테리어 방식 등등은 순식간에 예능 출연자가 일상에서 체험하는 단골 아이템이 된다. 이미 핫한 소재를 활용하기 때문에 수요와 인기에 대한 검증 후 만들 수 있어 위험을 줄이고 트렌드에 합류할 수 있는 선택이 된다.

좀 더 적극적인 피디들은 소재를 가져오는 것에 더해 제작과 기획 초기부터 해당 분야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1천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서바이벌 웹 예능 <머니 게임>을 만든 유튜브 크리에이 터 진용진과 제작사 3Y COPORATION은 MBC와 협업해 <피의 게임> 시즌 1 제작에 참여했다. 그 전까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단순한 출연자 섭외로만 활용했던 것을 넘어 기획 및 촬영 단계부터 함께하며 자극적이지만 투박했던 <머니 게임>은 세련되고 몰입도 높은 <피의 게임>으로 변용됐다. 협업은 끝났지만 시리즈는 시즌 2까지 성공리에 제작되며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방송국 간 협업의 사례가 되었다.

최근에는 협업을 넘어 유튜버들의 콘텐츠 제작이 프로그램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김태호 피디(후배지만 글의 형식상 호칭에서 ‘님’을 제외.)가 올해 초 만든 <지구마불 세계여행>에는 유튜브 여행 분야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의 하루가 참여했다. 이들은 단순한 출연자를 넘어 ‘주사위를 던져 세계 여행’이라는 큰 콘셉트 안에서 각자의 여행을 설계하고, 일정과 내용을 스스로 채워나간다. 기존의 피디/작가, 제작진이 설계한 대로 따라가는 ‘방송국 여행 예능’ 의 공식을 거부하고 ‘유튜브 여행 크리에이터’로서의 내공을 살려 만드는 여행은 신선하고 예측 불가한 재미가 있다.

이 모든 노력을 통해 열심히 유튜브를 삼키는 TV 예능의 창작자들이 유튜브에서 가장 가져오고 싶은 것은 결국 ‘유튜브 감성’이 아닐까? 출연자와 시청자의 거리감이 훨씬 좁아 가깝고 리얼한 감정으로 만날 수 있으며, TV에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영역을 다루는 소재의 자유로움과 날것 같음, 이 모든 것이 모여 시청자들에게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유튜브 감성’이 된다.

넷플릭스의 경험을 재현하고 싶은 피디들은 창작 직군에서 영업 직군으로 보직을 이동한다. 낭만을 품고 창작에 열중하는 대신 열심히 기획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다닌다. 스케일 넘치는 대작에 걸맞은 캐스팅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작비. 제작비, 또 제작비다. 실제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국내 OTT 회사에 지상파 방송국보다 훨씬 많은 기획안이 쌓여있다고 한다. 몇 년째 동결 중인 방송국 제작비를 넘어 새로운 시도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피디들은 다양한 투자사/ OTT를 만나 기획안을 제출하고 피칭을 하고 자신의 프로그램을 영업하는 중이다. 창작도 어려운데 비즈니스까지 잘해야 하는 ‘넷플릭스 따라잡기’.

물론 나영석 피디처럼 둘 다 잘하는 독특한 포지션의 팀도 있다.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는 올해 초부터 큰 규모로 만들었을 법한 기존 오리지널 콘텐츠들 대신 ‘유튜브 크리에이터 나영석’이 만들었을 법한 독특한 영상들이 올라온다. 방송국 시스템을 규모만 축소해 만들었을 법한 영상들 대신 유튜버 침착맨의 조언을 듣고 만든 <침착맨에게 배워왔습니다> 혹은 <나영석의 나불나불> 같은 영상은 철저하게 기존 방송국 문법이 아닌 유튜브 세계관을 따르는 콘텐츠들이다.

침착맨의 조언을 듣고 ‘스타 피디’에서 ‘초보 유튜버’로 변신한 나 피디는 방송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라이브 스트리밍(방송 사고가 날 수 있는 외줄타기는 누구도 권장하지 않는다)이나 카메라 한 대 놓고 수다 떨기(방송국의 문법은 수십 대의 카메라를 놓고 최대한 세밀하게 출연자를 담아내는 것)등 피디보다 유튜버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든다. 그리고 이 모험은 방송 업계의 1인자가 유튜브 업계의 1인자를 만나 조언을 듣고 낯선 유튜브 세계에서 고분군투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콘텐츠 바깥에도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마치 엄청난 능력치를 가진 주인공이 전혀 다른 시공간에 떨어져 그 세계의 능력자로 거듭나는 이세계물 같으면서도 나영석 피디가 그려온 여행 예능의 주요 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수십 년 연기 내공의 윤여정 선생님이 갑자기 해외에서 식당 셰프가 된다거나(<윤식당>), 이서진처럼 귀공자 역할만 해온 도시 남자가 자신도 잘 모르는 곳에서 대선배들을 모시거나 농사를 지어 자급 자족하는 이야기들(<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동시에 티비에서는 최고의 톱스타들(무려 BTS의 뷔와 이서진, 박서준, 정유미, 최우식)이 한데 모여 식당을 여는 슈퍼사이즈 판타지가 펼쳐진다. 대규모 자본과 빅네임 캐스팅이 결합된 대작 예능이다. 넷플릭스든 유튜브든 뭐라도 열심히 따라잡고 싶은 시대에, 혼자 내린 결론은 ‘뭐든 해보자’이다. 그래서 우리 팀도 <태계일주 베이스캠프>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채널 방향성을 놓고 이런저런 논의를 이어가던 중 회심의 아이디어를 던져봤다. “‘나 피디’님 채널에서 운동회를 개최했는데 우린 베이스캠프니까 주말에 등산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하하.” 호기롭게 운을 띄웠지만 회의실엔 깊은 정적만 가득하다. 아무래도 등산은 혼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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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유튜브, MBC, 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