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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에 읽기 좋은 책 추천 2

2023.09.05김은희

서사.

스틸라이프

정물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어째서 ‘Still Life’인 걸까. ‘가만히 있는’, ‘정지한’이라는 단어 스틸 Still 뒤에 붙은 인생 Life이란 단어가 늘 그 무엇보다 고요해 보였다. 어딘가에서는 유사한 의미의 독일어 ‘Stilleben’에서 길러와 Still이란 침묵, 즉 Still Life란 생명을 가졌으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 처음부터 생명이 없었던 물체를 의미한다고도 하던데, 정지한 채 캔버스에 박힌 정물화는 멈춰 있는 삶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생동하는 숨이기도 하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 그 사이에 시간이 있다.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이다”라고 말하는 <스틸라이프>의 저자 가이 대븐포트처럼. 그는 정물화에 놓인 사물들, 그것이 거기 놓이기까지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놓인 물건 자체의 이야기부터 그 그림이 완성되기까지의 스토리까지, 정지한 순간 너머의 생동을 전한다.

악인의 서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타인의 일상에 뛰어들어 칼로 난도질하는 악인이 얼마나 우수한 학교 출신인지, 어쩌다 정신 질환을 앓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범죄를 저지른 악인에게 부여하는 서사는 도리어 모방 범죄를 일으키고, 범인에게 어딘가 처연한 프레임마저 씌운다. 하여 자성하듯 쏟아지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에 개인적으로도 동의한다. 그 동의가 다만 납작한 관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의 방향이다. 악인보다는 선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소설가, 무분별한 악행이 엿보이는 소설을 비판하는 문학평론가, 악인 서사의 일종인 서부극으로 윤리에 관한 성찰을 톺는 영화평론가 등 문화를 만드는 이들이 모여 ‘악인의 서사’가 현실 세계와 예술 세계에서 빚는 충돌을 고찰한다.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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