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연말 무드를 살린 장소와 시간, 배부르고 등 따뜻한 맛집과 소복이 내리는 눈 등. 겨울에 받아 설레고 좋았던 고백을 모아보았다.
🌊겨울 바다와 회 한 접시
“뭐해? 잠이 안 오네.” 그에게 DM이 온 건 자정을 좀 넘은 시간. 전기장판 위에 누워 유튜브 보고 있던 터라 그냥 있다고 답했지. 얼마 있다가 또 답장이 왔어. “바다 보러 갈래?” 지금?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무슨 바다야. 머리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몸은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있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 낭만의 겨울 바다에 도착. 막상 바람이 너무 차고 어두워서 오래는 못 걷겠더라. 근처 불이 켜진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회를 시켰어. 신선하고 차갑고 쫀득쫀득한 겨울 생선이 얼마나 맛있던지. “맛있어? 잘 먹네. 가끔 나랑 이렇게 바다 보러 올래? 난 너랑 노는 거 재밌는데.” 매사에 수줍은 그 남자가 모처럼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 소주 없이도 취하던걸. (김미연, 39, 학원 강사)
☕️ 코코아라도 한잔할래요?
썸이 길어져서 이대로 친구로 남으려나 하던 무렵이었어. 매번 만나면 영화 보고 밥 먹고, 전시 보고 밥 먹고. 그렇게 늦은 여름에 소개팅을 했는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어. 그날도 역시 밥을 먹고 연극을 봤어.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코코아라도 한잔할래요?” 묻는 거야. 추우니까 따뜻한 거 마시면 좋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어. 시간이 늦어 커피는 좀 그렇고 핫초코를 시켜 마시는데 세상에. 카페인이 포함된 단 음료를 먹어서인지 가슴이 떨리더라고. 분위기가 금세 모락모락 해졌어. EBS 다큐멘터리에 나왔는데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상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상대를 호의적으로 보게 된대. 여름에는 맨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무디, 에이드 같은 것만 마시다가 핫초코를 마시며 녹아내린 우리는 5개월의 긴 썸을 마치고 연애를 시작했어. 그래서 뭐라고 고백했냐고? 잘 기억 안 나. 어쨌든 그날이 1일이었어. (선은정, 33, 회사원)
☃️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당일은 아니었고 이브였나 그 전날이었나. 크리스마스는 각자 일정이 있다고 해서 며칠 앞당겨 만났어.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추워지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거야. “와, 눈이다.” 하면서 카페에 앉아 사진을 찍었지. 잘 놀고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하는데, 걔가 스토리에 아까 찍은 눈 사진을 올렸더라고. ‘같이 보내는 첫 화이트 크리스마스’ 바로 뭐냐고 전화했지. 아까 고백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대. 참나. 귀여워서 사겨준다! (22, 임수현, 요리사)
🧣극한의 추위 속 혹한기 데이트
영하 20도의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어. 약속을 미뤄야 하나 고민했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도 별 얘기가 없길래 내복부터 롱패딩까지 중무장하고 나왔어. 멀리서 뚱뚱하게 껴입은 오빠가 걸어오는 게 보여. “와, 겁쟁이. 이렇게까지 껴입었다고?” 하면서 한참을 서로 놀리고 웃었어. 나온 김에 겨울 강바람 맞으면서 따릉이도 타고, 그늘에 쌓인 눈으로 미니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장식 사이를 걷다가 붕어빵도 사 먹었어. 씩씩하게 놀고 나니까 혹한기 훈련을 마친 군인처럼 사이가 가까워지더라.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햇빛을 보니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마구 분비되는 게 느껴졌어. 오빠도 그랬나 봐. 실컷 놀고 집에 가는 길에 사귀자고 했거든. 추우니까 실내도 좋지만 밖에서 겨울 정면 돌파도 낭만적인 데이트가 될 수 있어. (26, 강수영, 취업준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