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GQKOREA MEN OF THE YEAR – RYU JUN YEOL
흐르는 바람처럼, 류준열이 지나온 올해 이야기.
GQ 준열 씨의 두 번째 사진전 <A Wind Runs Through It and Other Stories>가 오늘 열리죠. 지금의 감정부터 물으면?
JY 작업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 소회가 더 큰 것 같아요. 굉장히 즐거웠는데 아마 전시를 보시는 분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GQ 작업 과정은 어느 정도였어요?
JY 연초부터 시작했으니까 거의 10개월 정도. 그런데 사이사이에 내용도, 주제도 바뀌고 이러면서 생각보다 좀 더 걸렸어요.
GQ 사이사이 주제가 바뀐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JY 아무래도 작품이나 개인적인 일들 같은 것에서도 계속 영향을 받다 보니까 그때마다 끌리고 휩쓸렸던 존재들이 달랐던 거죠. 그래서 바뀌고, 바뀌고.
GQ 전 짐작가지만 그래도 궁금합니다. 준열 씨가 끌리고 휩쓸렸단 그 존재들이.
JY 짐작이 가세요? 어떻게요?
GQ 준열 씨의 첫 번째 사진전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를 막 마치고 <지큐>와 했던 인터뷰에서 힌트를 줬거든요. 다음 사진 작업에 관한.
JY (휘둥그레) 그랬어요? 뭐라고 했나요?
GQ “다음 사진은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준비하고 싶다.”
JY 아, 기억나요.
GQ 어때요? 2년 전 힌트처럼 실제로 그런 유의 사진들이 전시되나요?
JY 차가운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딱딱한 건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인터뷰 이후에 그런 방향으로 사진을 의도적으로 작업했던 건 아니거든요. 다만 전보다 좀 냉정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야. 전의 작업들이 따뜻했다면, 이번 전시에는 좀 쓸쓸함이 있죠. 제가 말씀드렸던 차갑고, 냉정하고 딱딱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GQ 많은 시간을 영화 <오펜하이머>의 OST를 들으면서 작업했다고요. 고란손 Goransson 감독의 앨범이죠?
JY 네, 그때 <오펜하이머>를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저와 많은 부분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도 굉장히 많았고요. 영화 속 인물이 하고 있는 고민들이 지금 저의 고민과 닮아 보여서 정말 많이 들었어요. 사진 작업하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죠.
GQ 고란손 감독의 음악이 준열 씨의 사진 작업을 확장시켜줬나요, 아니면 더 깊이 고립될 수 있게 도움을 줬나요?
JY 반반요. 어느 순간에는 고립돼서 거기에 흠뻑 빠져 즐기다가, 또 어떨 땐 거기에서 잠깐 나와서 다른 쪽으로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런 리듬의 반복이었어요.
GQ 좀 전에 “오펜하이머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고 했는데, 좀 더 물어도 돼요? 어느 부분을 닮았다 느꼈는지.
JY ‘오펜하이머’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자기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잖아요? 그러다 곧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들이 따라붙고요. 그 과정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부담, 고민, 후회와 같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엉켜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했던 선택들, 후회들, 책임들이 겹겹이 겹쳐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저의 고민과 닮아 있고, 같아 보였어요.
GQ 이번 사진전에선 무얼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아까 쓸쓸함까진 말해줬어요.
JY 결국에는 작가, 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사람이 변해가고 변해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이런 변화들을 바꾸거나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가 중요하겠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 그러면서 예전에 제가 찍은 사진들이나 제 모습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작업했어요.
GQ 그때와 지금이 달리 느껴졌다.
JY 네, 사진도 달리 보이고, 제가 느끼는 감정들도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론 사진에 더 많이 저를 투영하며 작업했어요. 여러 의미를 부여해보고, 흩어져 있던 개념들을 나름대로 정립해가면서요. 그렇게 준비했어요.
GQ 유독 끌리거나, 그게 어떤 이유에서든 더 많이 채집하게 된 피사체가 있어요?
JY 휙휙 지나가는 것들. 지나치게 되는 장면들요.
GQ 순간과 영원을 포착한다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처럼, 순간의 장면들에 매력을 느끼는거죠?
JY 맞아요. 그분도 포토 저널리즘으로 출발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일상 속 순간을 대단히 많이 포착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분의 사진과 제 사진이 닮은 지점이 있다면 영광이죠. ‘순간’이라는 장면이 비슷하게 전달될 수도 있겠네요.
GQ 준열 씨가 포착하는 순간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어요?
JY 사진 작가분들이 흔히들 하는 말로, 찍어둔 사진을 보고 이 사진의 앞뒤가 있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전 없다고 말하죠. 제 사진들은 앞뒤가 없어요. 보통 그래요.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은 한 장 혹은 두어 장. 전시는 대부분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제 상황, 감정 같은 것들이 맞물려서 연결되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공들여 찍은 사진들은 상대적으로 전시에는 많이 나오지 못하는 것 같고, 이렇게 지나가면서 느꼈던 끌림, 포착했던 감정들이 들어 있는 사진들이 많이 소개되는 것 같아요.
GQ 순간을 포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아무래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동안에는 자유롭진 못하겠어요.
JY 네, 그래서 매 순간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해요. 항상 날카롭게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어떤 감각적인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관심 갖게 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또 항상 그렇게 날이 선 채로 사진을 찍진 않고요. 결국 사진도 둘로 나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찍은 것과 이렇게 찍은 것. 그리고 하나는 버려지겠죠.
GQ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원작 소설에서 전시 타이틀을 가져온 걸로 아는데, ‘River’를 ‘Wind’로 바꿨다고요?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JY 아 그건 전시를 보시면 아마 알게 되실 거예요. 노코멘트할래요.(웃음)
GQ 배우의 일과 사진 작가의 일이 어찌됐든 카메라 앞뒤에 서는 일이잖아요. 준열 씨가 느끼는 재미는 그 일이 서로 달라서일까요, 닮아서일까요?
JY 둘 다 있는데, 저는 아닌 쪽을 택하고 싶긴 해요. 달라서 재밌고, 좋다면 더 솔직해질 수 있어서? 사진은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제 사진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요.
GQ 에, 그럼 많은 사람이 준열 씨의 사진에 관심을 두면···?
JY 바뀌겠죠? 그럼 지금처럼 솔직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뭐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GQ SNS 보고 알았어요. 최근에 마라톤 완주했던데요? 세상에.
JY 달리는 행위, 달리기 자체만으로 굉장히 재밌구나, 그걸 알게 되면서부터 쭉 달리고 있어요.
GQ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마라톤 완주까지 한 걸 보면.
JY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달리기는 한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든요. 그 행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 해야 하는 반복, 끊임없는 노력들, 일을 대하는 태도들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GQ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었군요.
JY 철학적인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왜냐면 한두 시간 뛰는 게 아니라 서너 시간, 저는 거의 5시간 가까이 뛰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그런 연결점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더라고요. 단순한 즐거움보단 배우고 알아가는 재미가 큰 종목인 것 같아요.
GQ 달리기를 통해 깨달은 무엇이 또 있어요?
JY 있죠. 오래 달리기를 하려면 어느 한 부위만 중요하지 않거든요. 예를 들면 종아리가 좋다든지, 허벅지가 좋다든지. 근데 이런 건 큰 의미가 없어요. 마라톤은 몸의 밸런스가 중요해서 고루 발달해야 오래 달릴 수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하나만 믿고 달리다간 분명 탈이 나요. 그러니까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 뭐 이런 거요.(웃음)
GQ 오늘 타이틀이 몇 개인가요? 배우에, 작가에, 러너에. 그럼 내년에도 ‘러너’ 준열 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JY 네, 마라톤은 계속할 거예요. 어떤 대회에 참가할지는 미정이지만 달리는 건 확실해요. 완주 여파가 너무 커서 지금은 쉬고 있지만. 어휴.
GQ 슈퍼 T이자 J라고요. 캘린더를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고 하던데.
JY 머릿속에 딱, 입력이 돼 있어야 해요. 캘린더는 몇 번씩 봐요. 아까도 봤어요.
GQ 그 빼곡한 캘린더 속 12월의 가장 큰 이벤트는 언제예요?
JY 제가 1년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해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 같아요.
GQ 그럼 파워 J의 크리스마스 계획이 당연히 궁금해지죠.
JY 크리스마스 때마다 챙기는 계획이 있긴 해요. 그런데 말할 수가 없어요. 사적인 거라서요. 이건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겠습니다.
GQ 왜 아까 촬영 때 미리 크리스마스 소원 빌었잖아요? 그거라도 알려줘요 그럼.
JY 그건 내년에도 ‘GQ MOTY’ 뽑히게 해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