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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저는 자유로울 수 있어요”

2023.11.27김성지, 전희란

2023 GQKOREA WOMAN OF THE YEAR – JUN JONG SEO
전종서의 절대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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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언젠가 전종서를 만난다면 서두에 ‘절대와 자유’라고 쓰고 싶었어요. 전종서의 연기는 종종 제 가슴에 불덩이를 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화가 유영국의 <절대와 자유> 전시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성질의 경험이었어요.
JS 제 성격이 좀 그래요. <버닝> 때는 촬영하고 집에 와서도 끓어오르는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어요.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확 불을 지피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 뒤의 정리는 잘 안 되기도 하는데, 자극시키는 걸 좋아해요.
GQ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JS 너무 조용했어요. 나서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어요. 어릴 때부터 글을 많이 썼고, 비디오 마니아였어요. 영화를 보면 대사를 다 글로 적고 사람들을 모아 상황극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숨기는 게 많았어요.
GQ 무엇을 숨겼어요?
JS 별것도 아니에요. 한번은 2만원짜리 고데를 샀는데, 그걸 엄마가 보지 않았으면 해서 침대 밑 서랍에 꽁꽁 숨겨놨어요. 학교 가기 전에 몰래 하고 가고 그랬죠. 그런데 하루는 그걸 엄마에게 들킨 거예요. 엄마가 왜 이걸 숨기냐고 하셨죠.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상한 게 있었어요. 뭔가 하고 싶으면 남몰래 했어요. 지금도 그 성격은 남아 있어요. 굳이 몰래, 몰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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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요즘엔 무엇을 몰래 하고 있어요?
JS 글을 써요. 거기에 쏟는 생각들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아요. 글을 쓰는 비공개 블로그가 있는데, 데뷔한 뒤로 계속 써왔어요. 글 쓰면서 스트레스 푸는 면이 있어요. 답답할 때 토하듯이 써요. 예전에는 일기 같은 글을 썼다면, 요즘은 제가 깊이 하는 생각들을 써요.
GQ 최근엔 뭘 썼어요?
JS (대답 대신 블로그를 열어 <인터스텔라>에 대한 글의 한 토막을 보여준다.)
GQ 비밀로 써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상한 마음도 들지 않아요?
JS 맞아요. 그런데 대상을 의식하고 쓰는 것과 아닌 것과는 다르니까. 한번은 공개를 해봐야지 하고 써봤는데 말을 가려서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굳이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언젠가 솔직하게 공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거창한 내용보다는 자기 생각에 대해 소소하게 쓰는 글을 좋아해요. 보통 사람들이 올리는 글도 한동안 빠져서 읽기도 해요.
GQ 아까 보여준 글에 “어릴 때부터 나는 꿈이 잘 맞는 아이였다” 적혀 있었어요.
JS 제 꿈, 잘 맞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빠지는 꿈을 꾼 적도 있고, 친구들 꿈도 꿔주고요. 한번은 꿈에 부산 호텔의 큰 수영장에서 물고기, 돌고래, 해파리, 문어, 니모 같은 열대어가 첨벙첨벙 헤엄치는데 제가 거기 들어가서 같이 놀았어요. 해몽에 진짜 좋은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캐스팅이 되었어요.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꿈을 해석하고 믿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전종서 사주’ 편을 봤거든요.(웃음) 거기서 그분이 저는 꿈을 계속 해석하면서 사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꿈을 하도 많이 꾸니까 스트레스도 받고, 자는 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궁금해요, 꿈이 뭔지. 아직 아무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잖아요. 왜 꿈을 꾸고, 그 꿈에서 보이는 것들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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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저도 꿈을 많이 꾸는데, 저는 회피하는 것이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것 같아요.
JS 저도 회피형이에요. 그런데 회피하면서 사는 게 똑똑하게 사는 것 같아요. 뭘 피해야 하는지 안다는 거잖아요. 겁이 많다는 건, 할 수 있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회피한다는 건, 그만큼 내가 뭘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거 아닐까요?
GQ 전종서는 뭘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군요.
JS 네. 소중하지 않은 것을 회피하는 것 같아요. 저도 회피형인 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왜 대면하지 않지? 그런데 결국 그만큼 애정이 없는 거더라고요. 막상 가야 하면 끝까지 가시지 않아요?
GQ 가죠. 때때로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지, 싶을 정도로요.
JS 저도 그래요. 저도 모르게 가야 하는 것과 아닌 것을 나누는 것 같아요.
GQ 연기하는 전종서의 폭발적인 순간들이 ‘가야 하는 곳’에서 나오는 거군요.
JS 연기는 회피가 안 돼요. 해야 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계속, 계속. 그리고 연기는 방법을 조금 알겠는데, 연기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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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버닝>에서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잖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 뭐가 달랐던 것 같아요?
JS 남들이랑요? 모르겠어요. 당시에는 눈이 돌아 있었어요. 하고 싶다는 마음만 너무 간절했어요. 그런데 아무 거나 하기는 싫었어요. 주제를 모르고 눈이 높았던 것 같아요.(웃음) 좋은 거 먹어야 하고, 좋은 거 입어야 하고, 좋은 거 봐야 하고, 준비되면 시작하고 싶고, 제대로 된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사회생활에서 모르는 게 많아요. 환불도 못 해요.(미소)
GQ 나를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요?
JS 없었어요. 깨야 할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이창동 감독님이 당시 저를 고스란히 떠다가(두 손 모아 물을 뜨듯) 영화에 넣어주셨어요. ‘나 이렇게 할래’라는 마음이 든 건 <버닝> 이후의 작품부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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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콜> 첫 촬영 후 감독은 전종서를 “디렉팅을 줄이고 최대한 가만히 두겠다”고 했고, 전종서는 “감독이 나를 다루는 법을 빠르게 파악했다”라고 했어요.
JS 어떤 작품을 하든 감독에게 의존하는 편이에요. 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확실하게 정해두고 가는 감독님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 분도 있어요. 저는 배우로서 확신을 받고 가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결국 감독님이 나를 믿어주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GQ 작품에 들어가기로 한 뒤의 준비 과정은 대체로 어때요?
JS <콜>을 할 때는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로코를 찍을 땐 밝은 곳에 저를 노출하고, 깊은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로코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니까 상대 배우랑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저를 돌아보기도 하고요. 그 외의 작품은 거의 원맨쇼 같은 작품이어서 혼자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어요. 얼마 전에 박지환 선배님이랑 이야기하는데, 그분은 배낭 하나 메고 강원도로 떠나 몇 달을 계셨대요. 그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어떤 면에서 배우들은 귀신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좀 평범하게 하고 싶어요. 그 전까지는 제 안의 것을 전부 다 꺼냈는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작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 작품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가장 좋은 건, 정확히 알고 즐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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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별안간 드라마에 빠진 까닭은 뭐예요?
JS 한국에서 만드는 드라마만이 가지는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가 뭐지? 궁금해하고, 보다 보니까 빠지게 되었어요. 영화는 저 멀리 어딘가 환상 같은, 설탕 뿌려진, 적어도 저에게는 ‘번쩍’하는 느낌이 강해요. 드라마는 더 가깝죠. 시간이 흘러도 계속 신는 반스, 컨버스처럼 그 어떤 단순함 때문에 오래 볼 수 있고, 추억을 담고 있고요. 전에는 1화부터 16화까지 쪼개지는 걸 못 기다렸는데 그 줄 듯 말 듯한, 전에는 답답하게 느낀 포인트가 이제는 재미있어요. 요즘 <미스틱>, <동백꽃 필 무렵>, <풀하우스>, <부부의 세계> 봤어요.
GQ 최근에 새롭게 느낀 감정도 있어요?
JS 좋아하는 게 다 싫어지기도 하고, 싫어하던 게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 변화가 한순간에 밀려왔는데, 어느 날 좋아하던 음식들, 향수, 옷이 갑자기 싫어졌어요. 와장창 머리가 깨진 느낌이었죠. 미니멀리스트요? 제 성격상 그건 불가능하대요. 헤헤헿. 좋아하면 끝까지 가보고, 어느 시점에 ‘이만하면 됐다’ 해요. 중도 포기? 없죠. 제 기준에 끝까지 갔다 싶으면 딱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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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작품 끝나고 이별도 빠르겠네요?
JS 진짜 그래요. 크랭크업 하면 “우리 너무 고생했어” 하면서 다들 울잖아요. 저는 한 번도 운 적 없어요. 5분 안에 딱 정리하고 집으로 가요. 여운도 없어요.
GQ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JS 나만 정드는 것 같아서 싫어요. 다들 마음으로 안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애처럼 또 바보 되겠지? 혼자 막 이래요. “그럼 나도 시크한 척하고 집에 갈 거야.”
GQ 행동과 완전히 반대의 마음이네요?
JS 저 그래요. 되게 모순적이에요. (공백) 도망가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애착 유형 중 회피형의 특징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저는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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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아버지의 부재를 겪으면서 고통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요.
JS 아버지가 희귀병으로 오래 투병을 하셨어요. 금방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에 몇 년을 시달려서 아빠와 투병을 같이 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사실 예상 못 했던 건 아닌데, 저를 포함해 가족 누구도 죽음이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너무너무 힘들 줄 알았는데, 아주 비극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았어요. 아빠가 원했던 거고, 죽음의 긍정적인 면도 보게 된 것 같아요. 아빠가 떠난 이후로 손에 뭔가를 쥐고 있으려고 하지 않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돌아가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를 모아둘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없더라고요. 겁이 없어지는 느낌도 받았어요. 결국에 놓지 못하는 건 없구나···. 생각이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당시는 잊으려고 미친 듯이 촬영을 했고, 지금까지도 연기로 많이 잊었어요.
GQ 연기가 전종서를 어딘가로 숨겨주었군요.
JS 정답이 없고 내 마음대로 내달릴 수 있는, 그것이 마음껏 용납되는 세계에서 저는 자유로울 수 있어요.

포토그래퍼
고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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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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