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이야기지만 표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없이 압도적으로 좋은 코미디는 나올 수 없다.
글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나는 빌 버 Bill burr를 좋아한다. 이 첫 문장으로 이 글을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독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틀림없다. 만약 당신이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빌 버가 누군지 모른다면 유명한 농담 하나를 소개하겠다. “요즘은 엑스트라라지를 플러스 사이즈로 바꿔서 부르라잖아. 그 뚱땡이들 말이야. 요즘은 잡지 커버에까지 나와서 자기가 얼마나 뚱뚱한지를 과시하더라고. 그럼 사람들은 그걸 보고 ‘너무 용기 있어’라고 난리를 치고 말이야. 나도 알아 뚱뚱한 사람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걸 말이야. 근데 그게 왜 안 되는지 나는 도통 이유를 모르겠어. 인종 문제도, 종교 문제도 아니잖아. 치료가 가능한 문제잖아. 그냥 사과 하나 먹고 좀 걸으면 되잖아. 한 배우가 징징거리더라. 감독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10킬로그램 정도 빼라고 했다고. 그럼 나가서 뛰어. 고작 그딴걸 가지고 불쌍하다고 난리야. 이런 현상이 사실은 다 뭐 때문인지 알아? 6점짜리들이 10점 만점을 못 받는 게 심술이 나서 열 내고 있는 거라고.”
빌 버는 지금 전 세계 최고로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중 한 명이다. 그의 유머를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는 ‘위선의 풍자’다. 빌 버는 거침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깐다. 지난 몇 년간 그는 페미니즘, 비거니즘 등 새롭게 떠오른 ‘이즘 Ism’들을 열심히 까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코미디 쇼츠는 내 소셜 미디어에 링크를 걸어 올리기도 힘들다. 그의 유머를 재미있어하는 것은 곧 반페미니스트이자 반진보주의자에다 한남(?)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코미디언 한 명을 좋아하는 것으로 당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의심받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까 뚱뚱한 사람과 여성과 치킨집 안에서 “치맥은 살인이다”라는 피켓을 내걸고 시위를 하는 비거니스트들을 놀리지 말라고? 그거 없이도 재미있는 코미디는 만들 수 있다고?
<개그콘서트>가 부활한다. KBS가 죽은 아들 불알을 만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개그콘서트>가 지난 2020년 폐지됐을 때 모두가 납득했다. 누구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납득했다. 개그맨 박성호는 말했다. “지상파에서 개그를 하는 것은 ‘건강한 맛’일 수 있으니 맛이 없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 맞다. 나는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것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맛이 없어진 이유? 지나치게 건강하려고 노력한 탓이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 건 아닌 모양이다. 2019년 <개그콘서트> 원종재 PD는 100회 기념 기자회견에서 가학성 개그와 외모 비하 개그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그맨을 뽑을 때도 못생긴 건 메리트가 이젠 없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다. (중략) 세상이 변하면서 예전에 했던 소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많아졌다. 우리는 재밌자고 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이미 <개그콘서트>는 3년 전에 나름의 혁신을 꾀했다. 정치적으로 공정한 코미디를 내세운 혁신이었다. 덕분에 <개그콘서트>는 더 재미없어졌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뽑힌 사람들이 나와서 못생긴 걸로 웃길 수 없는데 코미디가 재미있어질 리 없다. <개그콘서트> 마지막 회에서 강유미는 종영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우리 희극인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KBS 코미디는 절대 죽지 않아”라고 말하다가 유튜버 대도서관 협업 제안 전화를 받자 어디론가 달려가 버린다. 사실 강유미는 이미 유튜브로 서식지를 옮긴 지 오래다. 나는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을 사랑한다. 지난 몇 년간 그는 ‘ASMR 1인극’으로 절정에 올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소소한 직업군을 놀려먹는 코미디다.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압권이다. 이건 코미디라기보다는 거의 인류학자의 보고서에 가깝다. 압도적인 재능이다.
강유미 유튜브 채널도 몇 번 논란에 휩싸였다. 모든 영상 앞에는 “특정 직업을 비하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종사자분들과 무관하게 만든 가상의 캐릭터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이건 1백 퍼센트 정확한 변명은 아니다. 특정 직업을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가 분명히 겪어본 적 있는 몇몇 종사자를 비하하는 코미디가 맞다. 가상의 캐릭터지만 실제 종사자와 무관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특정 직업군을 소재로 코미디를 하는데 그 직업군을 어떤 방식으로든 웃기게 표현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채널에는 당연히 매번 악플이 달린다. 해당 직업군에 대한 조롱이라는 것이다. 아니, 잠깐. 여러분은 밥 먹고 양치질도 안 한 채로 당신 앞에 앉아서 숨은 트림을 끄윽끄윽 해대며 ‘어차피 한번 오고 안 올 손님’이라는 태도로 대충 손톱을 매만지는 네일 숍 주인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까? 영혼 없는 눈빛으로 “진짜요?”, “아 진짜?”라는 말만 내뱉는 신인 아이돌과 영상통화를 해본 적이 없습니까? 물론 이 밖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구체적인 직업적 진상들이 있다. 그걸 지적하고 코미디 소재로 만드는 것이 모두 특정 직업군에 대한 조롱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강유미 채널은 ‘개콘’처럼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튜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튜브 코미디를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우리 마음속에서 그건 ‘주류 미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 코미디언들도 그걸 일찌감치 눈치채고 지난 몇 년간 유튜브로 달려갔다. ‘숏 박스’, ‘피식 대학’, ‘별놈들’은 알려지지 않은 신인 코미디언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줬다. 심지어 <개그콘서트>의 오래된 인기 코너 ‘대화가 필요해’를 유튜브로 가져온 김대희의 ‘밥묵자’는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번 출연하는 패널의 성격이 다양해지면서 코미디도 다양해졌다. 중요한 건, <개그콘서트> 무대에서라면 삭제됐을 이야기들이야말로 ‘밥묵자’의 알맹이라는 거다. 유튜브 코미디가 잘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내 입맛에 맞게 딱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자유’다. 정말 정치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표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없이 압도적으로 좋은 코미디는 나올 수 없다.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코미디가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의 경계를 시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KBS <개그콘서트>가 잘될 것 같냐고? 부활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무슨 무슨 엄마들이라는 시민단체가 <개그콘서트> 제작진에게 공문을 보냈다.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벌어진 차별 논란을 지적하며 앞으로는 인권 감수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웃음을 선보여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개그콘서트>는 “부모님이 자식들과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께 대화하며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겠다. 시장에 매운맛 떡볶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부모님이 자식들과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다. <6시 내고향>도 있고 <TV쇼 진품명품>도 있다. 누구도 거슬리지 않게 만드는 교양 프로그램은 어느 채널에나 있다. 코미디가 누구도 거슬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는 코미디라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긴 하겠다. 코미디의 죽음으로써 말이다.
이젠 좀 깨닫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재미있는 코미디는 가능한 게 아니다. 저 시민단체는 ‘주린이’, ‘중2병’도 연령 차별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주식 초보를 말하는 주린이가 차별 표현이라면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는 게 나을 것이다. 요즘은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공정한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꽤 있으므로, 그들에게 어린이를 대체할 표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새로운 <개그콘서트>에 뚱뚱하고 못생긴 코미디언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 정정하겠다. 플러스 사이즈에 다소 자유롭게 생긴 코미디언 말이다. 이들의 존재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고 싶어 하는 자존감 높은 코미디언 지망생들은 아마도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