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범죄로 몰아세워지던 급발진 이슈가 안개를 헤치고 건져 올려지기 시작한다.
글 / 김필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교수)
얼마 전 가장 이슈가 된 관심 사안 중 하나인 강릉 급발진 사고 운전자에 대한 경찰의 조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사건의 경우 긴 시간 동안 급발진이 진행되었고, 실내 목소리 등 운전자가 할 수 있는 각종 조치에 대한 고민이 녹음이나 녹화되었으며, 안타깝게도 탑승한 손자가 사망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여기에 국민 5만 명 이상이 서명하며 국회 차원의 적극적 조치에 대한 목소리까지 더해지면서 사건의 결론 도출이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0여 년간의 국내 자동차 급발진 사고 중 이와 같은 ‘혐의 없음’ 결론 도출은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기존 방침에서 크게 변한 내용으로 더욱 의미가 크다. 국과수의 검사가 운전자가 실수했다는 증거로서 미흡하다는 것이고, 특히 사고 기록 장치인 EDR의 기록이 운전자가 실수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로서 크게 미흡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앞으로도 사고 기록 장치의 기록이 사고 상황에 따라 절대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증거로는 한계가 크다는 바를 시사한다. 미국의 예처럼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 기조가 바뀌리라는 신호탄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실제로 최근 여러 사건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서 자동차 급발진 사고로 유일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안도 2심에서 승소했는데, 그 이유도 운전자의 적극적인 방어운전을 인정하고 도리어 제작사에 대한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 반영되었다. 앞으로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해-전체는 아니지만-사안에 따라 이와 같은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는 지난 1980년 초반부터 발생해 어느덧 40여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의구심만 증폭시킨 공포스러운 문제였다. 그동안 많은 사건 중 어느 한 건도 운전자가 승소한 경우가 없고, 그럼에도 계속 발생하는 급발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누적되는 상황이었다. 관련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유는 바로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직접 밝혀야 하는 제도적 한계 때문이었다. 특히 사고 이후 국과수 조사에서 해당 장치가 이상 없이 동작하고, 사고 기록 장치에는 운전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기록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 사고 기록 장치에는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끝까지 밝고 동시에 브레이크는 전혀 밟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어 운전자가 재판 등 각종 공공기관의 결과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자사 차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제작사가 밝혀야 하는 구조다. 완벽하게 자동차 급발진 사유가 없어도 중간에 합의를 종용하는 재판부의 특성상 운전자가 보상금을 받는 경우가 상당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미국의 경우와는 반대로 운전자가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서 입증해야 한다는 한계가 컸다. 40여 년 동안 국내 운전자가 완벽하게 패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공공기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도 미흡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시작은 1980년 초에 기계식 엔진에 전자 제어 시스템을 넣으면서 발생했다. 즉, 전자 제어의 이상, 소프트웨어의 이상 동작 등으로 추정되고 있고, 일부 이러한 이유가 미국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전자 제어의 이상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 이후 재현이 불가능하고 증거도 남지 않는 특성상 국과수의 검사 결과는 당연히 그렇게 나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구현하기도 어려운 만큼 국내 운전자는 모든 상황상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동차 사고 기록 장치는 절대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원래는 자동차 제작사가 자사의 에어백이 사고로 터지는 전개 과정을 보기 위해 에어백을 제어하는 ACU에 넣은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 사고 기록 장치로 둔갑했다. 또한 여기에 기록되는 데이터는 자동차의 두뇌라 할 수 있는 ECU를 통해 기록되는데, 이 특성이 문제의 소지이기도 했다. 정신질환자나 치매 환자의 증언을 객관적인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고 기록 장치의 데이터로는 한계가 크다고 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여러 자동차 급발진 사고 중 대부분은 장착된 블랙박스의 사고 영상 특성과 사고 기록 장치의 데이터가 전혀 맞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부분은 전문가라면, 제작사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번 강릉 급발진 사건에서 사고 기록 장치 데이터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매우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도, 제작사도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다시 보게 되는 지점으로써 의미가 크다.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앞으로의 조치다.
해결 방법은 3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건 전에 조치할 수 있는 예방적 조치 1가지와 사후에 할 수 있는 2가지 조치다. 먼저 사전적 조치로는 제작사가 나서서 더욱 안전한 장치를 장착하는 방법이다. 하드웨어적 방법으로 운전석에 비상 기계적 스위치를 설치해 급발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주먹으로 스위치를 때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공장 등에서 기계 장치가 오동작인 사고가 발생할 경우 빨간 스위치를 눌러서 기계의 동작을 근본적으로 정지시키는 스위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동차 제작사가 급발진을 인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만큼 설치가 불가능하고 불안 심리를 구축하는 등 문제가 많아서 어려운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대체할 또 하나의 방법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안전한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길이 있다. 최근 수년 전부터 일본 토요타와 미국 테슬라 차량에 제작사에서 일종의 킬 프로그램, 즉 셧다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탑재해 안전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굳이 알릴 필요도 공개할 이유도 없이 그냥 슬쩍 강화(소프트웨어 설치/업데이트)하면 되는 방법이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사고 이후 처리보다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게 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사후 조치 방법으로는 2가지가 있다. 미국의 제도처럼 ‘급진적인 소비자 중심의 제도적 구축’은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과 사고 기록 장치에 기록된 데이터가 맞지 않는 사건은 제작사도 함께 원인을 밝혀야 하는 구조로 제조물 책임법(PL법, Product Liability Law)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현재 약 3건의 자동차 급발진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으나 실제로 통과되기는 어려운 만큼, 앞서 언급한 방법이 가장 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법적인 틈을 만들어 제작사도 함께할 수 있는 규정이 구축되는 방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운전자가 직접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지금의 영상 블랙박스는 전방이나 후방 등을 촬영해 사고 직전 5초를 기록하는 방법이나, 이것은 녹화 시간도 짧고 기록되는 시간적 간격도 0.5초로 간헐적이라서 한계가 크다. 기록 시간을 선진 외국과 같이 약 30초 정도로 늘리고 초당 10개의 영상 기록 등으로 강화하는 방법이 꼭 필요하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영상 블랙박스 기술을 활용해 운전자의 발을 직접 찍는 일명 ‘페달 블랙박스’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미 여러 회사의 제품이 상품화되어 있는 만큼 교체나 새롭게 장착할 경우 확실하게 페달 녹화 채널을 확보하는 방법을 권장한다. 확실하게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최근 기존 내연기관차는 물론, 하이브리드 차, 전기차 등도 예외 없이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급발진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시기가 되었다. 소비자는 물론 그동안 답답하게 느끼고 브랜드 이미지 추락 등으로 고민이 많았던 제작사도 함께 풀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고민거리를 풀 수 있는 시작점을 확실하게 마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