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모더니즘 건축가 김종성의 악보

2023.12.08김은희

영속의 순간을 보다.

코임브라 구 대성당(세 벨리야 Se Velha), 포르투갈 코임브라.

GQ 천장 사진만 부러 모아봤습니다. 애써 고개 들지 않으면 보기 힘든 천장도 놓치지 않은 시선이 낯설어서요.
JS 이건 다분히 건축하는 사람들의 습성이겠는데, 어느 공간에 들어서든 벽과 바닥 못지않게 천장을 눈여겨봅니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건축의 경우 천장이 빠지면 그 건축의 내부 공간 묘사가 불가능하고요.
GQ 2019년 10월 독일과 벨기에 편을 시작으로 2권 스페인과 포르투갈, 3권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 4권 프랑스, 마지막으로 올해 5권 영국 편까지 로마네스크 건축을 기행한 포토 에세이집을 펴내셨습니다.
JS 출판이 목표가 아닌 순수하게 카메라 하나 메고 건축 기행을 한 순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네요. 19세기 초에 처음 로마네스크 Romanesque라는 용어가 건축 문헌에 나타난 독일을 제일 먼저 많이 답사했고, 사진도 많아요. 2권, 3권, 4권도 다닌 순서입니다.
GQ 책 이름 <로마네스크 건축>은 6세기부터 11세기경 유럽 중세의 건축 양식을 의미하는 명칭이기도 하죠. 선생님께서 정의하시는 로마네스크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JS 나도 건축사에서 정의하는 ‘로마네스크 건축’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건축 역사가가 아닌 한 건축인의 눈으로 본 주관적인 에세이를 곁들이는 것이 처음 목표였어요. 다만 이번에 발간한 영국의 경우는 예외인데,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은 고딕 양식의 건축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르만(Norman, 유럽 대륙의 로마네스크와 동시대)의 골격에 한두 세기 후 고딕 석조 볼팅을 추가로 건설한 작품들을 다루었어요.
GQ “여행이나 하고 좋아하는 로마네크스 건축이나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은 2006년 서울건축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신 때부터 하신 것으로 압니다.
JS 정확하게는 내가 첫 번째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넣고 라이카를 장 속에 보관하면서부터였지요. 슬라이드로 건축 사진을 찍은 것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건축을 집중해서 찍기 시작한 것은 2003, 2004년쯤이에요. 그것이 지난 20년 동안 더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성당 건축 사진을 찍기 위해 유럽 각국을 답사한 초기 여행은 주로 성당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어떤 건축물들을 포함시킬까 생각해보는 탐색전이었어요. 그때는 아주 가벼운 마음의 유럽 여행이었고, 5권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을 서술하는 개념이 이 시기에 정리된 셈입니다.
GQ “그리스하고 이집트에서 시작하는 비교적 전통적인 역사 강의였는데, (교수가) 로마네스크에서 조금 시간을 많이 보내고 고딕에서는 상당한 깊이를 줬다”고 회상하셨던 어린 날 IIT 건축학부 시절의 건축 역사 강의 시간이, 보다 앞서 로마네스크 건축과 조응한 순간이셨을 것도 같습니다.
JS 1956년 IIT(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일리노이 공대, 이하 IIT) 학부 1학년 건축 역사를 강의한 앨프리드 칼드웰 Alfred Caldwell 교수와 미스(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 당시 IIT 건축학과장이었다. 이하 미스)가, 고딕 건축이 구조와 건축의 표현이 일치하는 가장 중요한 양식이라는 점을 깊이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네스크 강의는 고딕 양식에 비해 짧았어요.

생 테티엔 수도원 성당 St.-Etienne, 프랑스 캉.
성 시리아쿠스 St. Cyriakus, 독일 게른로데.

GQ 그런데 왜 로마네스크 건축인가요? 선생님께서는 왜 특히 로마네스크 건축을 들여다보시나요?
JS 나의 로마네스크 애호는 1968년 첫 번째 유럽 여행에서 싹텄어요. 1968년에 아미앵 Amiens 대성당에서 공간의 극치의 조화와 구조미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성당 밖으로 나와서 마주친 아미앵의 외관은 내부 공간이 준 감명에 찬물을 끼얹었지요. 내부 공간보다 80~100년 뒤에 지은 외관은 첨탑과 모서리 장식, 표면을 덮은 조각 등이 내부 공간의 구조미에 미치지 못했어요. 서양 건축사를 살펴보면 로마네스크 건축 뒤에 고딕 건축이 등장하고, 이후 르네상스 건축, 바로크 양식 등으로 그 흐름이 이어집니다. 로마네스크 이후의 건축은 건축의 기본 원칙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것을 갈고 닦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도 건축사 강의에 빠졌을 무렵 고딕의 아름다움에 끌렸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고딕 후기에 과잉된 장식이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내겐 그 과잉이 덜한 로마네스크의 양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내가 매료된 것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공간 구성 요소들이 융합하는 방법, 즉 기본적인 가구법(架構法, 재료를 결합해서 만든 구조)에 관한 것이었어요. 20년 전쯤부터 사진 기행집을 생각하면서 1220년 아미앵 대성당의 네이브(Nave, 신랑 身廊. 교회 건축에서 좌우 측랑 사이에 낀 중심부로서 성당 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이며 보통 예배자를 위한 장소) 공간이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했고, 그보다 시간적으로 이르고 더 순수한 건축을 찾아서 기행을 한 것이 이제 책으로 모아진 것입니다.
GQ 로마네스크 건축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현실이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다 싶은 것이, 건축이란 본래 세워지고 부서지는 정명인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건축가로서 대단한 만족도를 보이셨던 작업 힐튼 서울 호텔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되었듯이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살펴보게 됩니다.
JS 냉정하게 생각할 때는 한 작품이 시장 논리에 의해서 다른 건물로 대체되는 원리를 이해하지만, 힐튼 호텔의 경우 1980년대 초 한국 건축의 이정표로 간주되는 작품인 만큼 원래 건축의 부분을 보존하면서 개발업체의 이윤 창출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나리오입니다. 이것이 내가 지난 1년 반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피력하고 있는 논지예요. 힐튼 남쪽에 인접한 CJ 사옥의 원 건축 역시 내가 설계했지만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증축된 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서러움이 없어요. 그것은 원 건축이 힐튼 호텔이 성취한 고지를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 콜레지알 생 테티엔 교우회 성당 St.-Sepulchre, 프랑스 뇌비.

GQ 힐튼 호텔의 성취는 <지큐> 2021년 9월호와 2022년 1월호에서 다룬 한국 근현대 건축 기사로 갈음하겠습니다. 이 외 선생님의 건축 중 포토 에세이로 남기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요? 당장 떠오르는 방점들로는 육군사관학교 도서관(1982), 서울 힐튼 호텔(1983),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1986), 선재미술관(1991, 현 우양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1998), SK 사옥(1999) 등이 있습니다만.
JS 모두 포토 에세이의 대상이군요! 내가 한 30년간 서울건축에서 디자인한 건물이 족히 몇백 프로젝트가 되지만요, 이 여섯은 ‘건축 작품’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를 적어보자면 서울 힐튼 호텔, SK 사옥, 경주 우양미술관,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이 되겠군요.
GQ 개인적으로는 간결함 속의 치밀함, 구조, 비례, 재료의 미학이 돋보이는 피사체라서 꼽아보았어요. 선생님의 스승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기조, 흔히 우리가 모더니즘 건축 철학을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미스의 언어 “Less Is More”와 “God Is In The Details”가 묻어 있어서요.
JS IIT 교육 과정을 밟은 졸업생들에게는 첫 번째 경구 Aphorism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만드는 건축이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맞고, 두 번째 글귀는 “디테일을 하기에 따라서 건축 자체가 완성도를 성취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라고 의역하면 맞습니다.
GQ 곁에서 공부하고 배우신 선생님께서 미스의 철학을 하나 더 상기하자면요?
JS ‘건축 표현의 원천과 형태의 진실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GQ 건축, 건축가라는 대상을 처음 의식하신 계기는 언제이신가요?
JS 내 누나가 6.25 전쟁이 나던 1950년에 서울 여의전(고려대학교 의료원 전신)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짐작에 누나가 여의전 재학 중 초대 박물관 관장 김재원 박사의 고고학 교양 강의를 열심히 들었어요. 밤낮 집에 와서 하는 소리가 고고학이 엄청나게 재밌다는 거예요. “고고학 (공부)하는데 발굴하다 보면 전부 건물이다”라는 겁니다. 건축이 고고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내게 큰 인상을 남겼을 것이고, 구체적으로 1953년에 수복하면서 서울로 돌아오며 대학 진학을 생각할 때 당시 서울 시내 대부분의 큰 길거리가 반쯤 부서져 있었어요. 그래서 짓는 것이 상당히, 말하자면 쓸모가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전공 분야를 선택해야 할 때 누나가 건축이 좋은 분야임을 내 머리에 각인시켜주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하지요. 누나가 들은 교양 강좌가 진학 분야를 정하려는 열일곱 살의 나에게 결정적인 지표가 됐다는 사실은 지금 돌이켜보면 우연 같지만 숙명 같은 일입니다.

피터버러 대성당 Peterborough Cathedral, 영국 케임브리지셔.
솔즈베리 대성당의 동쪽 트란셉트(Transept, 교차랑) Salisbury Cathedral, 영국 윌트셔.

GQ 늘 지금이 문명의 최전선이라 여기는 현대인의 몽매이겠습니다만, 그 당시 어떻게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을 접하고 그를 좇아가시게 됐습니까?
JS 서울대학교 건축과 재학 시절에 시내에 가면 친구들과 책가게에 몰려가곤 했는데, 거기에서 영국 건축가 제임스 리처즈 James Maude Richards가 쓴 <인트로덕션 투 모던 아키텍처 An Introduction To Modern Architecture>(1948)라는 책을 샀어요. 그 책에 르 코르뷔지에 작품 사진과 다른 작품 사진도 있었는데, 다른 데는 전부 조소하듯이 건물을 짓는 반면 미스의 건물은 유달리 구축, 폼메이킹 Formmaking, 말하자면 석회로 반죽하는 게 아니라 부재와 부재를 조립하는 건축 개념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난 (당시 미스가 교수로 있는) IIT를 가고 싶다는 결론을 낸 거예요.
GQ 미스가 강조하는 건축의 주된 요소 중 하나인 구조와 비례에 매료되신 셈일까요?
JS 구조, 비례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라나면서 나와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한옥의 기둥, 보, 벽면 등으로 건물이 만들어지는 구법이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둥, 보구법은 객관적인 반면, 석고를 반죽해서 형태 만들기는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자의적 접근 방법인 것이 나에게 그리 탐탁하게 보이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지요.
GQ 실제로 가보시니 어떻던가요?
JS 1956년 2월 1일 밤에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IIT 캠퍼스로 향했는데, 한 30분쯤 달리자 환하게 불이 켜진 크라운 홀(Crown Hall, IIT 건축·도시계획·디자인 학부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어요. 그 건물이 섬세한 철골 격자로 구성되고 외벽이 모두 유리로 형성됐는데, 내가 자라면서 보아 익숙한 벽에 창이 있는 ‘건물’ 개념과 너무 다르고, 1950년대의 형광등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데이라이트가 아니라 사람의 혈색은 거의 없애는 인광 같은 푸른빛이었는데, 육면체 어항 같은 크라운 홀의 모습에 섬칫한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GQ 한편으로는, 특히 영국의 성당도 그러하고, 로마네스크 건축의 천장이 무척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선생님의 모더니즘적 건축관과는 배치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JS 우리가 활동하고 설계하는 21세기 건축은 시대의 센서빌리티 Sensibility가 모더니즘의 절제된 미학으로 정착되었어요. 반면에 11~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우리 눈에 ‘장식’으로 비치는 디자인이 모두 그 건축을 지어낸 건축가, 마스터 빌더 Master Builder 또는 마스터 메이슨 Master mason이라 부른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만들어내는 데 구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산타 마리아 라 누오바 대성당 Santa Maria la Nuova, 이탈리아 몬레알레. “성단소 앞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그 내부 공간의 크기를 알 수 있는 스케일을 제공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하나의 보너스죠.”
산 제노 마조레 바실리카 San Zeno Maggiore, 이탈리아 베로나.

GQ 책의 모든 사진을 직접 찍으셨다는 사실이 별수없이 놀랍습니다.
JS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40년대에는 나보다 열 살쯤 위였던 외사촌들, 대학생인 고종들이 카메라로 우리 형제, 남매들 사진을 찍어준 기억이 있고요.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것이 구체화되면서 카메라를 장만했어요. 사진은 연필이나 붓으로 표현하는 스케치와는 다른 어느 찰나, 광선이 변화하는 순간 같은 것을 포착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GQ 누군가에게 사진을 배우신 건가요?
JS 내가 1961년 미스 사무실에 입사하고 5년이 됐을 때, IIT 디자인 스튜디오를 가르치는 교수로 겸직을 했어요. 미스는 1938년에 시카고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완성된 건축 작품의 아카이브 사진을 시카고에서 창업한 저명한 건축 사진가 집단 헤드리히 앤 블레싱 Hedrich & Blessing에 위촉해 8×10인치 흑백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내가 IIT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미스 사무실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그보다 2년 전인 1964년에 내 석사 논문 프로젝트 ‘전시관 An Exhibition Hall’ 모델을 헤드리히 앤 블레싱 사진가들과 촬영할 때 며칠을 함께 일하면서 건축 사진을 촬영하는 기본 원칙을 어깨너머로나마 배웠어요. 그리고 같은 해에 저명한 건축 사진가인 G. E. 키더 스미스 G. E. Kidder-Smith가 IIT에 와서 해준 강의가 먼저 배운 원칙을 확인해주면서 내 머리에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시그램 빌딩 등 미스의 중요한 작품을 컬러 슬라이드로 수록하는 일을, 내가 진행 중인 설계 작업에 지장이 없을 때 몇 차례 나누어 출장으로 촬영하기도 했어요.
GQ 그때 배운 원칙이 사진에 담겨 있겠군요.
JS 건축 사진은 의도적으로 올려다보든지 내려다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렌즈를 연직 방향으로 찍는 것이 기본입니다. 또 건축의 외관과 내관에서 입체감을 포착하기 위해 아주 미세한 요철도 놓치지 않고 햇볕을 기다려, 한 10~20분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금방 볕이 모두 비쳐 2차원의 평평한 표면이 되는 것을 피하면서 캡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목표는 항상 어느 대성당이 어떻게 신도와 방문객에게 보이는지를 캡처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를 촬영할 때는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찍는 것이 최적인지를 먼저 둘러보고, 트라이팟을 펴서 카메라를 장착한 다음, 광선이 달라지는 것을 여러 가지로 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컷을 찍어요.

생 라자르 대성당 Cathedrale St. Lazare, 프랑스 오툉.

GQ 이번 기행에서 바라본 천장 중 유난히 발길을 붙잡은 곳은 어디인가요?
JS 프랑스 오툉 Autun에 있는 생 라자르 대성당의 천장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천장은 중심이 약간 뾰족하게 꺾인 바렐 볼트라서 특기할 것이 없으나, 횡경 아치를 보면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부재들의 디테일이 부각됩니다. 로마 시대가 유럽의 문명을 얼마나 깊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편륜이고, 다시금 로마 시대의 경외를 인식하게 되지요.
GQ 예정대로라면 지금 21세기의 또 다른 초대형 프로젝트,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하고 계실 시기인데 그러지 못하게 되셨죠. 이미 4년 동안 프로젝트에 몸담고 진행해오셨는데요.
JS 내 역할은 많은 건축가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최적의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것이었고, 그런 목표로 그렸던 계획안은 지금 보아도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떠난 직접적인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서울 왕래가 불가능해져서 인터넷으로 도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에요.
GQ 60년 넘게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쏟아보자며 임했던 프로젝트인데 말입니다.
JS 현대 GBC 프로젝트가 대단원을 맺는 것을 보았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겠지만, 나의 설계 연륜 때문에 많은 실현되지 않은 타 건축가의 예를 알지요. 내가 모신 미스도 독일 제철회사인 크루프 Krupp 본사 사옥을 에센 Essen에 세우는 프로젝트를 위촉받아 심혈을 기울이셨고, 나도 그 프로젝트에 배치되어 실시설계를 수행했는데, 크루프사가 건설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의 미스 선생의 심정이 짐작이 갑니다.
GQ 어떤 청사진이었을지 궁금하지만 이미 덮은 설계도이니, 그 대신 궁금한 근원이 있습니다. IIT에서 ‘College of Architecture Planning and Design’ 부학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학생들에게) 어려운 걸 줘서 기능을 푸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건 원하지 않았다”라고 하셨죠. 어째서이신가요?
JS 예를 들어 설계 과제가 종합병원같이 기능이 어려우면 과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소비해요. 정작 “무엇이 건축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가?”라는 명제에 관해 평면을 짜고, 입면을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공간의 비례를 눈으로 익히고 하는 과정에는 소홀하게 되는 폐단을 없애자는 것이지요.

코임브라 구 대성당(세 벨리야 Se Velha), 포르투갈 코임브라.
생트 제르트뤼드 교우회 성당 Collegiale Sainte-Gertrude, 벨기에 니벨.

GQ 무엇이 건축의 아름다움을 창조합니까?
JS 우리 일상에서 제일 먼저 한 건물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외관이지요. 건물에서 살거나 일하면서 “아름답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은 공간의 성격, 즉 너비, 길이, 천장 높이, 빛깔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요. 건물의 스케일이 공공건축으로 커지면 구조, 공간감, 비례, 재료, 색상 같은, 건축을 하는 우리 모두가 항상 생각하는 요소로 귀결됩니다.
GQ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JS 인간 생활에서 느끼는 오감을 풍요롭게 하는 모두, 즉 보는 것, 듣는 것, 향기로운 것, 맛있는 것, 촉감이 좋은 것이 아름다움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GQ 건축, 여행, 사진···, 선생님의 오감을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은요?
JS 학창 시절 간혹 밥 먹을 돈이 없을 때도 LP는 열심히 샀어요. 어릴 때 78알피엠 클래식 음반들이 집에 있었던 것이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지요. 지금 기억나는 것이 일본 레코드사들이 ‘운명’, ‘비창’, ‘미완성’, ‘신세계’처럼 별명이 있는 곡의 음반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방법으로 클래식 78알피엠을 선보였는데, 제일 유명한 연주의 판이 하나씩 있었어요. ‘운명’은 푸르트벵글러, ‘비창’은 멩겔베르크 등등.
GQ 로마네스크 건축 여행에도 음악과 동행하셨나요?
JS 내가 음악을 듣는 취향은 비교적 보수적이어서 야노스 스타커 Janos Starker가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 스위트, 알프레드 브렌델 Alfred Brendel, 마리아 조앙 피레스 Maria Joao Pires, 기타 피아니스트들의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일고여덟 곡, 클라라 하스킬 Clara Haskil, 아르튀르 그뤼미오 Arthur Grumiaux의 베토벤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나타, 백건우, 빌헬름 켐프 Wilhelm Kempff, 알프레드 브렌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몇 곡, 베토벤과 브람스와 말러의 심포니 여럿,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비엔나 왈츠···, 비엔나 왈츠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가 내 귀에는 제일 신들리게 연주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Christian Gerhaher, 프리츠 분더리히 Fritz Wunderlich, 토머스 햄프슨 Thomas Hampson이 부르는 슈베르트, 슈만, 말러 가곡들, 1930년대부터 1960년 샹송 전성기의 곡들을 USB 에 넣어 갖고 다녔습니다.
GQ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한 곡을 플레이해주신다면요?
JS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첫 악장이 좋지 않겠어요? 밝고 희망찬 음악이지요.

포토그래퍼
김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