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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 전성시대

2023.12.15신기호, 전희란, 김은희

로마노여, 한글 계정을 열어라.

글 / 홍재민(축구 전문 기자, 작가)

유럽 축구의 이적 시장은 세계적 관심사다. 경기, 리그, 대회와 별개로 독립된 콘텐츠로 유통된다. 파브리치오 로마노의 ‘이적 뉴스 전문 X’(전 트위커)는 팔로워 1천9백만 명을 자랑한다. 이런 세상에서 국내 축구 팬들은 2023년 여름 뜻밖의 현상을 목격했다. 세계적 관심이 쏠리는 이적 시장에서 한국인 선수들이 주요 뉴스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 이강인이 레알 마요르카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은 지나가는 개도 알 정도로 당연했다.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클럽들 만으로도 한국 팬들의 기대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의 이름까지 나왔다. 이거 정말 대박이다 싶었는데 파리 생제르맹(PSG)이 짠하고 나타났다. 올 7월, PSG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 활짝 웃는 이강인이 등장했다. 근사한 크리스찬 디올 수트 차림이 뒤따랐다.

이강인의 PSG행으로부터 열흘 뒤 두 번째 ‘대박’ 소식이 나왔다. 김민재가 ‘레바뮌’ 회원이 된 것이다. 2022-2023시즌 나폴리의 우승과 김민재의 리그 베스트 디펜더 선정만으로도 국내 팬들은 포만감을 느꼈다. 중앙 수비수의 유럽 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여름이 열리자마자 ‘몬스터’ 김민재는 이적 시장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영국 언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김민재를 영입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이 경쟁에서 앞선다고 주장했다. 영입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바이에른은 하루라도 빨리 김민재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 바이에른은 파격을 단행했다. 메디컬 테스트를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진행한 것이다. 김민재는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당일 서울로 이동해 독일에서 급파된 바이에른 측 주치의의 참관 아래 메디컬 테스트를 소화했다. 독일 언론조차 “역사상 가장 미친 메디컬”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며칠 뒤 김민재는 바이에른 프리시즌 캠프에 합류했고, 챔피언스리그 통산 6회 클럽에서 지금 열심히 ‘혹사’당하는 중이다. 이적료 5천만 유로는 2023년 여름 기록된 센터백 2위 금액이었다.

카타르 월드컵이 낳은 스타 조규성(전북)은 덴마크 미트윌란 이적에 성공했다. 빅5 리그를 기대했던 팬들 사이에서는 실망하는 기색도 엿보였다. 하지만 조규성은 유럽 적응 과정도 없이 시즌 초반부터 골을 터뜨리면서 분위기를 뒤집었다. 알려진 대로 미트윌란은 브렌트포드를 소유한 매튜 베넘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클럽이다. 미트윌란에서 인정받으면 프리미어리그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조규성에겐 큰 동기부여일 수밖에 없다. 또 스코틀랜드 독점자 셀틱은 1월 오현규(수원)에 이어 여름 이적 시장에서 양현준(강원)과 권혁규(부산)를 추가 영입했다. 일본 선수들을 통해 본 ‘가성비 꿀맛’을 한국 선수에게도 기대하는 결과다. 3인 모두 21세기 출생자인 덕분에 유럽 적응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향후 활약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대한민국 주전 미드필더 황인범은 세르비아 최대 명문 츠르베나 즈베즈다(레드스타)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황인범에겐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클럽 역대 최고액 영입이었고, 무엇보다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팀이었다. 9월 19일 황인범은 디펜딩 챔피언 맨시티전에서 유럽 최고 무대에 서는 꿈을 이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유럽파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10월 A매치 소집자 24명 중 유럽파가 11명에 달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22인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줬다. 와일드카드였던 백승호와 설영우를 비롯해 조영욱, 고영준, 송민규, 엄원상 등의 대리인들은 유럽행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제 반년마다 열리는 유럽 축구 이적 시장은 우리 일이 되었다. 로마노여, 한글 계정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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