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컬렉터라면 완판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한다. 더불어 언론에서도 완판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 / 이소영(프리랜스 미술 기자)
미술 시장에서 ‘완판’처럼 유혹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갤러리, 아트 페어, 경매에서 ‘완판’이라는 문구로 홍보한다면, 누구나 솔깃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작품성과 투자 가치가 높은 작가의 작품이기에?’ 누구라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완판’이라는 문구를 언제나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 시장에서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한 전문가는 “완판은 상술이다”라고 했다. 특히 2006~2008년, 2020~2022년의 엄청난 호황기를 지나, 하락 곡선을 보이는 2023년 세계 미술 시장에서 완판이라는 단어는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김창열 화백의 작고 이후 그의 작품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하자, 수집가들은 하종현과 박서보 등 생존 거장의 그림을 구입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갤러리, 아트 페어, 경매에서 ‘완판’이라는 단어가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초보 컬렉터에게 완판은 매혹적인 선전 문구이기에, 갤러리로서도 이를 비공식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언론에서도 완판은 언제나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기 때문에 대서특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 생존 작가의 경우 완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 작가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에 약간의 대기를 한다면 구입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대구에서 갤러리 신라를 운영하고 있는 이준엽 디렉터는 완판은 객관적 판매 상황일 뿐, 미술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작품성이 뛰어난 유명 작가와 신뢰할 수 있는 국제적 갤러리의 경우에는 전시 작품은 언제나 다 팔리기 때문에 굳이 ‘완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완판을 하고 싶은 갤러리와 경매에서 완판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완판을 했다는 것은 리세일이 그만큼 많이 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리세일이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만의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되판다는 것은 작가와 갤러리, 수집가에게도 두루 좋은 현상은 아니다. 작품이 많이 팔리다 보면 다양한 개성의 고객이 구입하게 되기에, 확실히 리세일의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완판에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준엽 디렉터는 젊은 작가의 전시 작품이 모두 팔렸다는 것은 작가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빛이라고 평했다.
사실 완판은 모든 갤러리의 꿈이다. 하지만 반대로 완판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VVIP층이 탄탄한 국제적 갤러리가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경우, 프리뷰 단계에서 이미 완판 되어버리곤 한다. 전시를 보기도 전에 완판이 되어버렸다면 작품을 구입하지 못한 VVIP들의 불평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지 못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발표한 에 따르면 세계의 수집가들은 미술품 구매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2,800명의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개인 수집가들은 다른 금융 자산에 비해 미술품에 소요되는 자금 비중을 2022년 24퍼센트에서 2023년 19퍼센트로 낮췄다. 2020~2022년의 호황기에 컬렉터들이 너무나 많은 작품을 구입한 까닭도 있고, 고금리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중동 긴장 고조 등이 영향을 끼친다.
초보 컬렉터라면 완판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한다. 불경기에 완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운 일인데,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강조하게 되면 기존 손님이 도리어 리세일을 부탁할 수도 있으니 갤러리와 경매사 입장에서도 신중해야 한다. 더불어 언론에서도 완판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