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를 제외하면,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초창기 때와 같은 스타는 탄생하지 않은 지 오래다. 우리의 표는 무엇을 향하고 있나?
글 / 김도훈(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나는 요즘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다. 딴소리부터 좀 하자. 나는 ‘열창’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오랜 팬이다. 엑스세대 영감이 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라이브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특히 라이브에서 곧이곧대로 창을 해도 열창이 되는 노래에 “워어어어” 하거나 “후우우우” 하는 애드리브를 자주 넣어 듣는 귀에 열창 裂創을 입히곤 했다. 故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 님, 저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레코드 녹음 버전으로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요즘 머라이어 캐리는 전성기 열창이 불가능한 탓에 반음 낮춰 정석으로 노래를 한다. 만족스럽다. 오래 사시길 부탁드린다. 내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건 여전히 당신뿐이다.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 이유도 그놈의 열창 때문이다. 내가 최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건 알 그린이다. ‘Let’s Stay Together’라는 명곡을 부른 옛날 알앤비 가수다. 그의 목소리는 박진영 말마따나 공기 반 소리 반의 아트다. 열창을 해도 되는 부분에서도 살짝살짝 공기를 타며 미묘하게 감정을 흩뿌린다. 나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되거나, 혹은 최종 10인에 들어가는 꼴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모두가 ‘오늘 나는 이 무대를 찢겠다’는 결기로 나와 내 고막을 찢는다. 심사위원들은 울먹거리면서 말한다. “찢었다.” 고막이 찢어져서 그러는 건지 감동해서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찢었다’는 방송에서도 사용하는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것도 불만이다.
그렇다면 내가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있다고 주장할 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청자의 조상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음악 서바이벌의 조상은 2001년 영국에서 시작된 <팝 아이돌>과, 그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이자 악담의 대가 사이먼 풀러가 2002년 미국에서 론칭한 <아메리칸 아이돌>이다. 젠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방영을 시작한 두 프로그램을 나는 실시간으로 지켜본 늙은이다. 당시 영국에 살았던 덕에 가능했다. 내가 투표를 하면 반드시 승자가 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당시 <팝 아이돌>이 내놓은 스타는 윌 영, 걸그룹 걸스 얼라우드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응원했던 켈리 클락슨이 첫 시즌 승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울었다. 당신이 그를 위대한 이별 노래 ‘Since You’ve Been Gone’으로만 알고 있다면, 오디션에서 부른 ‘Stuff Like That There’ 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보아야 마땅하다.
영국 <팝 아이돌>은 2003년 폐지되는 대신 <엑스팩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리뉴얼됐다. 이것도 사이먼 풀러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엑스팩터>는 현재 15시즌까지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이 낳은 스타도 몇 명 있다. BTS 이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보이그룹이었던 원 디렉션과 영국 버전 휘트니 휴스턴이었던 레오나 루이스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2021년까지 모두 19시즌이 방영됐다. 두 프로그램 사이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유사 프로그램도 있다. 블라인드 오디션을 내세운 <더 보이스>다. 이건 한국에서도 판권을 사서 한동안 방영했다. 물론 저작권 따위 모르던 2009년 한국 방송계는 <아메리칸 아이돌>을 그대로 베낀 <슈퍼스타K>를 만들었다. 지금 방영한다면 소송에 휘말릴 일이지만 2009년의 세계는 변방의 아시아 국가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젠지 여러분은 정말 축복받았다.
그래서 20년간 방영된 그 수많은 팝의 본산 영국과 미국의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많은 슈퍼스타를 낳았느냐? 이게 문제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여전히 1시즌 승자인 켈리 클락슨이다. 4시즌 승자 캐리 언더우드도 컨트리 음악계에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그 외 누가 있냐고? 3시즌에서 사이먼 풀러의 혹평을 들으며 중도 탈락한 제니퍼 허드슨이 <드 림걸스>로 오스카를 수상한 뒤 커리어를 이어오고는 있다. 8시즌 준우승자 아담 램버트가 록 그룹 퀸의 새로운 리드 보컬이 되어 공연을 이어가고는 있다. 그 외는 없다. 반짝 가수를 몇 더 배출하긴 했지만 기억할 이유도 없다. 20년 동안 스타급 가수가 된 참가자는 서너명뿐이다. 롱런하는 톱스타로 한정한다면 켈리 클락슨이 유일하다. 지난 10년간은 반짝 가수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걸 왜 계속하고 있냐고? 들어가는 비용 대비 썩 괜찮은 시청률 때문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꿈을 팔고 싶은 방송사도 여전히 있다. 꿈을 파는 건 돈이 된다. 더는 오래 지속되는 꿈이 없더라도 그순간을 파는 건 돈이 된다. 이제는 누구나 <아메리칸 아이돌>이 진정한 아이돌을 배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중간에 ABC로부터 프로그램을 물려받은 FOX는 2016년 종영을 결정했다. ABC가 이를 2018년에 다시 사들였다. 넷플릭스와 HBO에 왕관을 빼앗긴 공중파로서는 죽은 자식 불X이라도 다시 만져보고 싶었을 것이다. “죽은 자식 불X 만진다”는 속담을 젠지 독자들이 이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휘력 상승을 위해 구글에서 찾아보시길 부탁드린다.
<아메리칸 아이돌>만 죽은 자식이 된 건 아니다. <엑스팩터>와 <더 보이스>도 마찬가지다. 더는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스타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프로그램 초창기의 압도적인 하이프를 후속 시즌은 따라갈 수가 없다. 켈리 클락슨이 다시 <아메리칸 아 이돌> 시즌 20에 나오더라도 그는 켈리 클락슨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더 확연한 이유를 대라면, 나는 역시 ‘스타는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오랜 명제를 들이밀 작정이다. 음반사들은 가창력만으로 스타가 될 재목을 낙점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는 노래를 잘하는 흑인 소녀들이 어느 동네나 교회 성가대에 있었다. 그들에겐 없고 휴스턴에겐 있었던 건 스타 퀄리티였다. 오랜 가수 가문의 자제이자 모델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라는 조건에 성가대를 날려버릴 성대가 신의 장난으로 우연히, 혹은 DNA의 장난으로 필연히 주어진 것이다.
<엑스팩터> 우승자 출신으로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1위 곡 ‘Bleeding Love’를 냈던 레오나 루이스는 원 히트 원더로 끝났다. 사이먼 풀러가 “뉴 휘트니 휴스턴”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지만 희한할 정도로 스타로서의 매력이 부족했다. 노래를 부를 땐 근사한데 토크쇼에서 입만 열면 하품이 나오는 좀 안타까운 재질이었다. 응원했던 가수라 아직도 좀 슬프다. <더 보이스>의 실패는 더 슬프다. 블라인드 오디션으로 외모와 상관없이 가창력 있는 스타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실책이 블라인드 오디션이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다. 솔직해지자. 열창만으로 스타가 될 수는 없다. 샤워하면서 5옥타브를 찍는 방구석 가수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박수를 치며 응원하게 된다. 방송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스타로서의 외적 매력까지 갖춘 데다 5옥타브를 찍는 가수의 음원을 스트리밍한다. 우리는 이토록 세속적인 속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싱어게인>과 <초대형 노래 방 서바이벌 VS>와 <쇼퀸>을 보며 열심히 투표 문자를 보낼 것이다. 누구도 음악 서바이벌 초창기에 탄생한 서인국, 이하이, 장범준처럼 스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투표를 할 것이다. 그들은 잠깐 유명해졌다가 높은 시청률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포맷이 지루해지면 방송국은 똑같은 포맷의 다른 제목으로 비슷한 패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여러분은 또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투표를 할 것이다. 그들은 잠깐 유명해졌다 시청률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만.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뉴진스의 모든 곡을 제외하고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중 하나는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다. <슈퍼스타K> 5시즌 승자가 된 지 거의 10년 만에 나온 히트곡이다. 그러니 당신의 소년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그리고 오래 버티자 말해요. 영영 다신 못 본다해도. 그댈 위한 이 노래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