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남성 패션위크가 한창이다.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는 그의 첫 남성 데뷔 쇼를 통해 다시 한번 구찌와 사랑에 빠질 시간임을 알렸다. 구찌 앙코라(Gucci Ancora)!
지난해 12월, 세계 주요 도시에서 구찌의 아트 월이 목격됐다. 밀라노, 뉴욕, 런던, 상하이의 건물 벽에 로쏘 앙코라 컬러로 적힌 문장이 그것이다. Ogni tanto, lo so, sogni anche tu, e sogni di noi (때때로, 나는 알아요, 당신이 꿈을 꾼다는 것을, 우리에 대한 꿈을 꾼다는 것을). 이 염원의 문장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를 심어주고 싶었을까? 구찌가 이번 쇼를 통해 말하고 싶은 비전은? 새로운 리더 사바토 데 사르노가 꿈꾸는 것은?
모든 해답은 1월 12일 열린 구찌 2024 F/W 맨즈 컬렉션에 있다. 런웨이는 폰데리아 카를로 마끼에서 펼쳐졌다. 구찌는 지난 여성 패션쇼를 미러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흑과 백으로 이분화된 조명, 마크 론슨의 사운드트랙, 의복 구성 전반에 걸쳐 아주 똑같거나, 흡사한 장면들이 보였다. 구찌가 나아갈 방향, 추구하는 현대적 미학을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구찌는 정제된 실루엣을 통해 세련되고 우아한 남성의 스타일을 제시했다. 아우터 웨어는 몸에 핏한 실루엣과 그와 대비되는 편안한(relaxed) 핏으로 구성됐다. 컬렉션의 큰 축을 담당한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는 슬릿이 들어가거나 바닥에 끌릴 정도의 기장으로 코트라는 장르의 변주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파이핑 디테일의 재킷, 파이톤 레더 재킷, 시퀸 칼라 니트 카디건처럼 반짝이고 화려한 착장들도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실버 마리나 체인 주얼리와 실크 타이로 섬세한 매너를 더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키워드는 오랜 아카이브의 재해석이다. 사무엘 베케트가 70년대 맸던 백이 등장했고 재키 백은 남성 피스에 걸맞게 사이즈가 더 커졌다. 하우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구찌 홀스빗 로퍼는 두꺼운 밑창의 크리퍼로 변모했다. GG 모노그램 역시 차분한 컬러의 소재에, 메탈 액세서리에 곳곳 녹아 들었다.
사르노는 젠체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치장하고 싶은 현실 세계의 기대를 런웨이에 펼쳤다. 그리고 구찌가 상상력과 화려함의 세계를 거두고 절제된 매너와 표현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렸다. 더욱 선명해진 사르노의 구찌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앙코라는 이탈리아어로 ‘다시’, ‘한 번 더’. 2024년 가을, 구찌 웨이브가 시작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