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의 이강인과 청포도 에이드, 가족, 파리의 휴일, 그리고 ‘이기기 위한 게임’ 축구에 대해 얘기했다. 10년 후의 어느 날에 대해서도.
GQ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 이강인이란 데 모두가 동의할 거예요.
KI 어렸을 때부터 관심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 항상 감사해요. 프로 축구선수가 되니 많은 사람의 사랑이 큰 힘이 되고 응원이 된다는 게 더 실감났죠.
GQ 지난 시즌 리그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올렸어요. 사람들은 유독 10이란 숫자를 좋아해요. 완전함 때문이겠죠? 이강인도 특정 숫자나 단어에 의미를 두는 편인가요?
KI 그렇진 않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있다면 승리와 가족, 이 두 단어뿐이죠. 프로 축구선수로 뛰는 이유는 이기는 축구를 하기 위해서예요.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기지 못하는 축구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가족에 대해선 여러 번 말했듯이,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항상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든든한 버팀목이고요.
GQ 공격 포인트 외에도 지난 시즌에는 변화가 많았어요.
KI 맞아요. 뜻깊은 시즌이었어요. 전 소속팀 마요르카에선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며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하던 플레이가 실전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국가대표로서 월드컵 출전도 경험했어요. 대표팀에서 플레이하는 시간도 늘어났고요. 지금보다도 10년 정도 시간이 흘러 지난날을 돌아보면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시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GQ 어느덧 해외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이젠 덜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것도 많죠?
KI 스페인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스페인 문화, 유럽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졌죠. 그래도 한국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 편의점에 간다거나 집 앞 식당에서 먹는 한식이라거나. 부침은 없지만 이런 소소한 부분이 그리워요.
GQ 파리 생활은 어때요? 적응은 잘 마쳤어요?
KI 스페인어랑 프랑스어가 비슷해요. 특히 단어는 한두 개의 철자를 빼면 많이 닮았더라고요. 문제는 발음인데···, 아직 잘 안 들려요. 팀 동료들과 가벼운 농담을 하는 정도죠.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요? 그래도 파리라는 도시 자체는 너무나 매력적이에요.
GQ 축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고요.
KI 훈련 없는 날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곤 하는데 파리가 문화와 패션의 아이콘이라는 게 실감나요. 관광객도 많고요.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파크 데 프랑스예요. 제 홈구장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특별한 경기장 같아요. 어떤 세계적인 팀의 경기장을 가도 파크 데 프랑스만큼 응원 분위기가 나는 곳이 별로 없어요. 아직까진 파리 생활이 좋아요. 아! 스페인과 달리 겨울이 추운 건 좀 별로지만.
GQ PSG라는 커다란 구단에 입단하니 뭐가 제일 다른 것 같아요?
KI 파리로 이적이 발표되자마자 팀원들과 아시아 투어를 했어요. 물론 한국도 방문했고요. 여러 팀과 경기도 했고, 방송에도 처음으로 도전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수많은 스태프가 잘 준비해주셔서 재미있게 했어요. 투어를 한다는 것···, 이 점이 가장 새로웠어요. 축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투어를 진행한 건데 ‘역시 큰 구단은 다르구나’ 싶었어요. 큰 구단인 만큼 콘텐츠 제작에도 진심이라는 점과 선수들의 일정도 칼같이 관리한다는 걸 배웠죠.
GQ 가장 좋아하는 축구 얘기를 더 해볼까요? 지금의 이강인을 만든 건 한국 축구에선 볼 수 없었던 탈압박과 테크닉이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스페인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KI 상대방을 살피는 연습과 공을 받으며 돌아서는 훈련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고 또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경기장에서 되더라고요. 위대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자주 했고요. 무작정 동작을 따라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체형도 다르고 다리 길이도 달라서요. 그래서 좋은 선수들의 상황 판단 능력을 배우려고 했고,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죠.
GQ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조별 경기였던 도르트문트전은 쉽지 않은 경기였어요. 선수에게도 어떤 경기는 시작 전에 ‘아, 오늘 경기 쉽지 않겠다’ 싶을 때가 있을 텐데요. 이럴 때 마음을 다잡는 방법이 있어요?
KI 저는 그런 걸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에요.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도 경기가 시작되고 필드를 밟으면 똑같아요. 생각했던 것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도 않고요. 도르트문트전은 제 마음대로 흘러간 경기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플레이를 머뭇거리거나 소심한 플레이를 한 것도 아니었어요. 필드 위에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고 나오는 스타일이고요.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아요.
GQ 16강 상대는 소시에다드예요. 동갑 친구이자 팀 메이트였던 일본의 구보 선수가 있죠. 벌써부터 언론의 관심이 뜨거워요.
KI 타케랑은 자주 연락하는 사이라 경기를 한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아요. 물론 꿈의 무대에서 만나니까 특별한 의미는 있지만 그렇다고 둘이 호들갑을 떨진 않아요. 서로에게 중요한 경기라 둘 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마지막 휘슬이 울린 후에는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겠죠.
GQ 그러고 보면 축구는 굉장히 냉정한 스포츠 같아요. 어제 경기를 잘해서 MOM에 뽑혔다가도 오늘 경기를 망치면 질타를 받죠.
KI 그렇죠. 그런데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고 봐요. 이 세상에 지기 위해 경기에 나가는 운동선수는 없어요. 축구는 11명이 하나가 되어 다 같이 이기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스포츠예요. 승점 3점을 따거나 토너먼트에 진출하거나 그게 목표이고 원동력이죠.
GQ 그래도 전반기 베스트 11에 뽑혀 좋지 않아요? 마지막 경기인 FC 메스전에선 시즌 2호 도움도 올렸고요. 스스로에게 몇 점을 주고 싶어요?
KI 전반기를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에요. 제 장점을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는 분이 많다는 점도 감사하고요. 하지만 더 발전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하니까 스스로에겐 6점을 주고 싶네요.
GQ 오늘 디올의 옷을 입고 촬영했어요. 마침 디올은 PSG와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고, 파리를 대표하는 브랜드죠.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KI 팀원들은 제가 뭘 입고 어떤 화보에 나오는지 대단히 관심이 많아요. 다들 제 ‘슛돌이’ 시절과 대표팀 사진을 찾아와서 놀리는데, 이번 화보를 보면 분명 놀리고 웃고 떠들 생각부터 할 거예요.
GQ 특히 음바페 같은 프랑스 선수들이요?
KI 음바페는 그냥 저를 놀리기 위해 태어난 거 같아요.(웃음) 아마 제일 크게 웃고 떠들지 않을까요?
GQ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여러 축구선수가 패션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어요. 만약 디올의 앰배서더가 되어 패션쇼를 보러 간다면 어떤 점을 눈여겨볼 것 같아요?
KI 어떤 룩이 저랑 잘 어울리는지, 어떤 컬러를 쓰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올 것 같네요. 오늘 촬영한 룩의 컬러들처럼요. 눈이 번쩍이게 화려하지 않아도 편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좋더라고요.
GQ 평소에도 오늘 같은 룩을 좋아해요?
KI 보통 스트리트 패션을 자주 입긴 하는데, 가끔은 깔끔하고 클래식한 룩도 입고 싶어요. 오늘 입은 옷들이랑 분위기가 비슷하겠네요.
GQ 그렇다면 이번 겨울을 맞아 옷장에 꼭 넣어두고 싶은 클래식한 아이템은요?
KI 아! 오늘 촬영하면서 입은 흰색 스웨터요! 사과 먹으며 촬영한 옷인데 고급스럽지 않나요?
GQ 이제 목표는 1월에 열리는 카타르 아시안컵입니다.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하고, 64년 만의 우승이 목표인 대회죠.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KI 기대와 압박감, 둘 다 머릿속에 있는 건 분명해요. 대표팀에 가면 형들, 친구들 그리고 스태프들과 합숙을 하며 많은 추억을 쌓죠. 하지만 동시에 저희는 이기기 위해 경기하는 입장이라 압박감도 있어요. 특히 아시안컵은 몇십 년 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고,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굉장히 강력한 팀이라 기대가 더욱 크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번에야말로 모든 팀원이 하나로 뭉쳐 우승컵을 들고 왔으면 좋겠네요.
GQ 우승하는 순간에도 샴페인 대신 청포도 에이드를 마실 건가요?
KI 청포도 에이드 아니면 탄산수요.(웃음) 술은 써요. 대신에 우승이 그보다 훨씬 달겠죠? 분명 그럴 거예요.
GQ <GQ>와는 처음 만났어요. 5년 후 그리고 10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KI 일단 오늘의 만남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멋있는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해서 즐거웠어요. 2023년의 이강인이 시작에서 나아가는 이강인이었다면, 2034년의 이강인은 더욱 성숙하고 완성된 이강인의 이야기로 찾아뵙고 싶네요. 그때는 오늘의 디올 화보 얘기와 더불어 우승의 순간들, 더 많은 추억 그리고 훨씬 재미있는 얘기들로 채워드릴게요.
GQ 마지막으로 슈가 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보니 이강인 선수의 애칭을 정해서 문자를 한다던데, 뭐라고 왔나요?
KI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