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썸 탈 때 마시기 좋은 위스키를 골라봤다. 당신의 플러팅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썸 단계별 위스키 추천.
이제 막 알게 된 사이, 글렌모렌지 10년
흰 눈 내리는 겨울에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조니 뎁, 위노나 라이더 주연,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이다. 극 초반부에 에드워드가 아주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킴의 아빠는 그를 진정시키려 ‘레모네이드 한잔하라’는 말과 함께 위스키를 건넨다. 위스키가 현대인의 레몬주스임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래서 이 장면을 좋아한다) 그 뒤로도 종종 어디 레몬 맛 나는 위스키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맛본 글렌모렌지 10년. 화사한 시트러스 풍미에서 레몬이 연상됐다. 온더록으로 차갑게 마시니 더 상쾌했다. 글렌모렌지 10년은 캐릭터가 강하지 않아 위스키를 잘 몰라도 가볍게 즐기기 좋은 술이다. 깊어지지 않아 재밌는 썸과 닮았다. 요즘은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레몬 사탕으로 호감을 표시하지 않나. 레몬 사탕 대신 레몬 향 위스키를 건네보자. 술을 고른 이유를 넌지시 전하며 애프터 신청은 이렇게. ‘다음엔 레모네이드 마시러 갈래?’
관계가 무르익을 때,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발베니 12년 더블우드에서 처음부터 초콜릿을 느낀 건 아니었다. 스파이시하면서 달콤한 그리고 꽤 끈적한 향이 가장 먼저 코 앞으로 마중을 나온다. 위스키가 혀에 닿고도 시간이 좀 지나야 비로소 다크 초콜릿의 달콤 쌉싸래한 맛이 감돌기 시작한다. 긴 피니시가 여운을 남기는데 먹고 난 뒤의 텁텁함까지도 진한 초콜릿의 느낌과 비슷하다. 마치 초콜릿 박스의 리본을 풀 때처럼 기다림이 필요한, 동시에 기대감을 주는 그런 위스키다. 상대방과 깊어지는 단계에 있다면 아직 보여주지 않은 숨겨둔 매력 하나를 공개해보자. 새로운 반전이 긴 여운을 남길지도. 더블우드는 두 개의 오크통을 활용한 숙성 방식이다. 발베니 12년은 버번 캐스크와 셰리 캐스크를 순서대로 거친다. 두 캐릭터의 은은한 밸런스가 탁월하다. 진지한 태도로 섬세한 아로마를 느껴볼 것. 위스키도, 피어나는 감정도.
썸에서 연인으로 갈 때, 히비키 하모니
“이 위스키를 마시면 헷갈릴 거야. 여기가 일본인지 스코틀랜드인지. 저 여자가 내게 무엇인지.”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속 대사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영화배우다. 그는 산토리의 광고 촬영을 위해 도쿄에 방문한다. 그러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고뇌한다. 주인공은 외로움을 달래며 히비키 17년를 마신다. 당신에게도 마음 속 혼란이 생긴다면 히비키의 힘을 빌려 보길 바란다. 훌륭한 블렌딩을 자랑하는 히비키 하모니는 독하면서 부드럽고, 자연의 담대함과 고요함을 두루 갖췄다.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할 땐, 가장 직관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