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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상징 ‘스위스 메이드’ 시계 4

2024.02.06김창규

스위스 브랜드가 아닌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브랜드 중 스위스에 제작을 맡기는 시계가 있다. 섬세함과 우아함을 극강의 하이엔드 기술에 담아낸 시계들을 추천한다.

파네라이

피렌체의 귀금속 및 시계 판매점이었던 파네라이는 롤렉스의 판매권을 소유하고 있던 업체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들에게 새로운 군용 시계 제작을 의뢰했고, 그때까지 파네라이는 무브먼트 제작 설비를 갖추고 있지 못했기에 롤렉스나 코르테베르(Cortebert)의 무브먼트를 탑재해 밀-스펙 시계를 납품했다. 이후 파네라이는 1997년 리치몬트 그룹에 합병되어 완전한 스위스 메이드 체제로 전환됐다. 파네라이는 현재에도 시계 애호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롤렉스나 코르테베르의 칼리버를 탑재한 리치몬트 그룹 산하 이전의 시계들이 지닌 가치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리치몬트 그룹은 예전에 방돔 그룹이라는 사명을 사용했었기에 인수 이전 시계들을 ‘프리 방돔 파네라이’라고 부르는데, 극강의 희소성으로 천문학적인 거래가를 자랑한다.

반클리프 아펠

프랑스 파리의 방돔 광장을 전 세계 시계&주얼리 브랜드의 메카로 만든 주역 중 하나로 꼽히는 반클리프 아펠은 1906년 알프레드 반 클리프, 에스텔 아펠 부부가 창립했다. 창업 당시부터 시계를 선보였던 반클리프 아펠은 메종의 철학을 담은 시적이면서도 낭만이 담긴 시계를 선보이기 위해 극강의 하이엔드 기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제작 난도가 높은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오토마통(일종의 초소형 작동 로봇) 메커니즘은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컬렉션에서 다채롭게 만날 수 있으며, 에나멜링 등의 전통 공예 기법은 엑스트라오디네리 다이얼 컬렉션을 필두로 선보인다. 단순히 진귀한 스톤을 세팅하는 시계를 넘어 스위스 메이드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기술력까지 버무리는 것이 반클리프 아펠만의 정체성이다.

해밀턴

1892년 창립한 해밀턴은 ‘해밀턴의 역사가 미국 시계의 역사’라 말해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역사성을 지닌 브랜드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군용 시계를 보급했던 주인공이 바로 해밀턴이며, 1941년에 이미 미해군의 밀-스펙을 훨씬 상회하는 초정밀 해양 크로노미터까지 완성했던 기술력을 보유했다. 또 최초로 북극에 도달한 리처드 E. 버드 제독과 함께 항공 시계로서의 장을 열기도 해서 항공 우편국 파일럿들의 시계로도 명성을 떨쳤다. 스와치 그룹 패밀리가 된 이후 이전의 역사성을 살려 체르마트 산악 구조대의 공식 파트너로 활약 중이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기 동력 비행 탐사의 선구자 스마트플라이어(Smartflyer)와의 파트너십도 진행 중이다.

미국 시계 브랜드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 해밀턴이긴 하지만, 미국 표준시를 만든 것은 볼이다. 미국은 거대한 대륙인 데다 특히 영토가 동서로 넓어 시간대까지 나뉜다. 게다가 미국의 국경선은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했고, 주마다 각자의 정부와 법이 존재했기에 표준시를 정하는데 이 어떤 나라보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표준시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열차 사고를 의미했다. 서로 다른 기준시를 가진 주에서 출발한 열차들은 대형 사고의 가능성이 높았고, 미국은 1891년 볼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현재 표준시의 밑거름이 되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현재 볼은 스위스 라쇼드퐁에 생산 기지를 두고 보다 정밀한 시계를 만들고 있으며, 극도로 강한 내구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