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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한 디자인에 고도의 기능을 갖춘 시계 4

2024.02.26김창규

무표정한 디자인의 다이얼 속 질풍노도의 심장을 갖췄다.

노모스 – 람다 화이트 골드

독일 글라슈테에서 시계를 생산하는 노모스는 시계 애호가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왜냐하면 시계 업계에 인하우스 무브먼트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하던 2005년부터 이미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시계를 내놓은 진지한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가격적으로 미들레인지메이커임에도 말이다! 게다가 자사 칼리버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시계 브랜드가 밸런스의 핵심 부품들만큼은 스와치 산하의 니바록스로부터 공급받는데, 이런 것들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집념을 보여줬다. 

무브먼트의 질적 수준도 높아 람다에 탑재한 수동 DUW 1001 칼리버의 경우 3/4 플레이트, 스완넥 레귤레이터, 그 위를 장식한 인그레이빙, 고전적인 밸런스 휠 웨이트, 플레이트에 루비를 마운트한 골드 링과 그것을 고정하는 3개의 블루잉 스크류 등 랑에 운트 죄네 같은 동향 하이엔드 메이커가 지향하는 지역적 특색까지 고스란히 반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워 리저브 표시창이 있는 모델답게 84시간의 롱 파워리저브까지 지원한다. 놀라운 무브먼트 때문에 다이얼에 대한 소개를 소홀히 했는데, 이런 시계가 지닌 핸즈의 완성도는 의외로 어렵다. 4개의 핸즈가 달린 시계 디자인이 이렇게 미니멀하기도 쉽지 않다. <저먼 디자인 어워드>등에서 상도 받았다.

융한스 – 막스 빌 크로노스코프

노모스도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명망이 높은 워치메이커이지만, 융한스는 지존으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시계 브랜드이기에 이러한 디자인 역시 이들이 원조라서다. 특히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스위스의 디자이너 막스 빌이 자신의 이름을 허락한 동명은 컬렉션은 시계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바우하우스 양식의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이 시계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7750을 베이스로 수정한 칼리버 J880.2이 탑재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 워치를 위한 무브먼트이다보니 같은 베이스 무브먼트를 적용한 타사의 시계들 대다수가 다소 투박한 디자인인데, 융한스는완전히 드레시하고 모던한 인상으로 시계를 완성했다. 이것이 시계 업계 최고의 미니멀리스트 융한스 디자인의 저력이다.

모저앤씨 – 스트림라이너 퍼페추얼 캘린더

앞서 소개한 두 점의 독일 시계들이 담고 있는 복잡함은 스몰 컴플리케이션 수준이었지만, 지금부터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이다. 인덱스는 물론 브랜드 로고까지 생략된 극단적인 다이얼의 시계는 스위스의 독립 시계 브랜드 모저앤씨가 최근 발표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날짜에 관한 모든 기능을 알려주는 데다 30일과 31일의 구분은 물론 2월과 윤년까지 자동으로 수정해 표시한다. 보통의 동 기능 시계들은 다이얼 레이아웃이 크로노그래프만큼이나 복잡하다. 하지만 이 시계는 융한스의 크로노스코프보다 더욱 단조로운 다이얼 디자인을 갖고 있다. 

중앙의 긴 세 개의 핸즈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고, 함께 마운트된극도로 짧은 붉은색 핸즈는 12개월을 가리킨다. 다이얼 4시 방향의 디지털 인디케이터는 날짜 창이며, 10시 방향의 짧은 핸드는 168시간의 롱 파워리저브를 나타낸다. 누군가는 ‘퍼페추얼 캘린더이면서 요일 표시도, 문 페이즈도 없는데, 파워리저브 표시창을 굳이 왜 집어 넣은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사용하면서 이 시계처럼 인덱스가 없어 직관적으로 날짜를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 동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시계를 방치해둘 염려가 있다. 다시 착용하기 위해 크라운을 건드렸을 때 단차를 잘못 계산해 날짜 창을 수정해버리면, 메커니즘의 특성상 몇 달간 큰돈을 들여 수리를 맡겨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퍼페추얼 캘린더는 가급적이면 이 시계처럼 자동 무브먼트, 롱 파워리저브 사양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능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만, 단순한 레이아웃과 복잡한 기능을 동시에 원하는 사람이라면 “드디어 이런 시계가 나왔구나!”라며 환호성을 터트릴 거다.

파텍 필립 –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5078

최근에는 파텍 필립이 노틸러스나 아쿠아넛 같은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사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야말로 브랜드의 정수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라고 하면 복잡한 고기능을 2~3가지씩 조합해 극강의 기술력을 하나의 시계로 구현한 것일텐데 5078은 얼핏 보면 세컨드 핸드만 분리한 스몰 세컨드 타임 온리 워치로 보인다.그러나 이 시계에는 엄청난 스웩이 숨겨져 있으니 바로 미니트 리피터와 투르비용의조합으로 완성한 초복잡 시계인 것이다. 상당히 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계 9시 방향 케이스 측면에 보이는 것이 미니트 리피터 구동을 위한 슬라이더라는 것을 알아차릴 거다. 워낙 비싼 값을 치러야 소장할 수 있는 기능이다보니 차임을 울리는 공과 해머가 오픈형 다이얼을 통해 과시하듯 보여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계는 그 모든 기능을 우아한 불투명의 그랑푀 다이얼 너머로 숨겼다. 그 이유는 무브먼트 부품에 섬세하게 도포된 윤활유가 직사광선에 의해 증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미니트 리피터는 몰라도 투르비용은 현대에 이르러 기능적이기보다 심미적인 컴플리케이션으로 여겨져 무조건 드러낸다. 심지어 기계식 무브먼트이기만 해도 밸런스를 오픈워크로 드러내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파텍 필립은 전부 다 감췄다. 뽐내야만 돈 쓴 보람을 느끼는 천박한 안목에 경종을 울리는 시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