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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바비큐에서 진가를 발하는 와인 3

2024.03.02김창규

풀 내음, 바다 냄새, 장작이 타며 내는 그을음 등으로 가득한 야외 BBQ 자리에서 섬세함과 복잡한 레이어를 지닌 최상급 와인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잘 익은 과실의 풍부한 볼륨감, 강하지만 부드러운 타닌 등의 요소가 적절하게 받혀주는 와인이라면 프랑스 그랑 크뤼 와인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다.

비냐 레알
– 그랑 리제르바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와인 산지로 꼽히는 리오하 지방은 처음 와이너리로 개발되던 당시부터 프랑스 보르도를 대체할 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보르도 와인처럼 강건하고 힘찬 레드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비냐 레알은 1920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이 지역 대표 와이너리다. 플래그십 라벨인 그랑 리제르바는 리오하에서도 최상의 테루아로 꼽히는 알라베사 최고의 포도를 사용하며, 오크통에서 평균 24개월 숙성한 뒤 병입 후 3년간 셀러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시장에 나온다. 출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와인답게 장기 숙성형이지만, 어린 빈티지를 마셔도 좋은 밸런스를 즐길 수 있다. 잘 숙성된 보르도 그랑 크뤼처럼 말이다. 품종은 템프라니요 95%, 그라시아노 5%다. 많은 평론가들에게 다년간 좋은 점수를 받아왔고, 대표적으로 제임스 서클링은 2014 빈티지에 93점, 2015 빈티지에 96점을 줬다.

아리스토스
– 바론

보통 칠레에서 생산되는 풀보디 타입의 레드 와인들은 대부분 거친 질감이 있어 구대륙의 것들과 명확히 구분된다. 하지만 아리스토스의 와인들만은 예외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인공으로 말벡, 카르미네 등의 품종을 블렌딩해 완성하는 이 와인은 마시면 보르도 생 줄리앙 지역의 그랑 크뤼 와인으로 착각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생 줄리앙 와인은 강하지만, 그 강함이 부담스럽지 않고, 붉은 과일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전달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품종적으로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도 닮았다. 새 오크통 비율 40%로 24개월간 오크 숙성, 24개월간 병 숙성 후 출시하는 바론에서 신대륙 와인 특유의 강한 알코올 뉘앙스나 거친 질감 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모든 육류 요리와 근사하게 어울린다.

램지
– 피노 누아

BBQ와 피노 누아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죽어도 피노 누아를 고집해야겠다면 정말 저렴하고도 풍성한 과일맛을 지닌 램지를 추천한다. 피노 누아를 사랑한다면 ‘BBQ 그릴 앞’이라는 핸디캡을 지니고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미국산 피노 누아의 가격은 15만원 이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 램지의 피노 누아는 6만원대라는 가격을 지니고도 잘 익은 붉은 과실과 장미, 뚜렷한 오크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 비결은 러시안 리버 밸리, 소노마 카운티, 몬터레이 카운티처럼 미국 최상의 피노 누아 생산지의 포도를 사용하는 데다 ‘새 오크통 25%의 비율로 12개월 숙성’이라는 방식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고급 부르고뉴 피노 누아가 보여주는 섬세함은 없지만, BBQ 그릴 앞에서 그런 건 애초에 느낄 수도 없으니 괜찮다. 가격을 고려했을 때 단점을 찾기 어려운 피노 누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