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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게 빛나는 방법, 루이 비통 ‘스피디 P9 반둘리에 40’

2024.03.06박나나

우아하게 부유하고, 아름답게 부드럽다.

40×26×23센티미터 크기의 베르 컬러 스피디 P9 반둘리에 40 1천4백50만원, 루이 비통.

HOW TO FEEL

I Just Wanna Love U. 퍼렐 윌림엄스와 제이지가 퐁네프 다리 위에서 이 노래를 신나게 부른 2023년 6월의 여름날, 스피디 P9은 시작됐다. 본격적인 시작은 제임스 르브론과 함께 2024년 1월부터 예정되었지만, 아쉽고도 놀랍게도 이 가방은 쇼윈도에서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솔드 아웃. 여자의 꿈과 현실을 맞바꿔준다는 그 가방과 맞먹는 가격임에도 말이다. 꿈은 구입이지만 현실은 구경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 가방을 파리 출장 여정 동안 경험해보기로 했다. 신발이 가방이 되고 빵도 백이 될 수 있다는 요지경 속에서 스피디 P9는 지극히 정상인 가방이자 백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에디터가 경험한 반둘리에 40의 크기는 기존의 스피디와 키폴의 중간 즈음. 이 크기는 평소 트위드 재킷과 슬링백을 좋아하고 두 개의 톱 핸들에 팔을 거는 습관이 있는 여자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덜 여성적인 여자가 어깨에 메거나 덜 남성적인 남자가 손에 들면 모를까. ‘나’만 보라던 초록색은 실제로 덜 호사스럽고 훨씬 어른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어딜 가나 ‘너’만 보일 건 자명했다. 가죽의 질감은 충격적일 만큼 부드러웠다. 어떤 가공을 거쳐야 카프스킨이 이런 촉감을 낼 수 있는 건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니 열대야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허물어진다. 이 유연함은 대체 뭐지. 출장용 백팩에 있던 물품들을 모두 옮겨 담고, 가장 큰 사이즈의 리모와 캐리어 위에 얹으니 얼추 균형이 맞았다. 공항은 한산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와 가방에 꽂힌다고 혼자 느꼈다. 여권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었지만 살짝 끈이 길어 허벅지로 가방을 받쳤다. 아웃포켓이 많은 백팩에 비하면 가방 속 물건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설마 잃어버렸나,하고 철렁하는 순간을 꽤나 많이 겪었다. 제법 큰 크기였지만 기내 선반 위에 넣을 필요는 없었다. 평소 노트북이나 화장품 파우치를 넣던 좌석 전면 수납함에 꿈틀대며 완벽히 들어간다. 유연함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출장 동안 이 가방에 관심을 갖는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다스러운 프렌치 스타일리스트는 가방을 흘끗거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니거야? 대답 대신 고개만 까딱인다. 애비뉴 몽타뉴 숍의 매니저는 경쟁 브랜드임에도 가방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대신 샴페인 한 잔을 갖다준다. 스니커즈 숍의 덩치가 큰 직원은 슬금슬금 다가와 저음으로 속삭인다. 느끼해서 저속어인가 흠칫했지만 사실은 특급 칭찬이었다.

HOW TO LOOK

단정하고 소재가 좋은 캐멀 코트를 입고 5밀리미터 큰 사이즈의 뚱뚱한 회색 운동화를 신었다. 평소 같았으면 빈티지 레드 삼바였지만 스피디 P9 그린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아 신발을 바꿔 신었다. 컬러, 형태, 로고. 스피디 P9 말고 눈에 띄는 건 없는 걸 골랐다. 패럴의 계획도 그랬던 것 같다. 무채색 트레이닝 수트, 걸을 때 더 우아한 스프링 코트, 과하게 격식을 차리지 않은 테일러링 베스트. 스피디 P9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룩이다. 나대지 않아도 돋보이고, 요란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

HOW TO USE

휴대 전화보다 가벼운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고판, 면세점에서 산 300 밀리미터 토너, 검색대를 무사 통과하는 화장품 꾸러미, 가장 중요한 여권과 여권 케이스, 지폐와 카드와 명함을 넣은 지갑, 매번 느는 동전지갑, 라운지에서 챙긴 생수와 바나나, 볼펜과 네임펜, 마누카꿀 사탕과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환상의 듀오 휴대 전화와 충전기, 공항에선 쓴 적 없는 선글라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꼭 쓰는 비니, 물티슈와 종이 티슈. 다 넣어도 반이 차질 않는다.

포토그래퍼
김래영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