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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워치 메이커가 만든 스포츠 워치 3

2024.03.13김창규

드레스 워치 위주로 브랜드를 전개하던 워치메이커가 내놓은 스포츠 워치들. 순수하게 아름답고 충분히 견고하다.

랑에 운트 죄네오딧세우스

랑에 운트 죄네는 몇 해전까지 정말 단 하나의 스포츠 워치도 내놓지 않았던 마지막 순수 드레스 워치 메이커였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운영 철학이었다기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공장이 사라졌고, 전후 패전국으로 소련에 재산을 몰수 당하기도 해서 1994년까지 브랜드 운영이 완전히 중단되었던 탓이 더 크다. 현대적인 관점의 본격적인 스포츠 워치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했고, 하이엔드 메이커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 스포츠 워치를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랑에 운트 죄네는 운영을 안했다보니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 브랜드를 재건한 1994년부터도 끊겼던 명맥을 잇기 위해 드레스 워치 생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었다. 그러다 2019년 럭셔리 스포츠 워치 컬렉션인 오딧세우스를 갑자기 내놨다. 이때의 찬반 양론은 상당히 거셌고 나는 반대파였다. 그럴만도 했던 것이 랑에 운트 죄네는 오로지 드레스 워치 한 카테고리만으로 브랜드 재건 25년만에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하이엔드 메이커로 성장한 신화를 갖고 있다.

게다가 스포츠 워치가 더 상업적인 게 현실이라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라고 여겨 나 같은 보수적 순수주의자들에게 컬트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당시 시계 업계에 불고 있던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 광풍’은 나처럼 ‘순수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애호가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파텍 필립의 ‘막내’로 여겨지던 아쿠아넛이 ‘맏형’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보다 구하기 어려워졌을 정도로 판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러한 풍조에 맞춰 오딧세우스 역시 만드는 족족 다 팔리는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가 되었다. 이 시계는 언뜻 보여지는 디지털 방식의 빅 데이트 & 데이 인디케이터, 점 모양 핸즈, 큼직한 스몰세컨드 등이 랑에 운트 죄네의 드레스 워치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스포츠 워치답게 기존 모델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크라운 가드 타입의 케이스 측면부, 다이얼 중심과 외곽의 단차, 케이스와 일체감을 보이는 브레이슬릿 디자인 등의 개성도 갖고 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적응이 어렵지만 대중의 판단은 랑에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

피아제폴로

피아제 폴로는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귀족적인 스포츠 워치의 정체성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와 마찬가지로 첫 디자인 자체가 드레스 워치에 가깝게 느껴졌던 데다 대중에게 드레스 워치로서의 인기와 정체성이 훨씬 강하게 전달됐다. 리베르소가 스쿼드라라는 이름의 모던 스포츠 워치 컬렉션을 선보였다 현재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폴로 역시 포티파이브라는 컨템퍼러리 디자인의 하위 컬렉션을 발표했다가 현재는 전개하지 않는다.

그러다 2016년 폴로 S라는 스포츠 워치 타입의 하위 컬렉션을 다시 한번 선보였고, 디자인은 피아제의 볼드한 드레스 워치 컬렉션인 엠퍼라도 쿠썽에 근간을 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폴로 S가 점차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자 피아제는 컬렉션 이름 자체를 폴로로 변경해 메인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심지어 디자인의 뿌리였던 엠퍼라도 쿠썽 전개까지 중단했다. 그 결과 피아제의 남성 컬렉션은 드레스 워치는 알티플라노, 스포츠 워치는 폴로로 양분화됐다. 혹자는 이렇게 큰 폭으로 변화한 컬렉션의 정통성에 큰 의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IWC 인제니어 등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중요한 건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컬렉션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다. 15년 차 워치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피아제처럼 뛰어난 무브먼트 제작 능력이 있는 브랜드에서 폴로에 무리하게 컴플리케이션을 적용시키지 않는 것만 해도 훌륭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드릭 콘스탄트하이라이프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미들레인지 워치메이커들 중 가장 포멀한 타입의 드레스 워치를 선보여 온 브랜드다. 자칫 정체성보다 트렌드에 휩쓸리기 쉬운 포지션이지만 오히려 훨씬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들보다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켜왔다. 그러다 2020년 하이엔드 워치메이커들이 선보여 온 럭셔리 스포츠 워치들의 1970년대 디자인 특징들을 따르는 하이라이프 컬렉션을 론칭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1999년 선보였던 동명 컬렉션의 리론칭이지만, 디자인을 계승했다고 보기 어려워 완전히 새로운 컬렉션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트렌디한 러그 일체형 케이스, 입체감있는 인덱스, 간결한 핸즈 디자인과 폰트 등이 디자인적 특징이다. 앞서 말했듯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드레스 워치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계가 30m 방수 사양을 지원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프는 스포츠 타입이기에 100m로 업그레이드됐으며, 크로노미터 인증받은 자동 무브먼트로 정밀성까지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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