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드레스 워치에는 지금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❶ 바쉐론 콘스탄틴 – 트래디셔널 매뉴얼 와인딩
바쉐론 콘스탄틴은 컴플리케이션 워치 분야의 최강자일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두께가 얇은 드레스 워치 시장을 선도해왔다. 가장 얇은 시계의 기록 경쟁을 피아제, JLC와 상당히 오래 해 온 만큼 탑재된 수동 와인딩 4400AS 칼리버의 안정성은 높으며, 제네바 홀 마크로 정밀성과 코스매틱 가공의 완성도를 인증한다. 이 시계는 과감하게 그린 컬러를 적용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이점은 없다. 하지만 트래디셔널이라는 이름의 극도로 보수적인 컬렉션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비드한 컬러의 적용은 더 과감한 디자인을 파생 모델에 시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최근 플래티넘 케이스를 적용한 투르비용 사양의 동 디자인 시계를 내놨다. 케이스 지름은 38mm이다.
❷ 롤렉스 – 1908
롤렉스를 대표하는 드레스 워치 컬렉션이라면 데이트저스트와 데이-데이트를 1순위로 놓아야겠지만, 둘 다 타임 온리 모델이 아니다. 타임 온리 워치라면 라운드 케이스인 첼리니, 스퀘어 케이스인 프린스가 생각나지만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아 단종됐다. 하지만 아무리 인기가 낮더라도 가죽 스트랩이 기본인 타임 온리 드레스 워치는 워치메이커의 기본 중 기본. 롤렉스처럼 드레스 워치의 비중이 높은 브랜드라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더 이상 전개하지 않기 어렵다. 가뜩이나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전개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보니 그 정도 눈치는 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908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는 롤렉스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오이스터 케이스를 적용하고도 가죽 스트랩이 기본인 순수 드레스 워치이기에 대단히 신선한 등장이었다. 1908은 롤렉스가 상표 등록을 한 해다. 이를 기념하는 네이밍인 것이다. 디자인은 1931년의 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크고 둥근 구멍이 뚫린 아워 핸드가 유난히 클래식해 보인다. 탑재한 오토매틱 칼리버 7140은 케이스백을 통해 볼 수 있으며 듀얼클라스프 버클을 적용했다. 놀라운 점은 오이스터 케이스임에도 50m 방수만을 지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사실 100m 방수가 되는데 드레시함을 강조하려고 다운 스펙으로 표기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롤렉스는 이 시계를 통해 한동안 자극이 없었던 드레스 워치 시장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❸ 론진 – 마스터 컬렉션
론진은 워낙 찬란한 헤리티지를 보유한 브랜드이기에 자사의 아카이브를 뒤지면 간단히 멋진 신제품이 출시되곤 한다. 아름다운 샐먼 핑크 다이얼을 지닌 케이스 지름 38.5mm의 마스터 컬렉션 또한 그러한 시계다. 사실 190주년을 맞이한 해에 41mm 사이즈의 동 디자인 모델을 선보였었지만, 오버 사이즈 지름 때문에 클래식한 느낌을 주기엔 약간 부족했다. 이 시계에 적용한 폴리싱 가공 기법은 작아진 지름과 대단히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깊게 인그레이빙한 브레게 인덱스가 있는 새틴 브러시드 다이얼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무브먼트는 ETA A31.501을 베이스로 한 론진만의 L893.5 셀프 와인딩 칼리버를 채택했다. 덕분에 72시간의 롱 파워리저브를 지원하며, 실리콘 헤어 스프링으로 자성의 영향을 피할 수 있다. 고전적인 겉모습과 달리 속은 정말 최신식이다.
❹ 불가리 – 불가리 불가리
불가리의 불가리 불가리는 브랜드의 첫 시계일 뿐 아니라 ‘불가리’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그만큼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이 시계는 50여년이 지나 올해의 신제품으로 재탄생했다. 옐로 골드 소재의 케이스는 38mm로 아주 적절하며, 50m 방수를 지원한다. 케이스백을 통해 볼 수 있는 무브먼트는 불가리의 인하우스 오토매틱 칼리버 BVL 191이다. 이 시계는 워낙 오리지널에 충실하게 복원되어 딱히 달리진 점이 없다. 그런데 그게 이 시계 최고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