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웃으며 돌아볼 뿐.
GQ 지난가을 <The GQ Open>에서 골프는 잘 즐기다 가셨나요?
NR 오, 맞아요. 재작년 겨울쯤에 골프를 배워서 작년부터 날 좋을 때 같이 촬영하는 주원 오빠, (음)문석 오빠, (유)인수랑 같이 필드 나가고 그랬어요. 주원 오빠랑 문석 오빠가 골프를 진짜 잘 쳐요. 두 분한테 필드 레슨 받듯이 같이 치고 있고, 그래서 전보다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GQ 얼마나요?
NR 원래는 140타대 나왔는데 지금은 100 초반대입니다. 많이 발전했어요!
GQ 상당히 긍정적이시네요. 보통은 100타 넘어가면 말하기 멋쩍어하시는데.
NR 아니요, 저는 자신 있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골프는 정말 매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20분씩이라도 해야 몸에 익는데, 그런데 저는 연습실 가는 건 별로 재미없어요. 필드 나가서 잔디 보고, 나무 보고,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얘기하고, 골프하고, 그게 너무 좋은 거지 실내에서 연습하는 건 지루해요. 그래서 필드로 바로 나갔는데 이 성적인 건 당연하다, 와중에 되게 감사한 점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GQ 요즘 “한 번 더 일어나자, 한 번 더 할 수 있어” 말한 순간이 있다면요?
NR 한 번 더 일어나자, 한 번 더 할 수 있어···. 지금 작품 <야한 사진관> 들어가기 전에요. 이전 <불가살>이라는 작품과 이번 작품 사이에 한 1년 텀이 있었어요. 그 사이에 감사하게도 다른 작품 기회도 있었지만 고사했던 건, 제가 걸그룹 때부터 막 달려오다 보니까 쉬는 날 뭘 해야 즐거운지 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미도 많이 없었고. 그래서 그 1년 동안 골프도 배워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스키도 배워보고, 그렇게 저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다시 작품에 몰입해서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 작품마다 항상 도전하는 것이다 보니까 두려움도 많고 용기를 많이 내야 하는데, 그럴 때 ‘내가 이걸 더 잘할 수 있을까? 힘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번에는 리프레시 시간을 통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여기게 됐어요.
GQ 실제로 나라 씨가 한 말이었어요, “한 번 더 일어나자, 할 수 있어.” <불가살> 후에 배운 점이라고.
NR 아!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감동이네요. <불가살>에서 온갖 힘든 상황을 다 헤쳐가는 상운을 연기하면서 저도 용기를 많이 얻었고, 그래서인지 작품 딱 끝나자마자 저로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더라고요. 나는 어떤 것들을 잘할 수 있을까? 쉴 때 무엇을 하면 내가 즐거울까? 이런.
GQ 예로 스키, 자전거, 골프 등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액티브하네요. 과거 <나 혼자 산다> 속 모습은 나무늘보 같은 삶이었잖아요.
NR 그런 액티브한 걸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걸그룹 생활할 때는 춤, 노래, 연기, 이렇게 항상 무언가 하나를 파야 했거든요. 하나에 몰두해야 했는데,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더라고요. 스스로를 생각해볼 때 저는 늘 집에만 있는 거예요. 강아지랑 산책하는 것 외에는 밖에 잘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야외에서 체험을 해보자, 그래야 내가 밖에서 활동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야외 스포츠를 많이 도전해봤는데 잘 맞더라고요. 돌아보면 저는 남들보다는 사회생활이 좀 더뎠던 것 같아요. 스무 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스물두 살에 데뷔했는데, 그렇게 시작한 연예계 생활이 저의 첫 사회생활이었어요. 연습생 친구들, 그룹 친구들과 매번 숙소 생활만 하고 그 무리 안에만 있다 보니까 저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좀 늦게 알았어요. 그때는 그냥 그때그때 할 일들만, 되게 코앞에 있는 것들만, 주어진 것만 항상 해왔던 듯해요. 그게 쌓여서 감사하게도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제 나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마침 들었어요.
GQ 멀리서 볼 때는 권나라라는 인물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인물로 어쩌면 <나의 아저씨> 유라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NR 그때 제가 김원석 감독님께 그랬어요. “감독님, 유라의 이런 아픔은 제가 이해할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뭐, 오디션에 실패하고 이런 부분들. 그런데 그럼에도 좀 어려웠어요. 제가 20대였는데 30대 역할이기도 했고, 당시 “감독님이 망해서 좋아요”라는 대사를 보고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마음이지? 그랬거든요.
GQ 그로부터 2년 후 어느 인터뷰에서는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죠. 어떤 연유로 이해하게 됐을까, 그 좁혀진 간극이 궁금했던 참이에요.
NR 안심. 유망주 천재 감독이던 기훈, (송)새벽 오빠가 연기한 그 기훈이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망했는데도 행복하게 잘 사는구나. 망해도 괜찮구나. 그가 행복해 보이고, 그 동네가 행복해 보이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고, 어떤 지위가 높아서 행복한 것 말고 그냥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따뜻하게 살아가도 괜찮구나, 그런 안심을 느낀 거더라고요. 그 대사더라고요. 그 이유였더라고요. 그래서 유라도 일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GQ 나라 씨도 그런 안심의 마음을 알게 된 건가요?
NR 저는 어릴 때부터 세 자매 중 첫째라서 그런지 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이건 내가 해내야 해, 이런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이거 좀 어렵네요. 그런데 해볼게요. 모르겠지만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왜, “실수해도 괜찮아, 이렇게 하면 되지”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안심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옆에 많아진다고 느껴요. 완벽하지 않아도 됐는데, 완벽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같이 챙겨주고 도와줄 수 있는 건데, 저는 늘 욕심도 많이 나고, 되게 잘하고 싶고, 잘 해내 보이고 싶다는 생각들에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특히 이번 드라마 촬영 현장이 너무 좋았고, 덕분에 좀 더 내려놓고 물어볼 줄 아는 힘이 생겼어요.
GQ 이 말이 의아했거든요. 8년 전 인터뷰 때 “나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누군가와 운동하는 것이 두려웠다”던. 운동과 단점을 드러낸다? 무슨 연결인가 갸우뚱했어요. 완벽함에 대한 두려움이었구나 싶네요.
NR 맞아요. 제 자신한테 관대하지 못했어요.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간다는 건 살이 쪄서 빼러 가거나 운동에 대한 도움을 받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언가 평가를 받는 것처럼 어느 정도 살을 빼고 가더라고요, 제가. 항상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잘하려고 가는 데가 아닌데도, 운동이 부족해서 가는 건데도 이미 잘해서 가려고 하더라고요.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 평가받는 것에 되게 신경을 많이 썼나 보다, 그때의 나는 그랬나 보다 싶어요. 이제는 관대해지려고 해요. 이것저것 취미 생활을 많이 경험해보는 것도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 여겨요.
GQ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먼저 말씀하세요. 눈이 동그래졌어요.
NR 그 뚜벅뚜벅이라는 말씀에 갑자기 생각나서. 저는 그때 유라를 보고 사실···, 포기할 수 있잖아요. 그 직업은 망했으니까, 위축되고 불안하고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뚝심 있게 그냥 그 길로 가잖아요.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버티면 된다. 버티면, 그게 내가 어떠한 눈높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티면 된다. 이 얘기를 제가 연습생 때 한 실장님이 그러셨어요.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때는 막 서바이벌이고, 회사에서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내보낸 친구들도 있고, 스스로 나간 친구도 많았어요.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결국에는 내가 뚝심 있게 내 길을 가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유라 캐릭터를 할 때 그 시절이 생각났어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도 맞고, 그냥 묵묵히 제 길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미션처럼 해나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이렇게 왔는데,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배웠을까? 뭘 얻어왔을까?’ 돌아보면 그 순간순간 얻어온 것들이 있더라고요. 항상 치열하게, 정신없이 ‘내가 뭘 했지?’ 싶어도 그 안에서 사람을 얻었다든지 무언가든 배워왔더라고요.
GQ 권나라의 내력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버티게 해요?
NR 예전에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좀 바뀌었어요. 그냥 저인 것 같아요. 그동안에는 저희 부모님의 딸로 바르게 살고 싶었고, 내 동생의 첫째 언니로 잘 살고 싶었고, 친구들한테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그런 시선들을 많이 보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저를 위해서 살아요. 아침에 눈떴을 때 나 오늘 뭐 먹을까? 오늘은 뭘 하면 좋을까? 이런 것들이 저를 위한 질문이고 이 질문에 행동하는 게 저를 위한 답이잖아요. 그래서 요즘 생각해보면 나를 위해서 그래도 잘 살고 있나 보다 싶어요.
GQ 곧 생일이죠? 나를 위한 선물로 무엇을 주겠어요?
NR 그날 촬영을 해요. 신동엽 선배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촬영이 있어요. 그동안 겁이 많고 ‘이런 얘기해도 되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예능을 하더라도 토크보다는 행동 위주의 관찰 예능을 했어요. 틀 안에 갇혀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혼자 토크 예능에 나가게 됐어요. 그것도 생일날. 가서 편하게 제 모습을 잘 보여드리고 오면 좋겠다,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고 싶어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실 오늘도 그런 느낌으로 왔거든요. 일한다는 생각 말고 놀다 오자. 저를 위한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