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걸, 트와이스 정연.
“ 운동을 하면서 나 자신을 이기는 게 재밌더라고요. (중략) 살아 있는 게 느껴졌어요. 온 신경이 생동하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봐야지, 이겨내야지. 장벽을 뚫으면서 느꼈어요. 다 이겨낼 수 있겠다고”
GQ 왜 복싱이었어요?
JY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 복싱을 시작하면 줄넘기만 시킨다기에 마음은 있는데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그러다 아는 분의 지인이 복싱을 하신다며 아는 복싱장에 연결해줘서 시작하게 됐어요. (공)승연 언니랑 같이 다니는데, 언니는 깍두기 느낌이에요. 왜냐고요? 딱 봐도 힘 없어 보이잖아요. (웃음)
GQ 왼손잡이라서 테니스에 유리하다고 했잖아요. 복싱에 유리한 정연의 면모도 발견했나요?
JY 힘이 세요. 펀치할 때 제 힘이 너무 세서, 관장님도 웬만한 잘하는 회원분만큼 잘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더 의욕이 생겨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GQ 힘이 세다는 걸 원래 알고 있었어요?
JY 알긴 알았어요. 어릴 때는 언니에게 늘 졌는데 어느 순간 언니랑 싸우면 이제 내가 힘으로 이길 수 있겠구나, 힘으로 제압할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그리고 저는 알고 있었어요. 제가 복싱을 좋아하게 되리란 걸.
GQ 복싱하면서 처음 경험한 거 있어요?
JY 있어요. 제가 원래 사람 눈을 오래 쳐다보지 못했는데, 오래 쳐다볼 수 있게 됐어요. 처음 복싱할 땐 아래만 봤거든요. “저를 보세요. 제 눈을 보세요.” 코치님의 코칭을 받고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게 됐어요. 상대가 어디로 펀치를 날릴지, 어디로 갈지 파악하려면 그 사람 눈을 계속 봐야 한다고. 그러면 읽힌다고. 그러면서 집중력이 생겼어요.
GQ 테니스, 스노보드, 서핑 등 여러 스포츠를 섭렵했잖아요.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서 복싱의 마력은 무엇인 것 같아요?
JY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이 주는 쾌감도 상당하고, 단순히 힘만 세서는 안 되고 유연함이 중요하더라고요.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스트레칭, 골반 돌리기를 많이 해요. 복싱을 하면서 뜻밖에 배우는 것이 많아요. 복싱에서 쓰는 암호 같은 단어들도 재미있고요.
GQ 당장이라도 복싱하고 싶은 눈빛인데요. 어떤 때 ‘복싱하고 싶다’ 느껴요?
JY 질리지 않으려고 일주일에 딱 한 번만 가요. 가서 두 시간, 쉬지 않고 하죠. 그렇게 땀 빼고 나면 너무 개운해요. 확실히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땀 빼고 샤워하는 순간이 너무 기분 좋아요.
GQ 데뷔 서바이벌 <식스틴>에서 정연이 처음 두각을 나타낸 순간이 화보 미션이었잖아요. 카메라 앞에서 돌연 바뀌던 정연의 눈빛을 잊지 못해요. 복싱 콘셉트 화보를 앞두고도 분명 전략이 있을 것 같았어요.
JY 박진영 PD님, 사장님이 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연아, 네 눈빛이 되게 묘해. 뭔가 멍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빠져드는 그런 눈빛이 있어.” 사실 저는 정말 모르겠거든요. 그냥 정말로 멍 때리는 거예요.(웃음) <식스틴>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연습생이었으니까요. 지금도 화보 찍을 때 느끼는 긴장은 그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화보는 익숙한 무대 메이크업과는 다르니까, 잘 나올까? 어떻게 하면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고민을 하면서 전날부터 오만 가지 생각을 해요. 이 화보를 앞두고도 생각이 정말 많았어요. (잽, 펀치 등의 포즈를 하며) 정말로 복싱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했는데, 지효의 골프 화보를 보고 굳이 잽을 날릴 필요까지는 없겠다 싶더라고요.(미소)
GQ 멤버들에게 고민 상담도 해요?
JY 저는 많이 해요. 선택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멤버들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해요. 귀가 얇은 편은 아니지만, 의견을 잘 수용해요. 그들이 저를 오래 봐왔고, 거짓말할 아이들이 아니니까.
GQ 그만큼 그들을 신뢰하니까.
JY 네.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해주니까, 저도 진심을 담아서 들으려고 해요.
GQ ‘스포츠 정신’처럼 트와이스 정신도 분명 존재할 것 같아요. 가훈처럼 미리 정해둔 게 아니라 해도요.
JY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말은 안 해도 서로가 담당하는 것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나연 언니는 멤버가 갈팡질팡할 때 현실적으로 잘 짚어주어서 깔끔하게 정리가 돼요. 그러면 지효는 “그렇게 할게” 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다른 멤버들은 조용히 잘 따르고요.
GQ 그렇다면 정연은 어떤 담당이에요?
JY 저는 좀 왔다 갔다 해요.(웃음) 여기서 누군가 이렇게 생각하면 “그래 그것도 맞지” 들어주고, 저기서 의견이 또 다르면 “그래, 그것도 맞지” 하고 얘기해줘요. 모두가 서운하지 않도록요.
GQ 모두를 품으려는 건 본래 기질이에요, 팀을 하면서 배운 거예요?
JY 팀을 하면서 배우게 됐어요. 저도 주관이 뚜렷한 편이고, 초반에는 멤버들을 많이 혼냈어요. 그러다 갈수록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에게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깊숙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GQ 얼마 전 콘텐츠에서 “10주년 기념 여행에서 멤버 각자 하루씩 여행 스케줄을 짜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잖아요. 정연이 가이드가 될 정연의 하루가 궁금해요.
JY 우리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요. 누구도 한눈팔지 못하도록.(웃음)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번은 고성에서 일출 서핑을 한 적이 있는데, 해 뜨기 전에 바다 깊숙이 헤엄쳐 가서 해 뜨는 걸 기다리는 거예요. 들려오는 건 물소리뿐인 고요한 바다에서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더라고요. 멤버들과 같이 일출 서핑을 해보고 싶어요. “조용히 느껴봐” 하고, 딴 짓 하면 혼낼 거예요.
GQ 정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이드라면 누가, 혹은 어떤 것이 떠올라요?
JY 너무 어려운데요. (한참 생각한다) 없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엄마가 제 인생의 가이드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엄마 선택이 다 옳고, 당연한 줄 알았어요. 엄마처럼 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딸에게 바라는 엄마의 생각과 제 생각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러면서 생각의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아요.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선택해서 내 선택을 믿고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 자신을 조금 더 믿으면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제가 활동을 중단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GQ <정글의 법칙>에서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하자마자 다리 부상을 당하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앉아서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라며 울던 얼굴이 생각나요. 정연은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그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사람이구나.
JY 그때는 신인의 패기와 아직 보여준 게 없어서 더 그랬겠지만, 제가 원래 그런 사람임은 맞는 것 같아요. 활동 중단하면서는 그런 생각마저 다 내려놓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을 이기는 게 재밌더라고요. 테니스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7일 내내 테니스장에 갔어요. 레슨이 없을 때도 혼자 치러 가고, 새로운 자세를 배우면 재미있어서 또 치고. “선생님 저 스트레스 받아요” 하면 “오세요!”라는 답장을 받자마자 달려가서 계속 쳤어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테니스를 처음 배우면 몸이 정말 아프거든요. 그래도 계속했어요. 그러면서 내 몸이 살아 있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온 신경이 생동하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봐야지, 이겨내야지. 장벽을 뚫으면서 느꼈어요. 다 이겨낼 수 있겠다고.
GQ 테니스로 생각을 비웠다면, 복싱하면서는 어때요?
JY 테니스 시작할 때보다 마음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복싱은 좀 더 즐기면서 하려고 해요. 그래서 오히려 복싱하러 많이 안 가려고 노력해요. 오래 하고 싶은데, 행여 지겨워질까 봐.
GQ 오래 좋아하려면 완급 조절을 해야 해요?
JY 저도 모르게 복싱을 하면서 미래를 생각하더라고요. 저도 이런 제가 싫은데요.(웃음) 재밌어도 매일 가면 질릴 게 뻔하니까, 꾸준히 하려고 해요.
GQ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JY 네.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GQ 왜요?
JY 제가 건강해지는 걸 체감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꾸준히 건강해지면서 마음도 맑아지고, 저 스스로를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어요. 천천히, 꾸준히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요.
GQ 요즘 무서운 거 있어요? 방송에서 지효와 밤 산책하며 “무서운 게 생기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고, 작년 <지큐> 인터뷰에서 청춘을 “무서운 게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죠. ‘무서움’에 대해 자주 말한다는 건, 그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일 테니까.
JY 종종 이런 생각을 해요. 초록 신호등 기다리는데 갑자기 차가 와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휴대 전화도 없는 채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지는 않을까?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릴 때는 마냥 걱정 없이 놀러 다녔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GQ 그런 불안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라고 하더라고요.
JY 저희 언니도 똑같아요. 얼마 전에 재난 가방을 샀다고 자랑하면서, 저보고 하나 쟁여두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내려놨어요.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대피소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요. 어떤 상황이 와도 강아지와 함께 있고 싶거든요. 요즘 무서운 건···, 강아지요. 너무 화를 내서 물릴까 봐 무서워요. 너무 예뻐해줘서 그런가? 하여튼 강아지가 저를 물까 봐 무서운 것 말고는, 사실 크게 무서운 건 없어요.
GQ 그러면 청춘이네요?
JY 아직은, 아직은 청춘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