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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 “내가 나답게 살면 충분히 멋진 거예요. 나답게. 유니크하게”

2024.05.22박나나, 신기호

승범 씨, 행복 안에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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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2년 만입니다.
SB 벌써 그렇게 됐어요?
GQ 좋은 기억에 매달아놓은 시간일수록 더 빠르게 흘러가더라고요.
SB 꼭 그래요. 2년 전 촬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요.
GQ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SB 한동안 작업에 몰두한 시간이 좀 있었어요.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요. <가족 계획>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준비부터 쑥 빠져들었어요. 오랜만에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도 흠뻑 경험했던 것 같아요. 정말 오랜만에. 새로웠고요.
GQ <무빙>에서의 캐릭터가 또렷해서일까요? ‘오랜만이었다’라는 소회가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해요.
SB 그렇죠. 물론 사이사이 작품을 하긴 했지만, 배우로 활동했던 시간을 나이대로 뚝뚝 끊어놓고 구분해보면 그렇더라고요. 20대 땐 작품 활동이 왕성했다면, 30대 땐 많이 느슨했죠. 그러니까 이젠 작품이 들어오면 걱정부터 하게 돼요. ‘내가 가졌던 감각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내가 이 일을 여전히 사랑할까?’ 같은. 이제는 이런 유의 자문들이 늘 따라붙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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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그럼 “오랜만에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를 흠뻑 경험했다”는 건, 그런 자문에 대한 긍정적인 확인이겠죠?
SB 네.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고, 배우들과 연기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더 기쁜 건 작업 중간쯤엔 이런 생각도 했다는 거예요. ‘이 직업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겠다.’
GQ 그럼 이전에는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SB 없었어요. 감히 해볼 수가 없었죠. 그래서 굉장히 기뻤어요. 이제야 배우나 직업을 향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게 된 것 같아서요. 물론 과거에는 주변에서 전해주던 ‘가능성’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 스스로 이런 ‘긍정적인 신호’를 직접 마주하게 된 건 처음이거든요.
GQ 2년 전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어요. “변해가고 있다. 다시 배우고, 다시 느끼고, 또 나아가는 과정이다”라고요. 승범 씨 말대로 비교적 “느슨했던 30대”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여전히 새로 배우고, 느끼고, 나아가고 있었으니, 그런 ‘긍정적인 신호’도 마주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SB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2년 전 들려드렸던 대답에 최근 한 가지가 더 늘었어요. ‘확장됐다’, ‘더 넓어진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이요.
GQ 좋은 소식이네요. 이를테면요?
SB 내가 굳이 추구하거나 선택하지 않아도 주변이, 환경이,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내가 이 문을 열지 않았는데 어느 사이에 보면 열려 있는 느낌인 거죠. 예전에는 깊게만, 깊게만 들어가려고 했어요. 또 되도록 많이 고민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자연스럽게’라는 말. 딱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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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천천히 걷기 시작했군요.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SB 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제가 철학을 탐구한다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또 오랜 고민 끝에 발견했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니까요.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속에서 만난 거니까, 이런 발견이 더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GQ 아내와 나엘리는 여전히 행복 가득한 그림을 그리고 있죠?
SB 아내는 최근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육아로 바빴거든요.(웃음) 어느덧 나엘리가 네 살이 다 돼가요. 덕분에 저희는 이제야 좀 시간이 나기 시작했죠.
GQ 가족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고 했어요. 그림처럼 승범 씨가 느끼는 ‘투명한 행복’에 대해 물으면 어떤 순간들이 떠오를까요?
SB 늘요. 늘 행복해요. 제가 지금 그 ‘존 zone’에 있나 봐요. 어떤 해피니스 존에요.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이건 제 아내와 아이의 영향이 크겠죠. 신의 영향도 있을 테고요. 이건 지금 갑자기 아하모먼트 Aha moment처럼 온 건데요, 돌이켜보면 저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어요. ‘행복하고 싶지 않아!’가 아니라, ‘난 행복해야 돼’의 태도가 아니었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행복을 좇지 않으니 행복이 오는 것 같아요.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게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GQ 행복을 기꺼이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지혜로운 마음일 수도 있죠.
SB 이런 걸 보면 애초에 행복이란 놈은 내가 좇거나 찾아갈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제가 막 ‘행복은 무엇인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 이런 고민 안 하거든요. 할 수도 없어요. 그저 매 순간을 살아갈 뿐이에요. 그러니까 오히려 행복한 것 같아요. 예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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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행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보통 어떤 시간인 것 같아요?
SB 저한테는 아이가 진짜 커요. 이 생명이 제 전부라고 말할 정도예요.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새롭고 소중하죠. 그러니까 아이들의 세상, 아이들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새로 보이는 게 너무 많아요. 매 순간이 깨달음이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엊그제 있었던 일이에요.
GQ 네네.
SB 나엘리가 이제 막 자전거를 타요. 그럼 부모는 본능적으로 보호 본능이 올라오죠. 찻길에 가까워지면 당연히 아이에게 “안 돼, 가지 마”, “조심해”, 하면서 막아서요. 그런데 엊그제 제가 뭘 발견했냐면요, 나엘리는 아빠한테 자기가 용감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걸 보여주기 전에 제가 스톱하니까 섭섭해서 우는 거죠. 그제야 나엘리의 마음이 읽혔어요. 그때 얼마나 미안하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죠. 나엘리는 할 수 있다는 걸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보여주려고 용감한 마음도 나름 으쌰! 하고 가졌을 텐데 아빠가 그걸 멈춘 거예요.
GQ 이건 정말이지 아빠이기 때문에 보이는 마음이네요.
SB 그러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새로 느끼고,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아이의 세상으로 바라보면 내 마음도 훨씬 건강하게, 투명하게 바라보게 돼요. 그러니까 아이가 엄청난 스승이에요. 아이를 통해 모든 걸 다시 느끼게 되는데 사실 그 마음, 그 순수함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잊고 지내던 걸 아이가 다시 꺼내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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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문득 이 일화가 떠오르네요. 승범 씨가 아내분에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아내가 들려준 그 이야기요. “우리 모두는 어려서 그림을 그렸어. 난 계속 그리고 있을 뿐이고, 당신은 멈췄을 뿐이야.” 세상에!
SB 맞아요. 한 대 떡! 맞은 느낌이었죠.
GQ 승범 씨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나 봅니다. 아까 이 질문을 빠뜨렸어요. <가족 계획>에 몰두했던 시간은 대체로 어땠는지 묻고 싶었거든요. ‘오랜만에 배우로서 느꼈다’는 그 에너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계속 궁금해서요.
SB 새로 느꼈어요. 한 가지 예로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대본 보기’에 썼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본을 계속 봤어요. 쉬는 날도, 현장에 가서도 계속 봤죠. 이전에는 직관과 본능에 좀 더 기울어져서 연기를 했거든요? 그게 저의 노하우라면 노하우고요.
GQ 달리 접근해보게 된 이유가 있었어요?
SB 아니요. 그냥 한번 해봤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대본을 볼 때마다 같은 대사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한 백 번쯤 해보니까 이게 보여요. 내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대본 안에 다 들어 있는거죠.
GQ 어쩌면 발견보다는 변화에 가까운 순간 같고요.
SB 맞아요. 그런데 제 본성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직관이나 본능이 전하는 힘을 믿어요. 다만 주변이 저를 더 나은 방향으로 확장시켜주고, 경험도 하게 해주고, 일깨워주고 하는 거죠. 저는 크게 변하진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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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그럼 결국 변하지 않는 게 좋은 걸까요, 변하는 게 좋은 걸까요?
SB 그건 정말 잘 모르겠어요. 음! 왜 주위를 보면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너무 부러워요. 안정감 있잖아요. 근데 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계속해서 내던지는 사람들, 변화를 무서워하지 않고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 살아 있는 것 같죠. 뜨겁고. 그래요. 생각해보면 정의 내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어, 비슷한 예로 제 아내가 얼마 전에 또 명언을 하나 했어요. 눈 내리는 날이었어요. 신나서 밖으로 나갔죠. 나가서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베로가 불교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면서 해줬어요. “지금 내리는 수많은 눈송이는 다 자기 자리를 찾아서 내리고 있는 중이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다 자기 자리가 있대.” 얘기를 듣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 후로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해요. ‘나도 내 몫, 내 삶을 살면 되는 거지.’
GQ 승범 씨답게.
SB 그렇죠. 나답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단어가 ‘유니크Unique’예요. 그 단어를 참 좋아해요. 우리 모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똑같을 수 없는 다양한 존재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나답게 살면 충분히 멋진 거예요. 나답게. 유니크하게. 변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결국 ‘나’인 거죠.
GQ 나부터 찾아야겠군요.
SB 그러면 어려워져요. 찾지 말고 그냥 보세요. 명상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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