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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워치스 앤 원더스 2024’

2024.06.06김성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본 경이로운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

지난 4월 스위스 제네바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해졌다. 바로 시계업계의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 박람회 ‘워치스 앤 원더스 2024가 막을 올렸기 때문. 워치 메이커들이 기량을 뽐내는 자리인 이번 박람회에는 무려 54개의 브랜드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제네바 시내는 워치 메이커의 신제품 플래그로 뒤덮였고 버스들은 축제 소식을 실어 날랐다. 워치 메이커들은 한껏 단장한 아이코닉한 부스에서 게스트를 맞이했다. 과연 이번엔 각각의 워치 메이커들이 어떤 시간을 달렸을지 찬찬히 살펴봤다. IWC는 행성을 닮은 낮과 밤 인디케이터와 회오리 바람을 추가해 마치 우주를 떠올리게 했고, 바쉐론 콘스탄틴은 대표 워치 오버시즈의 심장부에 투르비옹을 넣었다. 루나 로사 프라다 피렐리 팀과 협업한 파네라이는 낮과 밤 인디케이터를 갖춘 GMT 시계에 투르비옹을 올렸고, 빼놓으면 섭섭한 위블로, 기계 안의 행성이라는 이름처럼 시계 궤도 정중앙에 투르비옹을 배치한 로저드뷔, 구찌의 스켈레톤 투르비옹까지. 이렇듯 복잡한 기계식 시계의 대명사라 불리는 투르비옹 워치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자랑했다.

SPECIAL DIAL

때때로 워치 메이커들은 시계를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는 물성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담은 하나의 오브제로 구현한다. 샤넬의 쿠튀르 어클락 캡슐 컬렉션이 대표적인 예시.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의 아틀리에와 쿠튀르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무려 20여 개에 달하는 개성 강한 디자인으로 부스를 채웠다. 그중 가장 주목할 워치는 뮤지컬 클락 쿠튀르 워크숍. 뮤직박스 형태의 테이블 클락인데 아틀리에를 장식한 스노볼 같다. 5개의 마네킹이 회전목마처럼 움직이면 뮤지컬 사운드가 흐르고, 시간은 하부의 스케일링으로 확인 가능하다. 에르메스는 종종 다이얼에 그림을 담곤 하는데 이번에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다이스케 노무라가 디자인한 코러스 스텔라룸을 소환했다. 입체적인 해골 기수와 말은 옐로 골드를 일일이 조각한 후 색을 입혔고, 푸시 버튼을 누르면 황금빛 말이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VARIOUS COMPLICATION

유독 수많은 워치 메이커가 최첨단 기술력을 뽐낸 해인 듯싶다. 시계 기술의 정점이라 불리는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는데, 먼저 바쉐론 콘스탄틴은 63개의 기능이 담긴 직경 90.8밀리터의 큼직한 회중시계를 공개했다. 일, 월, 연도, 투르비옹은 기본이고 중국 농업 달력과 태양의 주기, 계절, 절기까지 계산해 알려주는 달력을 완성했다. 태양이 자전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예거 르쿨트르의 듀오미터 헬리오 투르비옹 퍼페추얼, 어둠이 찾아오면 신비로운 초록빛을 뽐내는 랑에 운트 죄네의 다토그래프 퍼페추얼 투르비옹 허니 골드 루맨 등 놀라운 볼거리가 많았지만 백미는 IWC의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 IWC의 대표 드레스 워치 포르투기저에 세큘러 퍼페추얼 캘린더를 얹어 문페이즈의 오차가 4500만 년 중 단 하루에 불과하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개념에 도전하는 시계의 탄생이다.

RENEWAL WAVE

제네바에는 익숙하지만 그래도 자주 보고 싶은 오랜 친구 같은 시계들도 있었다. 매년 메종의 전설적인 유산들을 한정판으로 새롭게 공개하는 까르띠에 프리베 컬렉션. 올해의 주인공은 거북이의 등껍질에서 영감 받은 우아한 똑뛰 워치였다. 두 개의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를 얹은 모델과 초창기 똑뛰와 거의 흡사한 시와 분만 표시한 간결한 디자인 모델로 이뤄졌다. 태그호이어는 1960년대 까레라 컬렉션 중 팬더로 불린 워치를 부활시켰다. 고전적인 모델을 리메이크한 시계답게 케이스의 직경은 39밀리미터로 요즘의 까레라 사이즈보단 조금 작게 나왔다. 그랜드 세이코는 1960~1970년대에 제작한 무브먼트를 계승한 새로운 무브먼트 9SA5를 탑재한 에볼루션 9 워치를 공개했고, 제니스는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워치 데피 스카이라인에 크로노그래프를 채워 유산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력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ICONIC BOOTH

드넓은 팔렉스포 안에는 각 워치 메이커의 정체성과 혁신을 담은 매혹적인 부스가 펼쳐졌다. 4,810미터의 압도적인 잠수가 가능한 다이버 워치를 선보인 몽블랑은 심해 다이빙에 경의를 표하며 거대한 아이스 큐브를 설치했다. 예거 르쿨트르는 브랜드의 시작인 발레드주로 돌아가 대장간이 떠오르는 불꽃을 재현했다. 영원함에 대한 헌사로 초월적인 시간을 표현한 IWC, 뉴욕의 예술가 에린 오키프의 손길로 꾸민 에르메스, 루나 로사 피렐리 팀의 보트를 전시해 다가오는 대회에 열망을 표현한 파네라이까지. 워치 메이커의 창의성이 담긴 부스는 워치스 앤 원더스 2024의 또 하나의 즐길 거리였다.

JEWELRY WATCH

워치 메이커이자 주얼리도 함께 제작하는 브랜드들은 시계와 주얼리를 하나의 오브제처럼 만들었다. 까르띠에의 애니멀 컬렉션에선 판다와 크로커다일, 타이거 등이 사이좋게 뛰어놀았고, 브레이슬릿 양끝에 거울과 다이얼이 위치한 리플렉션 드 까르띠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피아제와 샤넬 등도 반짝였지만 남성적인 워치 메이커의 주얼리 시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단단한 성을 연상시키는 위블로의 시계부터 남자들의 꿈이라 불리는 롤렉스의 코스모그래피 데이토나 역시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세팅했고, 쇼파드의 스포츠 워치 알파인 이글도 하얀 다이아몬드를 뒤덮었다.

PASTEL PALETTE

시계의 다이얼에도 트렌드가 존재한다. 그린과 블루, 그리고 작년에 주를 이뤘던 살몬 컬러를 넘어 2024년에는 어떤 컬러 팔레트가 워치를 물들였을까? 전반적으로 강하고 쨍한 컬러보다 다소 부드럽고 차분한 심미적인 컬러들이 돋보였다. 이를테면 라이트 블루, 민트, 핑크 같은 파스텔 톤이 그것. IWC는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하늘의 컬러를 배경 삼았다. 이른 오후의 하늘을 담은 청명한 호라이즌 블루, 저녁 무렵의 듄이 대표 컬러. 롤렉스 역시 호라이즌 블루와 비슷한 아이스 블루를 사용했고, 샤넬과 위블로 그리고 피아제는 과감한 핑크 컬러를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변주해 시계에 입혔다. 예거 르쿨트르와 파텍 필립은 파스텔 톤의 살몬 컬러를 사용해 지난해의 분위기를 이어갔고, 바쉐론 콘스탄틴은 패트리모니 워치에 복고적인 은은한 컬러를 칠해 트렌드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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