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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소송이 전하는 안부

2024.06.13신기호

기후 소송이 고발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국제사회와 과학계가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이미 공언했는데, 정작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은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글 / 김현종(한국일보 기자)

2024년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앳된 얼굴들이 모였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 수십 명이 수업을 빼먹고 법원을 찾았다. 이날은 국내 ‘기후위기 헌법소송’의 첫 공개 변론일. 기후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2020년에 공소장을 제출한 이후 4년 만에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서로 다른 4건의 헌법소원을 병합한 이 사건의 원고에는 2022년 10월생 두 살 배기 등 아이들이 이름을 올렸다. 공소 취지는 ‘국가의 기후 대응이 미온적이어서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 한국 정치권이 내건 목표치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대에 전가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다수인 기성세대가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기본권의 보루인 사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 구조를 갖췄다. 이날 아이들은 ‘멸종저항권’을 요구하며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살고 싶다”고 외쳤다.

이 소송은 상당한 잠재력을 가졌다. 만일 아이들이 승소한다면, 국가는 헌재 명령에 따라 기후 대응 속도를 상향 조정하게 될 수 있다. 2050년 국가온실가스 배출목표(NDC)가 더 엄격해질 것이고, 사회 전반에 변화가 강제될 수 있다. 단순히 ‘착한 아이들의 정의로운 구호 외치기’ 수준을 넘어, 산업 곳곳을 뒤흔들 파급력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 재판이 아시아 최초 기후 헌법소원 사례인 만큼, 파장이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아이들은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국 정치가 미래 세대의 권익을 얼마나 침해하고 있는가,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적정 대응 수준은 얼마큼인가. 법원은 정부와 아이들 주장을 모두 들은 다음 양측 논지의 타당성을 판단할 것이다. 답답한 기후 대응 상황을 뒤집을 승부처인 만큼, 청소년 원고들의 주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소송은 지난 30년간 국제사회가 축적한 합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간 조금씩 발전해온 국제법과 기후 과학에 기반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공소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부터가 ‘헌재가 기후위기를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법적 문제로 인정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헌재는 북극곰이 불쌍하다는 단순한 논리로 재판을 열어주지 않는다. 호주제·임신중지권·대통령 탄핵처럼, 기후위기가 지금 여기의 구체적 현실이라는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법적 토대를 만든 것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UNFCCC는 1992년 체결된 국제 협정으로, 이후 협약 당사국들이 매년 모여 기후위기 대응 관련 세부 협의(당사국총회·COP)를 이어가게 됐다. 교토의정서(1995년), 칸쿤협정(2010년), 파리협정(2015년) 등도 COP의 결과물이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개별 국가에, 구체적인 수치에 입각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18세기 중반 인류가 석탄으로 증기기관차를 작동시킨 이래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기후 대응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 역시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해 탄소 감축의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기후 과학도 정립됐다. 유엔 기후변화에관한국가간협의체(IPCC)가 출범하면서다. UNFCCC의 과학자문기구인 IPCC는 8년마다 전 세계 기후 석학 수백 명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에는 IPCC 당사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한 진술만 실린다. 산유국, 개발도상국, 선진국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현대 기후 과학의 총집합체이자 정설인 셈이다. 이 같은 조치는 화석연료 산업계 등이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협의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더욱 필요했다.

그 결과 우리는 인류가 기후 붕괴를 향한 경로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2018년 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는 인류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만 올라가도 극단적 재난이 빈발해, 최소 1.5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전세계 모든 기후 논의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국제협정과 과학은 거의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 대부분 국가가 IPCC 권고를 이행할 수준의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IPCC는 현재 각국 정책 수준을 종합하면, 2030~2035년 사이 평균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돌파하고, 2100년에는 3.2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엘니뇨 영향으로) 지난 1년(2023년 2월~2024년 1월)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 높아 1.5도를 이미 돌파했다.

한국 정책도 느슨하기는 마찬가지다.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 탄소중립을 법제화했으나, 실제 정책 목표치는 기온 상승폭을 3~4도 높이는 수준에 그친다. 대응 속도가 너무 느린 탓이다. 한 예로 한국이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탈원전 정책이 없더라도) 해상풍력발전소를 매년 2GW 이상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국내 모든 풍력 설비 용량보다 많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과속을 해야 겨우 목표를 맞출 수 있지만, 우리는 출발선조차 제대로 넘지 못했다.

기후 소송이 고발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국제사회와 과학계가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이미 공언했는데, 정작 정부 정책은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극단적인 폭염에 가뭄이 겹치고, 그 피해를 수습하기도 전에 산불과 홍수 피해를 겪는 일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식량이 메마르고, 기아와 분쟁이 빈발하며, 생존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같은 기본권이 영구적으로 박탈된다. 그러니 탄소중립기본법은 위헌이며, 사법부가 법적 명령을 통해서라도 현재 정치 권력을 장악한 다수(기성세대)의 횡포를 막아달라.” 사실 이 요구는 이미 해외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네덜란드의 기후 시민단체 ‘우르헨다’의 소송 사례가 대표적이다. 단체는 2012년 법원에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25퍼센트를 감축하도록 명령할 것”을 청구했다. 2018년 헤이그 고등법원은 요구를 그대로 확정했다. 이 판례로 ’탄소중립 목표치가 선출 권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결정돼야만 한다’는 생각이 뒤집혔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자국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고, 독일 정부는 탄소중립 시점을 2045년으로 5년 앞당겼다. 정부가 법원의 결정 취지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법을 개정한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건의 중대성과 국제사회 판례를 고려할 때 헌재도 헌법 불합치 결정 정도는 내리지 않겠냐는 예측이 나온다. 따라서 한국 국회도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독일처럼 더 강력한 목표를 즉각 내놓을 수도, (2019년 임신중지권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이미 보여줬듯) 차일피일 시간만 축낼 수도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남은 시간이 정말 없다는 점이다. 산업 붕괴에 대한 우려, 국가 간 책임 분배 문제 등 온갖 반론을 감안하더라도, IPCC가 제시한 근거들을 읽다 보면 이 모든 논란이 너무나도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당장 5월만 해도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기록적인 홍수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캐나다에서는 또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수천 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동남아시아는 5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실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IPCC 전문가들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안전밸트를 매라”고 말한다.

가능한 자원과 외교력을 총동원해도 막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기후 변화다. IPCC 저자인 경제학자 디팍 다스굽타 인도 뉴델리 에너지·자원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영국 <가디언>에 “세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지만, 가만히 있는다면 결국 우리 모두가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80퍼센트쯤은 패배한 듯 보이는 세상에서 한가하게 흘려보낼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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