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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가 욕먹지 않을 유일한 방법

2024.06.29신기호

대한축구협회의 ‘빅픽처’는 무엇인가? (있긴 한 건가?) 돛을 펴는 것보다 나침반을 여는 일이 먼저다.

글 / 홍재민(축구 전문 기자)

욕받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욕받이 노릇을 한다. 프로 구단을 없애려고 했던 정치인도, 술에 취한 코미디언도 협회를 욕하면 박수를 받는다. 조직이나 개인은 일정 이상의 학습 능력을 지니기 마련인데, 2024년 협회는 그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 협회의 본격적 ‘삽질’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시작됐다. 당시 현장에서 ‘2701호 사건’이 발생했다. 손흥민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물리치료팀이 국가대표팀의 공식 업무 영역을 침범하면서 생긴 갈등이었다. 선수들의 폭주에 밀려 의무팀장은 현장 업무에서 배제되는 굴욕을 맛봤다. 큰 충격을 받은 지원 스태프들은 귀국하기가 무섭게 대표팀 업무에서 손을 뗐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선수들에게 하인 취급을 받았다는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다. 협회는 사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소위 ‘뭉갰다’.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위력으로 짓누른 일부 선수들을 꾸짖지도, 협회 직원들이 느낀 모욕감을 보듬지도 않았다. 1년 뒤, 다시 모인 카타르에는 선수들과 ‘2701호 팀’의 대부분은 있었지만, 협회 공식 지원 스태프는 상당수가 물갈이된 상태였다. 스타들의 역린이 성공한 셈이다. ‘2701호 사건’은 선수단 내부에 불화의 불씨로 남았다. 그리고 그게 번져 대표팀 전체를 홀라당 태워 먹은 사건이 바로 AFC 아시안컵 내분과 요르단전 패배였다. 전대미문의 ‘2701호 사건’에서 협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시안컵 이후 협회의 헛발질은 날마다 최악을 경신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막대한 위약금을 발생시키며 해임됐다. 차기 감독을 결정해야 할 전력강화위원회는 싹 물갈이됐다. 아무도 위원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정해성 대회분과위원장이 총대를 멨다. 정 위원장은 3월 태국 2연전 전에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공표했다. 사실상 국내 지도자를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 국내 감독 선임의 명분은 뚜렷했다. 더는 스타 파워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러나 여론이 거세게 반격했다. 팬들은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에 K리그 감독을 빼가는 문제를 지적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3월 임시 체제, 5월 중 정식 감독 선임’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임시로 A대표팀을 맡을 인물이 4월 파리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앞둔 황선홍 U23 대표팀 감독이었다. 올림픽 예선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황선홍 감독은 A대표팀까지 떠맡았다. 한 달 뒤, 한국은 40년 만에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복심에 있던 황선홍 카드가 찢어지자 협회는 외국인 감독 영입으로 급선회했다. 물밑에서 진행해야 할 영입 작업은 일부 임원들의 가벼운 입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퍼졌다. 1순위였던 제시 마치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을 캐나다에 빼앗기자 협회는 ‘5월 정식 선임’ 약속을 깨고 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로 6월 A매치 두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지를 협회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협회는 어떤 감독을 원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적당한 외국인’ 이다. 한국 축구가 추구하는 철학을 공유할 적임자가 필요한데, 지금 협회에는 그 철학이 없다. 따라서 ‘이런 감독’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월드컵 10회 연속 출전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코리안 스타일’이 뭔지 아는 사람이 협회에는 없다. 협회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적당한 몸값의 외국인 지도자를 찾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축구협회는 2005년에 설정한 대원칙 ‘JFA 2005년 선언’이 있다. 2050년까지 FIFA 월드컵을 유치하고, 그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게 일본 축구의 궁극적 목표다. 장단기 세부 목표가 구체적으로 설정돼 있고, 협회는 해당 시점에서 실행 내용과 달성률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회장이 교체돼도 대원칙은 유지된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2013년 발표한 ‘잉글랜드 DNA’를 각급 대표팀의 운영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 축구에는 구체적 비전이나 목표가 없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구체적 성적 목표가 없었다. ‘잘하자’가 전부다. 2013년 출범한 정몽규 집행부의 ‘한국 축구 10대 과제’가 어떻게 추진됐고 무슨 실적과 숙제를 남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4년 협회가 발표한 새로운 가치 체계에서도 그럴듯한 단어들의 나열 속에서 구체적 방법론을 찾기가 어렵다. 유소년의 재능을 확보하겠다며 시작했던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사실상 폐기 상태에 다다랐다. A대표팀이 어떤 축구를 하고 싶은지가 없기 때문에 어떤 유형의 지도자를 데려올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 적당한 인물로 귀결된다.

협회 업무의 병목 현상은 새 감독 찾기 작업의 발목을 잡는다. 2021년 정몽규 회장은 전력강화위원회의 기능을 감독 선임에서 의견 제시로 축소했다. 현재 위원회는 감독 후보를 검토할 뿐, 직접 협상하거나 선임하지 못한다. 위원회가 후보 쪽과 소통하면서 평가하고, 협회가 그 결과를 받아 실제 협상에 나선다. 그리고 이사회가 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을 영입할 때처럼 정 회장이 최종 결정권을 쥔 셈이다. 정 회장 체제에서 진행된 협회 무능화는 인선 실패에 의해 가속화된다. 2023년 초, 협회는 승부조작 등 100인 기습 사면을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를 만회하려는 인선이 상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정 회장은 김정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이 자리에 영입했다. 협회 내부 전언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의 눈치를 보는 데만 급급한 관료주의적 업무 처리로 직원들의 신망을 잃었다. 임원회의에서 정 회장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던 인사들은 차례차례 밀려났다. 일부 무책임한 임원들은 내부 정보를 쉼 없이 누설한다. 소위 콩가루 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증상이 지금 협회에서 엿보인다. 협회 주위에서 힘없이 총대를 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에 대한 동정론이 나올 정도다.

감독 선임의 최대 걸림돌은 역시 예산 부족이다. 알다시피 지금 대표팀은 소집할 때마다 다른 숙소와 훈련장을 구해 일정을 소화한다. 천안축구종합센터가 완공되기 전에 대표팀이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나와버린 탓이다. 협회는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통장을 탈탈 턴 것도 모자라 올 1월 은행권에서 3백억원을 빌렸다. 협회 예산이 천안 이전에 매몰되는 바람에 여자 축구, 풀뿌리 축구, 지도자 강습 등 다양한 사업이 ‘올스톱’ 상태다. 각급 대표팀 지원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최근 연령대 월드컵에 출전했던 지도자는 훈련장 및 숙소, 동선 등 현지 적응에 필요한 각종 업무를 직접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협회 지원이 사라진 탓이다.

5월 말, 정 회장의 HDC현대산업개발이 협회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감독 교체 비용을 해결하려면 정 회장이 본인 회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업계 관측이 적중한 셈이다. 회장 부임 12년 만에 이루어진 결단이라는 점에서 고평가받기 어렵지만, 이번 계약이 협회의 감독 영입 작업에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동의 자원이 축구 판에 들어오면서 전 세계 축구 지도자와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았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당신이 원하는 외국인 감독은 오지 않는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차기 감독은 막중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현재 대표팀은 전례 없는 인기몰이 중이다. 그러나 대회에 나갈 때마다 팀 안에서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내부 결속이 흔들린다. 자신들을 돌봐주는 지원 스태프들을 하인 취급하는 선수가 나오고,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선후배가 몸싸움을 벌인다. 2023년 3월 김민재의 실언도 결국 내부 갈등이 원인이었다. 내부 갈등이 이어지자 손흥민의 주장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어느 팀이라도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최우선적으로 ‘원팀’이 돼야 한다. 차기 감독은 이런 부분까지 헤아려서 선수들 간 갈등 요소를 없애야 한다. 외국인 감독에게는 벅찰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걸 해낼 능력자를 데려와야 한다. 그게 협회가 더는 욕먹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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