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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말하는, 숙취와 해장 대한 모든 것

2024.08.14전희란

약사, 내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숙취’에 대해 묻고, 술 좋아하는 해외의 푸드 에디터들에게 ‘해장’에 대해 물었다.

물을 주세요

해장의 본질 중 하나는 바로 수분 보충이다. “숙취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아세트알데하이드(알코올이 몸속에서 대사되면서 생성되는 대사산물)’라는 성분인데, 그 밖에도 술을 만들 때 들어가는 여러 합성 첨가물 또한 숙취를 유발하기도 하고, 동시에 발암물질이기도 해요. 이 물질을 최대한 빨리 내보내고 정상적인 몸 상태를 만들 때 충분한 수분 섭취를 통한 ‘청소’가 필수죠. 속이 안 좋을 땐 억지로 해장하려 하지 말고, 물만 충분히 마셔도 괜찮아요.” 구대회 내과 전문의는 조언한다. “뭐라도 먹어야 풀려”라는 말에 꾸역꾸역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소리.

주종 vs 도수

단순 비교한다면 막걸리, 와인 같은 발효주가 소주나 위스키 등 증류주보다 숙취가 심하다. “발효주는 발효 과정에서 숙취에 영향을 미치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비롯한 여러 불순물이 생성돼요. 이 덕분에 다양하고 깊은 맛(크으!)이 나기도 하지만, 숙취는 더 심해지죠.” 구대회 내과 전문의는 말한다. “숙취를 예방하는 안주요? 알코올 분해를 위해서는 비타민B 군이 풍부한 안주가 좋겠죠.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갑각류, 견과류···. 어라? 이미 술안주로 많이 드시는 거죠? 네, 그러니까 맛있는 안주와 함께 천천히, 적당히가 진리입니다.”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

독주로 멀쩡히 잘 달리다가 마지막 맥주 한 잔에 전사하는 주당이 많다. 알코올 도수에도 순서가 있는 걸까? 구대회 내과 전문의는 답한다. “연구가 실제로 진행된 적이 있어요. 영국, 독일 연구팀이 2019년에 결과를 미국 임상 영양학 저널에 게재했죠. 결론은, ‘술의 순서와 숙취는 상관없다’. 한데 제 의견으론, 그 논문은 완전히 잘못 설계되었어요. 당시 실험한 두 가지 술이 하필 화이트 와인, 맥주였던 거죠. 이왕이면 도수 차이가 확실한 위스키, 맥주로 하면 좋지 않았을지?” 세계 각국에는 술의 순서와 취기, 숙취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속담이 많다. “답은 수분과 아세트알데하이드에 있는 것 같아요. 맥주를 먼저 마시면, 다량의 수분과 소량의 알코올이 같이 들어가죠. 그러니 처음부터 수분 공급을 적당히 하면서 알코올이 흡수되고, 동시에 소변이 자주 마려워 아세트알데하이드도 족족 처리 가능한 거예요. 도수가 낮으니까요. 위스키부터 마시면, 수분 부족 현상은 바로 시작되죠. 아세트알데하이드도 허용치 이상으로 생겨 얼굴이 붉고 어지러워져요. 그 상태에서 맥주가 들어가면 독주를 해독하느라 한계치 까지 소화, 해독 중인 몸은 소량의 알코올에도 지속적인 숙취를 느끼게 되는 것. 고로 장유유서, 주종유서.”

기분이 주량

어느 날은 더 취하고, 어느 날은 덜 취하는 것 같은 건 단순히 기분 탓일까? “속상한 일이 있어 빈속에 빠르게 마신 날은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빠르게, 많이 우리 몸에 흡수되고 축적되어 숙취가 심해지고, 기분 좋은 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천천히 마시면 반대로 숙취가 덜하죠. 너무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마시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숙취가 심해져요. 역시 술은 기분 좋을 때, 컨디션 좋을 때 마시는 게 맞는 걸지도?” 구대회 내과 전문의의 깜찍한 조언.

죽지도 않고 돌아온 숙취

사랑의 후유증이 다르듯, 숙취 지속 시간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술이 깬 줄 알았는데 오후에 별안간 숙취가 다시 몰려올 때 있지 않나? 도대체 왜? “오전에 씻고 출근해서 겨우 각성 상태를 유지하다가 코티졸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줄어들면 유지하던 끈을 놓고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그러다 또 저녁이 되어 바이오리듬도 극상의 상태로 올라가면서 다시 술 한잔하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김태호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의 의견.

낮술

낮술은 아름답다! 취기가 쉬이 오르기 때문일까? 김태호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는 응수한다. “낮술이라고 더 취하는 건 아닐 거예요. 낮이라고 술의 도수가 더 독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더 취하는 느낌이죠? 거기엔 여러 심리적 요인이 작용할 수 있어요. 환한 대낮에는 내 달아오른 얼굴이 너무 잘 보여서 신경을 많이 쓰게 될뿐더러, 상대의 취한 모습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니까요. 우리는 모두 젠틀맨인데 대낮에 단체로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당연히 다른 멀쩡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한 느낌이 들지 않겠어요?”

술 주고 약 주고

“술 덜 취하는 약, 술 깨는 약은 없어요. 숙취를 조금 줄일 수 있는 정도죠. 술이 깨려면 간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수밖에 없어요.” 증상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다를 수는 있다. “가령 머리가 아프거나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의 숙취는 음식으로도 조금 나아질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술 마신 날 라면 먹고 자는 것보다는 블루베리 한 줌 먹고 자는 게 부기나 두통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더군요. 기운 없고 춥고 식은땀이 나면 저혈당일 가능성이 높으니 꿀물이나 과일주스를 한잔 마시세요. 근육 경련이나 피부가 바싹 마를 땐 수분, 미네랄 섭취를 위한 스포츠 음료를!”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 정재훈은 조언했다.

숙취와 뇌

숙취가 심한 날, 술병만 봐도 울렁거리는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진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를 ‘조건 반사’로 설명한다. “고통스러운 숙취 증상을 학습한 뒤, 그 이후에 직접 마시지 않더라도 시각적, 후각적 자극 없이도 만취 및 숙취 증상을 느끼는 거죠.” 친한 친구, 혹은 불편한 상대와 마실 때의 취기 차이? “편안한 상황에서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여 다음 날 숙취 상태가 완화될 수 있다고 해요. 스트레스 많고 경쟁적인 상황에서 마시면 숙취를 더 느끼기도 하죠.” 술은 마실수록 늘까? “자주 마실수록 체내 알코올 처리 능력이 증가해요. 간이 알코올 분해 효소를 더 많이 생산, 더 빨리 대사하게 되고, 이전보다 덜 취하게 되죠. 또 술 마셨을 때 신체, 정신적 패턴 변화에도 익숙해져서 취한 상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죠.”

의사와 약사의 해장

“의사들도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해장을 합니다. 하나 특별한 게 있다면, 포도당 수액이죠. 달고 맛있어서? 농담이고요, 혈관으로 먹어서 숙취 해소, 수분 공급 효과가 빠르니까요.” 구대회 내과 전문의의 말. 다음은 정재훈 약사. “숙취로 인한 몸 상태와 당기는 요리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게 정설이에요. 과음하면 다음 날 평소 참던 것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약해져서, 평소 좋아하던 요리가 당기죠. 제 경우는 생크림케이크, 에클레어, 마카롱이 그래요. 해장을 위해선 든든하고 포만감이 오래갈 수 있도록 고지방, 고단백질로 먹는 것도 괜찮아요.”

차별 대우

아세트알데하이드는 간과 근육을 통해 분해되므로 남성과 여성, 근육질과 지방질, 간이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숙취도, 질환이 생기는 정도도 다르다. “국가에서 하는 건강 검진 있잖아요? 항목 중 ‘음주력’에 대한 질문에 위험 음주 기준에서 남녀 기준이 완전히 달라요. 위험음주 기준치가 남자가 여자의 2배로 설정되어 있어요. 남녀가 같은 양의 술을 매일 즐겁게 마시면 여자만 중병에 걸려 먼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김태호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는 조언한다. 성별만으로도 큰 차이가 나니, 인종, 체격, 나이 등을 고려하면 숙취, 질환이 생길 확률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진리.

해장술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숙취는 다음 술로 흘려보내라? “약사로서 가장 권하고 싶지 않은 게 해장술이에요. 혹자는 에탄올보다 술 속의 불순물인 메탄올이 해독이 느리다는 걸 이용해 메탄올의 독성을 줄이고, 그로 인해 숙취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측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매일 아침 술로 해장하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운 방식도 없죠. 음식이야 뭘 먹든 해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엄청난 해를 주기는 어려워요. 고작 해야 칼로리 과잉으로 체중이 늘어난다는 점? 그나저나 와인(또는 다른 술) 3잔을 마신 다음 24시간 동안 6300칼로리를 추가 섭취하게 된다는 영국의 설문조사 결과가 있어요.” 정재훈 약사의 가혹한 조언.

푸드 저널리스트들에게 물은 각국 해장의 정석

일본

“일본에서는 조개 된장국이 인기가 높아요. 아미노산의 일종인 ‘오르니틴’이 알코올 분해를 돕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강황제를 섭취한 뒤 직접 만든 죽에 우메보시를 넣어 먹어요. 숙취가 심할 땐 죽의 국물만 우메보시와 함께 먹고요. 우메보시에 들어 있는 구연산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거든요. 술 마시기 전에는 주로 강황제 혹은 시지미(Shijimi 바지락) 약을 복용하고요. 시지미 필은 인터넷이나 일반 약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숙취 예방법?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은 날은 술을 조금씩 부어달라고 부탁하고, 틈틈이 물을 마셔요. 마지막 코스까지 술 맛과 향을 온전히 느끼고 싶거든요.” 쿄코 나카야마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의 궁극적인 숙취 해소법은 커피예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해장 음식은 피자죠. 탄수화물은 언제나 절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피자는 늘 주문해 먹어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다 요리 잘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단골 피자집요? 따로 정해둔 단골집은 없고 두루두루 즐기는 편이에요. 숙취를 예방하기 위한 저만의 방법은 별 다를 게 없어요. 술 마시는 양과 스피드를 조절하고, 가급적 여러 주종을 섞어 마시지 않으려고 하죠. 술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시고요!” 발렌티나 디린딘

호주

“가장 호주 다운 해장법은 칠리 마요를 곁들인 에그롤과 베이컨, 그리고 플랫 화이트 커피예요. 베지테리언이라면 할루미(구워 먹는 치즈), 에그롤. 많은 호주인이 느즈막한 아침에 맥주를 즐기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얌차 Yumcha 와 함께 커다란 셀러리 스틱을 꽂은 매운 블러디 메리를 사랑하는데, 딤섬의 전분과 기름진 맛은 두통을 완화시키고 보드카 칵테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시면 숙취가 사라져요. 직접 해장 요리할 땐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드는데, 약간의 우유와 오렌지 주스를 첨가하는 게 저만의 비법. 해장 단골집은 브리즈번의 ‘스탠리 Stanley’. 숙취를 줄이는 비결은 매 2~3잔마다 물 한 잔, 술 믹스는 금물. 술 마시기 전 미리 배를 채우는 것, 술 마신 뒤엔 구운 치즈를 추천해요.” 켈리 암스트롱

푸에르토리코

“제 고향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다음 날의 숙취를 미리 예방해요. 술 마신 날은 고기로 속을 채운 튀김, 버거킹 드라이브 스루, 세 가지 다른 다진 고기에 소스, 감자튀김을 얹은 트리플레타 등을 먹죠. 제가 좋아하는 해장법은 어떤 토핑이든 올라간 커다란 피자, 커피, 차가운 사이다, 그리고 애드빌 알약 두 알이에요. 이 조합이면 금세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죠. 그리고 술 마시는 동안 계속 물을 마시고, 주종을 섞지 않는 것이 원칙. 종종 이 수칙을 잊고 마시다가 숙취에 시달리는 밤에는 새벽 2시에 버거킹에서 크고 뚱뚱한 버거를 주문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레그너 라모스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도움말
    구대회(오케이 내과심장혈관흉부외과 대표 원장), 김태호(오케이 내과심장혈관흉부외과 대표 원장), 오진승(DF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 원장), 정재훈(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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