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공유 “그래,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흐르기만 하면 된다”

2024.08.19박나나, 김은희

공지철은 공유를 구원한다.

브라운 스웨이드 재킷, 데님 카우보이 셔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에이지드 실버 프레임 튀르쿠아즈 로데오 볼로 타이 4백30만원대, 로즈 골드 케이스와 캐멀 카프 레더 스트랩의 루이 비통 에스칼 워치 4천2백2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엄지손가락을 좀 보고 싶었는데 여기선 보이지 않네요.
GY 제 엄지손가락? 왜요?(엄지를 내밀어 보여준다.)
GQ 요즘은 낚시를 안 다니셨나 봐요.
GY 낚시를 못 갔어요. 아, 낚시 가면 타서? 하하하하.
GQ 낚시 장갑 끼면 엄지만 나와서 탄다길래, 그걸로 가늠해보고 싶었어요.
GY 맞아요. 지금은 영광의 흔적이 없습니다.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배가 잘 못 나가기도 했고, <트렁크> 찍으면서 못 했죠. 한 번 갔구나. 3월에 한 번 갔어요.
GQ 작년 가을에 74센티미터짜리 참돔 잡은 기록은 깨졌나요?
GY 그 기록을 깨는 ‘8자’를 잡고 싶어서 간 게 3월이었는데 못 잡았죠. 바로 옆 조사가 잡았어요. 90센티미터. 옆에서 봤죠. 아, 내 건데···. 내가 못 잡았다.

브라운 스웨이드 재킷, 데님 카우보이 셔츠, 샴브레이 데님 부츠컷 팬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에이지드 골드 버클 포인트의 LV 로데오 리버서블 벨트 1백20만원대, 로즈 골드 케이스와 캐멀 카프 레더 스트랩의 루이 비통 에스칼 워치 4천2백2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아쉬웠겠어요.
GY 아이. 낚시할 날은 많고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니까. 제가 지금 1미터짜리를 잡았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기록은 향후 몇 년간 깨기 힘들단 말이죠. 그런데 아직 여지가 많잖아요, 저는. 급하게 올라가면 재미없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GQ 자신의 기록적 그 참돔은 놔주셨죠. “다음 작품 잘되게 해줘” 하면서.
GY 그게 <트렁크>죠, 시기상.
GQ 하반기 공개 예정이니까 참돔이 소원을 들어줄지는 나중에 알겠네요.
GY 모르지. 모르는 거죠. 말은 그렇게 했는데 맹신하지도 않고요. 그냥 기분이 좋잖아요. 다시 잡히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라, 하는. 큰 애들은 나이가 든 게 느껴져요. 비늘도 군데군데 벗겨져 있고, 눈을 보고 있으면 좀 그래요 마음이. 그 넓고 깊은 바다를 수십 년간 얼마나 돌아다녔겠어요. 나보다 생의 경험이 더 많을 수도 있죠. 그리고 <트렁크> 하기로 정하기 전이었을 거예요. 작품이 정해져 있어서 했던 얘기는 아니었는데 타이밍상 <트렁크>가 됐죠.

워크웨어 다미에 롱 파카, 크림 플로럴 모티프 울 블랭킷 베스트, 화이트 셔츠, 브라운 다미에 워크웨어 데님 팬츠, 메탈 토캡 디테일 LV 로데오 몽크 스트랩 슈즈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에이지드 골드 버클 포인트 LV 로데오 리버서블 벨트 1백20만원대, 에이지드 실버 프레임 튀르쿠아즈 로데오 볼로 타이 4백30만원대, 모두 루이 비통.

GQ 모를 일이지만, 그럼 신작을 준비하면서 보낸 지난여름부터 올겨울까지의 시간은 뜨거웠나요, 차가웠나요?
GY 제가 그 무렵에 <핑계고>에서 요즘 연기하는 게 재밌다고 얘기했거든요. 딱 그 즈음의 제 온도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뜨겁지도 그렇게 차갑지도 않은. 캐릭터와 상관없이 그 작품을 찍을 때 제 스스로 안정적이고 여유로웠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나 오랜만의 작품에 임하는 제 마음가짐이 뜨겁다기보다는 그냥 딱 내가 좋아하는 어떤 적정 온도에서 일하는 느낌이었어서, 쉽게 표현하자면 편안하게 흘렀던 것 같은 느낌.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GQ 추상적이긴 하지만 온도가 적정했다고 하는 표현이 좋네요.
GY 왜냐하면 저는 막 그렇게 뜨거운 사람도 그렇게 차가운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저는 너무 뜨거운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 스스로 컨트롤되는 적정 밸런스를 늘 유지하고픈 사람인 것 같거든요, 살아보니까.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별로 흔들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같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적절한 타협은 필요하되 그 안에서, 그냥 내 세계에서 남들한테 피해 안 주고 안 받고 굳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열려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얘기처럼 느껴질 것도 같지만, 적정 수위가 있는 것 같아요. 수치로 표현은 못 해도 ‘요때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요때 내가 마음이 편하구나’ 하는 정도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안에서 머물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그때가 딱 적절한 순간에 머무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예를 들면 촬영이 물리적인 시간상 여유 있었다 이런 얘기는 아니거든요.
GQ 마음이 편안했다는 거죠.
GY 네, 그냥 내 마음가짐 자체가.

카우보이 안장 모티프의 양각 패턴 키폴 반둘리에 50 7백90만원, 루이 비통.

GQ 지금의 공유를 객관적으로 보면 어떤가요? 그런데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 이런 환경에서 편안하다, 이런 구체성이 이미 느껴지네요.
GY 저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예전에 비해 조금 더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긴 해요. 저는 세상에 백 퍼센트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저를 알아가는 과정에 놓여 있긴 하나, 예전에 비해서는 내게 더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GQ 자연스러운 건가요, 아니면 특정 계기가 있었어요? 나를 깊게 생각해보는 일.
GY 예를 들면 행복하지 않았다는 얘기라기보다는 행복한 걸 몰랐던 것 같아요. 못 느꼈어요, 행복한 걸. 행복한 걸 느낄 새가 없었어요.

더블브레스트 자카드 울 수트, 클래식 화이트 셔츠, 블랙 LV 라이더 부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의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에이지드 실버 프레임 튀르쿠아즈 로데오 볼로 타이 4백30만원대, 모두 루이 비통.

GQ 예를 들면 스물아홉의 <커피프린스 1호점>과 서른아홉의 <도깨비> 때?
GY 네. 소위 남들이 봤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시기에 정작 본인은 그 행복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내가 왜 그랬을까’, 스스로도 많이 생각해보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나름의 추정과 분석을 다 갖다 붙여도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자면 방금 제가 말한 것과 연결이 돼요. 그러니까 내가 내 마음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눈치 본 것이 더 많았을 수도 있고, 그리고 보통 우리 신에서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절대적으로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더라고요. 제 스스로의 인정과 성취감도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작품 끝나고 나면 분명히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정리할 시간이. 그런데 그 시간을 미처 다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대중 앞에 노출되면 그걸 계속 미루게 돼요. 굳이 내 속내를 다 드러낼 필요는 없어서. 그리고 그들이 지금 꽤 고무돼 있는데 그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내 딴에는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나 봐요. 그게 반복되다가 그때는 몰랐는데 번아웃이 온 거예요.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도깨비>를 끝냈을 때도 전 번아웃이 왔던 거예요. 정서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이제는 좀 공유를 던지고, 혹은 그 캐릭터를 던지고 나오고 싶은데 어쨌든 작품이 잘되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일이 오니까. 너무너무 행복한 일인데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미에 버팔로 시크 칼라리스 재킷, 레더 프린지 반다나 가격 미정, 모두 루이 비통.

GQ 4년 전 <지큐> 인터뷰 때 <도깨비> 후 “유약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기에 캐릭터가 배우에게 묻은 흔적이려나 싶었는데, 그 흔적만은 아닌 것 같네요.
GY 저도 되게 좋아하는 표현인데, 저는 연기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캐릭터가 배우에게 묻고 내가 또 캐릭터한테 묻혀요. 서로 묻고 묻히는. 그러니까 공유가 하는 역할과 또 다른 배우가 하는 역할은 다를 거예요. 다른 걸 묻히니까. 그때 “유약하다”는 말과 동시에 많이 썼던 말이 “처연함”이에요. 김신을 향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처연함이었거든요. 김신으로부터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캐릭터가 저한테 묻었을 거잖아요. 분명히 영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도깨비>는 조금 더했던 것 같아요.
GQ 얼마나 자주 생각하고 많이 말했으면 이리 청산유수로 흘러나올까 싶은데.
GY 그런데 이 얘기를 이렇게 할 자리는 없어요. 가끔 지인 앞에서 술 먹고 하는 소리지 사실은.
GQ 딜레마라고 해야 하나. <커피프린스 1호점>과 <도깨비>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어요. 너무너무 잘된 작품이지만, 이후에도 공유는 새로운 캐릭터에 묻고 묻혀왔는데 다시 최한결과 김신을 끄집어내는 게 오히려 실례이려나 싶어서.
GY 아이, 괜찮아요.

엠브로이드 플로럴 모티프 메리노 울 카디건 8백30만원대, 클래식 화이트 셔츠, 블랙 다미에 워크웨어 데님 팬츠, 1.0 밀리어네어 틴티드 선글라스, 메탈 토캡 디테일 LV 로데오 몽크 스트랩 슈즈 가격 미정, 핑크 아가테 스피디 P9 반둘리에 40 1천4백5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괜찮아요? 번아웃은 지나왔나요?
GY 결국은 무조건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일단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지금 조금 건강하지 못한가?’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면 다행인 거예요. 제가 저 스스로 알려고 노력한 것도 내 상태를 객관화시키는 게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끊임없이 물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육체적으로 지치면 정서적으로도 지쳐요. 그러면 지금 육체적으로 지친 걸 빨리 회복시키자, 구체적으로는 내 몸을 운동하는 데 계속 갖다 놓거나 집에서 반신욕 하면서 창으로 초록초록한 걸 계속 보거나,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발버둥쳤던 것 같아요. 하나둘씩 그냥 해보는 거지. 낚시도 도움이 됐고요.
GQ 낚시가 그쯤 시작한 취미군요.
GY 낚시도 좋지만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는 것도 좋고.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끝이 없는 대자연 앞에 서 있으면 나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 내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아등바등 머리 싸매고 이렇게 고민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싶어요. 더불어 집중해서 계속 (낚시 릴을) 돌리고 똑딱거리는 단순 동작을 하다 뭐 하나 걸리면 거기서 오는 또 굉장하고 단순한 희열이 있어요. 원초적인 손의 감. 이런 게 사람을 심플하게, 그 순간은 나를 심플하게 만들어주니까.

클래식 화이트 셔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모두 루이 비통.

GQ 객관적인 관찰을 물은 건 공유 씨가 인상 깊게 읽었다던, 여든다섯 정신과 의사 이근후 선생의 인터뷰 질문 중 빌려왔어요. “행복은 신기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 덮고 살아야”라는 제목의 인터뷰였죠. 어떤 대목이 좋았어요?
GY 어어, 맞아요. 그 말이 좋았어요. 행복은 신기루일 뿐이다. 이 말을 주변 사람들한테 엄청 많이 했어요. 실제 제가 그렇거든요. 저는 “아 행복해, 너무 좋아” 이런 얘기를 빈번하게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커피 마시며 “아 너무 행복해, 너무 맛있어” 하는 마인드가 스스로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 되거든요. 그렇게 잘 못 뱉어요. “행복하다”, “너무 기뻐”, “너무 아름답지 않아?” 이런 걸 잘 못 해요.
GQ 느끼긴 하지만 표현을 못 한다는 거예요?
GY 표현도 별로 없고, 그냥 좀 무심해요. 그러니까, 좋은 쪽에는 그렇게 예민하지는 않고 안 좋은 쪽에는 굉장히 예민해요. 원래가 좀 부정적인 사람이기는 한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은 아닌데, 그냥···, 그냥···, ‘그게 뭐?’ 이런. 옆에 해피 바이러스인 사람들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별로 그렇게 영향을 안 받더라고요. 그냥 무덤덤해요.

스터드 엠브로이드 스웨이드 워크웨어 재킷과 팬츠, 클래식 화이트 셔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모두 루이 비통.

GQ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근후 선생은 그런 소소한 행복을 느끼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GY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하지.(웃음) 그런데 이런 거지. 사람들은 행복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읽혔어요. 그러니까 “행복은 신기루일 뿐이다”라는 표현이 좋았어요. 제 생각에는 행복에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죠. 행복해야 돼, 행복해야 돼, 하는. 꼭 행복해야 되나? 왜 다 행복하려고 하지? 그냥 무탈한 게 행복한 걸 수도 있잖아요. 내 삶에 큰일이 없는 것도 행복한 걸 수 있잖아요. 행복에 대한 어떤 강박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아요. 별로 뭐…, 그러니까 그냥 좀 받아들이는 편이거든요? 그런가 보지, 뭐.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게 더 많아요.
GQ 저는 그 인터뷰에서 무엇을 얻었냐면, 읽어드릴게요. “(나이가 들수록) 성장기에 학습한 교양과 습관은 세포 조각 떨어져 나가듯 휘발돼요. 오롯이 남는 건 부모에게 받은 DNA와 기질,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뿐이죠.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공유 씨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자신에 대해 분명해지는 것 같다고 했죠. 결국 이 이야기와 닿는 듯해요. 조각들이 휘발되고 남는 핵심, 나를 지지해주는 코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GY 저 아직 그렇게 저를 다 알지는 못해요. 또 변할 수 있죠. 예전에 비해서 지금 안정권인 거지, 예를 들면 나이 50에 갑자기 질풍노도를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방심하고 있으면 안 되더라고요. 미완이어서. 결국 이게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고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그 코어를 얘기해보자면···, 누구도 몰라도 상관없지만, 그냥 정말 나만 생각해서 얘기하자면, 별로 티가 많이 안 나도 굉장히 조금씩 조금씩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거든요.

스터드 엠브로이드 스웨이드 워크웨어 재킷, 클래식 화이트 셔츠 가격 미정, 일체형 스틸 스트랩 땅부르 워치 3천4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티 나요.
GY 티 나요?
GQ 아주 세속적인 예시지만, 공유라는 배우는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이 첫 번째건 아니건 상관 안 하는 것처럼 보여요.
GY 상관없죠. 그 자체가 저한테는 무관한 일이에요.
GQ 그러니까. 그게 기준이 아닌 거죠.
GY 타이틀 롤이냐 아니냐 상관없이, 사람들한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한 스펙의 작품이냐 아니냐 상관없이, 내가 보고 내가 영감을 얻고 내가 재밌으면 그냥 하는 거. 네. 그게 예전보다는 조금 더 고민 없이 하게 돼요. 예전에는 ‘이거 좀 조심스러운데.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조금은 고민했다면 지금은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재밌으면 돼요. 자칫 오만 방자하게 들릴까 싶지만, ‘이렇게 하면 대중이 좋아하겠지’라고 내가 계산하는 것도 오만일 수 있잖아요. 그러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진심으로 재밌을 수 있는 거, 내가 재밌게 놀 수 있는 거에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것 같긴 하거든요. 최근에 지인들과 술 한잔하면서 많이 한 얘기가, 어디론가 우리는 계속 흐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이상한 데로 흘러가면 어떡하지?’ 노파심이 많았다면, 예전에 비해서 좀 덜 걱정하는 것 같아요. 그래,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흐르기만 하면 된다. 고여 있으면 물이 썩으니까. 강이든 바다든 어디론가 흘러간다면 이렇게 부유하고 있는 걸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그게 어디든. 다만 흘러가는 게 중요하다.

워크웨어 다미에 롱 파카, 크림 플로럴 모티프 울 블랭킷 베스트, 화이트 셔츠, 브라운 다미에 워크웨어 데님 팬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에이지드 실버 프레임 튀르쿠아즈 로데오 볼로 타이 4백30만원대, 네이비 레더 스트랩 루이 비통 에스칼 워치 4천2백2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지금 공유의 얼굴을 묘사해본다면요?
GY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면서) 좀 재수없긴 한데 이게 손이 큰 건지 얼굴이 작은 건지 모르겠지만, 작은데 뭔가 공격적이에요. 예전보다 울퉁불퉁하고 들어가고 튀어나온 감도가 달라요. 지글지글하고. 얼굴 근육을 다년간 많이 써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더 뼈 혹은 근육이···, 좋게 말하면 입체감인데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게 많아진 느낌이에요. 아이홀도 깊어지고···, 퀭해진다는 소리죠.(웃음) 울퉁불퉁 더 다양해진 느낌? 옛날보다.
GQ 마음에 들어요?
GY 아니 뭐, 별로 생각 안 해요.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뭐 그렇게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런 거 없어요.

블랙 레더 프린지 재킷, 카우보이 셔츠, 브라운 다미에 워크웨어 데님 팬츠, LV 랜치 튀르쿠아즈 벨트, 블랙 LV 라이더 부츠 가격 미정, 에이지드 실버 프레임 튀르쿠아즈 로데오 볼로 타이 4백30만원대, 모두 루이 비통.

GQ 나이 듦이 얼굴에 잘 묻어가면 좋겠다던 지난 말이 생각나서요.
GY 이런 화보 작업하면서 모니터를 보잖아요. 그때 매번 느껴요. 어? 작년보다 늙었네?(웃음) 작품 찍고 나면 후시 녹음하면서 제 얼굴을 1년 뒤에 본단 말이에요. 1년 전 현장에서는 ‘아후, 나 늙었네’ 하는데 1년 후에 보면 또 ‘저 때는 젊었네?’ 반복이에요. 쳇바퀴 돌 듯.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지금이 제일 젊다. 지금이 제일 젊고,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말고.
GQ 결국은 흘러가야 하는 거예요.
GY 네. 그렇게 되더라고요. 살다 보니까 현재가 제일 중요해요. 아까 한 얘기에서 난 그때 현재를 즐기지 못한 걸 수도 있거든요. 난 늘 습관처럼 다음을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자, 난 이제 내 숙제를 잘 해냈고 내 소임을 다 했어. 그러니까 다음을 생각해야 해. 그리고 다음을 막 생각한 거죠. 내 번아웃은 생각 안 하고. 내가 받은 상처나 내 상태를 돌보지 않고. 사람들이 다 같이 기뻐할 때 그 행복감을 같이 느끼지 못하고. 나를 좀 내려놓고 같이 막 웃고 떠들고 “감사합니다. 신납니다. 여러분 너무 고마워요!” 즐겼으면 차라리 나았는데 습관처럼 다음을 생각한 거예요. 나는 늘, 매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설상가상 엎친 데 덮쳐서 다 빵 하고 이렇게···.
GQ 나가떨어진 느낌?
GY 나가떨어진 느낌. <도깨비> 끝나고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계속 품으려고 용을 쓰다가 뻥 터졌구나. 흘려보내야 하는데.

자카드 레드 체크 코트, 클래식 셔츠, 테일러드 카우보이 부츠컷 팬츠, 옐로 LV 라이더 부츠 가격 미정, 골드 볼트 밴드 링 7백5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그때의 공유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정말 좀 편안해 보여요.
GY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럼 편안하다는 거예요. <도깨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트렁크> 할 때도 사실은 유약한 인물이긴 했어요, 또다시.
GQ 그래요? 무엇에 끌려 이번에는 <트렁크>를 택했을지 안 그래도 궁금했어요.
GY 내가 <트렁크>에서 만든 한정원이라는 역할은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늘 악몽에 시달려서 괴로워하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또 유약하다고 할 수 있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인데, 그 한정원이를 구원해주고 싶었어요. 큰 연민이 느껴졌어요. 캐릭터에 연민을 느끼면 그 캐릭터한테 끌리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정원이를 구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내가 정원에 묻어서 정원이 되어야 하지만 저를 묻혀서 정원이를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
GQ 연민에 끌렸군요.
GY 네. 정원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정원이를 자기 성에서 빠져나오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더블브레스트 자카드 울 재킷, 클래식 화이트 셔츠 가격 미정, 야자나무 소재 카우보이 실루엣 라쏘 햇 1백90만원대, 질감을 살린 다이얼이 돋보이는 타임온리 루이 비통 에스칼 워치 5천6백70만원, 모두 루이 비통.

GQ 그 연민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GY 내가, 내가 겪고 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오지랖이 생긴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정원이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정원이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물론 작가님이 내용은 이미 써놨고 엔딩은 정해져 있지만, 지금의 나의 이런 생각들이 정원이한테 가닿았을 때 정원이가 구원되는 데 일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초반에 감독님, 작가님, 현진 씨와도 그런 대화를 했어요.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주는 얘기일 수 있지 않을까?
GQ 원작의 김려령 작가가 이 작품을 쓰고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인생을 긴 여정이라고 봤을 때 우리는 트렁크를 잘 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트렁크는 사실 버려도 되는 것이지 않느냐고. 백팩 하나만 메도 되지 않느냐고.
GY 멋있다. 전 지금의 제 페이스가 괜찮거든요. 한때는 뜨거워야 하나? 내가 너무 미지근한가? 남들이 뜨거운 걸 원하니까 나도 좀 뜨거워져야 하나?, 이런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조금 편안해진 것 같거든요. 그런 고민을 안 하는 걸 보면. 아이 그냥, 이게 좋은데 어떡해. 사람들에게 일일이 “저 이런 사람이에요”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또 가끔 죄송스러울 만큼 제가 가진 것보다 많이 가진 사람으로 봐주는 게 고맙기도 부담스럽기도 해서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맞아요. 맞는데, 저는 지금 내 페이스가 괜찮고 지금 내 온도가 괜찮아서 소신껏 가면 될 것 같아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포토그래퍼
박종하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헤어
임철우 at 아우라뷰티
메이크업
강윤진
세트
다락 (Da;rak)
어시스턴트
한예린, 전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