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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에 요합니다

2024.09.03신기호

당신이 축구협회에 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들’. 축구협회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요구해야 하는 것들’.

글 / 홍재민(축구 전문 기자)

2024년 상반기 내내 축구가 한국을 뒤흔들었다. 5개월의 카오스는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으로 일단락되었다. 홍명보 전 울산HD 감독이다. ‘아마노홍’이든 ‘피노키홍’이든 홍명보호는 이미 출항했다. 정몽규 회장 역시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자서전을 발간하고, 지안니 인판티노 회장을 만나는 등 4선 도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축구의 핸들을 쥔 드라이버는 협회다. 축구 팬들이 설치한 과속 방지턱도 소용없다. 당신의 분노는 그렇게 폐기 처분되는 걸까? 방법은 없을까? 협회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실질적 방법 말이다.

우선 정치권에 기대하는 부분이다. 국민동의청원(협회 감사 및 해체!)은 5만명 기준을 충족했다. ‘눈치 백단’ 정치권이 잽싸게 민심을 물었다. 문화체육부가 축구협회에 대한 실지 감사를 예고했다. 유인촌 장관은 대한체육회를 싹 뜯어 고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주무 부처가 볼 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회장 연임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서 뭉친 세력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유정 의원(더불어민주당)도 홍 감독 선임 과정을 “독선적, 시대착오적 행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런 정치적 해법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보호막이다. 문체부 감사 예고에 맞서 협회는 FIFA 징계 가능성을 언급했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제 축구 생태계는 FIFA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작동한다. 거대하고 유일무이한 패밀리 안에서 FIFA는 회원(각국축구협회)을 철저히 보호한다. 자국 축구협회의 독립성을 해하는 국가에 대해서 FIFA는 주관 대회의 출전 자격을 제한한다. 2008년 이라크는 정부가 협회를 해체했다가 대회 출전권이 박탈됐다. 2018년 정부가 축구협회장과 사무총장을 갈아치웠던 시에라리온도 FIFA의 징계를 받았다. 한 국가의 축구협회를 건드리는 행위는 곧 FIFA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된다.

좋은 소식도 있다. 회장직 강제 교체가 아니더라도 정부는 얼마든지 협회를 압박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문체부가 직접 협회를 감사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이 결정적 문제로 드러날 가능성은 낮다. 감독 채용 자체가 공개 모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사 포인트는 재정 분야에 있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조직은 없다. 축구협회는 국고 보조(국민체육진흥기금, 복표 수입 등)를 받는 조직이다. 각종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현물로 제공받는 부분도 많다. 재정과 재고는 흠결 없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2017년 협회는 법인카드 남용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공적 기관에서 부정부패 이슈는 대외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치명타다. IOC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회장과 FIFA의 셉 블라터 전 회장은 장기간에 걸쳐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란히 불명예 퇴진했는데, 트리거가 전부 돈 문제였다.

두 번째 방법은 거버넌스를 개선하라고 계속 요구하기다. 소셜 미디어든 댓글이든 전화든 상관없다. 당신이 깨끗한 협회 운영을 원한다면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라고 계속 요구해야 한다. 지난 1년 반의 시간은 협회 거버넌스의 취약성을 증명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의 영입은 결국 정 회장의 선택이었다. 자서전에서 정 회장은 공정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실상은 다르다. 당시 전력강화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모 지도자는 “회의에 가기 전까지 클린스만인 줄 몰랐다”라고 밝혔다. 정황상 정 회장과 뮐러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이 최종 답안을 확정했고, 전력강화위원들은 거수기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의 내부 고발은 지금도 협회가 클린스만 사례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협회 내 최종 의사결정 기구는 미덥지 못하다. 정몽규 회장은 매주 화요일에만 협회 업무를 본다. 부회장단은 김정배 상근 부회장과 나머지 비상근 부회장 6인으로 구성된다. 아쉽게도 여기서부터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회장 눈치만 보는 인물부터 전지적 ‘축구인’ 시점에 갇힌 인물, 본인 명성에 흠집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인물, 협회를 비판한 기자에게 직접 조롱 이메일을 보내는 인물까지 정말 각양각색이다.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고? 내부 기밀을 지속적으로 누설하는 임원 덕분이다. 임원회의에 배석했던 한 취재원은 “회의 분위기가 딱딱했다. 안건을 쭉 읽고 다들 회장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생각을 말하기 어렵겠구나 싶었다”라고 말한다. 협회가 바뀌려면 의사결정 기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외부인 감시를 공식화하는 것도 거버넌스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축구협회는 모든 회의 자료를 공개한다. 공식 홈페이지만 검색해도 언제 어떤 임원들이 참석해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가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회의 자료만 봐도 다양한 분야에서 협회의 방향성을 캐치할 수 있다. 잉글랜드축구협회 내에 설치된 평의회에는 팬 대표자가 포함된다. 전통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거버넌스 강화 노력의 결과다. 어느 조직이든 의사결정 과정에 외부인을 참여시키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특히 축구협회는 개인이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식회사가 아니다. 그러나 협회만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기관도 없다. 의사결정 과정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라고 당신이 요구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 회장이 자서전에서 언급한 협회 내 ‘레드팀’이 더 적극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레드팀’이란 조직 내에서 시스템 취약점을 식별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법이다.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현재 협회의 사내 분위기는 딴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레드팀 역할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떠났거나 입을 닫는다. 모든 사안을 자기중심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블루팀만 남은 셈이다. 정 회장은 축구 스타들과의 대화를 즐긴다고 한다. 잘못된 행동은 아니지만 리더의 의견 청취는 균형이 중요하다. 평생 스타로만 살아온 축구인은 대개 한국 축구와 경기인 생태계를 동일시한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우선 경기인들의 생계가 보장돼야 한다는 구시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부류가 제시하는 의견은 축구 팬들의 눈높이와 다를 확률이 높다. 승부 조작, 뇌물 수수 등을 저지른 100인을 사면하겠다는 시도도 결국 경기인들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

언론과 여론이 계속 휘슬을 불어야 할 또 다른 분야는 협회의 홍보 기능이다. 현재 협회의 홍보 효율은 땅바닥 수준이다. 합리적 메시지가 엉뚱한 타이밍에 의해 낭비되거나 민심을 다스려야 할 해명문이 화를 키우는 역효과를 부른다. 정 회장은 대중 연설을 기피한다. 그래서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는 역할은 늘 축구인의 몫이다. 문제는 총대를 메는 인물들의 언변이 대중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잔뜩 긴장한 메신저의 모습은 마치 협회의 무능을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대중에게 각인된다. 이런 현상은 공교롭게 문체부 차관 출신이 상근 부회장으로 영입된 시점과 맞물린다. 대관 업무와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인선이었을 텐데 현실에서는 정반대 결과만 나온다.

조직생태학은 조직군의 진화를 설명한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흥했던 전서구 납품 산업은 이제 사라졌다. 비디오 배달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OTT 기업으로 진화했다. 인류가 그런 것처럼 조직도 각종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다는 사례들이다. 대한축구협회라는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담배 연기 자욱했던 좁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은 가고 매년 1천억원이 넘는 국내 최대 종목 단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에 비해 축구협회의 자전은 너무 느리다. 지금 있는 자리가 너무 아늑하고 편안한 탓이다. 협회가 발전하려면 골디락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그걸 채찍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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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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