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맛있는.
PLUS + MINUS
“이게 칵테일이라고? 냉면 육수 아니야?” 작년,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3년 연속 1위였던 홍콩 바 ‘COA’에서 소고기 육수로 만든 칵테일을 마셨을 때, 처음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Fabulous!”를 외치는 양옆의 해외 에디터를 보곤 다시 한 모금. 내 입맛이 잘못됐나? 아니다. 잘못된 건 입맛이 아닌 편견이었다. 올해 홍콩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TATE Dining Room’에서 코스 첫머리에 소바를 내면서 육수 대신 ‘The Savory Project’의 감칠맛 나는 메즈칼 칵테일을 부어줬다. 오, 신세계! “냉면 육수 비율 40, 진 40, 코키 드라이 버스 10의 비율로 칵테일을 만들어 국물로 활용한다면 해장과 반주가 동시에 해결되겠죠? 면수와 스모키 위스키 탈리스커, 탄산수, 매콤한 후추를 넣은 칵테일을 곁들이면 색다른 조합이 되겠고요.” 월드 클래스 출신 바텐더 이민규의 이상하고 맛있는 코멘트.
EXTRA ORDINARY
초고추장도 어떤 문화권에서는 ‘괴식’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왕 괴식이라면, 이런 조합은 어떨까. 물회의 빨간 육수를 칵테일로 교묘하게 바꿔보는 것. “프렌치 클로버는 보드카, 라즈베리, 라임, 파인애플, 샹보르 블랙 라즈베리 리큐어를 섞은 칵테일이에요. 본래 물회에 들어가는 양념장이 고추장 베이스에 식초, 당(매실청)의 조합으로 새콤달콤함이 주된 맛이잖아요. 프렌치 클로버 칵테일 역시 새콤달콤이 주이니까, 고추장을 섞어 비율을 맞추면 기묘하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 될 것 같아요.” 바텐더의 조언에 따라 섞어보았더니, 이게 그리 나쁘지 않다. 횟집에서 고추장, 쌈장, 간장, 고추냉이를 섞는 자기만의 레시피를 가진 우리는 어쩌면 예전부터 ‘K-괴식 바텐더’였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회에 케첩, 타바스코를 찍어 먹는 것을 즐기는 문화는 서양에 이미 존재한다.
DIVE INTO
“저는 세계의 어느 바를 가든 블러디 메리부터 시켜요.” 일본 바 업계의 백종원, 바텐더 신고 고칸은 인터뷰 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블러디 메리처럼 무궁무진한 외형, 내형의 가능성을 지닌 칵테일이 또 있을지. 그래서 블러디 메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쌈 칵테일을 창조했다. 요리라고 부르든, 칵테일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 “블러디 메리에 올리브 절임, 양파 절임, 피클 등을 매치하는 것처럼 칵테일에 절임류의 나물을 매치하는 것도 재미있겠는데요? 식감이 단단한 채소류에 스파이시 마가리타를 부으면 채소는 칵테일의 일부분이자 안주류로도 활약할 수 있고요.” 굴에 곁들이는 달걀노른자 칵테일 ‘프레리 오이스터’를 한국식 쌈을 위한 칵테일로 변형시킨다면 우스터 소스 대신 된장 또는 쌈장을, 타바스코 대신 초장 또는 고추장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겠다. 없는 것은 오로지, 불가능뿐.
UNTITLED
끓이면서 먹는 요리도 있으니까, 녹이면서 먹는 요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구는 충분히 뜨거우니까. 얼음 틀에 샤부샤부 재료들을 넣고, 샤부샤부 육수 베이스 마티니를 채워 48시간 동안 천천히 얼린 일명 꽁꽁 얼린 샤부샤부 칵테일. “깔끔한 진 또는 보드카 토닉, 위스키 소다, 진 피즈, 진 리키, 모스코 뮬 모두 가능할 것 같아요. 결국 다양한 자극적인 맛이 어우러진 한식에 희석식 소주가 잘 어울리듯, 맛이 다채롭고 화려한 음식에는 간결하고 깔끔한 결의 칵테일이 좋을 것 같아요.” 바텐더는 귀띔했다. 소스가 평범하면 마무리가 재미없으니까, 이마저도 칵테일로 만들어볼까? “땅콩 버터를 워싱해 만든 럼 베이스의 올드 패션드, 혹은 더 간단하게 간장을 조금 첨가한 보드카, 라임, 진저비어의 모스코 뮬 조합을 응축된 형태로 내도 되죠.” 음식 갖고 치는 장난이 이렇게 재미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