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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과서 도입, 종이의 다음 맛은?

2024.09.17김은희

2025년부터 초중고 교과서가 종이책 대신 태블릿 PC로 변화한다. 돋아날 ‘이전 페이지’와 ‘다음 페이지’ 버튼 사이, 무엇을 봐야 할까?

글 / 서효인(시인, 안온북스 대표)

옛날 옛적 나의 수학 교과서와 참고서에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었다. 앞쪽은 나달나달하고 시커먼 손때가 끼는데, 뒤쪽으로 단원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이게 새책인지 헌책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는 것이다. 교과서는 마치 무지개 스펙트럼을 찍어놓은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집합은 시커멓고 미적분은 새하얗다. 한 학기, 한 학년이 다 가도록 그 상태라면 교과서의 주인은 이른바 ‘수포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소문난 수포자, 즉 수학을 포기한 놈이었다.

수포자라는 명칭은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쓰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성적은 좋은데 수학을 약간 못한다거나, 원래부터 공부를 못하는데 수학은 더욱 못하는 학생은 수포자가 아니다. 정확한 수포자는 다른 과목은 잘하는데 수학을 원체 못해 수학 점수가 전체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올리지 않는 학생을 말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특히 국어는 썩 잘했다. 내 국어 교과서는 수학 교과서와는 다른 외관을 보였는데, 중간중간 시와 소설 지문에 밑줄이 많이 쳐져 있었다.

수학과는 반대로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점수가 나오는 편이라, 수업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제대로 된 공부 대신 마음에 드는 특정 지문을 반복적으로 읽기를 택했다. 예컨대 백석이나 김수영의 시를 읽고, 현진건이나 염상섭의 소설을 파고드는 것이다. 교과서는 자연스레 군데군데만 헤졌다. 국어 교과서를 아무렇게나 펼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시와 소설이 좋았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직업(출판인, 작가)은 대략 결정 나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수학을 더 잘했다면 직업 선택의 폭이 넓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아마 몇 년 후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 교과서 이음새가 헤지거나, 공부를 하도 안 해 교과서 종이에 손을 베이는 학생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 새 학기부터 영어, 수학, 정보 등의 교과목에 대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8년까지 국어, 사회, 과학, 역사 등의 교과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1대1 맞춤 학습을 강화하고 공간적, 경제적 제한으로 인한 교육 격차를 해소한다는 게 이번 사업의 골자이자 이유가 되겠다.

어떤 정책이든 알맞은 취지와 장밋빛 전망은 있어 왔다. 숱하게 바뀌어 온 입시 제도와 교육 과정도 모두 그때그때의 필요로 진행된 것이다. 정부와 교육부의 이번 방침도 입안자의 선의를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교육 관료들과 정책 관련자들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망치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의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의 순응에도 불구하고(순응하지 않으면 어쩔 텐가!)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그다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서울 대치동, 일타 강사, 선행학습, 무력한 공교육···. 이 단어들은 이제까지 그 무엇을 바꾸어도 결국 바뀌지 않은 우리 교육의 현실을 상징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1, 고1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키우는 딸이 해당 교육 과정을 밟고 있다. 요즘 애들, 아니 요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녀석도 종이보다는 디지털 기계에 더 익숙한 듯하다. 학습지는 테블릿 PC로 이미 대체되었고, 책도 책장에 꽂힌 책보다 ‘밀리의 서재’ 같은 플랫폼으로 쉽게 접한다.

그러하니 종이 교과서에서 디지털 교과서로 바뀌는 데 생래적인 거부감은 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십 대인 필자는 아직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읽기 편한데, 지금 이십 대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효율적이고 눈에 잘 들어온다는 독자군이 실제로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십 대보다 어린 십 대, 그다음 세대는 당연히 종이라는 매체가 오히려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는 테블릿 PC로 책을 읽다, 그 책이 마음에 들면 종이책으로 사달라고 필히 조른다. 다 읽은 책을 또 사? 물으면 응, 진짜 좋아서, 갖고 싶어, 대답한다. 진짜 좋아한다는데, 다른 것도 아닌 책인데, 그걸 안 사줄 수 없어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버리고 만다. 바로 다음 날 도착한 책을 아이는 괜히 만지작거린다. 표지를 쓰다듬기도 하고, 책 중간을 펼쳐서 얼굴을 묻기도 한다. 책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다 주말에는 같이 서점에 가기도 한다. 진짜 좋아하고, 그래서 갖고 놀 만한 책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라고. 종이를 손으로 만지고, 두께를 실제로 느껴보며, 그 단단함을 알아보라고.

물론 교과서는 소설책이나 학습 만화와는 달라서, 곧이곧대로 좋아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교과서는 다른 의미의 수난을 당했다. 책 돌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의 교과서는 표지 가운데가 하얗게 탈색되곤 했다. 검정 매직으로 제목의 글자를 낙서처럼 변형시키고는 했다. 어떤 교과서는 감쪽같이 없어져서 쉬는 시간마다 옆 반 친구에게 교과서 빌리느라 바쁘기도 했다. 졸업하는 날이면 책거리라 하여 책을 찢거나 태우기도 했다. 반대로 어떤 학생은 교과서를 애지중지하기도 했다. 수학이든 영어든 무슨 과목이든 상관없이 타고난 듯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친구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을 뿐”이라고 말할 때 얼마나 얄미웠던가!

이런 추억은 지난 세대의 푸념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공부하는 세대는 확실히 예전보다 디지털에 익숙하고 유연하다. 종이 교과서든 디지털 교과서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잘하고 잘 못하는 학생은 잘 못할 것이다. 열심히 하는 학생은 성과가 날 것이고, 노력이 없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강남 대치동에 살면 대입에 유리할 것이고, 강북에 살면 그보다 불리할 것이며, 수도권 밖이라면 더더욱 불리할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종이 교과서든 디지털 교과서든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입시 경쟁은 여전할 것이며, 대학 서열화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모든 교육 정책은 입시 그 자체에 열심히 복무할 텐데.

그 와중에 우리 아이들은 배우긴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교육해 교양과 자존감이 있는 시민으로 키울 의무가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정책 취지를 다시 살펴본다. 교육 격차 해소, 맞춤형 학습, 서책형 교과서의 단점을 보완···. 모든 취지와 필요가 공부를 ‘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종이 교과서가 이제까지 그래왔듯 학생들의 점수를 정확하게 나누고, 그 점수에 따라 성적을 매기고, 성적에 따라 대학에 가며, 대학을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리는 그런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삶을 위해 인공지능의 힘까지 빌리는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모른다. 학생들은 서책형이니 디지털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먼 옛날 집합과 수열에만 골몰했던 수포자가 지금 다시 태어나 AI의 도움을 받는다고 삼각함수와 미적분까지 위풍당당 나아갈 수 있을까. 그때 그 시절 교과서에서 김수영의 시를 찾아 외던 학생이 지금 다시 태어나면 오로지 답을 찾는 방식으로 교과서 지문을 요약하고 발췌하는 데 힘쓸까.

조금은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경쟁 사회와 대학 서열화가 바뀌지 않으면 교과서의 변화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진짜 변해야 하는 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나와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해야만 하는 삶만이 성공적인 인생이라면, 그것이 모두의 목표라면, 그 어떤 정책으로도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며 각자 역량의 최대치를 찾게 하는 교육을 실현시킬 수 없다. 그것은 AI도, 종이책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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