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기슭, 한때 금단의 왕국이었던 무스탕이 이제 여행자를 맞아들인다.
네팔 중부에 자리한 고립된 지역 무스탕 Mustang의 협곡 칼리 간다키 Kali Gandaki. 그곳은 낮고도 황량한 지형을 따라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드라마틱한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수천 개의 기도 깃발이 휘날리며 몰아넣는 광란의 도가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는 방문객들의 모자를 벗겨내는 찰나. 강력한 바람은 곧 이 땅의 숨결이다. 그 중심이 되는 곳은 티베트 국경 근처 북쪽에서 발원해 갠지스강으로 흘러드는 칼리 간다키강이다. 바람과 강물은 히말라야의 가장 자랑스러운 봉우리들을 품고 있는 약 8백 밀리미터 길이의 안나푸르나산맥의 일부인 이 협곡을 수세기에 걸쳐서 깎아냈다. 이 거대하고 엄숙한 자연 풍경 속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가 있다. 2만3천 피트, 약 7킬로미터 상공에 우뚝 솟은 단 하나의 봉우리이자 눈 덮인 3개의 봉우리가 아래를 지키고 있는 닐기리 히말 Nilgiri Himal이다. 나는 거센 강풍이 몰아치는 비탈길을 힘겹게 내려가고 있었다. 네팔 고산지대에 새롭게 재탄생한 리조트 신타 마니 무스탕 Shinta Mani Mustang의 가이드 겸 담당 바틀러인 아비셰크 타칼리 Abhishek Thakali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바람 부는 계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옹 찬드라하스 Ong Chandrahas.”
신타 마니는 고대 ‘금지된 왕국’ 무스탕(‘무스-타앙 Moos-taang’으로 발음한다)으로 가는 관문이다.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Dhaulagiri라는 두 거대 산맥의 비 그늘에 자리해 있고 다른 세계와 자연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은 비밀스럽고 특수하며 황량하고 돌이 많은 회색 풍경이다. 14세기 무렵, 무스탕이라는 곳은 전설적인 왕 아메 팔 Ame Pal이 통치하던 로 Lo라는 독립 왕국이었다. 18세기에 네팔에 동화되었지만 일부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티베트 문화의 거점으로 남았다. 티베트와 네팔, 인도 하부 지역을 잇는 중요한 히말라야 횡단 무역로였던 이곳은 인구 밀도는 낮지만(현재도 1만5천 명 미만이 거주하고 있다), 강인한 여행자들이 오랫동안 이곳을 통과해왔다. 에베레스트산과 그 주변은 수많은 트래커가 방문하는 여행지인 반면, 무스탕은 라마의 눈빛과도 같은 고요함과 신비로움을 발산하는 조용한 장소다. 과거에 기반을 둔 이곳의 변화는 매우 느려서, 1992년까지만 해도 무스탕 위쪽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군주제는 2008년에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마지막 왕인 지그메 도르제 팔바르 비스타 Jigme Dorje Palbar Bista는 2016년에 사망했다.
이런 협곡에 아주 생생하게 새로운 존재가 생겼다. 바로 지난여름 좀솜 Jomsom에 문을 연 호텔 신타 마니 무스탕이다. 29개의 객실을 갖춘 이 호텔은 캄보디아 씨엠립과 카다멈산맥에 자리한 ‘전초기지’에 이은 신타 마니 그룹의 세 번째 둥지다. 아시아 전역의 리조트에서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선구자적인 건축가 빌 벤슬리 Bill Bensley가 설계했고, 네팔의 유명 건축가인 프라발 타파 Prabal Thapa가 처음 지었던 현지 목재와 석재로 만든 웅장한 건물을 새롭게 개조해서 지금 모습으로 탄생했다. 2천 그루의 사과와 살구나무 과수원을 배경으로 마을 근교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네팔의 곳곳에 트래킹 코스를 따라 지은 일반적인 하이킹 로지와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안식처다. 양궁 체험, 승마, 요가 세션이 마련돼 있으며(아비셰크는 내게 마을과 수도원인 곰파를 즐기는 하이킹을 안내해주었다), 호텔 방에는 거대한 티베트 러그와 현재는 고인이 된 예술가 로버트 파월 Robert Powell이 새겨놓은 무스탕 풍경 작품, 3개의 흰 봉우리가 종종 깃털 구름에 가려지곤 하는 닐기리를 바닥부터 정상까지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전망이 나를 반겼다. 이곳에서 눈을 뜨는 것은 신과 마주하는 것과도 같다.
신타 마니의 강 건너편으로는 티니 Thini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집들은 인간 문명이 웅장한 산을 배경으로 공들여 심어놓은 아름다운 색채 뭉텅이 같다. 아비셰크는 카트만두에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하기 전엔 이곳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가 안뜰을 둘러싸고 나무 서까래와 들보가 지지하고 있는 2층짜리 회색 석조 건물,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다리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된 햇볕이 잘 드는 방이 있다. 가족들은 겨울이면 이곳에 모인단다. 마을의 모든 가정, 아니 무스탕의 모든 마을은 지붕에 나무를 쌓아두는데, 주로 얇은 노간주 나뭇가지이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쌓는다. 나무를 쌓아두는 것은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쌓아둘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이 부유하다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바위와 흙으로 지은 하얀 집, 노간주나무 열매 향이 나는 고요한 곰파, 메밀과 살구나무 숲···. 반면 무스탕 아랫동네는 이와 비슷하지만 독특한 역사와 분위기를 지녔다. 계곡을 3백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광활한 크기의 종 Zhong, 절벽으로 둘러싸여 잊힌 마을이 된 강변의 작은 마을 루브라 Lubra, 15세기 학자 텐파이 갈센 Tenpai Gyaltsen이 세웠고 칼리 간다키 협곡에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곰파가 자리한 요새 같은 마을 카그베니 Kagbeni가 이 지역에 있다. 모두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은 좀솜 바로 남쪽에 있는 간다키 강변의 마르파 Marpha로 1천6백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실상 대도시나 다름없다. 도로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산의 측면이 바람의 간섭을 막아주는 마르파는 찻집과 상점, 간판과 포스터, 현지인과 외국인 등이 붐비는 거리로 활기가 넘친다. 특히 애플 파라다이스 티하우스의 주인인 카말라 랄찬 Kamala Lalchan을 만나면 무스탕에서 가장 큰 소수 민족인 타칼리족 Thakalis의 기운차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픈 키친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쌀, 삶은 콩, 카레를 입힌 치킨, 양배추 볶음, 호박 퓌레로 구성된 전통 타칼리 요리를 내어준다. 티무르라는 현지 고추를 뿌린 토마토 처트니, 칠리를 뿌린 당근과 무채, 새콤한 살구 피클 등 다채로운 양념이 내 커다란 접시를 장식한다. 가스레인지에서 뭉근하게 익어가는 사과잼을 지켜보면서 카말라는 나와 자기 주장 뚜렷한 포메라니안 미미와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타칼리족이에요.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것은 마르파 타칼리족 Marpha Thakalis이라는 점입니다.” 그녀는 무스탕 마을의 고유한 질서를 짚으며 설명한다. “마르파 타칼리족에는 4개의 씨족이 있어요. 히라찬 Hirachans, 랄찬 Lalchans, 판나찬 Pannachans, 좌르찬 Jwarchans. 판나찬과 좌르찬은 그 수가 적습니다. 그래서 부족을 벗어나는 결혼을 권장하지 않아요. 히라찬과 랄찬은 네, 문제없습니다.” 그녀가 기쁘다는 듯 웃는다. “하지만 요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마을의 젊은이들이 마르파 바깥 지역, 티니 마을이나 좀솜이나 투쿠체 Tukuche에서 결혼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이 작고 끈끈한 지역 사회에서 카말라는 지역 여성 협동조합의 대표, 농장주, 현재 주목받는 지역 정치인 등 여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아침 6시에 애플 파라다이스를 오픈하는 일이 방해라는 말은 아니다. 무스탕을 떠나는 날 아침 예고도 없이 티하우스에 들렀을 때 그녀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상서로운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열리는 결혼식에서 신혼부부를 맞이하는 일이었다. 카말라는 “1년여 만의 첫 결혼식”이라고 했다. 신성한 의식을 앞두고도 그녀는 우리를 위해 차 끓여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우리가 다 마실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스탕의 역사는 산과 수도원을 상징하는 일대기이자 격렬한 육체적 고난과 정신적 노력의 연대기다. 이 높은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은 먼저 기도와 명상을 통해 거의 초인적인 수준의 영역에 도달함으로써 자기 통달을 이루었다. 그들의 이름은 여전히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들의 행적과 발견은 정신과 육체, 욕망과 해방에 관한 독특한 영적 그리고 지적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칼리 간다키의 지류인 판다 콜라 Panda Khola에 가기 위해 오르막길을 따라 수도원과 요새로 향하는 길에 작은 정착촌인 루브라 Lubra에 도착했다. 좀솜에서 걸어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은 마르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거칠고, 견고하고, 변화무쌍하다. 15개의 농가로 이루어진 이 마을은 네팔에서 유일하게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티베트 고유의 샤머니즘적이고 범신론적인 신앙인 본교 Bon를 여전히 믿는 곳이다. 마을에 가까이 다가서자 몬순 시즌에 루브라로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식료품을 등에 지고 강을 건너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베테랑이자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가이드인 갈젠 셰르파 Gyaljen Sherpa가 반대편 절벽을 따라 난 이빨 자국처럼 커다란 구멍을 가리킨다. 무스탕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신비한 ‘하늘 동굴’로 무덤, 명상 장소, 전쟁 중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피난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틈새다. “루 Lu는 뱀을, 브락 Brak은 절벽을 의미하고, 그래서 ‘뱀 왕의 절벽’이란 뜻입니다.” 갈젠은 마을 맞은편 절벽의 특이한 뱀 가죽 무늬를 바라보며 이렇게 설명한다. “이 마을은 12세기에 티베트의 위대한 라마인 타시 갸르첸 Tashi Gyaltsen이 세운 정착지예요. 그는 여행 중에 이곳을 발견한 뒤 이곳을 지배하던 사악한 뱀을 정복했습니다.” 루브라 입구에 서 있는 8백 년 된 호두나무는 타시 갸르첸이 심은 것이라고 주민들이 알려준다. 그는 이곳이 명상에 도움이 되는 장소라고 느끼고 산자락에서 떨어진 언덕 위에 살구나무와 핑크 히비스커스 나무 줄기로 둘러싸인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돌 바깥쪽에는 티베트 불교의 스와스티카 Swastikas(‘상징적인 기호’ 또는 ‘문양’ 또는 ‘만’자라고 이해하면 된다)가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는 것과는 반대로 본교의 신성한 상징인 왼쪽을 향해 새겨져 있다. 내부 벽에는 타시 갸르첸의 모험을 비롯한 불교 전설이 그려져 있는데 벽화에는 악마와 뱀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 악마와 뱀의 날카로운 턱과 팔다리는 영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선택하지 않으면 인간을 집어삼키려는 어둠의 세력을 상징한다. 불상이 있는 제단 옆에는 라마의 발자국이 새겨진 큰 돌이 있고, 그 뒤에는 라마가 명상을 하던 작은 동굴이 있다. 본교에서는 나무, 바위, 장소 등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나도 동굴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저녁에는 좀솜과 인근 지역에서 티베트 전통 의술을 펼쳐온 긴 역사를 잇는 11대 암치(Amchi, 티베트 전통 의사)이자 현재 신타 마니 무스탕의 웰니스 센터 책임자인 츠왕 규르메 구룽 Tsewang Gyurme Gurung을 만났다. 그의 태도는 강렬했다. 세 손가락으로 나의 양 손목의 맥박을 짚어보며 내 몸 상태를 묻던 그는 나의 의학적 문제(허리 통증과 혈액순환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고서는, 메모 한 페이지를 작성한 다음 1시간 동안 마사지로 내 몸을 치료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15분 동안 자갈 위를 걸으라”고 조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발 1만2천5백 피트의 천연 석호인 체마 호수 Chhema Lake(‘용서의 호수’라는 뜻)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트레일을 오르면서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1시간 반 동안 하이킹을 했더니 내 아이폰이 1백50층에 해당하는 높이를 올라갔다고 알려주었다. “우리에겐 이런 말이 있어요. 산에 갈 때는 야크처럼 느리게, 안정적으로 걸어라.” 신타 마니 무스탕의 가이드인 사그릿 라나바트 Sagrit Ranabhat가 시의적절하게 조언해준다. 그의 평온한 걸음걸이, 무심한 태도가 현명한 보헤미안처럼 느껴진다.
이 트레일에는 사그릿, 아비셰크, 갈젠 그리고 나까지, 마치 정원 벽에 붙은 달팽이처럼 자그맣게 느껴지는 우리 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머리 위로는 닐기리의 얼음 봉우리가 한낮의 햇살로 환하게 빛나고, 갈라진 경사면은 폭포수처럼 흐르는 물로 반짝였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고요함, 지질학적 규모에 따른 시간이 고고하게 뿜어 나오고 있다. 이 산은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2개의 대륙판이 충돌해 이렇듯 하늘로 치솟아 오른 힘을 만들어냈다. 풍경은 계속 변했다. 신타 마니에서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을 가득 채우는 새벽과 석양의 진주 빛으로 빛나는 해 질 녘을 기다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저 멀리서 귀신같이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사태 소리다. 무스탕에서 며칠을 지내고 보니 힌두교와 불교도들이 왜 이곳을 오랜 세월 동안 신들의 영역이라 믿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산 자체가 신성하디 신성하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될 사람들을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시험에 들게 할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오가는 이방인에 대한 관대함도 충만하다. 그에 대한 감사가 저절로 우러나올 만큼.
- 글
- Chandrahas Choudhury
- 포토그래퍼
- Jack Joh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