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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따지기 귀찮은 날, 라벨만 보고 고르는 소믈리에 픽 데일리 와인 20

2024.10.03전희란

솜씨 좋은 소믈리에들의 데일리 와인 장바구니를 훔쳐보았다.

배윤하 | 까사델비노 지배인 & 헤드 소믈리에

‘와알못’ 어른과의 자리에서, 판티니 그랑 뀌베 비앙코 스와로브스키 오동통한 보틀에 심플한 레이블. 잘 들여다보면 가운데에 스와로브스키 정품 크리스털이 위용을 드러낸다. 와인을 잘 모르는 어른들과의 자리라면 너무 클래식하거나 화려한 레이블보다는 이탈리아 스푸만테처럼 심플하지만 감각을 지닌 와인이 더 사랑받는다. 시트러스 향에 과실과 꽃의 풍성한 조화도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한몫하고, 어떤 요리와도 매치 가능한 만능 스파클링. 3~4만원대, 와이넬.

편의점에서 한 방에 해결, 칸티 모스카토 콜레지오네 디 파밀리아 편의점 와인과 편의점 음식의 페어링이라면 1차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술이 다소 부족하다거나 동네 친구와 가볍게 마시는 상황이 아닐지? 5.5퍼센트의 낮은 도수, 달달한 향과 맛, 잔잔한 기포, 시원한 청량감을 지닌 이 와인은 탐스러운 꽃 레이블부터 시선을 휘감고 유혹한다. 모든 종류의 디저트류와 잘 맞는데, GS 편의점에 있는 모찌롤케이크와 페어링을 권한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과하게 달지 않은 크림, 거기다 음료수 마시듯 이 모스카토를 벌컥벌컥 마시다 보면 금세 한 병이 동날 것이다. 9천8백원, 신세계L&B.

퇴근 후 한 병, 마이펫 소비뇽 블랑 스페인 후미야 지방의 화이트로, 소비뇽 블랑 100퍼센트지만 산미가 과하지 않고 담백하며 깔끔하다. 주로 새벽에 퇴근하는 소믈리에로서 ‘퇴근 후 한잔’은 대체로 이러하다. 퇴근하자마자 냉동실에 와인을 넣고, 세안 후 잔을 꺼낸 뒤 냉동실에서 살얼음 낀 와인을 꺼내 콸콸 따르며 노트북을 편다. 글을 쓰거나, 강의 준비를 하거나, 밀린 업무를 보는 시간. 퇴근 후 부담스러운 음식보다는 산뜻한 과일을 즐겨 먹는데, 이 와인에는 참외나 사과 같은 아삭한 식감의 과일이 잘 어울린다. 2만2천원, 제이앤제이와인.

시장 맛집 가는 날, 뛰느방 베드걸 전통적인 샴페인 방식으로 병 내 2차 발효를 거쳐 효모 앙금 ‘Lee’와 함께 숙성시켜 완성하는 보르도 스파클링 와인. 가볍고 산뜻하게 즐기기 좋은 데일리 스파클링으로, 이 와인을 허리에 끼고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목적지는 속초 중앙시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룽지 오징어 순대, 새우 강정, 씨앗 호떡 주문! 본디 튀김 요리와 스파클링은 만능 페어링이지만, 바삭한 식감을 더 살리고 느끼함은 잠재우는 뛰느방 베드걸이 시장 안의 스타로 단번에 활약할 것이다. 시장 이모에게 예쁨 받는 팁? 오프너 없이 쉽게 딸 수 있는 가성비 와인을 택하고, 병을 열자마자 이모에게 한 잔 건넨다. 그렇다면 당신은 베드걸 한 잔으로 굿걸, 굿보이가 될 것이다. 4만5천원, 금양 인터내셔널.

코키지 프리 맛집 가는 날, 도멘 오트 방돌 로제 컬러와 디자인 때문에 누군가는 달콤한 맛을 연상하지만 사실은 드라이하고 꽤 견고한 스타일을 지닌 프랑스 방돌의 로제 와인. 로제인만큼 온도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점이 매력인데, 시원하게 칠링해 산뜻한 산도를 즐기거나 온도를 더 올려 딸기, 라즈베리, 자몽, 붉은 꽃 계열과 스파이시한 향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코키지 프리인 닭구이 전문점 청담 Hen에서 소금 닭구이, 하얀 양념 닭구이, 빨간 양념 닭구이 등 다양한 닭 요리와 페어링해도 두루 잘 어울린다. 8만4천원, 에노테카 코리아.

김성국 |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 총괄 소믈리에

퇴근 후 한 병, 샤토 도시에르 로제 차가울 땐 분홍 장미, 아카시아 같은 플로럴한 아로마와 청량한 텍스처를 지닌 딱 복숭아 갈증 해소 음료로, 서늘할 땐 차분한 레몬그라스와 백도 향 풍부한 시원하고 깔끔한 백차로, 선선해지면 로즈메리, 바질, 타임, 구운 견과류 향을 즐긴다. 강남구청 근처 팔당족발의 ‘보족 세트’ 소자를 주문해 동치미 국물, 막국수에 먼저 차가운 상태의 와인을 페어링하고, 와인이 중간 온도쯤 되면 보쌈, 더 올라가면 족발과 함께 맛본다. 한두잔 남을 땐 한잔 기준 설탕을 1티스푼씩 넣고 과일 제스트, 민트 혹은 로즈메리를 넣고 살짝 데운 다음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해둔다. 그러다 가끔 독주가 당기는 날 진, 보드카를 소주잔 2잔, 문제의 보존액을 밥숟가락으로 하나 넣고 얼음을 가득 채우면 스페셜 로제 마티니가 완성된다. 백화점 기준 4만원대, 금양 인터내셔날.

시장 맛집 가는 날, 까사 로호 라 마리모레나. 스페인의 트렌디한 와이너리 리아스 바이사스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는 와인. 속칭 ‘해무’, ‘파도 물보라’ 맞은 천도복숭아, 알바리뇨 100퍼센트의 상쾌하고 짭짤한 맛이 눈앞에 지중해를 펼쳐준다. 신당동 중앙시장의 옥경이네 건생선, 꾸덕꾸덕한 반건조 서대, 갑오징어구이와 이 와인의 페어링은 ‘죽여준다’. 반건조 생선을 비린내 없이 먹으려면 식초와 소금이 중요한데, 이 와인에 신선한 염분과 순수한 과실 미, 비비드한 산미까지 표현되어 있기 때문. 시장에서 칠링법? 편의점의 봉지 얼음 하나에 수돗물을 1/3 채우면 한 병짜리 칠러가 완성된다. 1천5백원의 투자로 교양 있는 현대인이 될 수 있다. 4만8천원, 에노테카 코리아.

편의점에서 한 방에 해결, 47AD 프로세코 엑스트라 드라이 블랙 편의점 하면 역시 4캔 1만원! 그러나 맥주에 견줄 만한 물건이 바로 이 이탈리아 스푸만테다. 고향만두 대신 비비고, 줄줄이 소시지 대신 킬바사를 택하는 기분으로, 다이아몬드 같은 이 와인 보틀을 손에 꽉 쥐어본다. 퇴근이 늦은 소믈리에들이 애정하는 편의점 간식은 역시 간편식인데, 주로 이마트24를 이용한다. 비교적 새롭고 프로모션 제품이 많아서 좋다. 당장 떠오르는 건 8월 말에 출시한 꼬막장 김밥. 그럼에도 애정하는 단골 세트인 가라아게 유부초밥과 팔도 비빔면 큰 컵도 빠뜨릴 수 없다. 4만8천원, 동원 와인플러스.

코키지 프리 맛집 갈 때, 킹핀 레드 N.V 선이 굵은 구조감을 지닌 데다 극강의 가성비를 지닌 이 ‘물건’은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날 제격이다. 목적지는 앙키모가 1만원, 매운탕 6천원, 추천 사시미 2만원대, 콜키지는 프리인 최우영수산 영등포점. 그곳에 가면 박스에 얼음을 가득 담아주시니 벼르고 벼르던 와인을 모두 가져가 괴짜 같은 페어링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콜키지 프리 식당에 갈 때 ‘꾼’들은 칠러, 임시 마개, 안으로 빠진 코르크 꺼내는 도구, 콜키(TCA) 오염 처리반을 챙긴다. 물론 없어도 좋다. 3만 원, 동원 와인플러스.

친구 커플 집들이 갈 때, 레정드 알 메독 이제 막 집을 꾸민 커플이라면 초록 창에 ‘집들이 음식’을 검색해 쏟아져 나오는 갈비찜, 제육볶음, 찜닭 등을 낼 가능성이 높다. 이때 세계적인 와이너리 샤토 라피트의 베이식 와인 ‘레정드 알’ 라인, 그중에서도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블렌딩한 고르면 잭팟. 5만원대, 금양 인터내셔널.

이정인 | 코리 레스토랑 헤드 소믈리에

편의점에서 한 방에 해결하는 날, 페르게티나 프란치아코르타 브룻 밀레디 연인 사이 혹은 감정의 교류가 꿈틀대는 관계로 CU편의점에서 안주와 와인을 산다면, 이 와인을 권하겠다. 우아한 병 모양의 스파클링 보틀 안에는 흰 꽃과 시트러스 아로마, 구수한 뉘앙스가 조화를 이루는 액체가 담겨 있다. 샤도네이 100퍼센트. 편의점 주전부리 대부분이 스파클링 와인과 잘 어울리지만, 그중에서도 프링글스, 도리토스, 마른안주로는 육포와 쥐포를 추천한다. 편의점 주전부리로도 사랑이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이 와인이 증명할 것이다. 9만1천원, 비노비노.

콜키지 프리 맛집 가는 날, 롱 반 샤도네이 고깃집 냄새(?), 그리고 공간과 잘 어우러질 ‘긴 헛간’을 의미하는 카모미 와이너리의 롱 반 샤도네이. 사과, 밝은 시트러스의 달콤한 아로마에 크리미한 버터, 바닐라, 구운 아몬드의 풍미가 느껴진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가성비 와인으로도 유명한 친구다. 칠링 백에 몸을 푹 담그고 나들이 갈 채비를 마친 롱 반 샤도네이와 함께 청담 길목으로 향한다. 자리에 앉으면서 사장님께 ‘빈 물통’을 부탁한 뒤, 거기에 와인을 콸콸 부어 디캔팅을 해두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목살, 삼겹살, 돼지껍데기와의 합이 더욱 달콤해지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2만4천원, 나라셀라.

시장 맛집 가는 날, 하트랜드 쉬라즈 세계적인 와인 메이커 벤 글래처의 손에서 탄생한 와인과 망원시장, 그것도 순대볶음과 닭강정의 페어링? 상상만 해도 ‘끝났다’. 순대볶음의 양념과 블루베리, 검은 자두 등 걸쭉하고 진득한 과실 향, 질감의 궁합이 뛰어나고, 와인이 지닌 매콤한 검은 후추 향은 볶음 전체의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부드러운 산도와 타닌감은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을 곁들인 양파, 대파, 양배추의 식감과 맛을 더 살린다. 닭강정 소스와 와인의 과실 향, 산미는 혀를 더 기분 좋게 주무른다. 부드러운 타닌감과 와인의 질감은 강정튀김 옷과의 매칭도 훌륭하다. 와인은 미리 오픈해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일회용 와인 잔에 따라 챙겨가면 맛이 배가 된다. 물론 감성도. 3만원, 비티스.

퇴근 후 한 병 뚝딱 하는 날, 메나데 노쏘 레몬, 라임, 흰 꽃다발, 송진 향이 피어나고, 입 안에서는 미네랄이 ‘나 여깄소’를 외친다. 비가 내려 해물파전이 당기는데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데도 가기 싫은 날, 메나데 노쏘 화이트 한 병을 사서 해물파전은 배달 주문한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냉동실로 직행해 와인을 칠링하고, 샤워하고 나올 때쯤이면 파전이 문을 열고 들어올 준비를 할 것이다. 원두막 모둠전&매콤새콤 무침의 해물파전이나 감자전, 산골녹두파전의 해물듬뿍파전 혹은 모둠전이 추천 페어링. 이 조합이라면 ‘파전엔 막걸리’라는 공식도 무색해진다. 5만원, 나라셀라.

중식당 코스에서, 파토리아 일 무로 키안티 스피갈로 중식당 코스, 어색한 사이, 와인의 조합. 어렵다. 그러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키안티에서 생산하는 이 와인은 중식과 와인의 페어링, 상견례나 비즈니스 미팅 같은 쉽지 않은 자리의 공기를 누그러뜨리기에 제격이다.제우스의 피를 의미하는 산지오베제 품종을 사용해 기분 탓인지 에너지를 받고 피가 맑아지는 느낌은 덤이고, 와인 페어링이 쉽지 않은 중식 코스와도 두루 궁합이 좋다. 2만5천원, 비노비노.

조내진 | CHOI. 총괄 소믈리에

‘와알못’ 어른들과의 자리에서, 도츠 브뤼 클래식 2세기 이상, 5대째 이어 내려온 풍부한 역사를 지닌 샴페인 하우스 도츠. 부드러운 버블과 질감이 잘 익은 사과, 배의 과실 향과 근사하게 어우러지고, 풍부한 브리오슈, 고소한 토스트 뉘앙스가 더해져 튀지 않는 밸런스를 뽐낸다. 모든 분위기를 아우르는 유일한 와인이 바로 샴페인!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샴페인의 버블을 눈으로 마시고 시원하고 청량함을 입으로 동시에 즐긴다면, 어떤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도 화사하게 밝혀줄 것이다. 와인을 잘 모르는 이들과의 자리에서 페어링마저 짐작할 수 없는 요리를 맛보게 되는 상황, MBTI ‘J’ 유형이라면 딱 스트레스 받을 상황에서 도츠 브뤼 클래식은 언제나 부담스럽지 않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5만~8만원대, 레뱅.

코키지 프리 맛집 가는 날, 마르께사 마리아벨라 발폴리첼라 리파소 수페리오레 목살과 가브리살이 맛있는 데다 콜키지까지 무료인 논현동 고깃집 화포식당으로 향한다면, 왠지 한 손에 이 와인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스틸 탱크에서 말로라틱 발효 후 프렌치 바리크에 12개월 숙성해 신선한 붉은 체리와 자두, 정향 등 복합미가 인상적인 ‘물건’. 기름진 고기에 혀가 다소 지쳐갈 때 둥근 타닌의 발폴리첼라 와인 한 잔이 지닌 적당한 산도가 기름기는 잠재우고 육즙에 과실 풍미와 타닌을 더해 담백한 맛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다 고기로 과식해도 책임 안진다. 5만원대, 비노킴즈.

편의점에서 한 방에 해결하는 날, 반피 로사 리갈 명랑하면서 달콤한 스파클링계의 비밀 병기. 이탈리아 브라케토 와인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하는 와이너리 반피에서 만든 스위트 와인인데, 처음에는 은은한 장미 향과 딸기 향이 달콤하게 밀고 들어오다가 점점 탄산과 함께 우아한 여운을 주고, 또다시 밝은 자취를 남기고 떠난다. 단짠의 최고봉 오리온 고래밥, 짠맛과 딱 좋은 바삭함을 지닌 프링글스와의 합이 얼마나 근사한지, 가끔은 편의점이 레스토랑인가 싶다. 3만원대, 롯데칠성음료.

시장 맛집 가는 날, 마이 마체티 모스카토 다스티 녹색을 머금은 금빛에 복숭아, 살구, 파인애플의 달콤한 향이 코를 푹 찌르며 입맛을 돋운다. 부드러운 산미가 틈틈이 혀를 자극해 질리지 않고 와인을 쭉 즐길 수 있게 한다. 오래된 시장 안의 분식집에서 떡볶이, 순대, 모둠 튀김을 주문하고 비장의 무기로 이 와인을 꺼낸다. 떡볶이의 매운맛은 모스카토의 기분 좋은 과일 단맛이 보완해주고, 튀김의 바삭한 식감은 모스카토의 활기찬 버블이 한 번 더 입 안에서 바삭하게 튀겨줄 것이다. 그리고 시장 이모에게 칠링한 모스카토를 한잔 건넨다면, 시장 안의 ‘바이브’는 더 흥겨워지리라. 2만~3만원대, 비노엘.

퇴근 후 혼술, 알파 루아르 부브레 로셰 드 룬 찬란한 금빛 물결에 실린 신선한 과실 향, 꽃 향, 은은한 꿀 향이 인상적이고, 부드러운 미네랄과 둥근 텍스처가 지친 하루의 끝을 기분 좋게 주무른다. 다채로운 과일 아로마가 탁월한 슈냉블랑 화이트 와인으로, 와인 글라스에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담아 칵테일처럼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 특히 복숭아, 딸기, 청포도를 담아 마시면 당도의 밸런스가 좋다. 배달 요리와 페어링한다면 지코바 순살 양념, 교촌치킨 허니 오리지날이 좋겠다. 4만~5만원대, 비노엘.

포토그래퍼
김래영
어시스턴트
한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