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근 손 끝.
권성준ㅣVIA TOLEDO
GQ 그간 <흑백요리사> 우승자라는 사실을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입이 간질거렸을까요.
SJ 말하면 당연히 기분은 좋았겠지만 사실은 제가 막 말할 사람이 없어요. 애초에 친구가 많이 없어서 크게 의식하진 않았어요.
GQ 주방과 집만 오간다던 일상이군요.
SJ 원래 친구들 만나서 놀러 다니거나 술 마시는 걸 아예 안 해서. 좀 본능적으로. 초등학생 때는 학교 갈 때 친구들이랑 손잡고 가거나 같이 가려고 하고 혼자 가는 거 싫어하잖아요. 저는 친구들이 같이 학교 가자 그러면 도망갔어요. 혼자 있고 싶어서.
GQ 인터뷰를 요청한 계기가 리소토 100인분 만들 때 옆에서 ‘요리하는 돌아이’ 윤남노 셰프가 아무리 불안해해도 혼자 묵묵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였어요.
SJ 사람들이 이걸 왜 좋아해주지 싶기도 한데, 왜냐하면 저는 원래도 ‘내가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야’라는 게 있기 때문에 옆에서 돌아이 셰프님이 보채도 사실 신경을 안 썼어요. 어차피 내 것만 하면 되고, 난 된다고 믿으니까. 나중에는 되게 고마웠던 게 만약 셰프님이 옆에서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 저의 그 장면이 그렇게 뜨지 않았겠죠. 셰프님이 옆에서 계속 불안해하고 ‘불안핑’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제 침착함이 더 돋보였던 장면이다 보니까 나중에는 더 고마웠어요.
GQ 이제는 수만 명이 몰리는 레스토랑이 됐네요.
SJ 저는 그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가게가 너무 작으니까. 제가 원래도 손님을 하루에 6명밖에 안 받아요.
GQ 지금 이 테이블에만 의자가 8개인데 왜요?
SJ 여기 테이블은 쓰지 않고 바 테이블만 사용해요. 퀄리티적인 부분도 있고, 말씀드렸듯이 제가 사람 많은 걸 안 좋아해요.(웃음) 그냥 적당히 오셔서 적당히 드시고 저도 적당히 얘기하고 돈도 적당히 벌고. 적당히 밸런스 있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해왔던 건데, 예약 시도에 11만 명이 몰렸다는 말을 듣고선 고민을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확장을 한다든지 그런 욕심은 없어요. 가게가 그 정도로 성장했다기보다 프로그램 덕분의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잘 유지해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GQ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SJ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제가 제 밥을 많이 해 먹었어요. 오히려 좋았던 게 부모님은 대부분 한식을 드시는데 저는 햄버거, 피자, 파스타, 이런 걸 워낙 좋아하니까. 파스타 시판 소스 사다가 면 삶아서 잘 익었나 벽에 던져보고 그러면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죠. 원래 하고 싶은 게 전혀 없었어요. 수능 끝나고 대학 들어가는 3개월 정도 사이에 뭘 먹고살까 하다가 그때 갑자기 전구처럼 반짝였어요. 요리를 해야겠다. 그래서 대학교 조리학과를 가게 됐고, 그때부터 하고 있는 거예요.
GQ 이후에 이탤리언 퀴진이 서양 요리의 근본이자 시작이라 생각해서 이탈리아를 유학지로 택한 것으로 알아요. 보통 서양 요리의 정수로 프렌치를 꼽지 않나요?
SJ 역사적으로는 이탈리아 식문화가 훨씬 먼저예요. 로마시대 때 유럽의 식문화가 시작됐고, 15~16세기경에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가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 요리사들을 데리고 가서 고급 식문화를 프랑스에 전파시켰어요. 그러면서 프랑스 요리도 발전한 거죠. 그런 역사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이탈리아가 먼저라고 하는 거죠.
GQ 학교에서 배웠어요?
SJ 아뇨, 저는 원래 좀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해서. 그러니까, 요리를 할 거면 그 요리에 대한 배경 지식도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없으면 제대로 된 요리가 안 나온다고 생각해서 저는 주방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공부하는 시간이 더 길어요. 지금까지도. 요리는 결국 문화이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랑 직접 부딪혀보고 대화도 해보고 언어도 배우고, 음악도 미술도 지형이나 기후도 알아야 지역 요리가 나오지 그냥 레시피만 따라 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GQ 레스토랑 이름 비아 톨레도가 나폴리에 있을 때 자주 갔던 거리 이름이라고요.
SJ 나폴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오래 살았다거나 이런 건 전혀 아니에요. 제 인생에서 짧고 굵게 되게 중요한 사건이 많았고, 많은 영감을 받고 마인드가 바뀐 순간이라서 아무래도 애정이 가요. 지금도 매년 가요, 나폴리.
GQ 어떤 순간들을 경험했나요?
SJ 요리 학교를 다니며 현장 실습으로 미쉐린 레스토랑 두 곳을 경험하면서는 워낙 노동 강도가 세고 난도도 높게 FM대로 제대로 배우면서 예방접종을 세게 맞은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는, 물론 나폴리 사람들도 개개인의 고민은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살고 싶은 대로 살고, 맛있는 것 먹고, 주말에는 바다 가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시간 보내며 삶에 크게 스트레스가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굉장히 밝고 에너지가 좋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고,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생각해요.
GQ 그 경험을 어떻게 맛으로 요리에 담을 수 있을까요?
SJ 복합적이에요. 말씀드린 것처럼 맛이란 여러 가지의 복합체 같아요.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일단 식재료의 사용.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식재료 사용이 우선이고, 다음은 쿠킹을 어떻게 하는지, 테크닉적인 부분으로 쌀의 익힘이나 면의 익힘, 간, 식재료의 조합, 이런 것들이 있겠죠.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나만의 색깔을 어떻게 넣느냐. 이런 모든 게 복합적으로 가미됐을 때 그게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그 지역에서 왜 그렇게 먹기 시작했고, 왜 그런 조합으로 먹는지, 그 스토리들도 요리에 함께 풀어내 맛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GQ 스스로 한 꼬집 더 연마하고 싶은 맛이 있다면요? 무엇을 더 채우고 싶으세요?
SJ 이번 대회에서도 그랬고 저는 항상 너무 많은 걸 쓰려는, 좀 과하게 쓰려는 경향이 있어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반대로 손맛을 줄이거나 요소를 줄이는 걸 연습하고 싶어요. 특히나 그런 걸 잘하시는 분들이 안성재 셰프님이나 안성재 셰프님에게 배운 셰프님들인데, 저는 그런 면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욕심을 좀 덜어내고, 오히려 손맛을 좀 줄이고 심플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하려고 해요.
GQ 세속적인 질문이지만 상금 3억원은 어디에 쓰실 예정이에요?
SJ 일주일 만에 다 썼어요.
GQ 벌써 다?
SJ 저는 스스로 나태해지는 걸 싫어해서, 돈이 제 통장에 있는 게 보기 싫어서 가게 근처에 전셋집 구했어요. 걸어서 5분 거리. 딱 3억이더라고요. 돈이 제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야 좀 더 열심히 일하고 발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주일 정도 제 계좌에 있다가 없어져서 사실 체감은 안 돼요.
GQ 가게와 집에만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겠어요.
SJ 저는 그게 좋아요. 제 출근의 목표는 퇴근이거든요. 빨리 퇴근하고 싶다. 셰프라는 직업은 솔직히 엄청 힘들거든요? 여러모로 힘들어요. 힘든데 또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 출근하는 것 같아요. 힘든 걸 왜 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