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흑백요리사 트리플 스타, 강승원 셰프 “요리, 그냥 요리밖에 없었어요”

2024.10.23김은희

영근 손 끝.

강승원TRID

GQ 강승원에게 칼질이란?
SW (웃음)칼질이란, 기본?
GQ <흑백요리사>에서 만든 클램차우더 속 당근이 몇 밀리미터였어요?
SW 그걸 브뤼누아즈 Brunoise라고 하는데요, 1/8인치, 3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주사위 모양으로 커팅하는 걸 말하는 프렌치 용어예요. 식감이 일정해야 해서 똑같이 썰고, 익는 속도가 다르니까 당근 먼저 넣고 그다음에 셀러리, 양파 넣어서 식감을 비슷하게 맞췄죠.
GQ 그렇게 썬 강승원 셰프나 그 디테일을 주시한 안성재 셰프나. 파인 다이닝이란 과연 어떤 세계인가 싶었어요.
SW 저희는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서 그게 이슈가 될 줄도 몰랐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딱히 신기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파인 다이닝의 기본이기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막내 친구들을 꼬미 셰프라고 하는데 꼬미 셰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이에요.
GQ 언제부터 칼을 잡았어요?
SW 초등학교 4학년?
GQ 그렇게 어릴 때?
SW 아빠 따라서 간 동네 이발소에 <미스터 초밥 왕>이라는 만화책이 있었어요. 그거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처음에는 집에서 막 그냥 칼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요리학원 다니고, 자격증도 따고. 제게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돈을 벌려고 할 때부터는 이제 너무 멀리 왔다 싶어서 딴 걸 해볼 생각도 안 해봤어요. 요리, 그냥 요리밖에 없었어요. 계속.
GQ 클램차우더는 인생을 담으라는 주제의 요리이기도 했죠. 미국 레스토랑 베누에서 일하다 힘들 때 부둣가에서 먹었던 음식이라고요.
SW 거기(베누)는 그냥 다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하루에 15~16시간씩 일하기도 하고. 그런데 살아남아야 하니까. 베누는 단순히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하이드로콜로이드 Hydrocolloid’라고 해서 식품의 텍스처를 바꾸는, 예를 들어 좀 덜 얼게 하고, 더 얼게 하고, 이런 과학적인 요소에 대한 연구도 엄청 많이 해요. 실제로 한 달에 한 번씩 과학자를 초청해요. 잔탐검 Xanthan Gum이라고 식물에서 추출한, 농도를 잡아주는 농후제를 예로 들면 0.1퍼센트, 0.2퍼센트,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데, 0.1그램만 넣는 게 달라도 소스 농도가 달라져요. 그런 특성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거기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서른 몇 가지, 마흔 몇 가지 통이 쫙 있는데 “저거 가져와” 했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거든요. 일 끝나고 가서 새벽에 1시간씩 공부하고, 그 당시 제가 스물네다섯 살, 가장 몸이 젊을 때였는데도 힘들어서 쉬는 날 부둣가 가서 클램차우더 먹고 그랬죠.
GQ 베누의 코리 리 셰프 다큐멘터리를 보고 떠난 유학으로 알아요. 무엇에 이끌렸어요?
SW 아마 스무 살 언저리였던 것 같아요. 전문적으로 이 길을 걸어야겠다 싶어서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든 베이스가 다 프렌치더라고요. 그래서 프렌치를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막상 프렌치를 먹어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 그러다 KBS에서 코리 리 셰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봤어요. 파인 다이닝 요리가 프렌치 아니면 이탤리언이 대부분이던 때, 그 분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적인 느낌을 프렌치에 융합해서 하는 게 되게 멋있었어요. 그냥 꽂혔어요. 엄청나게 간결한 플레이팅, 안성재 셰프가 말씀하시는 대로 의미 없는 꽃 안 올리고 이런 것들 있잖아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그분의 스타일 자체가 굉장히 멋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늘 그래요. 스스로 앞으로 어떤 음식을 만들고 어떤 요리를 어떻게 보여줘야 될지 걱정이 들 때, 이 업장 저 업장 이직을 선택할 때, 네가 어떤 요리를 하고 싶은지 그 롤 모델이 되는 레스토랑에 가서 일하라고.

GQ 강승원이 하고 싶은 요리는 무엇인가요?
SW 딱 음식을 먹었을 때 ‘이 요리를 만든 이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았구나’ 알 수 있는. 제가 배워보고 먹어본 경험을 토대로 메뉴가 나오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지난 여름에 낸 메뉴에 간장게장을 냉면처럼 만든 요리가 있는데, 간장게장을 먹었을 때 간장에서 게 맛도 나고 맛있어서 여기에 면을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싶어 만들어본 거였거든요. 김치찌개도 돼지고기를 넣냐 참치를 넣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사실 요리라는 건 조합 싸움이고, 새로운 맛의 조합을 찾아내는 게 저희
직업이고, 스킬 이런 건 그냥 베이스로 깔고 가는 거예요. 저는 대중적인 음식을 먹어보고 ‘왜 맛있지?’ 분석한 다음에 메뉴를 만드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색깔이 요리에 많이 묻어나면 좋겠어요.
GQ 주관적으로 정의해보는 최고의 손맛은요? 강승원 셰프가 “맛있다” 말하는 기준.
SW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준 동태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거든요. 엄청 시원하고 무 맛도 많이 나고, 반건조 동태의 살짝 ‘꼬릿꼬릿’한 맛과···, 짠맛과 단맛이 잘 맞았어요. 어디 가서 동태찌개를 먹을 때 제가 경험한 맛의 데이터와 딱 맞으면 진짜 맛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급식대가 셰프님 음식이 안성재 셰프님의 추억을 자극한 것처럼.
GQ 그렇다면 최근 경험한 인상 깊은 손맛은요?
SW 한성칼국수에서 먹은 문어 숙회. 진짜 엄청 잘 삶으셔서 맛있게 먹었어요.
GQ 익힘의 정도?
SW 네, 익힘의 정도. 아주 완벽했어요.
GQ 스스로 자신의 손맛을 묘사해본다면요?
SW 저는 모든 음식 간을 할 때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이 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간할 때 설탕과 소금을 같이 써요. 매운맛, 감칠맛까지 여섯 맛이 다 어우러져야 맛있는 맛이 난다고 여기는데 그걸 잘 활용하지 않나 생각해요. 지난주에 싱글 다이닝으로 오신 손님이 누들을 드시곤 원래 쓴맛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 누들의 쓴맛이 너무 기분 좋게 느껴져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거예요. 기분이 너무 좋죠.
GQ 그 쓴맛은 어떻게 내나요?
SW 콜리플라워를 살짝 태우면 태운 맛에서 나오는, 쓴맛이 살짝 뒤에서 쳐주는 기분 좋은 맛이 있거든요. 그 맛을 내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손님들께 주입시키듯 설명할 필요는 없고, 맛있게 느껴주셨다면 좋죠.
GQ 보다 연마하고 싶은 손맛 한 꼬집이 있나요?
SW 숙성. 생선, 고기를 숙성하는 게 어려워요, 아직까지도. 생선마다 가지고 있는 수분 함량도 다르고, 습도와 온도 등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까. 숙성을 잘하면 진짜 맛있거든요. 그런 걸 마스터하고 싶어요. 마스터라는 건 없는 것 같긴 한데. 계속 해보면서 배우고 싶어요.
GQ 최근 자신을 위해 한 요리는 뭐예요?
SW 저를 위해서 한 요리요? 없어요.
GQ 왜 없어요.
SW 일할 때 아니고선 웬만하면 요리 안 하려고 해요. 무조건 배달시켜요. 생각할 게 많아요. 그러니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니까. 대충 하기는 싫어서.
GQ 어릴 때 미스터 초밥왕처럼 스스로 요리해서 먹어보는 게 좋아 시작한 거 아니었어요?
SW 해주는 걸 좋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