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아일랜드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이번 겨울의 종착지.
HOW TO FEEL
지난주까지만 해도 완연한 가을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겨울이 불쑥 찾아왔다. 외투를 꺼내야 할 때. 오랜만에 겨울 옷장을 열어보니 코트와 퍼 재킷이 행거에 빼곡하다. ‘이번 겨울은 작년보다 추울거라고 하던대···.’ 근심이 앞섰다. 푸퍼에는 언제부턴가 통 손이 가질 않아 모두 정리했지만, 해가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 푸퍼만큼 따뜻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코트를 고집했던 이유는 디자인, 특히 컬러 때문이다. 대부분의 푸퍼는 블랙 아니면 아주 비비드한 컬러로 양극화되는데 안 그래도 우중충한 겨울에 어둠을 덧칠하고 싶지는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튀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한파 때도 고민만 하다 결국 길고 시린 겨울을 보냈는데. 올해는 열린 마음으로 푸퍼를 눈여겨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만난 스톤 아일랜드의 아이스 재킷. 누가 내 마음을 도청이라도 했나? 어느 룩에도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카키빛 그레이 컬러가 당장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겼다. 포인트는 유기적인 형태로 흩어지는 카무플라주 패턴. 언뜻 보니 대지의 모양 같기도 했다. 궁금한 마음에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이 패턴은 ‘어스 매핑 카무플라주’로, 지구의 위성 사진에서 영감 받았다고. 태양광 패널을 표현한 그래픽도 있었다. 궁금한 건 못 참지. 당장 걸쳐보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익숙하지 않은 느낌. 분명 푸퍼 재킷인데, 카디건을 걸친 듯 가벼웠다. 거울 속 모습은 영락없이 무거운 외투에 파묻힌 모습인데 말이다. ‘뭐지, 꿈을 꾸는 건가?’ 부들부들한 촉감이 느껴지니 꿈은 아닌 듯했다. ‘그럼 속이 텅 빈 건가?’ 그렇다기에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라벨을 살펴보니 최고급 깃털 충전재와 나일론 소재 덕이었다. 깃털은 동물복지를 준수해 ‘책임 있는 다운 기준’을 인증받았다. 나일론은 100퍼센트 리사이클 소재. 그러면서도 안쪽 면은 레진으로 코팅하고, 바깥 면은 발수 특수 처리해 내구성을 높였다. 후드에는 스냅으로 탈부착이 가능한 파일 소재의 마스크가 있어 발라클라바처럼 착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이스 재킷은 디자인 면에서도, 윤리 면에서도, 실용성 면에서도 흠잡을 부분이 없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니 이 패딩의 가격은 3백만원대다. 아무리 겨울옷이 비싸다지만, 옷장에 들이기에는 또 다른 구실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 퍼즐은 원단. 피그먼트 컬러와 감열 물질을 활용해 추위에 따라 컬러가 변한다는 놀라운 사실! 얼음을 올려보니 도브 그레이 컬러가 오렌지 컬러로 번지듯 바뀌었다. 얼음이 사르르 녹자 한 조각 더 올리고는 유치원생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올해 첫눈은 언제 오려나?
소재 나일론 렙스, RDS 인증 깃털 충전재.
디테일 왼쪽 소매의 화이트 컬러 패브릭 리서치 배지, 양쪽 가슴에 사선 플랩으로 네 개의 포켓, 탈부착이 가능한 후드와 페이스 실드.
HOW SPECIAL
HOW TO STYLE
제아무리 뚱뚱한 패딩이어도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실패를 면할 수 있다. 팬츠는 오버 핏으로 선택할 것. 두툼한 패딩에 스트레이트나 스키니 핏 팬츠를 입으면 다리가 젓가락처럼 가늘어 보이기 때문이다. 일명 츄파춥스 비율로, 아무리 휘황한 패딩을 걸쳐도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다. 휘적거리는 바지가 어색하다면 테이퍼드 핏도 괜찮다. 여기에 비니, 글러브 등 귀여운 액세서리를 더한다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푸퍼에는 오버 핏. 공식처럼 기억하자.
HOW TO ENJOY
스톤 아일랜드는 기능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원단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점에서 학구파 브랜드라 할 만하다. 특히 소재와 패턴 면에서는 수석에 버금가는 우등생이다. 그래서인지 스톤 아일랜드의 디자인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이번 시즌의 카무플라주 라인도, 몇 번 본 듯한 재킷과 액세서리도 그렇다. 포인트 아이템으로 곁들이면 가장 좋으나, 한 벌로 입어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