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GQ KOREA WOMAN OF THE YEAR – WINTER
계절의 국경에서, 윈터.
GQ 언젠가 에스파를 인터뷰한다면, 그 처음이 윈터였음 했어요.
WT (가늘고 길게 뜬 눈) 진, 짜, 요?
GQ 진짜로요. <GQ>와 추구미가 가장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게다가 첫 만남이 ‘Woman of The Year’예요.
WT 그러니까요. 처음에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헤에? 내가 뭐라고?
GQ 에스파 윈터인데?
WT 그러니까, 에스파 윈터가 뭐라고.(웃음) 그렇지만 제가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더 좋은 에너지를 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들었어요.
GQ 가을도 겨울도 아닌 지금 같은 계절의 국경이 되면 윈터는 어떤 생각을 해요?
WT 겨울에 태어났고, 이름도 윈터고, 겨울 분위기를 되게 좋아해요. 새하얀 계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도 흰색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 추위를 너무 많이 타요. 그래서 지금처럼 슬슬 추워지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또 얼마나 추울까’라는 걱정 맞은편에는 ‘또 얼마나 예쁠까’라는 기대가 놓여요.
GQ 겨울이 내어주는 따뜻함이라고 할 때 단번에 연상되는 향기가 있어요?
WT 겨울 냄새, 있어요.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GQ 이미지로 표현해볼래요?
WT 눈이 이렇게 덮여 있는 곳 위에 누워서 별을 바라볼 때 날 것 같은 냄새예요. 뭔지 아세요? 아주 차갑고,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혼자 누워있는 순간에 날 것 같은, 쓸쓸하고 외로우면서도 깨끗하고 순수한 향기요.
GQ 몇 시의 풍경이에요?
WT 새벽 3시, 아니 2시?
GQ 어떤 음악을 틀고 싶어요?
WT 쳇 베이커의 ‘Blue Room’. 그 곡을 담아둔 플레이리스트가 대체로 추워요.
GQ 겨울은 추운 계절이지만, 겨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분명히 있죠. 제가 느끼는 윈터도 그런 이미지예요. 눈을 녹이는 겨울 낮의 햇살 같달까.
WT 으으음? 너무 예쁜 표현인데요? 와, 너무 좋다. 어떡하지.
GQ 윈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활동 곡의 ‘헤메코’에 대해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왔다고 들었어요.
WT 맞아요. ‘해도 내가 해서 망하자’라는 주의? 아흐흐흐흐. 그렇다고 제 의견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건 아니에요. 제가 느낀 것을 바탕으로 표현한다면, 제가 잘 이해한 만큼 표현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GQ 활동 곡마다 윈터 스타일링을 살펴보니, 서로 비슷한 게 거의 없더라고요.
WT 저는 곡마다 기억에 남는 스타일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Savage’ 때 풀뱅에 단발, 만화 캐릭터 같은 스타일링도 해보고 싶다고 제가 의견을 드렸고, 이번 ‘Whiplash’의 쇼트커트도 그렇고요. 회사에서는 처음에 은발 긴머리를 추천해주셨는데, ‘전에 안 해본 게 뭐가 있을까’ 더 고민하다가 쇼트커트를 도전해보기로 했죠.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거든요.
GQ 구현해나가는 과정은 대체로 어떤가요?
WT 음악을 받으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요. 무대 위에서의 나를 상상하면 ‘이 노래는 여성스럽고 예쁘게만 해서는 멋있을 것 같지 않은데’ 같은 생각을 하거든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GQ 윈터는 ‘내가 어떻게 해야 예쁠까’보다는 ‘이 곡, 이 무대에서의 나의 쓰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WT 맞아요. 얼굴을 예로 들면, 갈색 머리나 빨간 머리를 하면 제가 예뻐 보인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마냥 예쁘고 싶지만은 않은 욕심이 있거든요. 에스파 음악이 마냥 예쁘고 가녀린 음악이 아니기도 하지만, 저는 그저 ‘예쁜 것’보다 저희가 무대에서 멋있었으면 좋겠어요. 에스파 음악에 어울리면서도, 나만 소화할 수 있는 멋. 그게 제 추구미인가 봐요.
GQ 그래서 <GQ>랑 어울린다고 느꼈던 거예요.
WT 그러니까요. 저 <GQ>인가 봐요.(웃음)
GQ 왠지 ‘시안 부자’의 향기가 납니다.
WT 제 컴퓨터에 폴더별로 나누어 시안을 저장해둬요. 곡의 제목별로도 ‘헤메스’ 시안 폴더가 있고, 차가 불타는 이모티콘이라든지, 마우스 커서가 모여서 모양을 이룬다든지, 주제는 랜덤해요.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되겠거니’ 하면서 파일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는 영화 <사랑하는 기생충>, <물에 빠진 나이프>를 보고 언젠가 시도해보고 싶어서 저장해뒀어요.
GQ ‘Whiplash’ 녹음 비하인드 영상에서 디렉터가 잘했다고 칭찬해도 ‘제가 잘 모르고 하는 것 같아요’ 하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주변에서 잘한다고 해도, 내가 잘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WT 맞아요. 제 고집 중 하나인데, 얻어걸린 것을 싫어해요. 얻어걸린 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온전히 내것이 아니니까, 나중에 꺼내고 싶을 때 못 꺼내잖아요. 어떻게 했던 건지 모르니까. 디렉팅 봐주시는 디렉터분, AR 언니들이 괜찮다고 해도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면 잘 안 넘어가는 편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부르고 싶지는 않거든요. 듣는 입장에선 답답할 순 있는데 저만의 자그마한 고집이에요.
GQ 이 멋진 고집은 어떻게 생겨났어요?
WT 결과물을 볼 때 제가 만족스럽게 하지 않으면 그 노래가 싫어져요. 디테일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는 편이라, 끝내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고요. 조금도 아쉽지 않고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요?
GQ 내 걸로 만들어야 넘어간다는 지점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져요.
WT 저는 모든 게 이해돼야 잘하는 타입이에요. 콘셉트를 잡을 때도 “대충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 하면 못 하겠더라고요.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고, 나름의 이유를 내가 받아들여야 완성도가 채워지고, 저는 그렇게 완성도를 채우는 걸 좋아해요. 그냥 하면, 그냥인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GQ “일단 그냥 하자”는 말을 제일 싫어하겠네요.
WT 네. 일단? 일단이 어딨죠?
GQ 국어보다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WT 맞아요. 국어는 어떻게든 하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숫자는, 수학은 너무나 확실하잖아요. 그러니까 틀리면 ‘나 틀렸어’ 대놓고 인정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함박웃음)
GQ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에서 문상훈이 나약함을 고백할 때 “진짜 나약한 사람은 자신이 나약한지를 모르지 않을까요?”라고 문상훈을 다독였죠. 나약함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해요?
WT 문상훈 님도 그 전에 그 얘기를 해요. 꼭 운동 안 해도 될 사람이 운동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그러니까 일단 걱정하는 것 자체로도 반은 왔다고 생각해요. 원래 방심할 때 훅 가잖아요.(웃음) 똑같은 것 같아요. 나약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면 내 안에 인정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는 강해’ 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이 더 위험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나약함을 인정하는 게 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약하다고 생각해서 더 움추러드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요?
GQ 윈터의 힘은 꼿꼿함보다 구부러지고 휘어질 줄 아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WT 오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막 단단한 사람은 아니고 싶어요. 너무 단단하면 제가 느슨해졌을 때 책임감을 너무 강하게 느낄 것 같거든요. 약해질 때는 약해진 대로 두되, 내면에서는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GQ 올해 투어에서 첫 솔로 무대 ‘Spark’를 꾸몄지요. 작사, 작곡에도 참여했고요. MY가 흔드는 작은 반짝임들이 빚은 큰 물결로부터 떠올렸다고요?
WT 처음으로 해본 곡 작업인데, 그런 만큼 내 노래를 들어주는 첫 번째 사람들인 MY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MY들을 생각하면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더니 콘서트에서의 팬 봉 라이트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GQ “One Little Spark Can You Set Me Free”, 작은 불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가사는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되었어요?
WT 어릴 때는 버스 벨도 못 누를 정도로 내향적인 성격이었어요. 배달 기사님이 오면 부끄러워서 막 숨고 그랬거든요. 그런 제가 지금 몇만 명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사람이 되다니, 저희 가족들도 다 놀라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가능해진 건, 무대 위에서 이토록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건,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내 앞에 있고 이 수많은 작은 불이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제 마음이 열리고, 제2의 자아가 나오는 것처럼 자유로워진다고 느꼈고요. 그런 작지만 큰 마음들이 저를 해방시킨다는 마음에서 썼어요.
GQ “갇혀 있지 말아라”. 유튜브 콘텐츠 <aesparty>에서 최면으로 전생에 가본데 따르면, 전생의 최영우에서 이번 생에 김민정으로 환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했죠. 자유. 환생하길 잘했네요.
WT 정말 그러게요. 바라던 대로 살고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