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람, 이름 채원빈.
GQ 현시점 기준 마지막 단 한 회만 남겨놓고 있어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WB 아마 실눈 뜨고 보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같이 보자고 해서 저희 집에 모이기로 했어요. 최초예요. 제 작품을 누군가와 같이 보는 게. 기절할 것 같습니다.
GQ 원래 이렇게 낮은 목소리에 차분한 말투예요?
WB 원래 목소리는 낮아요. 목소리는 낮은데, 최근에 저도 소름이 좀 돋았던 게 친구랑 얘기하다 “너무 화가 나” 하는데 순간 하빈이 말투가 나오는 거예요. 저만 느낀 줄 알았는데 친구도 너 방금 되게 장하빈 같았다고, 둘 다 하던 얘기는 온데간데없고 “뭐야? 방금 뭐야?” 그랬어요. 말투에는 아직 하빈이가 남아 있나 봐요. 평소의 저는 끝을 맺지 않는 식으로 매끄럽게 얘기하는데 하빈이는 툭툭 끊어 말하는 게 있어요.
GQ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를 고요하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채원빈이라는 신인이 궁금했어요.
WB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GQ 알고 보니 신인이라는 표현이 실례이려나 싶더라고요? <마녀 2> 토우 대장, <스위트홈 2, 3> 하니 등 이미 여러 작품을 소화한 데뷔 5년 차 배우잖아요.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 그랬어요.
WB 아유, 신인이죠.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너무많습니다. 저는 아직 갈증이 있습니다.
GQ ‘이친자’ 제작 발표회 때는 어째서 울먹였어요?
WB 그런 적 처음이에요, 진짜. 너무 웃겨.(하늘을 올려다보며 부채질을 한다.) 왜 자꾸 울먹거리지. 저 슬프지 않아요. 젤리, 젤리 먹어야겠다.(웃음)
GQ 그때 말을 끝맺지 못했죠. “촬영 초반에 ‘하빈아 지금 감정이 너무 갔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집에 가면 많이···”, 하고. 많이 울었어요? 많이 욕했어요? 많이 욱했어요?
WB 욱하고 울고 그랬어요. 집에 가면 화가 너무 나는 거예요. 왜냐면, 아니 왜 그렇게 못 찾지, 스스로? 모르겠는 것투성이인 거예요. 감사했던 게, 감독님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저한테는 지팡이였어요. 한석규 선배님도 물론이고. “집에 가면 많이···”라는 그 말은 감정을 해소할 것이 필요하다는 게 주였어요. 사람이 슬프면 울어야 되고, 화나면 화내야 되고, 그게 표출이 돼야 안이 비잖아요. 근데 늘 이만큼 느끼고 못 비우고 집에 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차에서도 울고 그랬어요.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은 아닌데 그걸 터뜨리는 방식이나 정도가 남들과 다른 인물이니까. 분명 오늘 하빈으로 느낀 슬픔이나 분노는 막 여기까지 있는데 제가 그거를 어떻게 하고 오질 못 하니까 집에 가면 너무 슬픈 거예요. 그때 그 생각을 하다가 제작 발표회 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언젠가를 기점으로 더 이상 그렇게까지 고민하지 않게 됐어요. 하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한 고민은 좀 줄고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GQ 예를 들면 “아빠랑 같이 사는 건 너무 힘들어”라는 대사 톤이 연습 영상과 실제 드라마에서 달라요. 그 간극을 좁힌 채원빈의 시간이 있었겠죠.
WB 맞아요. 그 신을 10번 넘게 갔어요. 너무 울어서 목이 메어 목소리가 안 나와서 못 쓴 것도 있고, 잘 시작했다가 과해져서 못 쓴 것도 있고, 또 (감정을) 줄이려다 보니까 무의 상태로 하게 돼서 그건 끝까지 가지도 못 했어요. 제가 진심으로 하는 게 아니면 저도 느껴지니까 밍구스러워서. 그래서 그때 “죄송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하고 구석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석규)선배님이 오셔서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너한테나 남한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오는 대로 일단 해봐라” 하셔서 그렇게 한 게 OK 됐어요. 감독님께서도 계속 “넌 할 수 있어. 너만이 할 수 있어” 격려해주시고. 함께 계속 얘기 나눠주셨기에 찾아갈 수 있었어요.
GQ 원래 관찰력이 뛰어난 편인가요? 한석규 배우가 “어, 내가 그렇게 하지. 너 들었구나?” 했죠. “선배님은 촬영 전에 항상 혼잣말로 ‘보고, 듣고, 반응하고’를 되뇌어요”라는 원빈 씨 말에.
WB 맞아요. 선배님은 진짜 그렇게 하세요. 순간에 집중하시려는 모습이 되게 멋져 보였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관찰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니까 더 보게 되는 게 있어요.
GQ 원빈 씨 스스로 되뇌는 말은 무엇인가요?
WB 선배님께서 그러시는 걸 보고 제가 그거를 써먹었어요.(웃음) 진짜 도움이 되더라고요. 원래 혼자 되뇌는 말은 없었는데. 무언가···, 10년 뒤에 난 어떤 사람일까? 2 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혼자 있을 때 많이 해요. 그럴 때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선배님이랑 같이 작품을 하면서 ‘아, 나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가 생겼어요.
GQ 원빈 씨의 시선에서는 어떤 어른인데요?
WB 어떤 상황에서든 따뜻한 분이세요. 그 점을 닮고 싶어요. 선배님이랑 함께 일하면서 선배님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궁금하니까,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찾아봤는데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있더라고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 그렇게 되고 싶어요.
GQ 2024년 가장 빛난 루키니까, 채원빈에게 몇 가지 ‘가장’의 순간을 물어볼게요. 첫 번째, 가장 목소리를 높인 순간은?
WB 우선 음···, 즐거웠던 순간이라서 목소리가 높아진 때는 없는 것 같아요.
GQ 어떻게 해석할지도 궁금했는데 말이에요. 기분이 좋아서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의견을 제시하느라 높아질 수도 있으니까. 전자는 아니군요?
WB 네, 모두가 환호하듯 소리 지르는 상황에서도 저는 그런 편이 아니어서. 아, 최근의 일이 생각났어요.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서 부른 2010년대 메들리. 저희는 빅뱅 세대입니다. 노래방에서는 질러요. 사실 두세 곡 부르면 지쳐요.
GQ 애창곡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WB 꼭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짙은의 ‘잘 지내자, 우리’. 잔잔한 곡이라서 댄스곡 예약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첫 곡으로 예약해놓지 않으면 친구들 눈치를 살피다가 못 불러요.
GQ 채원빈의 친구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WB 굉장히 밝고 웃기고 맑은 친구들이에요.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힘들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그걸 길게 가져가진 않아요.
GQ 모임명도 있어요?
WB 있어요! ‘정각세’. ‘정신 차려, 각박한 세상 속에서’의 줄임말이에요.
GQ 채원빈이 채원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요?
WB 고생했다.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제 생각에는 좋고 기쁜 일에는 단계가 없거든요? 이게 좋았는데 다음에 다른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게 더 단계가 높아지는 느낌, 더 좋게 느껴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힘든 감정은 겪을수록 더 단단해진다고 해야 하나, 근육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 촬영 현장이 힘들었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저 스스로의 시간 면에서요. 그래서 이 근육들이 좋은 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GQ 그거 알아요? 2020년의 채원빈이 “속내를 모르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단 사실요.
WB 프흐하하하. 기억나요. 스무 살의 좋은 패기였네요. 그러게요, 이뤘네요. 빨리 이뤘네요.
GQ 2025년을 앞두고 씨앗으로 뿌려두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WB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소망보다는 내년의 저는 조금 더 의연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GQ “가장” 뒤에 올 채원빈에 대한 문장을 스스로 채워주세요.
WB 가장 빛나는 사람. 왜냐면요, 제 이름 뜻이 그거예요. 으뜸 원元, 빛날 빈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