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의 고고한 새집에서 렌조 로소를 마주한 날.
GQ 2000년대 초반, 패션에 입문하는 많은 소년이 학습하듯 ‘디젤의 창립자 렌조 로소’를 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현시대의 소년들에게, 지금의 ‘렌조 로소’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 부탁합니다.
RR 디젤이 소속된 OTB 그룹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OTB 그룹은 디젤, 질 샌더, 메종 마르지엘라, 마르니, 빅터&롤프, 스태프 인터내셔널, 브레이브 키즈, 아미리 지분 등 다양한 브랜드와 회사를 보유하고 있죠. 선글라스, 주얼리, 향수까지 아우르는 토털 패션 그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테리어, 가구, 타일, 램프 등도 생산하며, 코르티나, 마이애미, 런던에서 호텔 비지니스도 운영합니다. 와인, 올리브 오일 등의 생산을 진행하며 뷰티 분야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GQ OTB 그룹의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마니아층이 두꺼워요. 이것은 당신의 철학이 반영된 것일까요? 브랜드를 선정할 때 남다른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RR 맞아요. OTB의 브랜드들은 아이코닉하며 고유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실루엣, 소재, 컬러, 퀄리티 등을 바탕으로 한 정체성이죠. 마르니의 정체성은 컬러이고 메종 마르지엘라는 현대적인 기술력, 차별화된 소재와 제조 방식을 선보이는 아이콘과 같은 브랜드입니다. 질 샌더는 하이 퀄러티 럭셔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특별한 라인이고 디젤은 데님이라고 할 수 있죠. 데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쿠튀르까지 선보이고, 가공적인 측면에서도 선구적인 방식을 사용하며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으니까요. 빅터&롤프는 온전한 쿠튀르이자 예술 작품이고요.
GQ 2022년, 한남동 디젤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 했을 때, 반응이 아주 뜨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죠. 한국의 첫 번째 메종 마르지엘라 플래그십 부티크가 한남동에 자리하게 된 데는 이런 영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RR 저는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장소를 정할 때도 그렇죠. 뉴욕 렉싱턴가에 자리 잡고 있는 디젤 스토어는 이전에 은행 건물이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패션 스토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디젤을 위해 이 지역에 반드시 방문할 수 밖에 없는 상징적인 장소로 만드는 게 목표였죠. 메종 마르지엘라 플래그십 부티크를 위해 한남동을 선택한 것은 제법 쉬운 결정이었습니다. 한남동에 이색적인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고, 예술과 음악 관련 다양한 스토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여긴 글로벌한 분위기가 넘치는 아주 매력적인 동네예요. 단순히 럭셔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남동의 DNA가 브랜드와 잘 매치되는 것 같았어요.
GQ 일반 주택을 개조했다는 건 의외였습니다.
RR 도시와 문화, 그리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장소이길 원했습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패션계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브랜드이니까요.
GQ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메종 마르지엘라 부티크는 새하얀 직물의 물성을 살린 특유의 무드가 있습니다. 직원들의 하얀 가운도 빠질 수 없고요. 그럼에도 메종 마르지엘라 한남 플래그십 부티크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RR 한국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1970년대 한국식 주택을 개조했죠. 건물 고유의 개성을 보존하고자 했어요. 본연의 구조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여 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한 섬유의 직조 효과를 나타냈죠. 메종 마르지엘라 특유의 코드인 ‘메모리 오브’라는 표현 방식입니다. 직물의 촉감을 형상화 하는 거죠. 외관의 구조물들은 안감을 밖으로 드러내는 메종 마르지엘라 스타일을 반영했습니다. 흰색 자체가 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하죠. 매장 안엔 타비 슈즈를 밟고 지나간 듯한 문양이 새겨진 카펫이 깔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DNA가 담긴 카페가 있으니, 방문하지 않을 수 없죠.
GQ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RR 분명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거죠. 존 갈리아노의 현대성과 영향력, 마틴 마르지엘라의 아이덴티티가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단순히 쇼핑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카페와 가든에서 친구들과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죠. 머무는 동안 모두가 메종 마르지엘라의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느끼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GQ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메종 마르지엘라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많은 팬들은 타비 슈즈를 이야기 할것 같고, 저는 특유의 담백한 니트를 애정합니다.
RR 저는 아름다운 품질의 표시인 포 스티치를 좋아합니다. 매우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죠. 심지어 제 등에 포 스티치 문신을 했을 정도입니다. 또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어요. 존 갈리아노의 손을 거쳐 다양한 직물을 독창적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이나 제작 과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거라 더욱 애정이 갑니다.
GQ 전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글로벌 패션의 아이콘 중 하나인 당신은 앞으로의 한국을 어떻게 관철하고 있나요?
RR 진정한 한국의 매력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트렌드를 선도하며, 아시아 지역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여덟 살인 제 딸과 함께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들을 보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한국의 모습을 경험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 수준이나 시민 의식은 굉장히 앞서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덕분에 딸이 학교에서 비슷한 위기에 빠진 친구를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경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GQ 여러 인터뷰를 보니 당신은 ‘Brave’라는 단어를 신념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더군요. OTB, Only The Brave라는 그룹명에서 알 수 있듯이요. 현재 당신의 ‘Brave’는 무엇인가요?
RR 기업들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요. 럭셔리 시장 상황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위치에 있죠. 현재는 OTB 그룹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내세운 전략적인 운영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디지털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제 자신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죠. 이 모든 것이 제가 요즘 끊임없이 고민하는 생각들이자, 우리의 사업과 브랜드를 발전시키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GQ 한국에는 젊고 매력적인 취향의 로컬 브랜드가 많이 있습니다. OTB 그룹이 고공 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이들 또한 단단한 패션 기업으로 도약을 하기위해서는 어떤 ‘Brave’를 지녀야 할까요?
RR 당신이 얼마나 유명해지고 얼마나 높은 위치로 올라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남다른 아이디어와 용기를 갖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생각을 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긍정의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창의력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성, 기술, 고객들과 소통하는 채널 등,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잘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