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맨, 최재림과 함께 춤을!
GQ 바쁜 건 너무 당연하니까. ‘어떻게’ 또는 ‘얼마나’를 앞에 붙여 질문하면요?
JR ‘개인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지 좀 오래됐어요. 아무래도 공연 일정이 굉장히 많다 보니까 한숨 돌릴 틈이 없기는 한 요즘이에요. 그래서 최근에는 바이브가 이렇게(책상에 축 엎드리며) 땅에 많이 붙어 있어요.
GQ 아? 최재림 배우 하면 작품 속 높은 텐션이 먼저 떠올라서 그런지 의외입니다.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요즘이군요.
JR 그건 너무 맞아요.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쏟고, 집중도 촘촘하게 유지하고 있어야 좋은 공연이 나오니까요. 그래서 그 외 시간에는 보통은 이렇게, 바이브가 많이 내려와 있는 편이에요.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소모되는 순간들을 최대한 피하려고요. 실은 아까 촬영 때 그 감정을 좀 연기해보기도 했어요.
GQ 그런 재림 씨를 향해 포토그래퍼가 이렇게 말했죠. “멋있는데 무서워요.”(웃음)
JR (미소) 맞아요. 그래서 얼른 웃었죠. 활짝.
GQ 오늘 재림 배우를 만난 건 올해 우뚝한 퍼포먼스를 낸 인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에요. 섭외 연락을 받고 어땠어요?
JR 지금도 좀 많이 쑥스러워요. 물론 올해 잘하려고 열심히 했고, 그 과정 안에서 만난 어려움도, 삐거덕거림도 잘 통과했고, 좀 달려보고자 나름의 추진력도 내봤는데, 이런 시간을 헤아려주신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GQ 엊그제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국무총리 표창도 수훈했어요. 이만하면 올해 정말 모두가 인정할 만한 퍼포먼스를 낸 게 맞죠.
JR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지만 여전히 같은 마음이에요. 쑥스럽습니다.
GQ 얼마 전 <하데스타운>의 긴 여정이 막을 내렸어요. 한국 초연부터 함께했던 작품인데 아무래도 여운이 짙겠습니다.
JR <하데스타운>은 굉장히 다양한 감정이 빠르게 등장했다 또 사라지길 반복하는 작품이에요. 그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다양하고요. 그래서 어렵지만 재밌는 작품인데, 말씀처럼 초연부터 해오다 보니 과거의 경험이 어느 순간부턴 새로운 도전이 됐어요. 경험치가 쌓이면서 저절로 알고 있는 것, 또 새로 알게 된 것, 그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시도해야 했어요. 이번 <하데스타운>은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GQ 재림 씨가 ‘헤르메스’로 열연을 펼치는 그 순간에도 ‘빌리’의 복화술 인기는 계속됐어요. 조회수가 무려 9백만을 넘긴 쇼츠도 있죠.
JR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이럴 만한 일인가?’(웃음) 근데 이 생각은 여전해요.
GQ 여기에 ‘묵찌빠’ 밈도 만만치 않고요.
JR 그러니까요. 지금도 얼떨떨해요. ‘이게 왜 터진거지?’ 물론 재밌는 장면이고 흥미로울 만한 대사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싶죠. 좋아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여전히 미스터리긴 해요.
GQ 현장에서 느껴지는 반응도 분명 있겠어요.
JR 그럼요. 어쩔 땐 작은 부담이기도 해요. <시카고>로 예를 들면, 사실 복화술 장면은 전체 극에서 봤을 때 중요한 장면은 아니거든요. 굉장히 빨리 지나가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는 관객분들이 복화술을 보러 오시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어서 더 집중하게 되는 게 있어요. 입술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고.(웃음)
GQ 덕분에 작품을 향한 반응도 함께 오르고 있죠?
JR 너무 감사하죠. 사실 뮤지컬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잖아요. 상대적으로 티켓 가격도 높고요. 그래서 누군가가 처음 공연을 딱 접했을 때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면, 그분은 당분간 뮤지컬을 보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아요. 그런데 이렇게 유튜브나 SNS에서 밈으로 돌고, 예능에서도 계속 언급해주시고 하니 대중의 관심이나 반응이 이전과 다를 수밖에요. ‘뮤지컬은 좀 어려워’라는 인식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아서 기뻐요. ‘복화술 짤 자주 보이던데 이 뮤지컬 나도 한번 보러 갈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거. 참여하는 배우로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 맞아요. 쥐롤라! 창호님께도 고맙고요.
GQ 올해 참여한 작품 수도 굉장하죠.
JR 많은 분께서 걱정해주시는데 사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욕심 플러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있어요. <시카고> 같은 경우에는 복화술 반응이 지난 시즌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올해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받은 사랑이 있으니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킹키부츠>는 이번이 총 네 번째 참여하는 시즌이었는데 마침 올해가 작품 10주년이었어요. 네, 당연히 안 할 수가 없죠. <하데스타운>은 초연이 코로나 시기에 올라가서 솔직히 아쉬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재연 땐 더 잘하고 싶었죠. 다행히 다시 공연 할 수 있었고, 다들 한마음으로 달렸어요. 덕분에 서울, 지방 공연 모두 성황리에 끝났고요.
GQ 여러 작품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은 어떤가요?
JR 대체로 같아요. 배우로선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고, 나는 잘할 거고, 작품은 잘될 거야’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요. 여기에 사람 최재림이 갖는 설렘도 있고요.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은 작품에 늘 갖고 들어가요.
GQ 배우로서 갖는 그 욕심의 뿌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JR 이기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자신감인 것 같아요. 내겐 학교에서 배우고 훈련한 시간이 있고, 무대 위에서 겹겹이 쌓아온 경험이 있고, 좋은 선배와 동료들이 곁에 있고, 이런 믿음들이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의 자신감이 없으면 감히 욕심도 부릴 수 없죠.
GQ 올해 재림 배우에게 찾아온 커다란 변화라면?
JR 어떤 일을 겪은 건 아닌데요, 조금씩, 저에 대해서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거. ‘난 이런 사람이야’ 같은 것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어요. 저라는 인간이 간명해지는 것 같아서 전 좋아요.
GQ 성찰의 결과인가요, 아니면 주변에서 재림 씨를 향해 고루 하는 말들의 합인가요?
JR 전자요. 전에는 ‘난 그냥 이런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면 요즘은 ‘난 왜 이런 사람이지?’처럼 원인이나 과정을 살펴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제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너무 바쁘게 지내는 거 아닌가요?”인데, 왜 바쁘게 지낼까 생각해보면 그건 제가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인 거죠. 게으르기 때문에 저를 타이트한 계획에 맞춰놓는 거예요. 이런 발견들이 새롭죠. 좋은 것 같아요. 또 ‘요즘 공연이 왜 힘들지?, 왜 깔끔하지 못했지?’싶은 날이 있었는데 제게 집중해서 묻고 살펴보면 답이 나와요. 제가 올해 15년 차인데 그동안 나쁜 버릇이 너무 많이 쌓인 거죠. 그래서 그것들을 좀 걷어내는 작업을 올해 많이 했어요. 올해 마주한 변화라면 그런 거. 스스로를 솔직하게 마주하게 된 것. 아, 변화, 그거 또 있어요. 첫 광고 촬영?(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