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현의 목표는 과녁 너머의 다음 과녁.
GQ 방금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전화드린 거죠?
SH 네, 조금 늦을 것 같아서요. 기숙사 통금 시간이 밤 10시거든요.
GQ 올림픽 3관왕의 금메달리스트도 기숙사 문이 닫히는 건 무섭군요.
SH (웃음) 네, 아직 학생이니까요. 근데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면 괜찮아요.
GQ 임시현 선수가 학생이라는 걸 자꾸 잊어요. 워낙 대단한 선수여서 더 커 보이나 봐요. 그런데 또 부랴부랴 사감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귀엽고요.
SH 흐흐. 고맙습니다.
GQ 축하해요! 오늘 ‘대한민국체육상’ 대통령 표창을 수훈했죠. 오후에 시상식 마치고 바로 촬영장으로 달려온 걸로 알고 있어요.
SH 고맙습니다. 올림픽 끝나고 계속 운동만 했거든요. 한편으론 오랜만에 상을 받는 자리가 좀 낯설고 어색하긴 했는데요, 이렇게 커다란 상을 주시는 자리니까, 사실 굉장한 영광이었죠.
GQ 그렇게 호도도도 달려와서 찍은 오늘 화보는 어땠어요? 올림픽 끝나고 꽤 많은 카메라 앞에, 꽤 자주 서야 했죠?
SH 음, 확실히 처음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처음엔 뭐랄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 뚝딱거리고,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튼 처음엔 지인-짜 어려웠어요.
GQ 올림픽 이후로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가 아무래도 많아졌잖아요. 매체 출연도 그렇고, 개인 SNS로 오는 반응도 그렇고요.
SH 맞아요. 처음엔 너무 신기했어요. 제가 뭐 하나를 올리면 굉장히 많은 분께서 거기에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언젠가부터 정말 많은 응원을 받게 되니까 얼떨떨하다고 해야 하나? 그랬어요. 으응? 이게 맞나, 싶었어요.
GQ 갑작스럽게 커진 대중의 반응이나 관심이 어렵진 않았고요?
SH 너무 감사하죠. 아, 그런데 팬분들하고 꾸준히 소통한다는 거, 그건 진짜 어렵더라고요. 현역 선수니까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많아요. 대회 땐 그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요. 그럴 땐 소통을 전혀 못 하는데 그럼에도 늘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그 부분이 좀 죄송해요. 보내주시는 모든 메시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못 해드리고 있는데 사실 저, 다 보고는 있단 말이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회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되고요.
GQ 오늘 <지큐>가 마련한 이 자리도 임시현 선수를 향한 응원이자 축하의 마음이고요.
SH 솔직한 마음은 올림픽 끝나고 시간도 좀 지났으니 이제는 찾아주시는 곳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연락하셔서 너무 놀랐어요. 또 이런 타이틀로 불러주셔서 감사했고요.
GQ 시간은 흘러가도 임시현 선수가 세운 우뚝한 기록들은 잊힐 수 없으니까요. 임시현 선수는 올해를 어떻게 기억해요?
SH 음, 아시안게임 때 잘하고 나서 이렇게 다짐했어요. ‘한 번만 잘하는 선수가 되지 말자.’
GQ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3개나 획득했죠?
SH 네,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제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이 꽤 힘들더라고요.
GQ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던가요?
SH 관심, 기대치요. 이 두 가지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너무 높은 거죠. 저는 항상 즐기면서 운동을 해오던 사람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 겪어본 감정이라 인정하고 돌파하기까지 꽤 힘들었던 것 같아요.
GQ 처음 마주한 그 힘듦을 어떻게 이겨냈어요?
SH 달리 방법은 없었던 것 같아요. 팀원들하고 으쌰으쌰 하면서 하나씩 해나갔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언젠가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사람의 관심, 기대치, 이거 나랑 목표가 같은 거면 오히려 고마운 거 아닌가?’
GQ 시현적 사고.
SH (웃음) 그 생각이 퍽 하고 떠오른 뒤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그래, 뭐 내 목표도 충분히 높은데, 저들의 기대치도 나와 같다면 좋은 거지.’
GQ 멋져요. 그렇게 마음먹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지났겠어요.
SH 그래서 아까 질문에 답을 하자면, ‘증명한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아시안게임이 끝났을 땐 사실 모두가 인정하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누구나 한 번은 잘할 수 있지’ 이런 느낌이 지배적이었죠. 그런데 다행히 올림픽까지 좋은 결과가 이어진 덕분에 이제는 증명했다? 제 실력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분 좋았어요. 근데 뭐 이제 시작이에요. 지금 국가대표팀 2년 차거든요. ‘한 번만 잘하는 선수가 되지 말자.’ 앞으로 계속 잘해야죠.
GQ 임시현 선수는 금메달 보며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SH 나 진짜, 정말 힘들었는데 그 결과가 이 메달이구나?(웃음) 사실 별생각 없어요. 아 올림픽 금메달은 이렇게 생겼구나? 흐흐흐흐.
GQ 세계 무대 1위의 기백답네요. 올림픽 3관왕 이후에 쏟아진 많은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건요?
SH 음! 당돌한 팬이 한 명 있어요. 아직 어린 팬. 그분이 이런 메시지를 주셨어요. 본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L A 올림픽에 나갈 거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무조건 디펜딩 챔피언 자리 지키고 있어 달라. 올해 수능 보는 친구예요.(웃음) 그 씩씩함, 당돌함이 너무 예쁘죠? 실제로도 그 친구 메시지가 종종 생각나요. 그때마다 힘도 얻고, 목표 의식도 다시 또렷해지고요.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경기력을 내야겠다.’ 정말 고마운 친구죠. 진짜 꼭 LA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GQ 임시현 선수가 이런 우뚝한 자리에 서기까지, 어떤 배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SH 아시안게임 때 1등을 하고 나서 곧바로 체전이 있었어요. 체전에서도 1등을 했고, 그 뒤로 아시아 선수권 대회가 연이어 있었는데 고백하자면 사실 너무 힘들어서 엄청 열심히 하진 않았어요. 그때 개인전에서 2등을 했죠. 그때 느꼈어요. ‘그래, 난 노력한 만큼 나오는 선수였지.’ 정말 많이 느꼈어요. 아마 그때 1등했다면 올림픽에 못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당시 2등의 경험이 제겐 정말 커다란 배움을 준 셈이에요.
GQ 이렇게 또 배워갑니다.
SH 에이, 저도 뭐 하기 싫을 때도 많아요. 근데 머리로는 이런 주문을 외긴 해요. ‘해야지 뭐, 해내야지, 할 일이면 그냥 하자.’
GQ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SH 운동할 땐 좀 그렇죠, 아무래도요. 자기 전에 슥 한번 떠올려봐요. ‘나 오늘 메달 딸 정도로 열심히 했나?’ 안 했으면 내일 좀 더, 더 하는 거죠.
GQ 그럼 선수가 아닌 임시현에겐 어때요?
SH 양궁 외로는 뭐, 그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죠. 푸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