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린 줄 알았는데, 그냥 다른 거였어요.
GQ 2025년 1월호 커버 모델입니다. 이 공상과학 같은 숫자가 어떻게 느껴져요?
SY 네, 정말 이상하면서도 믿기 힘든 기분이에요.
GQ 2025년이라는 해가 실감이 나요?
SY 그래도 비교적 2020년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아이들이 있어서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가끔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은 이해하고 배운 것을 내면화하는 시간이라면 2025년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제로 삶 속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해가 될 것 같아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GQ 최근에 당신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백남준 다큐멘터리를 봐서 그런지, 이번 화보 촬영이 백남준의 퍼포먼스처럼 보였어요. 마침 외모까지 닮았죠.
SY (빙긋.)
GQ 이번 촬영 때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품었어요?
SY 이번에는 특별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자 아티스트인 황현규 님이 함께 해주셨거든요. 제가 특별히 부탁했죠. 그녀는 <옥자>에서 처음 만나 <버닝>에서 또다시 작업했는데, 실로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블랙 아이는 어떨까요?”, “상처나 햇볕에 탄 듯한 메이크업은요?” 같은 흥미로운 제안을 해주었고, 사진가, 에디터와도 동의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냈죠.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더 말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그런 태도로 삶을 살고 싶다는 거예요. 더 이상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그 뒤에 숨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공연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GQ 화보 촬영에서 영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죠.
SY 이번 촬영에서는 제가 많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면 했어요. 그녀도 동의한 바이고요. 그녀가 이 촬영에 참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덕분에 제 스스로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죠. 저는 제가 주목받는다고 느끼면 종종 민감해지곤 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자유로워져요.
GQ 신뢰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죠. 어떤 사람을 믿나요?
SY 특정 스타일을 고르는 건 아니에요. 모두에게 열려 있어요. 이 사람은 나쁘고 저 사람은 좋다는 식의 기준은 없어요. 중요한 건, 자신을 내려놓을 준비가 된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느껴요. 누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참여하려고 하는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인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모든 답을 알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중간 지점에서 서로 만나 각자 가지고 있는 걸 꺼내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일이 즐거워져요.
GQ 2022년 <GQ KOREA>와의 인터뷰에서 곧 개봉할 <LOVE ME>에 함께 출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함께 일하기 정말 좋은 배우였다”고 말했죠. 함께 일하기 좋다는 건 스티븐 연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SY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무서울 때가 많거든요. 소통 가운데 나약함을 드러내고 솔직해지는 게 두렵죠. 그런데 그런 과정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아요. 단순히 “아, 나는 열린 사람이니까 뭐든 할 수 있어요”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위험을 감수하는 게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마음을 닫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요, 열어볼게요”라고 결심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저는 그런 전환이 좋고,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용기를 존경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과 일할 때 정말 즐거워요.
GQ <LOVE ME>에는 어째서,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SY 시나리오가 들어온 건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보내주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참여한다고 알려줬던 것만은 기억나요. 저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무척 존경해왔고, 그녀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했어요. 아티스트로서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녀가 참여한다는 사실이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진솔하고 과감하고 진지한 느낌들도 좋았어요. 결국엔 무척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느꼈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작품처럼 느껴지는 면도 존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GQ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시작하나요?
SY 때로는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러다 답을 찾게 되죠. 많은 경우,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는 그 프로젝트를 끝내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 작업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씨름하는 것과 많이 닿아 있어요. 어떤 일은 정말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그런 경우엔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다른 일들은 바로 앞에서 ‘아, 이건 하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죠. 겁나고, 무섭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가보면, 결국엔 “All right” 하면서 뛰어드는 거예요. 저는 그런 과정을 즐겨요. 많은 경우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곤 해요. ‘이 아이디어는 이해가 돼. 말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이걸 하면 내가 내줘야 할 어떤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것이 고통스럽거나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전 항상 이런 질문을 해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게 될까? 우리가 모두 진솔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작업일까?“ 이 모두가 ‘yes’라면, 저는 그것을 선택해요.
GQ <LOVE ME>로 입봉하는 듀오 감독 샘 주체로, 앤디 주체로로부터는 무엇을 발견했나요?
SY 제가 그들로부터 발견한 장점은, 자신을 방어적으로 과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누군지 알고, 모든 걸 다 알아“라는 태도가 아니었죠. 대신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했어요. 심지어 실패할 가능성까지 도.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런 태도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었고, 이 작품을 직접 썼고, 그들의 목소리는 급진적으로 진솔했어요. 때론 솔직함이 지나쳐서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진솔함 속에는 우리가 창피하게 느끼는 것을 고백하고, 그 위선을 뚫고 나가 ‘진짜’에 닿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들이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지 완벽히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계산 끝에 알게 되었죠. ‘오케이, 좋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군’.
GQ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했죠. 인간의 불완전함, 넘어지는 순간들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요?
SY 거기엔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요. 지금 저에게 중요한데, 아마도···, 글쎄요, 제가 항상 생각하는 어떤 규칙 같은 건 아니에요. 그냥, 그거 말고 우리가 가진 게 뭐가 있겠어요? 결국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요.
GQ 2018년 <GQ KOREA>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버닝>의 벤처럼 자신이 만든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여전히 그렇게 느껴요?
SY 네, 아직도 그런 느낌이 들긴 하지만, 요즘은 그 안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세계 안팎을 오가는 게 가능해진 것 같아요. 이민을 가면, 그 중간 어딘가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것을 ‘바르도 Bardot’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전환 상태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때로는 거기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게 어려울 수 있어요. 요즘 세상은 점점 더 디아스포라적 Diasporic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이민자든 아니든,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이민자가 될 수 있다고 느껴요. 인터넷 덕분에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GQ 더 이상 갇혀 있지 않다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SY 제가 갇혀 있다고 느꼈을 때는, 제 의식을 통제할 힘이 없다고 느낀 때였어요.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단순히 ‘그저 하나의 생각일 뿐’이라고 이해하기보다 사실로 받아들이던 때였죠. 그런데 제 현실을 정의하는 방식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더 이상 머릿속에 갇히지 않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매일 실패해요.
GQ 이민자라는 사실을 차치하고, 어릴 때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SY 아니요, 그보다는 제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다르다고 느껴요. 아마 그것이 제가 더 이상 머릿속에 갇혀 있지 않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네요.
GQ 자신을 잊기 위해 연기해요, 찾기 위해 연기해요?
SY 찾기 위해서요.
GQ 인터뷰에서 진솔함, 정직함이란 단어를 자주 언급해요. 알고 있어요?
SY 제가요? 세상에, 오싹한데요. 어릴 때, 특히 이민 온 이후에 처음으로 떠올린 것, 첫 반응은 항상 거짓말하는 것이었어요. 완전히 거짓된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거짓말은 대부분 진실을 감추는 형태였어요. 정보를 숨기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런 점을 극복하고 싶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익히기까지 40년이 걸렸어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려는 본능을 넘어 진실을 말하게 되는 데까지.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저 자신을 위해서예요. 그것이 제가 진실을 자꾸 말하려고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에 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눈치’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진실을 말하고 싶은데 세상이 “그건 말하면 안 돼”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그건 사실 한국에만 국한된 건 아니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눈치를 잘 이해하면, 눈치로부터 통제당하지 않고 눈치를 통제할 수 있으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까 우리가 이야기한 머릿속에 갇혀 있는지 아닌지와도 연결되는 부분 같아요.
GQ 올해 한 유튜브 토크에서 진실을 보고 진실 속에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시대라고 덧붙였죠. 요즘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SY 솔직히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진실에 도달하는 단계에 있어서.
GQ 배우로서 고립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SY 네. 그런데 고립에 대해서 정확한 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 순간마다 고유한 것 같아요. 때로는 고립이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언가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 때로는 문자 그대로 혼자 있는 것, 나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솔직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게 고립은 무언가 도달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GQ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딱 9장 있어요. 올리는, 남겨두는 기준이 있나요?
SY 솔직히, 아무것도 없어요. 가끔 그냥 ‘이거다’ 하고 올리는 거죠. 초창기에는 게시물을 많이 올렸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솔직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좋았어요. 재미있는 영상 만드는 것도 좋아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라고 요구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소셜 미디어를 끊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좋거나 웃기거나 이상한 것들을 올리는 거죠.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언가를 올리고 싶어요. 너무 과하게 공유하고 싶지도 않고요.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어요.(웃음)
GQ <백남준 : 가장 오래된 TV>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건 예술가의 일이다”라는 말이 나오죠.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나요?
SY 저 개인적으로는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만, 항상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이후로는 점점 덜 중요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확실히,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자신만이 답을 알고 있다는 식의 소유감이나 자만심과 분리하는 일이에요. 10년 후의 패턴을 예측하는 것과 내가 유일하게 그걸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선이 있어요. 후자는 사실이 아니니까요. 다만 ‘이런 것이 오고 있구나,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겠구나’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싶어요.
GQ <미키 17>은 개봉 전이지만, 촬영은 꽤 오래전에 끝났죠. 이 작업이 스티븐 연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SY 봉준호 감독님과 다시 작업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이뤄졌어요. 이번 작업에서 실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Coming in and out’ 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줬죠. 이전에는 인물에 너무 몰입하고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작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을 통해 더 프로답게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GQ ‘In and Out’의 과정이 삶의 균형 이외에 연기에도 도움이 되던가요?
SY 네. 필요한 순간에 들어가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실제로 영화에서 제 캐릭터도 두 개의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 경험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GQ 그나저나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고요? 그 무궁무진한 미식 도시에서 무엇을 먹을 건가요? 설마 ‘인앤아웃’은 아니겠죠.
SY 마침 방금 맛있는 딤섬을 먹고 왔어요.(웃음)